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존나 추워서 깼다.  정말 덜덜덜 떨었다. 여름인데도 새벽엔 항상 쌀쌀하다.  겨울에 인도 왔을 때를 떠올려보면 그 땐 진짜 더 추웠던 것 같다. 문제는 그 때는 겨울이니 긴팔이라도 입었지 지금은 더운 여름이라 옷이 다 반팔 반바지인데 추우니 미칠노릇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긴팔 옷은 큰 배낭 저 깊숙히 있어서 절대 꺼낼 수가 없을테고 (너무 귀찮음) 겨우 몸을 웅크리고 티셔츠안에 팔을 구겨넣고 티셔츠 안으로 몸을 쑥 넣었다. 티셔츠는 아주 개아작 나겠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겨우 추위를 달래고 잠을 청하는데 너무 추우니 다시 새벽 4시에 잠을 깼다.


 잠에서 어지간하면 깨지 않는 나로선 이렇게 또 깨어났더니 이젠 잠이 오지 않는다.  이 저주 받은 에너지 효율 1등급의 우수한 신체여! 


 잠에서 깨어난거, 엎드려서 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들을 봤다. 일어나서 앉고 싶지만 아직 2층에 침대에서 사람이 자고 있으니 1층에 있는 나는 그저 이렇게 있을 수 밖에 없다.  새벽에 점점 동이터오고 흘러지나가는 그 풍경들.  너무나 보고싶었던 이 풍경이다.


 항상 여행을 그리워할 때면 인도의 기차에서 새벽에 이렇게 풍경을 바라보던게 떠올라서 그런지 나에겐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감동의 눈으로 이 풍경하나하나를 아로새기고 있었다. 또 눈물이 흐른다. 너무나 행복해서.

 다시 또 이 풍경을 언제나 볼 수 있을까?






 그리고 7시쯤 윗층 사람이 잠에서 깨서 자리에 앉았다.  8시 30분 경 도착한다는 기차는 10시가 다 되어서까지 도착할 생각을 안하고 시원하게 불던 바람은 어느새 뜨거운 열기가 되어 기차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오븐안에 있는 기분이다.  서양여자애들도 뜨거운 공기속에 나른해져서 졸기 시작한다.  더위에 지치고 지루함과 지침의 경계 쯤에 있을 때 쯤  드디어 바라나시에 곧 도착한다는 말과 함께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이 얼마만에 바라나시 인가, 감회가 새롭다. 
 바라나시 정션 역은 여전히 그대로 였다.


 내리자마자 마주치는 수 많은 삐끼들. 반갑다 새끼들아!





 익숙하게 '고돌리아'를 외치니 터져나오는 수 많은 가격들. 대략 80루피가 제일 싼 가격인것 같다. 거기서 한 미친삐끼가 시비를 건다. 어차피 안되는거 퇴짜나 놓자는 심정인지 시비를 거는데 오랜만에 나도 삐끼랑 다투고 싶어서 간만에 옛 추억을 떠올리며 삐끼랑 싸웠다.  처음 인도 왔을 때는 한껏 날이 서서 삐끼들과 엄청 싸웠는데 지금은 더 나이를 먹고, 더 많이 여행을 하고 그런데서 오는 완숙함이 있어서 그런지 삐끼랑 크게 다투지도 않고 그랬는데 너무 오랜만에 온 바라나시가 반가워 난 정말 신나게 싸웠던 것 같다.


 일단 역 밖으로 완전 빠져나와서 길을 건너가서 릭샤를 잡는데 처음부터 80루피를 부른 양심적인 기사. 더 흥정안하고 그냥 80루피에 릭샤를 타고 고돌리아로 향했다.
 

 비록 오래된 기억이지만 이 곳(고돌리아)에서 무조건 내린 뒤에 한참 걸어서 숙소들이 밀집 되어있는 가트로 향해야 한다. 기억을 더듬으면 고돌리아 그 모습 자체는 기억에 없지만 경찰 바리케이트가 있어야 한다. (릭샤들 못들어가게 바리케이트 침)

 
 여기서 잠깐 바라나시
인도인들의 말로 '강가'라고 부르는 성지 갠지스강(강가)이 흐르는 바라나시는 힌두교들의 성지 중의 성지.
그렇기 때문에 갠지스강 주변에 있는 수 많은 가트 ( 인도사람들 목욕하고 제 올리고 하는 곳 )들로 가는 길목은 아예 릭샤가 못들어간다. 성지니까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는 것.



 어쨌든 릭샤를 타고 오랜만에 바라나시 시내를 통과해 달리다가 한참 후, 릭샤왈라가 한켠에 릭샤를 세우고 여기라며 내려야 된다고 하는거다.  워낙 기억이 오래되서 고돌리아인지 아닌지 알수가 없지만 바리케이트도 보이지 않고, 절대 이 곳은 아닌 것 같았다.

 " 야, 여기 아니야, 나 바라나시 와봤어 얼른 고돌리아 가 "
 " 맞어, 근데 고돌리아 가려면 돈 더 내, 80루피로는 여기까지 밖에 못와 "
 
 " 말같지 않은 소리 하고 있어 그럼 80루피에 고돌리아 간다는 얘기를 하지 말아야지 미친놈아 "
 " 암튼 못가 내려 여기서 별로 안머니까 걸어서 가 "

 " 야..가 나도 못내려 별로 안 멀면 가 "

 그러자 릭샤왈라는 못이기겠다는 듯 다시 릭샤를 운전해서 얼마 가지 않서 릭샤를 세운다. 주변을 보니 경찰들이 세운 바리케이트가 보인다. 별 의심 없이 릭샤에서 내려서 돈을 주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고돌리아를 묻는데 왠걸, 바리케이트 쪽이 아니라 다른 곳을 모두 가리킨다. 게다가 걔중에 영어 좀 하는 녀석이 말하길 " 여기서 고돌리아 꽤 먼데..."


 진짜 존나 충격적이었다.
 알고보니까 릭샤왈라 이 개새끼가 진짜 완전히 엄한데다가 세워주고 도망간거다. 진짜 열불이 났다.


 다시 릭샤 잡는게 돈이 아까워서 그 무거운 배낭을 메고, 그 뙤양볕에 걷기 시작했다. 진짜 걸어도 걸어도 끝이 안나는 느낌. 진짜 걸으면서 계속 화가 치솟는다. 정말 이 릭샤왈라 새끼 잡아서 쳐죽이고 싶을 정도로 분노게이지가 올라갔다.


 태양은 타들어가다 못해 정말 직사광선으로 내리쬐고, 땅에서는 열기가 올라오고, 도로는 정신없이 수많은 릭샤,오토바이,차들이 굉음을 내며 매연을 내뿜어대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계속 고돌리아로 걷는 내내 진짜 그 릭샤왈라를 저주했다.  


 개새끼들.
 인도 새끼들은 정말 타고날 때부터 유전자에 사기 유전자가 박혀있는듯. 거짓말 유전자가 박혀있다.  파키스탄에서 정말 적은돈에 책임감 있게 밤에 여기저기 물어 숙소를 찾아주던 그 릭샤왈라가 떠오른다. 한 때 같은 나라였으나 이토록 다른 민족성. 확실히 무슬림들이 착하다.



 진짜 ㅋㅋㅋㅋㅋ 
 이런 사기에는 속수무책. 무슨 고돌리아 사진을 내가 가지고 다니는것도 아니고,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기에 당하다니 진짜 나중에 헛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사람들에게 계속 길을 묻고 또 묻고 드디어 30여분 만에 드디어 고돌리아를 발견했다. 보니까 이제서야 기억이 난다.

 " 아... 맞다.. 저기다...하하하하하 "







 고돌리아에 도착하니 땀에 흥건히 젖어있었다. 문제는 이 고돌리아에서부터 이제 다시 또 숙소 밀집지역까진 또 한참을 걸어가야 된다는거. 다시금 분노가 치솟는다. 정말 모든 관광객들이 인도를 보이콧해서 인도에서 관광객의 소중함을 깨달아야할터 파키스탄과 모든것에서 대칭점에 있는 주제에 파키스탄 욕하는 꼴이 우습다. 


 고돌리아에 들어선 뒤 부터는 대충 길들이 기억이 났다. 
 8년만이지만 어렴풋한 기억들이 펼쳐진다. 


 바라나시에선 그 오르차10인방들이 너무나 즐겁게 놀아서 그런지 정말 길, 골목, 이런 풍경에서 옛날 생각들이 마구 샘솟는다. 그러면서 점점 길들의 기억이 선명해진다. 내 머릿속에는 대충 바라나시의 그 미로 같은 골목길들의 지도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이드북도 필요없다.


 익숙한 큰 길을 지나 골목길로 접어 들어 그저 무의식 속에 발걸음을 옮긴다.
 수 많은 상점과 여행자들이 보인다.


 완벽하게 기억나는건 아니지만 헤맬만큼 안나는 것도 아니기에 편안하게 숙소 밀집이 되어있는 뱅갈리토라 구역으로 향했다. 비좁은 미로 같은 골목길을 걷는데 8년전 이 곳에서 너무나 즐겁게 이야기하고 놀던 그 때가 떠오르며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오자마자 릭샤왈라한테 눈탱이 제대로 뒷통수 후려갈겨 맞았지. 다시 그 생각을 하니 또 분노가 올라간다.


 뱅갈리토라 인근부터는 이제 드디어 숙소 삐끼들의 영업이 시작되었다.   원래 같으면 삐끼를 사랑하는 나로선 삐끼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고, 즐거워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미친 릭샤왈라새끼 때문에 지금 나는 인도새끼들이 인간새끼들 답게 안보이고 벌레만도 못해보이는 상황.  그리고 이미 40분 이상 무거운 배낭을 메고 뙤양볕 아래를 걸어와서 온 몸이 땀에 젖은 상태에서 오는 짜증과 날카로움이 뒤섞여 있었다.



 말 그대로 지금 핵폭탄급 분노게이지를 쌓아두고 있었다.
 누군가 하나 걸리면 이제 아작 나는거다.


 쏘세지랑 바라나시 얘기하다가 쏘세지가 '요새 바라나시에서 기타페잉 게스트하우스? 거기가 엄청 괜찮다고 소문났더라고 ' 얘기했던게 떠올라 그리로 가기로 했다. 사실 이 한국인들의 여행정보라는게 뻔하다. 인도방랑기 같은데 누군가 여행자가 괜찮은 게스트하우스가 있다고 올리면 또 다들 우르르 거기로 몰려가고 그 사람들중에 또 누군가 추천하면 다시 또 우르르르 가고 이러면서 추천이 쌓이고 쌓여서 성업이 된다.


 그래서 나는 그런데 보다는 일단 그냥 내가 직접 보고 경험해보는 편인데 지금 나의 정신과 체력 상태로는 숙소를 구하러 다닐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냥 어디론가 빨리 한번에 괜찮은 게스트하우스를 가고 싶은 마음에 기타페잉 게스트하우스로 그냥 직행하기로 했다.


 기타페잉 게스트 하우스를 가기 위해 주변에 길을 물어보는데 삐끼들이 자기가 기타페잉을 안다면서 데려다 주겠다고 이야기한다. 삐끼를 무시하고 ( 뻔히 엄한 게스트하우스에 데려다 줄 것을 아니까 ) 걸으면서 슈퍼주인이라던가 여행자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가는데 워낙 미로 같은 곳이라 찾기가 힘들었다. 삐끼 한녀석이 계속 자기가 진짜 데려다 주겠다고 하길래 정말 믿음이 안가지만 따라가야 겠단 생각에 앞장 서라고 했다.


 이때 거의 정신이 초토화됐다.
 약간 더위먹은 느낌?!

 그리고 삐끼는 나를 골목길로 안내하며 내 예상대로
 기타페잉이 아닌 이상한 게스트하우스로 안내하며 " 여기가 기타페잉이야 " 하는데 누가봐도 간판이 기타페잉이 아닌데.

 " 씨발 아닌데 기타페잉 아닌데 "
 " 맞아. 이름이 바뀌어서 그래 " 라며 뻔한 거짓말을 한다.

 " 아 놔 이 씨발 새끼 진짜 "


 그리고 나는 그 핵폭탄급 분노게이지가 폭발했다.
 배낭을 그냥 땅바닥에 던지고 이 새끼를 진짜 복날 개패듯이 패기 시작했다.

 씨발놈아 이건 릭샤왈라의 몫!!!!
 개새끼야 이건 이 뜨거운 태양의 몫!!!!

 진짜 존나 후드려까기 시작하는데 때리면서 분노게이지는 점점 더 계속 차오르고 있었다.

 진짜 지금 돌아버리기 일보직전인데 이 새끼가 나를 농간했다는 생각에 그 것도 뻔한 수법을 썼다는 생각에 패고 또 패고 진짜 반신불수로 만들어서 다시는 삐끼지 못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뼈를 꺾고 부셔버렸다. 주변에 대략 4명의 인도인 삐끼들이 더 있었으나 아무도 나를 말리지 않았다. 내가 뭔가 반쯤 미쳐있었나보다.


 한참을 패고 나서
 그 새끼는 진짜 온 몸을 부르르 떨면서 쓰러져있고

 처음엔 웃으며 구경하던 다른 삐끼새끼들은 이제 웃음기가 사라졌다.

 " 니네 씨발 기타페잉 아는 새끼 빨리 앞장서 "

 그러자 한놈이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다. 땅바닥에 떨어진 배낭을 둘러메고 그 녀석을 따라가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기타페잉 게스트하우스가 나타난다. 그 놈에게 고맙다고 하고 나를 맞이하는 기타페잉의 매니저 팅꾸!


 서글서글 인상이 진짜 좋은 녀석은 반갑게 맞이하며 방을 보여주는데 바라나시의 흔한 다른 숙소들처럼 원래 가정집인데 조금 개조해서 게스트하우스로 영업하는 곳이다. 방도 괜찮고 가격도 괜찮고 무엇보다도 인상 좋은 녀석처럼 방도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있었다. 아주 맘에 들었다. 





 가격 또한 다른 숙소 가격을 안봐서 모르겠지만 정말 리즈너블 프라이스.
 
 기타페잉에 묵기로 그냥 한번에 결정했다. 너무 지쳐있어서 일단 짐을 내팽겨치고 옷 다 벗고 화장실에가서 샤워를 하는데 시원한 물을 맞고 있으니 조금 체력이 살아난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방이 시원하다. 진짜 살 것 같다. 침대에 누워서 조금 휴식하다가 이제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밖에 나갈 기운이 아직 없어서 아껴두었던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짜파게티와 진라면으로 짜파구리를 먹기로 했다.

 팅꾸를 찾아서 혹시 부엌 쓸 수 있냐고 물으니 쓰라고 한다.
 




 팅꾸, 이 녀석은 24살. 정말 착한듯. 

 짜빠구리를 먹으면서 다시 한번 사기 맞은거에 생각을 해봤다.  인도에 두번째와도 눈탱이를 끝없이 맞는다. 전에 처럼 필사적으로 다니지 않으니 오히려 더 잘알아도 당하는듯. 역시 모든 것은 내 마음속에 문제다.  숙소에서 한참 쉬다가 이 아까운 시간 하나라도 더 보고자,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지리도 익힐겸. 옛날 추억도 떠올릴겸 골목을 걸었다.






 옛날에 갔던 '모나리자'식당이 기억나서 그 쪽으로 걸어가니 여전히 자리를 잡고 영업 중이다. 점점 기억이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더 들어가다가 대충 가트 쪽으로 빠져서 강쪽으로 향했다. 갔더니 왠일 가트가 아작이 나있다. 대충 다른 바라나시를 다녀온 다른 여행자들로 부터 "바라나시가 물난리가 나서 아작이 났다" 라고 들었는데 정말 물이 가트를 이미 덮고 어마어마하게 차있었고, 그나마도 이게 물이 엄청 많이 빠졌다는걸 증명이라도 하듯, 가트 위쪽으로는 강에서부터 흘러 쌓였을 흙과 쓰레기로 뒤덮여 있다.








 나야 상관없지만 정말 인도에 처음와서 바라나시에 큰 꿈을 가지고 왔을 여행자들은 많이 실망했을듯.



 비가 조금씩 쏟아지다가 어느새 비가 그쳤다. 뭐만 하려면 비가 온다.


 소똥이 비때문에 흘러내려 길은 진창에 미끄럽기까지 했다. 아주 개지랄이다 좆같다. 걷다가 수선하는데가 있어서 파키스탄에서 산 벨트 구멍을 뚫었다. 점점 계속 살이 빠져서 파키스탄에서 산 벨트를 더 조여야만 했다. 


 벨트를 수선한 후, 나는 기왕 추억에 젖은 거 추억 찾기 놀이를 하고자 발걸음을 옮겼다.  첫번째 목적지는 옛날 바라나시에서 머물던 쉬바게스트하우스. 그 쪽으로 향하니 옛날 생각들이 난다.  8년만에 이 곳을 내가 다시 걷고 있다는 사실에 감개무량했다.  쉬바게스트하우스로 찾아가니 여전히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쉬바게스트하우스 하지만 꽤나 많이 바뀌었다. 나를 기억하진 못하겠지만 그 오랜시간 많은게 바뀌고 발전한듯.  









 사실 쉬바게스트하우스에 대해서도 나는 다른 여행자들로부터 나쁜 소식을 들었다. 주인 형제 중 한명이 한국여자 여행자가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보다 걸려서 그게 인도방랑기 등 인도여행 커뮤니티에 오르면서 보이콧 같이 되버려서 아예 한국여행자 발길이 끊겼다고. 그리고 이후 일본인들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는 이야기. 이외에도 다른 게스트 하우스 소식도 여행자들로부터 들었는데 한국여자가 인도남자랑 결혼하면서 완전히 바라나시의 전설이 된 한 때 영화를 누리던 바바게스트하우스는 여자가 이혼해서 좆망했다고 하는 그런 소식까지..


 어쨌든 오랜만에 쉬바게스트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니, 주인 형제가 떡 하니 있었다. 그리고 일본인 여행자들과 대화 중이었다. 소문대로 진짜 쉬바가 이제는 일본인들 판인듯.  오랜만에 주인형제들을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 나 기억 안날텐데 나 8년전에 여기 묵었었다. "
 " 아 그래? "
 
 " 옛날 생각나서 한번 찾아와 봤어 그대로인듯 하면서 좀 변했네 "
 " ㅋㅋㅋ 그렇지 우리도 돈을 많이 벌었거든. "

 " 나 옛날에 여기 입구에 머리 찧었는데 기억나나? 피나서 너네 sister가 나 치료해주고 그랬는데.."
 " 오 그래? "

 " 그래, 겨울에 나 춥다고 하니까 숄도 나한테 줬는데 "
 " 우리 시스터 지금은 시집 가고 없어 "

 이러면서 사진도 보여주고 변한 게스트하우스의 모습도 보여준다. 그 낡았던 게스트하우스는 제법 인테리어가 좋았다. 정말 돈을 많이 번듯. 이런저런 얘기하니 집도 각자 샀고, 진짜 돈을 많이 만진듯. 

 어쨌든 오랜만에 추억팔이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계속 된 나의 추억 팔이 여행
 
 어느날 아이들과 너무 고기가 먹고 싶어 돈까스를 파는 레스토랑이 있다는 얘기에 달려갔던 그 곳이 그 유명한 '샨티 레스토랑'이라는 것도 이제서야 알게되었고 재밌다. 







 정말, 인도방랑기같은 커뮤니티나 블로그 등을 열심히 보고 준비하고 간 여행자들은 아무래도 그런데 추천해주는 식당이나 숙소를 많이 가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서 추천하고 추천하고 하다보면 레전드 같이 되는 곳이 있다. 이른바, 한국인들이 밀어주는 업소들. 이런 업소들은 사실 같은 곳을 여행하는 여행자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듣게 된다. 뭐 이런식이다. 바라나시 여행 얘기를 하다보면 " 바라나시는 역시 블루라씨죠~ "   , " 바라나씨 샨티 레스토랑 진짜 맛있죠 " 이런식..


 그러다보니 나는 사실 그런 여행자들에겐 또 할말이 없다. 어쨌든 내가 옛날에 갔던 그 레스토랑이 유명한 샨티레스토랑이었다는 사실을 8년만에 알게되었다.


 추억팔이를 하면서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이제 메인가트라 할 수 있는 댜샤와메드 가트로 향했는데 그 곳도 역시 아작이 나있다. 진짜 바라나시가 처음이었더라면 엄청 슬펐을듯. 나는 그냥 이리저리 마구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저기 쑤시고 돌아다니며 추억을 회상하다가 어느 골목에 접어들었을 때 나는 메구카페를 발견했다. 이 곳은 가이드북에서 봤던 곳이다. 일본여자가 운영하는 일본음식을 파는 곳이었다. 기왕 온거 한번 먹어볼까? 생각했는데  왠걸 영업시간이 10-3시까지다. 또 문닫았다. 아주 뭐만 할려고 하면 다 문닫는다. 이제 놀랍지도 않음.


 기왕 온거 메뉴판만 살짝 구경했는데 가격은 250-300루피 정도. 제법 비싸지만 일본여자가 직접하는거라 퀄리티가 있을것 같은 느낌이다. 내일 한번 와봐야겠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보니 쏘세지 생각이 많이 났다.
 함께 걷는데 익숙해졌는데 홀로 그냥 걷다보니 외로움도 들고 기분이 마구 유쾌하지만은 않다.


 지금 함께 있으면 또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내일 메구카페 가는 얘기를 하면서 내일 먹을 생각에 들떠서 신났을텐데. 아쉽다.  걷다보니 비가 온 직후라 습하고 더위 때문에 갈증이 났다. 나는 첫번째 인도여행에선 그 존재도 몰랐으나 정말 수 많은 사람들이 극찬을 한 블루라씨를 한번 가보고 싶어 블루라씨를 찾아가는데 익숙한 바라나시라고 가이드북도 안들고 나오고, 아무것도 안챙겨와서 그냥 내일 가보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꽤 걸어서 제법 지쳤다. 









 돌아가는 길, 갈증에 물이라도 사마실려고 슈퍼에 갔더니 왠걸 라씨를 판다. 슈퍼에서 파는 라씨라 평소 같았음 안마셨을텐데 라씨를 마실까 생각했던 중이라 나는 라씨를 한잔 했다. 먹을만은 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간간히 보이는 여행자 가운데 우연히 한 여자 여행자와 눈이 마주쳤다. 한국여자 같은 느낌.

 늘 하던대로
 " 안녕하세요~ "
 말을 거니 내 티셔츠를 보고 빵터뜨린다.

 " 하하 아..네 안녕하세요 "
 그렇게 말이 트이면서 여자는 " 아 그 티셔츠 어디서 났어요? 누가 줬어요? 와.. "
 
 " 아..한국에서 파는거에요 반8이라고 나중에 가보세요 반8닷컴! "


 그리고 언제나처럼 여행자들의 대화, 어디에서 왔고 얼마나 여행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성격이 새침하지 않고 유쾌한 기분을 줬다. 대화도 제법 잘 통해서 길거리에 서서 한참을 이야기 나눴던 것 같다. 혼자서 여행 중인 이 여자는  " 라임 " 이라고 하자. 가명을 뭘로 할까 고민하는데 라임같이 상큼하고 프레쉬한 기분을 주는 여자다. 

 뭔가 둘이 통했을까? 
 라임은 배가 고파 밥을 먹으로 갈려고 하는데 같이 갈꺼냐고 묻는다.

 낮에 짜빠구리 먹는다고 라면도 2개나 먹은지라 여전히 배가 안고팠으나 그냥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나는 라임을 따라갔다. 라임이 밥을 먹으로 간 레스토랑은 스파이스 바이츠 Spice Bites였다. 딱 분위기를 보니 한국사람들이 밀어주는 ( 가이드북 혹은 인도방랑기 혹은 블로그 같은데서 많이 추천해준 ) 식당인듯 했다. 이미 한국여자들 몇 그룹이 밥을 먹고 있다. 다들 똑같은 가이드북 똑같은 정보를 보고 여행하니 똑같은 식당, 똑같은 숙소에 가고 그렇게 한국사람들끼리 모이게 된다.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을 하는데 나는 배가 안고파서 그냥 음료수만 마시겠다고 하고 음료수 하나를 시켰다. 그리고 우리는  이야기 하는데 얘기하다보니 이 여자 꽤 괜찮은 매력이 있었다. 뭐랄까 쏘세지가 여동생 같은 느낌이라면 이 여자는 여자로서 매력이 물씬 풍겼다.

 
 여자는 데리야끼 덮밥을 시켰는데, 나오니까 아주 털털하게 나에게 먹어보라며 그릇을 이쪽으로 밀어준다. 사양했으나 맛있다며 한번 먹어보라고 해서 한 입 먹었더니 엄청 깔끔하다. 음식맛이 진짜 괜찮았다. 이러니 한국사람들이 모이지. 아주 좋은데는 기가막히게 잘 알고 찾아드는듯. 함께 나온 김치같은 밑반찬 맛도 좋았다. 나름 괜찮은듯 했다.


 여행을 다녀본 사람은 알겠지만, 한국에서 보면 왠지 인도나 이런데 다녀왔다고 하면 엄청 자유로워보이고 그러겠지만 막상 인도에서 만나는 여행자들의 모습은 크게 자유로워보이지는 않는 편이다. 오히려 겉치장이나 허세 같은 데서  완전히 ' 나 여행 좀 하는 여행자 ' 티를 풀풀 내면서 다니는 사람은 많아도 생각이나 어떤 가치관이 자유로운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라임은 나에게 별 경계심도 없이 유쾌하게 나를 대했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대했다.


 라임은 밥을 먹다말고 갑자기 나를 쳐다보더니 씩 웃는다. 그리고 얘기한다.
 " 근데요 그거 알아요? "
 " 뭐요? "

 " ㅋㅋㅋ 말 안할려고 했는데 "
 " 뭐에요 궁금하게 "

 " 나 사실 경무씨 알아요 "
 " ............. "

 (머릿속으로 블로그가 떠올랐다)

 " 블로그 본 적 있어요 "
 " 아 네.... "

 " 아니 옛날에 봤었는데 사실 처음 봤을 때 낯설지 않았는데 왜 그런가 계속 생각해봤더니 이제 떠올랐어요 "
 " ㅋㅋㅋㅋ 혹시 댓글 단적 있어요? 있으면 기억할지도 모르는데 "


 " 아뇨. 미안해요 ㅋㅋㅋ 그냥 눈팅만 했어요 "
 " 괜찮아요 다 그런데요 뭘 "

 " ㅋㅋㅋ 그 때 재밌게 보긴 했는데 "
 " 어떤 여행기를 재미나게 봤는데요? "

 " 동남아였던거 같은데 지금은 잘 기억이 안나네요 ㅋㅋ "
 " 그래도 용케 얼굴을 기억했네요 "

 " 쉽게 지나칠 얼굴은 아니잖아요 ㅎㅎㅎㅎ "


 정말 유쾌한 여자였다. 말도 시원시원하게 하고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라임과 참 긴 시간을 대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가 끊기지가 않았다. 음악 이야기, 영화 이야기, 여행 이야기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점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덧 밤 10시까지 얘기하다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고 맥주나 한잔 하자고 나왔다. 사실 바라나시는 힌두교의 성지중에 성지라 맥주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8년전에도 맥주를 구하기 위해 릭샤를 타고 시내까지 나가고 그랬는데 그래도 주변에 좀 웃돈을 얹어 파는 곳은 있으리라 생각하고 알아보는데 예상대로 팔긴 파나 맥주 한병을 무려 200루피나 받아쳐먹고 있다. 


 라임은 근처에 보나카페라고 한국인이 하는 식당이 있는데 거기 술을 판다며 그리로 가자고 했다. 그래서 라임을 따라 보나카페를 가니 왠걸 또 문을 닫았다. 진짜 뭐만 하면 문 닫는다. 되는 일도 드럽게 없다. 문득 생각하면  콜카타에서부터 타고르 하우스 문닫은거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정말 되는게 거의 없는 여행, 많이 아쉬운 마음이 든다.  맥주 찾아 삼만리 하다가, 둘 다 살짝 지쳤다. 내일을 기약하기로 하고, 라임과 나는 내일 만나서 함께 하기로 하고 그렇게 서로의 숙소로 헤어졌다.





 뭔가 바라나시에서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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