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지금 '2005 동남아 3국' 여행기를 보고 계십니다.
이 여행기는 여행중 쓴 여행 일기를 바탕으로 쓴 일기형식의 여행기이니 맨 처음부터 차례로 읽으시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처음부터 보실분은 [Traverls/2005 동남아 3국] - 한국/태국 050726 배낭여행자로서의 그 첫 걸음, 태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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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부터 허겁지겁 한 날이다. 6시 30분에 눈을 떴다. 젠장!!!

 빌어먹을 버스 시간이 6시였는데. 일어나서 조땠다 하는 순간, 영무도 벌떡 일어나더니 몇시냐고 묻는다. 버스시간이 6시신데 지금 6시 30분이라고 하자 아침에 그 느긋한 영무조차도 번개같은 속도로 일어나 짐을 꾸리기 시작한다. 믿져야 본전이다 싶어서 미친듯이 짐 챙기고,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일단 버스는 잡아야겠다 싶어, 영무는 먼저 픽업장소인 홍익여행사 앞으로 보내고, 나는 체크아웃을 하고 디포짓한 1000바트를 돌려받았다. 홍익여행사 가니까 6시 40분 경이다. 갔더니, 우리말고 남자 한명이 더 있다. 일찍나와서 기다렸는데 아직 버스가 안왔단다, 잠시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데 그때 버스가 도착했다. 천만 다행이다. 그렇게 미니버스를 타고 국경인 아란야쁘라텟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내려서 아침으로 빵하고 우유 사먹으며 아침에 홍익여행사에서 같이 버스를 기다렸던 그 남자와 얘기 나눴는데 홍승준, 나와 동갑, 유럽여행 끝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스탑오버로 태국하고 캄보디아를 둘러본단다. 그리고 또 휴게소에서 난 케이코를 만나게 된다.


 일본인 남자 3명이 더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홀로 있던 케이코에게 내가 말을 걸었고, 그렇게 얘기를 나눴다. 다시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왠 식당이었다.  점심이라 그저 식당에 들렸거니 싶어서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서 좀 쉬고 있으니, 슬슬 본색을 드러냈다. 비자신청서 그리고 국경을 넘은후 캄보디아 국경도시 뽀이뺏 부터 앙코르왓 유적이 있는 도시 씨엠리업까지 이동수단, 그리고 씨엠리업에서 숙소 신청에 대한 얘기를 한후 신청서를 나눠준다.


비자피는 우리가 알아본 바로 천밧이 었는데 천삼백밧을 내라고한다, 국경에만 가면 그냥 나올것을 괜히 300밧이나 더 주고 게다가 영무랑 나랑 합쳐서 600밧 (18000원돈)을 날리는건 좀 그렇다  싶어서 배짱을 부렸다. 그러자, 붉은색형광 스티커를 우리에게서 띠어간다. 그 스티커는 우리가 국경을 넘은후 캄보디아 측에서 픽업할 수 있게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비자및 이동수단,숙소 신청을 하지 않는 다고 말하자마자 표정이 바뀌며 스티커를 띠어간다.



그 식당안에 수많은 사람중에 우리만 비자가 없었고, 그 와중에 우리만 비자를 신청하지 않았다. 살짝 불안해졌다. 아직 국경까진 거리가 있는데 그래도 국경에는 내려주겠지, 설마 신청안했다고 버리고 가진 않겠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역시 기우에 불과 했다. 한참을 기다리니 트럭이 와서 사람들을 태우고 국경까지 간다. 






트럭을 타고 국경을 향하는 길, 여기서 다른 사람들은 단체로 씨엠리업까지 이동하고, 우리는 이제부터 개별적으로 가기로 했다. 영무와 나 둘만 이었으면 돈이 상당히 깨졌을텐데, 승준이의 합류로 조금 부담감을 덜했다.

 일단 국경을 넘는데, 이제까지 국경을 수로국경,육로국경 두번 넘었는데 이제야 말로 정말 제대로다, 걸어서 넘는다. 기분이 묘했다. 한발자국만 내딛으면 다른 나라라는게, 우려와는 달리 캄보디아 비자는 신청한지 5분만에 나왔고, 웃돈을요구하는 일도 없었다. 아까 거기서 두려움에 신청했다면 영무와 나 합이 600밧을 더 썼을꺼다.

600밧이면 얼마인가, 한사람 하루치 생활비다. 드디어 태국 아란야쁘라텟에서 캄보디아 뽀이뻿으로 넘어 왔다. 캄보디아에 넘어오니 당장에 분위기가 다르다. 엄청나게 북적북적거리고 삐끼들이 달라붙는다. 이것이 캄보디아 삐끼들의 시초였으니, 앞으로 겪을 수많은 삐끼들 정말 캄보디아 파리떼라고 우리는 불렀다.  삐끼, 정말 다시 한번 느꼈다. 머리만 잘쓰면 아무것도 안해도 돈이 굴러 들어온다는것.







이제부터가 문제다. 씨엠리업까지 이동해야되는데 너무나 악명높은 길이다. 결국 우리는 어떤 삐끼한명의 끈질긴 설득끝에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씨엠리업까진 5-6시간정도 택시를 타고 가야하는데 이게 쉬운게 아니다. 거리가 불과 150인가 200킬로 정돈데 뽀이뻿 씨엠리업 구간은 너무나 유명한 댄싱로드라 불리는 길이다. 캄보디아 300만명 학살의 주인공인 폴폿의 지시로 모든 도로 기간망이 파괴 되어 이건 그냥 일반 비포장 도로가 아닌 정말 곳곳이 움푹패여서 (완전히 패임) 차를 타고 가면 몸이 엄청나게 흔들흔들 거려서 댄싱로드로 불리는 구간이다. 어쨌거나 흥정의 흥정을 거듭 36달러에 합의 보고 택시를 타고 갔다.

[동영상 : 캄보디아 국경 뽀이뻿에서 씨엠리업구간의 댄싱로드 ]



댄싱로드 정말 말로만 들었는데 죽음이다. 정말 믿겨지지 않을 만큼의 구간이었고 이 길을 승용차로 간다는게 더 놀라웠다. (물론 이 댄싱로드보다 더 심한곳도 나중에 간다.)  캄보디아에서 승용차로 못가는 길이 없다.  캄보디아는 너무나 달랐다. 내전의 참상으로 인해 나라 전체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캄보디아에 커미션 문화를 익히 들었기에 안당할려고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동 내내 우리의 운전기사 미스터 롱은 친절하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해주며 자기는 커미션을 안받는다고 자기가 숙소를 소개시켜준다는거 였다. 우리는 아무말 하지 않았다. 하도 흔들거리고 나니 머리가 다 아파오기 시작했다.

갈래길도 없이 쭉 뻗은 흙길을 한참을 달리며 창밖으로 캄보디아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평원이 펼쳐져있어 아름다운 나라였다. 정말 내전으로 파괴된 이 길을 달리며 바라보는 아름다운 풍경은 왠지 가슴이 아파왔다. 날이 어두워지자 조금씩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을을 지나가는지 사람들이 많이 왔다갔다 했다. 가로등하나 없이 어두운 마을을 보며 21세기에 이런 삶은 어떤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둑해진 밤이 되어서야 겨우 도착했다. 우리는 씨엠리업의 랜드마크 스타마트 앞에 내려달라고 했다. 내리자 마자 30명정도의 삐끼들이 우릴 감싸고 숙소를 계속 소개시켜준다고 미친듯이 파리떼처럼 몰려든다. 우린 개 무시하고 일단 승준이가 알아봤다는 브라보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한국인 업소였는데, 방이 없다는것이었다. 그런데 브라보 GH사장이 갑자기 근처 숙소를 소개시켜준다는거다.  그리하여 브라보 바로 앞에 Chenla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어리숙한 행동이었다.

어쨌든 숙소를 일단 잡고 밥을 먹으로 갔다. 고민고민 하다가 씨엠리업 지도에 광고나온 김치빠란 한국음식점에 가기로 했다. 맨첨에는 라면하나 먹으며 감동했다. 근데 가볍게 소주한잔 하자는게 소주 맛을 보는 순간 눈이 확 돌아버렸다. 게다가 승준이가 처음 만났는데 하루쯤 질러보자고 하는데 술을 좋아하는 내가 마다할리가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게 소주6병에 삼겹살등등 정말 배터지게 먹었다. 소주는 정말 여기까지! 한국에서처럼 먹지 말자고 다짐하며 겨우 멈출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오게 된 금액이 41달러 였다. 4만원이 넘는돈, 한끼 식사에 보통 60밧 정도 2천원도 안되는 돈으로 해결하는 우리로선 정말 완벽하게 빵꾸난 지출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후회는 되지 않는다. 그때의 기쁨과는 바꿀수 없으니 말이다.



즐겁게 우리의 만남,캄보디아 무사히 입성을 자축하며 기분좋게 먹었다. 김치빠 여사장의 장사수완도 정말 대단했다. 우리가 마사지나 기타등등을 물어보니, 친절히 설명하는듯 하며 역시나 연결된 업소를 추천해준다. 브라보건 어디건 모두 친절하다. 하지만 결국 거미줄처럼 연결된 커미션 문화가 완벽하게 정착돼있다. 정신차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드디어 내일부터 앙코르왓이구나 하는 맘에 너무 설레였다. 그렇게 밤은 깊어갔다.


  1. [업데이트] 동영상추가, 사진추가, 내용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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