이 글을 보시는 당신은 혹시  킬링필드에 대해서 들어 본적이 있습니까?

킬링필드(killing field)란 1970년대 중반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학살을 의미하는 용어로 '죽음의 들'이란 뜻이다.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 정권 때의 악명높은 대학살로 생긴 집단 무덤을 뜻하는데,  '크메르 루주(krmer rouge)'란  크메르는 '캄보디아 민족'를 뜻하며 루주는 프랑스어로 '붉은'아라는 뜻이다. 합해서 '붉은 크메르'라는 캄보디아의 공산 무장단체의 이름인 것이다.

 1967년에 결성되어 월남전이 거의 끝나는 1975년에 이 단체는 캄보디아 정권을 장악해 민주캄푸치아(Democratic kampuchea·1975~1979) 정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하면서부터 ‘킬링필드’란 신조어가 생겨났고, 결국 크메르루주는 학살의 대명사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당시 캄보디아  900만명의 인구 중 200~300만명(50만명~170만명 사이라고도 함)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알려진 반공적 관점의 사실인데 캄보디아는 전쟁 당시 중립을 나타냈음에도 공산 게릴라 세력 내전과 베트남전 여파로 외세 공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캄보디아에서는 1970년대 그 학살과 더불어 미군의 무차별 공습으로  20만~50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마구 죽어갔다고 한다. 당시 미국 등으로부터 경제적인 봉쇄를 당해 질병이나 굶주림으로도 많은 사람이 죽었다한다. 게다가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캄보디아도 현재 고엽제로 인한 피해가 지독하게 남아있다.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결국 어떤 주장이 옳든 간에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간 것이다. 지금도 세계의 어느 곳에서는 킬링필드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가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 프놈펜은 내가 여행 하면서 느낀 전세계 어느 도시보다 우울한 도시다. 그 유명한 킬링필드로 이름을 전세계에 알린 캄보디아, 그 수도 프놈펜에는 뚜어슬랭 일명 S-21이란 내전때 수용소가 있다. 수십만명이 들어가서 단 몇명만 살아 나온 죽음의 수용소. 고등학교를 개조해서 만든 이 악독한 수용소에서 독재자 폴폿은 수 많은사람들 손이 고운 사람은 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경을 쓴 사람은 공부를 했다는 이유로 영어를 쓰는 사람은 영어를 배웠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 가족들 까지.. 이런 수 많은 이들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지네 나라 사람한테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 아픔을 절대로 잊지 말자는 뜻에서인지 뚜얼슬랭에 가면 고문기구,고문사진,교실바닥을 개조해서 만든 감옥, 생생한 사진, 그리고 사진이 없는 것은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린 그림이 자세히 전시되어있다. 교실바닥에는 아직도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 지독한 뚜얼슬랭안을 걷다보면 음침함을 넘어 그곳에 갇혀 있던 한이 배어져나옴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 곳 뚜얼슬랭엔 수용소에 수감 됐을때 찍은 사람들의 사진들이 빼곡하게 전시되어있다. 한사람 한사람 그들의 얼굴을 스쳐지나가는데 정말이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사람이 , 사람이 제일 무서운 존재다.아이를 안고 있는 이 여자의 눈빛은 정말이지... 곧 죽음을 예감한 한 아이의 엄마 그 엄마의 사진은 정말이지 묘한 기분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지금부터 뚜얼슬랭 사진들을 보자..


 학교 안으로 들어가면 각 방이 어떤 용도로 쓰였었는지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 해놓고, 당시 정황 사진까지 걸어놓고 방 설명을 해주는데 정말 잔인하다.


학교 운동장은 공개 처형 장소,고문장소로 쓰였다. 그림으로 어떻게 쓰였었는지 설명이 있는데 참으로 끔찍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눈길을 사로 잡은건 당시 수용소에 갖혀있었던 이들의 사진들. 개개인 한명한명 얼마나 소중한 인생이었을텐데 이렇게 끔찍한 장소에서 끔찍하게 죽었다는 사실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슬펐다.


교실은 벽돌을 쌓아 감옥으로 개조했다. 이 차가운 교실바닥에 저 비좁은 곳에서 갖혀서 느꼈을 공포, 그냥 갖혀만 있어도 괴로웠을텐데 고문과 언제 다가올지 모를 죽음에 대한 공포까지. 마치 저 장소에 그 한이 서려있는듯 오싹해왔다.


이 자가 캄보디아 내전, 킬링필드의 주범인 독재자 폴 폿이다.



이런 끔찍한 수용소의 모습에서 그래도 희망을 느낄 수 있는 방이 있었는데 그 몇 안되는 생존자들의 현재 모습을 담아놓은 방이었다. 당시 사진과 현재의 모습. 어린 소년 소녀들은 어느새 아저씨 아줌마들이 되어있었다. 어느새 결혼도 하고 자식도 가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살자, 살아 남는게 이기는거다 란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나는 뚜얼슬랭에서 사람이 가장 무서운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또 느낀 것이 한가지 더 있다. 몇명 안되는 뚜얼슬랭의 생존자들의 현재 모습을 사진에 담아 전시해둔 곳에서 그들의 밝은 모습을 보고는 그래도 사람이 아무리 무섭더라도 사람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것을 느꼈다.

어떤 영화의 대사던가? 인간이 되지 못할 망정, 괴물은 되지말자. 우리 모두 사람답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겐 그럴 기회가 주어졌으니까,





나이트엔데이 2005 동남아 3국 배낭여행기 처음부터 보기
[Traverls/2005 동남아 3국] - 한국/태국 050726 배낭여행자로서의 그 첫 걸음, 태국으로
  1. 마모루 2007.12.22 00:52 신고

    진짜 잔인하네요

  2. js_kim0331 2008.01.25 13:57 신고

    저 엄마의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걸 볼 수 있을 텐데...
    저러고 앉아 있으면 뒤통수를 드릴로 뚫고 죽어가는거죠...
    저 여인이 당시 캄보디아의 높은 관료 부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말미에 생존자의 현재 모습이 아니라 당시 크메르루즈 소속이었던 사람들의 현재 모습입니다...

  3. tmfvmadl 2008.09.04 14:18 신고

    저아이 저 여인 정말 불쌍해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말 종은곳에 아이와 엄마가 함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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