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서블 여행기 #72 [파키스탄/훈자] 다이나믹 파수

 

 훈자에 와서 게으르고 나태한 생활이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의례 배낭여행자들의 3대 블랙홀이란 명목하에 유유자적함을 미덕으로 삼은 탓이다. 물론 이렇게 한다해도 그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이 없는 곳이 바로 여행이다. 이글네스트에서 일출을 보겠다고 부지런떤게 어젠데 부지런함도 탄력을 받았는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자마자 부리나케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오늘은 훈자에서 북쪽으로 떨어진 PASU 파수에 가기로 했기 때문.   파키스탄 북쪽으로는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데 파수는 국경으로 가는 길인 쿤자랍패스를 가기 전의 큰 마을이다.  가든롯지에서 유유자적하면서 숙소에 비치 되어있는 여러 파키스탄 관련 책들을 보던 중 이 마을의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나름 기대감에 벅차 우리는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오전 7시에 밖으로 나갔다.



  훈자에 와서 매일매일 탱자탱자 놀면서 게으름부리던 우리가 이런시간에 나가보는 것도 처음인듯,  우린 마을 어귀로 가서 아랫마을인 알라아바드로 가는 스즈키를 찾았다. 나름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텅빈 스즈키만 있고, 아직 기사는 출근하지 않고 덩그러니 주차되어있는 스즈키들도 있었는데 마침 운전기사가 나와서 차를 깨끗하게 닦고 있는 스즈키를 발견했다. 운전기사에게 가서 "알리아바드? " 물어보니 간다고 한다.  여행지에서 특히 인도에서 이런 부지런 한 이들을 보면 괜히 여행 중 빈둥되는 내 모습과 비교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성실한 모습은 언제나 보기 좋다. 늘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 그에게 이야기를 하고 그의 스즈키에 타서 앉아있으니 학교가는듯 학생이나 사람들이 올라타기 시작한다.   이슬람국가인 파키스탄은 대다수의 이슬람국가들이 그러하듯 남녀구분이 엄격한 편인데, 여자들은 그러다보니 안쪽 깊숙히 타고 남자들은 대부분 가장자리, 혹은 아예 버스 바깥에 매달려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뉴스에서 보도되는 이슬람 국가들의 모습은 여자를 억압하고 괴롭히는 듯 보인다.  물론 그것도 이슬람국가의 한 모습일 것이다.   그 것은 마치 외국인들이 한국은 전쟁중이고, 위험하고, 돈과 성공에 미친 나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인 듯 하다.

 


 하지만 한국에도 좋은 면들이 많듯이, 내가 직접 보고 느낀 이슬람 국가들은 여자들에 대한 배려가 상당하다.  어쨌든 스즈키에 올라타고 앉아 사람들이 차길 기다렸다. 정말 작고 아담한 스즈키안에 사람들이 꽉 들어찬 뒤에야 기사는 알리아바드로 출발을 했다. 




 스즈키를 타고 알리아바드로 가는동안 스즈키 안에서 파키스탄 아줌마들의 수다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사람이 참 말이 안통해도 다 통한다는 것처럼 그들의 표정, 눈빛,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시선의 타이밍들이 딱 우리에 관해 수다를 떨고 있는 듯 했다. 이럴 때쯤이면 언제나처럼 호기심 많은 사람이 둘이 무슨관계냐고 묻는다. 파키스탄에 와서 쏘세지는 내 부인이 되었다. 외간 여자가 혼자 여행 하는것도, 그리고 모르는 남자와 여행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그들이기에 어느순간부터 쏘세지와 나는 부부가 되었다. 그냥 그렇게 설명하는게 귀찮은 수 많은 설명을 생략하게 만들었다.  물론 가끔 애는 있냐 없냐, 애는 왜 안낳냐 등의 추가 질문은 있지만, 그 편이 훨씬 더 편했다.




 우리 덕분에 차의 분위기는 훈훈했다. 딸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아버지는 딸이 엄청 귀엽고 자랑스러운듯 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딸이 공부도 잘하고 일본어도 잘한다고 이야기 한다. 우리가 한국사람이라고 하는데도 일본어 잘한다고 얘기 하길래,  일본어 얼마나 잘하나 싶어서 일본어로 대화를 시작하는데 제법 대화를 곧잘했다. 정말 똘똘한듯. ( 근데 아버지한테 한국사람은 일본어 안써요! 라고 이야기 해야되지 않니? ) 이 곳은 하세가와 메모리얼 스쿨때문에 일본어가 기본 탑재 되는 것 같다. 참... 일본은 정말..참... 







 그렇게 드디어 스즈키를 타고 알리아바드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파수 PASU에 간다고 하니 가르쳐준 곳은 미니밴(봉고)들이 모여있는 곳,  가는 길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잠시 온사방이 분주해졌었다. 이 곳도 사람사는 곳이다. 어려운일에 처하자 모든 이들이 자기일처럼 달려와 (구경만 하는게 아니라) 돕는다. 훈훈한 그 모습을 잠시 보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슈퍼마켓에 들려서 물 사고, 과자 사고 버스에 올랐다. 파수까지는 1인당 100루피다. 늘 그렇듯이 여자들의 자리는 맨 앞  운전사 바로 뒷자리. 그나마  나는 외국인이라고 덕분에 앞에 앉았다. 




 한칸에 4명씩. 봉고차를 꽉꽉채우는데,  오랜만에 옛날 생각난다. 캄보디아 캄포트에서 이동하던 때가 생각난다. 캄보디아에서  한줄에 5명이 탔는데 18. 그 때 개 고생한거 생각하면 아직도 토나올 것 같다.  그렇게 고생해서 이동했는데 방콕에서 만난 어떤 여대생 2명과 이야기하다가 " 전 캄보디아에서 너무 힘들었어요..진짜 이동하는데 죽는줄 알았어요 " 라고 얘기하자 아직도 그 표정 말투 하나하나 생생하다.  피식 웃으며 "인도 갔다와야 배낭여행 했다고 하죠 "라고 이야기하는데  18년들 내가 진짜 그년들 때문에 인도부심 부리는 것들을 존나 싫어하게 된거 같다.  이런게 트라우마다.  이런 것 때문에 훈자에 깝녀나 다른 이들이 가이드북을 빌리로 돌아다니는 나와 쏘세지에게 " 파키스탄이 가이드북이 뭐가 필요해요? "  / " 파키스탄 가이드북 필요없는데 " 라면서 어처구니 없는 소리 해대는게 참 꼴배기 싫은 이유다.   괜시리 오랜만에 작은 봉고차에 꽉꽉 앉아 가니 옛생각이 절로 난다.








 버스는 드디어 다 차고, 출발.  알라아바드를 떠난 버스는 잘 닦인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는데 도로가 잘 깔려있다.   이 곳이 중국과 파키스탄을 잇는 그 유명한 카라코람하이웨이 이기 때문일것이다.  암튼 백만년만에 훈자 밖으로 나와 달려가니 역시 좋다. 진작 좀 바쁘게 움직이고 돌아다닐껄 싶다. 가는 풍경이 참으로 멋졌다.  가는 중간 비포장길로 바뀌는 곳이 있었는데 그런 곳은 여지 없이 공사중이었고, 공사장엔 한결같이 중국어 간판과 익숙한 중국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중국에서 길을 닦고 있었다. 파키스탄 상황이 안좋으니 중국에서 이렇게 도로를 건설해주고 있었다.  실로 무서운일이다.  중국에서 부터 파키스탄까지 연결중인 것이다. 이제 이 길은 파키스탄을 관통해 무역항까지 이어지며 중국 내륙지방을 곧바로 인도양으로 연결해줄 것이다. 




 그리고 한참을 달렸을까 갑자기 눈 앞에 청록색 에메랄드 빛의 호수가 나타났다. 대박.  정말 물빛이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어떻게 저런 물빛이 나올까.






 여기서 잠깐, 이 신비의 호수에 대해서?


 이 호수는 원래는 없었는데 산사태가 나면서 만들어진 호수다. 덕분에 이 지역이 저 호수 아래로 가라앉게 되었다. 원래는 도로로 연결되던 곳인데 이렇게 현재로는 배로 왔다갔다 할 수 밖에 없다. 한참 후에 도로가 다시 재개 되면 그 땐 편하게 다시 갈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졸지에 살아가던 터전을 잃은 사람들. 그런 가슴아픈 사연이 있는 호수다.











 그리고 차가 멈춰섰는데 아마도 배를 타고 넘어가야 되는 듯 싶다. 시스템을 모르니까 일단은  그냥 사람들 따라 배에 올랐다. 그리고 한참을 기다려 배에 올라 출발. 에메랄드 빛 호수에 감탄하며 사진을 미친듯이 찍어대는 가운데 생각보다 호수가 엄청나게 커서 한참을 가야만 했는데 돈을 걷기 시작했다.  이때서야 알았다.  버스 가격에 포함된게 아니었다니 그리고 돈받으로 온 놈이 한참 돈을 걷다가 우리에게 오기 전에 갑자기 돈을 고르기 시작한다.  손에 500루피 짜리만 들고 우리에게 와서는 500루피를 내라고 한다.  조까 18. 



 지네 물가가 얼만데 한참 실랑이를 하는 가운데 녀석이 말실수로 현지인은 100루피라고 했는데 어처구니가 없었다. 외국인 물가. 인도에서는 너무나 당연한건데 착한 파키에서 오랜만에 당하니 분노. 정말 한참 실랑이를 하다보니 주위에 모든 파키스탄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며 과연 어찌될지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 가운데 언제나 처럼 영어 존나 잘하는 젊은놈이 와서 설명하는데 분명히 도와주려는 마음이었겠지만, 통역을 하는데 너네는 게스트라서 두배라고 미친 씨발, 그럼 한국에 온 파키한테 다 두배 받나.  정말 사태가 그냥 끝날 수준이 아니었다.











 한참 실랑이 하는데 독한놈들이 배 시동을 끄고 배를 멈췄다.  정말 화가 났다.  내가 돈을 안내면 이 상태.  결국 100루피깎아 둘이 400루피. 기분이 너무 상했다. 그리고 한참후에 도착.  벌써부터 기분이 팍 상했다.   정말 지금껏 파키스탄의 좋은 인상이 한풀 꺾였을 정도.   배에서 내려 도착한 곳은 구르멧이다.  차들이 줄지어 서있는데  거기서 다시 미니밴을 타고 파수로 향하는데 조금 달리니 파수.




  문제는 우리에겐 정보라곤 그저 파수라는 이름 정도였기 때문에, 어디서 내려야 할지 몰랐다는 것이다.  일단 우리는 1박2일을 각오하고 왔기 때문에, 빙하 트래킹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식당을 먼저가기로 했다.   미니밴 옆자리 아저씨가 친절하게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며 알려주는데 아저씨가 파수 어디로 갈껀지 물어보는데, Gracier Breeze에 가겠다고 하는데 아저씨가 다급하게 차를 세웠다. 알고보니까 마침 딱 Gracier Breeze를 지나치고 있었다. 친절한 아저씨가 기사에게 대신 설명해줘서 우리는 무사히 바로 앞에 설 수 있었다. 


 









 차에서 내려서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차는 무심한듯 휑한 도로를 내달려 떠났다. 차가 저 멀리 가자, 이내 고요에 가까운 적막감이 흐른다. 너무나 한적한 도로, 거의 허허벌판에 가까운 황량한 곳이었다. 아저씨가 아니었더라면 엄청 막막했겠단 생각을 해본다.  지나가는 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걸어다닐만한 느낌의 장소도 아니었다. 가려던 식당은 높은 계단을 통해 언덕위에 우뚝 서있다.  계단을 올라 식당으로 향했다. 너무 배고파서 밥도 먹자며 올라가니  식당 마당에 외국인 커플이 느긋하게 선탠을 하고 있다. 




 세상의 끝 같은 느낌의 동네에서 여행자들을 만나니 괜히 반갑기까지 하다. 식당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니  이글네스트 갈 때 본 동양인도 있고, 신기하다. 이 삭막하고 아무도 없는것 같은 곳에 사람들이 있다. 앉아서 밥시키고 구경. 풍경이 예술이다. 여기 산은 뾰족뾰족하니 정말 간지가 작살난다.  동양인과 이야기를 해보니 일본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알고보니 중국인인 그 사람과 파키가이드와 이야기 하며 정보를 얻었다.


 







 

 눈 앞에 빙하가 보인다. 정말 쩐다.  배고파서 밥 시키는데 내가 시키는 것마다 다 안됀다. 어쨌든 밥 먹고 잠시 쉬면서 정보를 계속 캐치.  길 물어보고 알아보는데, 빙하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랜시간이 걸린다. 정말 애매한 상황, 빙하트래킹을 하자니 오늘은 늦어서 안되고, 내일하면 내일 저녁때 훈자로 못돌아가고, 가이드도 고용해야되고 이리저리 애매, 정보가 없으니 참,,막상 하려고 해도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이래서 사람들이 열심히 다른 사람 블로그도 보고, 카페도 가입하면서 정보를 긁어모으는 것 같다.  결국 쏘세지와 논의 끝에 빙하는 패스, 일단 파수에 또 하나 유명한 서스펜션 브릿지 보러 가기 위해, 가는 길을 묻고 다시 또 정보를 긁어모았다.




 그리고 설명을 한참 듣고 나서, 우리는 식당을 나와 서스펜션 브릿지로 향했다.  도로에 차도 없고, 워낙 황량한 곳이라, 도로를 걸었다.  오후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가운데, 도로를 걷다보니 생각해보니 물도 안챙겨와서 좀 걱정스러웠지만 일단 무작정 걸었다.  가는 길을 몰라 일단 설명대로 작은 마을에 접어 들었다. 파수 전체의 느낌처럼 마을 안에 접어들어서도 마치 버려진 동네처럼 조용하다. 흡사 마치 좀비 때문에 지구가 멸망한 이후의 느낌이라고 할까, 인기척 조차 느껴지지 않는 조용한 마을.  누군가에게 물어볼데도 없어서 이 집 저 집 기웃거려도 집들도 모두 조용하다.  그냥 무작정 강 쪽으로 향해서 걸어들어갔다. 강쪽으로 향하니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그런데 우리가 가고자 했던 서스펜션 브릿지는 보이지 않는다. 








빙하의 모습 




 여기서 잠깐, 파수의 서스펜션 브릿지?

 파수를 가고자 했던 이유 중 빙하도 있지만 바로 이 서스펜션 브릿지에 가보고 싶어서 였는데 쉽게 말해서 강에 줄로 연결되어있는 아슬아슬한 다리를 말한다. 영화나 만화에 나올법한 그런 나무다리, 나무 판자들을 어설프게 놓고 줄에 의지해서 가서 한걸음 걸을 때 마다 다리 전체가 출렁이는 그런 다리다. 




 강쪽에서 아무리 살펴봐도 다리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마을 안쪽으로 향했다. 마을 안을 이렇게 돌아다니는데도 마을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 진짜 세계가 멸망하고 난 뒤 이런 느낌일 것 같다.  지금 글로는 이렇게 몇줄로 설명되지만 정말 이 때 마을 안을 구석구석 다 뒤졌는데 1시간 정도는 헤매고 돌아다녔을 듯. 그동안 마을사람 한명도 못만나고, 정말 목도 마르고 너무 지쳐있던 상황.   포기하고 잘못왔나 싶어서 이 마을을 벗어나 다른데를 가봐야겠단 생각에 되돌아 나가다  이 마을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만났다.  젊은 마을여자를 만나서 물어보니 여기가 맞는듯.  그 여자에게 서스펜션 브릿지를 물어보니 여자가 가르쳐주는 방향은 물이 있는 쪽이 아니라 다른 방향이었다.


 





 완전히 잘못온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여자가 가리킨 방향으로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참 올랐을까 이번에 한 남자를 만났다. 남자에게 묻는데 여자랑 비슷한 방향을 가리킨다.  정말 한참을 걸어가는데 도무지 강과 계속 반대 방향, 한참 걸려 힘겹게 언덕에 올라도 다리가 안보인다. 물은 없고, 덥고 지치고 미쳐 돌아버릴 지경. 여행중 가장 힘들때가 이런때다.   맞는지 아닌지 확인할 길이 없다.  결국 포기.








 그냥 돌아가기로 했다. 다시 힘겹게 길을 되돌아와 마을로 돌아왔을 때 이미 완전 탈진 상태에 가까울 정도로 지쳤다. 물도 없이 뙤양볕에 한참을 걸었으니 말이다. 머릿속에 마을 초입에 있던 시원하게 흘러내리던 물이 떠올랐다. 얼른 그곳에 가서 물로 체온을 식히고 싶을 뿐이었다. 목표지점을 확실히 아니 돌아가는 길은 편했다. 마을 초입으로 가서 물 장난.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잠시 쉬다가 큰길로 나왔다. 도대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를 가야 할까?  일단 아까 그 식당 쪽으로라도 다시 가야 겠단 생각에 지나가는 스즈키 히치하이킹을 위해 도로가에 앉아있는데 너무 햇빛이 강하다. 한참을 기다려도 지나가는 차가 한대도 없다. 오후 3시가 넘어가니 정말 없다. 지친다. 






 이 곳이야말로 세상의 끝이다. 사람도, 차도 아무것도 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파수에 와서 한 것이라곤 몇시간을 걸어다닌 일이 전부다. 몸도 마음도 지치고, 뙤양볕에 도로에서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차를 기다려도 차가 지나가지 않으니 그냥 어쩔수 없이 파수에서 하룻밤 자야겠단 생각으로 모든걸 내려놓고 도로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쏘세지도 너무 힘들어했는데 그래도 서로 최대한 즐길려고 노력했고,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했지만 성과없는 여러가지 것들이 지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참 걸어가는데 반대 방향 차가 온다.  얼른 히치하이킹 시도.  차가 우리 앞에 멈췄다. 일제 화물트럭. 차안에는 할배 여럿이 타고 있다. 인상도 좋고 넉넉해 보이는 할배들이다.



 할배들에게 영어도 한마디도 안통하는데  기왕 차 탄거 걸어 갈 수 있는 식당이 아니라, 하룻밤 묵을 수 있는 숙소에 가자고 하니 할배들이 고개를 끄덕한다. 트럭 짐칸에 타서 달리는 차에 앉아있으니 기분이 조금 풀린다.  시원한 바람이 온 몸을 스친다.  쏘세지와 나도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도착한 파수 Inn.   일단 주인에게 방값 물어보니 1200루피.절망







 숙소비가 너무 비싼 것 같아  혹시나 해서 훈자 돌아갈 수 있는지 물으니 가능하단다. 배는 6-7시까지 있단다. 모든 걸 내려놨었는데 훈자로 다시 갈 수 있단 얘기에 여기서 1200루피를 쓰느니 돌아가는게 나을 것 간단 생각에 쏘세지와 나는 훈자로 돌아가보기로 했다. 훈자로 돌아가려면 우리는 아까 보트를 타고 내렸던 동네 구르멧으로 가야 한다. 구르멧까지는 다시 스즈키를 타야 하기 때문에 숙소주인에게 물으니 숙소 앞에 있으면 스즈키가 설 꺼라며 기다려 보라고 한다.  숙소 앞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한 파키스탄 할배가 나타난다. 



 " 할배! 어디가요?  "

 " 구르멧 "

 " 와!!! "


 너무 다행스런 말이었다. 진짜 구르멧에 갈 수 있구나. 영어도 잘 통해서 할배와 숙소주인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 동안 쏘세지가 근처의 슈퍼마켓에서 물하고 콜라를 사와 마시는데 이보다 더 달콤 할 수 없다. 몇시간동안 헤매고 고생했던 갈증이 보상된다. 그리고 스즈키 지나가는거 타고 구르멧으로 드디어 출발 (100루피) 그리고 도착한 그곳.    보트 타려고 하는데 시간이 늦어서 강건너려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배값은 3000,4000루피를 부르는데 황당하다.




그 언제보다도 달콤했던 콜라





 배가 아예 안가는 것도 아니고 화물선들도 많고 하는데 외국인이라고 그냥 배째라고 나온다.   사람들이 없으니 배를 전세내야 된다는 논리. 기가 막히다.   정말 화가 났다. 일단 그냥 잠시 서서 담배 한대 피며 이 새끼들 지껄이는 걸 듣고 있는데 진짜 계속 말도 안되는 얘길 한다. 차라리 그냥 나를 두면 되는데 나를 둘러싸고 계속 배를 타라고 한다.  나는 계속 담배를 피며 어찌 할까 머리를 굴려야만 했다.   무작정 일단 대기.  배낭여행자 이경무의 뱃심은 여기서 나타난다. 이런거에 쫄아서 돈내면 저들이 원하는대로 될 뿐이다.



 나에게 계속 배를 전세 hire하라고 하는 새끼들, 또 다른 놈들은 가격으로 계속 간보고 진짜 짜증나고 분노하는 상황.  하지만 그냥 버텼다.  배는 계속 떠날라고 하는 가운데도  그냥 가빠로 버텼다.  배낭여행자 이경무다!  배값을 크게 부른놈은 계속 나에게  와서는 계속 배떠날껀데 탈꺼냐 안탈꺼냐 개지랄.  옆에서 쏘세지는 안절부절 못한다. 



 " 오빠 타야되는거 아냐? 배 진짜 떠날려고 하는데 "

 " 야, 진짜 내가 때려죽여도 3-4천 주고는 못타겠다 "

 

 " 그럼 어떻게 해 "

 " 그 돈이면 차라리 파수inn 가서 하룻밤 자고 왕복 차비 해도 남는데? "


 " .... "

 " 야. 그냥 못타면 자고 가면 되지. 너무 그러지마 니 지금 안절부절 하는것도 쟤들 눈에 다 보여 "



 하지만 쏘세지가 불안해해서 이제 막 떠나려는 화물선 하나에 올라타려고 하자 파키스탄놈들이 손사래를 치면서 안된다고 하고, 우리에게 비싼 배를 강요하던 놈들도 가로막는다. 정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완전히 노골적이다. 이제 쏘세지도 열받았다.  쏘세지도 나도 이런 새끼들한테 돈 못준다고 그냥 차라리 자고 가자고, 정말 포기하면 편하다는 명언이 떠올랐다. 쏘세지도 이제 너무 화가 나는지 계속 폭언을 퍼붓는다.


 

 막 웃으면서 한국말로 "아유.. 마을 가라앉아서 좋겠다. 이렇게 돈벌고! " 

 " 평생 그렇게 살아라 " 라며 폭언을 하자 알아듣지 못하는 말에 파키스탄 사람들은 실실 웃기만 했다. 하지만 표정에서 쏘세지의 분노를 읽은 눈치다. 





 그냥 안가고 말지, 라고 생각한 순간부터,  차라리 그냥 파수inn에 가서 자고 가자 생각한 순간부터 우리를 뒤덮던 불안감의 아우라가 걷히면서 파키스탄 새끼들도 느꼈는지 갑자기 가격이 1000루피,500루피 계속 내려간다. 파키스탄 새끼들도 느꼈다. 


 " 얘네 지금 안태우면 그냥 자고 갈 생각이다. "

 " 그냥 돈 몇푼이라도 받고 가자 어차피 움직일 밴데.. "


  니들이 배짱이면 나도 배짱이지.  그리고 드디어 진짜 마지막 배로 보이는 배 한대가 출발 일보직전. 그나마 계속 배 삐끼질 하던 놈들 중 그나마 착한놈이 와서 이거 놓치면 진짜 못간다며 400루피에 해준다기에, 쏘세지와 나는 이 가격이면 여기서 어차피 숙소비 쓰고 뭐하고 하는 것 보다 훈자로 돌아가는게 낫다 싶어서.  말그대로 빨리 다시 훈자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드디어 마지막 배에 올랐다.  배는 진짜 이미 선착장에서 살짝 떨어진 상태라, 다른 배들을 건너건너 그렇게 올라탈수 있었다. 어쨌든 절망적인 상황에 드디어 타서 배에 오르자. 기분이 정말 좋아졌고, 배를 타고 한참을 가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역시 배짱이라고..

 배낭여행자 이경무 살아있다.








 배에서 어느새 일몰이 시작되며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가니 기분이 상쾌했다. 어느새 쏘세지도 나도 서로 말이 없어지고 풍경을 바라보며 각자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오늘 하루를 반추했다. 그리고 어느새  도착.  배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던 파키스탄 아저씨 한명이 우리에게 자기가 타고 갈 승용차 택시를 타라고 한다. 가격은 뭐 나쁘지 않은 가격. 우리는 그 차를 타고 다시 한참을 달려 알리아바드에 도착했다. 어느새 어두워져서 저녁 7시가 다 되었다.


 숙소까지 데려다주는 것은 아니고 큰 길에 내려준 뒤, 언덕길을 가리키며 저리로 올라가면 훈자가 나온다고 얘기하는데, 뭐 별수 있나. 우리는 언덕길을 터벅터벅 오르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언덕길, 천천히 칼리마바드를 향해서 가파른 경사의 고개를 걸어 올라가는데  뒤에서 스즈키 한대가 지나간다. 그러더니 멈추더니 말을 건넨다. " 어디까지가? " , " 제로포인트! " 그러자 타라고 한다. 완전 땡큐. 차를 타고 오니 금방 언덕길 높이 제로 포인트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서 돈을 지불하려고 하자. 돈을 안받는다. 아..역시 훈자.




 지친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다.  구르멧에서 그렇게 파키스탄 사람들 욕을 했는데 다시 여기에 오니 착한 파키스탄 사람들이다.   희비가 엇갈린다. 숙소가려다가 마침 제로포인트에 와있고 하니 바로 근처의 카리마바드 인inn에 가서 한국사람들 있으면 울타르메도우 일행 구해보고 가자고 자포자기 상태로 말하고 칼리마바드 inn에 들어가니 진짜 처음보는 한국 여자4명이 있었다.  일단 배도 고프고 해서 자리를 잡고 앉아 밥을 시키고 말을 걸었다. 혹시 울타르 메도우 가실 생각있으시면 같이 가시자고, 가이드 비용도 분담할 수 있다고 얘기하니 너무나 쿨하게 한번에 오케이 하는데,  알고보니 이 여자분들 전문 산악인들.  이제 막 스카루드에서 온 한국등산원정대라는데 헐.




 저분들과 함께 내일 같이 가면 못따라 잡을텐데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어쨌든 맛나게 밥먹고 일행구하고 가이드 신청까지 일사천리 (6인 1200루피) 새벽 6시에 출발하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는 길, 물,음식,먹을 것 사고 반가워하는 왈리랑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이제 훈자 일정도 끝이 보인다.  마음은 훈자에 더 오래있고 싶지만 이 숙소에 머물지도 않으면서 왔다갔다 하면서 사람 왕따시키는 분위기 조장하고 꼴배기 싫어서 떠나기로 했다. 대신 그 훈자에서의 일정을 파키스탄 다른 곳에 쏟아 부을 생각이다. 



 내일 울타르메도우 트래킹, 내일모레 길깃으로 가면 된다. 기분이 좋다. 



 옆방 남자는 한국사람들과 스카루드로 2박3일인지 3박4일인지 떠나서 안보인다.  우리도 가고 싶었는데, 참 씁쓸 하다.  따로 갈려고 해도 알아본 정보에 의하면 거기 교통편이 없어서 무조건 지프 투어 해야되는데 (판공초,누브라밸리처럼) 가격이 1만,2만루피 라던데..참..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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