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서블 여행기 #76 [파키스탄/훈자] 어색한 낮술



 아침에 일어나 쏘세지와 간만에 좀 진지한 얘기를 나누는데 오랜만에 긴 이야기를 나눴다.  함께 여행하지만 방을 같이 쓰고 밥을 같이 먹고 함께 이동할 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은 각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책을 보고, 사색에 잠기고, 글을 쓰고 그렇기 때문에 쏘세지와는 때론 함께 때론 각자 균형있게 재미나게 함께 여행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거실에 좀 앉아있으니  옆방 총각이 방에서 나와 어디론가 휙 나간다.

 
 그리고 옆방 총각이 밖에 나갔다 방에 들어갔다 하며 왔다갔다 하는 동안,  나와 쏘세지는 어제 남은 닭도리탕을 처분하기로 했다. 정말 여행하면서 닭도리탕을 해먹었던 적은 많았지만, 이런 좋은 안주와 술을 두고 다른 사람들과 즐길 수 없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는데 참 아쉽다. 이 맛있는 걸 쏘세지와 단 둘이 ( 주변에 한국사람도 많은데... ) 먹어야만 했다는게 안타깝다. 좀 더 좋은 사람들과 만났다면 더욱 즐겁고 떠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을 훈자였는데, 슬프다. 

 
 그 많은  닭한마리를 했으니 당연히 닭도리탕이 많이 남을 수 밖에 끝없이 아쉬운 생각이 든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먹었더라면 얼마나 즐거웠을까. 판공초,누브라밸리를 함께 했던 아이들과 지금 여기서 저 닭도리탕에 소주에 정말 천국이 따로 없었을텐데....    나는 부엌으로 가서 어제 남은 닭도리탕을 데우면서 라면 사리를 구입해서 라면사리를 넣고, 밥을 준비했다.    그리고 거실로 가지고 와서 아침 댓바람부터 닭도리탕에 밥 비벼먹고 라면먹고 배터지게 먹으며 어제 먹다 남은 소주를 마시기로 했다.  그러던중 계속 왔다갔다 한 옆방총각이 딱 마침 그 때 또 지나 가길래..

 





 난 언제나의 내 여행 때 처럼, 그에게 권했다.   " 일로 와서 한잔 하세요~ " 라고 권했다. 전혀 특별할 것 없이 내 배낭여행 내내 했던 행동을 그대로 했다.  그가 과연 오케이 할지 안할지 궁금했지만 역시 안주도 안주지만 소주의 위력이란. 옆방 총각이 조심스럽게 옆 자리로 와서 자리를 잡았다.   소주를 본 사람들의 반응이 늘 그러하듯,  소주병을 집어 올려 살펴보면서 " 와..이런 귀한걸.. 아 감사히 먹겠습니다 "  그래서 소주 한잔을 따라주면서 소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즐거운 대화였다. 사실 이 옆방 총각과는 참 미묘한 관계였다. 

[ 저 뒤로 보이는 곳이 옆방 총각의 방 ] 

 쏘세지랑 얘기하다보면 쏘세지도 그러하고 나도 그러하고 이 사람은 진짜 참 좋은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인상도 좋고 잠깐 얘기해봐도 괜찮고..  지켜보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도 또 혼자만 동떨어져 이 곳에서 머물면서 있고, 사람들이 찾아와 챙기는 걸 보면 좋은 사람인듯.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좋은 사람이.. 지금 계속 일련의 이런 사태들을 방관하는것도 아니 껴드는 것도 웃기지만 애시당초 좀 외면했다는 사실에도 조금은 섭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어쩌면 굳이 저사람 입장에서는 필요없었던 행동이기도 하고. 그냥 복잡 미묘했지만 어쨌든 쏘세지와 나는 훈자에서 계속 짜증이 나는 와중에도 이 사람만큼은 싫지가 않았다. 


 어쨌든 훈자에서 그동안 아무일도 없었던 것 처럼 한국에서 있었던 얘기, 여행 얘기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데 정말 즐거웠다. 진작 이랬으면 좋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술이란게 참 좋고 편리하다. 소주를 먹고 너무나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이어가던 와중에 정말 결정판 같은 일이 생긴다.   오늘도 역시 다른 한국사람들이 아침일수 찍듯, 우르르르 등장했다.  대장격인 S(파키스탄 거주, 훈자와 파키스탄에 아주 잘 안다, 골목대장 하기 좋은 위치) , S꼬봉, 파부아줌마, 깝녀 말 그대로 병신 어벤져스 마냥 또 뭉쳐서 등장한 순간 진짜 볼 만한 상황이 펼쳐졌다. 아..이게 만약에 무슨 CCTV나 동영상으로 녹화가 되있었더라면 진짜 기가 막힌 작품이 됐을텐데..   거실로 우르르 들어오자마자 


 거실 긴 침대(의자)에  옆방총각,나,쏘세지 3명이서 앉아서 얘기를 하고 있고, 테이블엔 닭도리탕,소주,과일 등이 놓여있는 모습을 보고 정말 그 0.1초 0.5초의 미묘한 정적. 그리고 화기애애 했던 대화는 갑자기 딱! 끊기며 어색한 상황이 벌어지는데 정말 말도 안되게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일반적인 여행 상황이라면 나 역시 반갑게 맞이하며  "와서 같이 한잔 하세요 "  라던가  "오! 오셨네,  술 같이 먹어요 " 라는게 일반적이었겠지만,  그들이 들어오더니 무슨 배신자 취급하듯   " 어? xx(옆방총각이름) 술 마시네.. "  이렇게 얘기하는데 눈빛이나 말투 모든게



 ' 너 얘네랑 지금 술 마시는거야? 이 배신자 ' 이런 뉘앙스였다.  


  그리고 다시 정적 그리고  얼마나 이 상황이 골 때렸냐면 정말 뜬금포로 옆방총각이 아무말도 하지 않고 갑자기 일어나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리고 거실에 나와 쏘세지,  그리고 나머지 스카이 일당들만 남은 상황이었다. 진짜 웃겼다. 무슨 대화도 한마디도 없고,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가서 뭔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나랑 술 마시던 사람은 방으로 일어나 들어가 버리고 스카이 일당들은 거실에 서서 정말 이상한 공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정말 말로 표현이 안되는 어색하고 이상한 상황. 


 " 그냥 우리끼리 밥먹으로 가자 " 이런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들어가서 옆방총각한테 이야기 거는것도 아니고   정말 개어색한 상황이었다.   나랑 술 먹다 말고 밥먹으로 가는 것도 웃긴것 같고, 암튼 정말 이 때의 분위기를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그리고 그 때의 상황으로 쏘세지와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우리가 왕따를 확실히 당하고 있다는 사실.   그냥 그들이 우리에게 어울리자고 얘기 안한게 아니라, 배제하고 있다는 사실.  어색한 가운데 S 일당들은  한참 후에서야 자기들끼리  " 그냥 우리끼리 먹으로 가자"  뭐 이런 식의 얘기를 나누다가 우르르 다시 밖으로 갔다.   그러자 곧바로 옆방총각이 방에서 나와 다시 거실에 앉아 나왔다.  말도 안되게 어색한 상황.


 " 왜 갑자기 방에 가셨어요? " 라고 묻기도 존나 웃기고   그도 역시 이 상황에 대해 어떤 설명도 안하고  마치 시간의 공백이 느껴지듯. 어색한 침묵 가운데 방금 전 있었던 상황을 서로 없애기 위한 침묵만이 흘렀다. 그리고 긴 침묵 끝에,  그 사이에 벌어졌던 일은 이제 온데 간데 없던 것처럼 나는 옆방총각에게 웃으면서  " 아 술 마셔서 좋은데 술이 모잘라 아쉽네요 " 라고 말하자   그는 " 저도 술 더 마시고 싶은데, 술 구할때도 없고.... " 라고 얘기했다. 


 그래서 나는 "  저 훈자 빠니 좀 남았는데 이거 다 마셔버리죠  그냥은 못먹겠고 뭐라도 타먹으면 먹을 수 있을것 같은데 "  라고 얘기하다.  마침 테이블 위에 있던 콜라랑 섞어서 먹으니 먹을 만했다.   쏘세지는  포도쥬스를 가지고 있어서 " 저 포도쥬스 있어요 이거 타먹으면 조금 나을꺼 같아요 " 라고 얘기하며 포도쥬스를 준다.  쏘세지가 먼저 맛보더니 섞어먹으니 먹을만하다고 해서 맛보니 포도쥬스 타먹으면 먹을만 했다.  옆방총각이 자기가 쥬스 좀 더 사오겠다며 밖으로 나가 쥬스를 사왔는데 쥬스에 타먹으니 정말 먹을 만 했다.   함께 훈자 빠니 맛나게 먹으며 다시 이런저런 얘기나눴다.  아침에 시작된 술자리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저녁이 되며 술자리가 끝나고 각자의 방으로 가서 우린 푹 쉬었다.


 방에서 정말 낮의 그 황당했던 상황에 대해 쏘세지와 이야기 하는데 진짜 살면서 별 일을 다 겪어 본다. 세상에 어떻게 그토록 어색한 순간이 있을 수 있을까. 여행을 그렇게 다녀도 정말 살다 살다 이런 황당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정말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도대체 왜 이렇게 된걸까?  훈자에서 왜 이렇게 되었는가에 대해 얘기하며 분석을 하는데 정말 궁금하다. 왜 우리가 이리 됐는지....


 우리는 낮의 상황으로 그들 사이에서 분명히 우리 욕을 했을꺼란 걸 유추를 해봤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같이 어울리지도 않았는데 욕 먹을 짓을 한게 뭐가 있나. 결국 우리의 맨 처음 예상대로 파부아줌마가 우리가 맘에 안들어 이간질?  S가 주도? 계속 얘기하는데 궁금.  정말 옆방총각한테 가서 직접적으로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완전히 미스테리 암튼 존나 골깐다. 하지만 100% 확신에 찬 순간이었다. 낮의 상황은  그들이 우리에 대해 욕을 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어색함이었다.   이젠 진짜 훈자를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 뿐이다.  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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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 파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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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jun 2016.08.04 18:28 신고

    글이 생생하게 와닿네요ㅎㅎ 우연히 칼라시 벨리 검색하다 들어와서 파키스탄 포스팅 싹~다 보고있어요ㅎㅎ 적도 동지도 한국인들 같네요 에휴 한방 날리고 싶었어요

    • 저도 오랜만에 댓글보고 포스팅 한번 읽어보니 그 때 생각나며 정말 소름이 다 돋네요. 생각도 하기 싫은 어색한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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