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지금 '2005 동남아 3국' 여행기를 보고 계십니다.
이 여행기는 여행중 쓴 여행 일기를 바탕으로 쓴 일기형식의 여행기이니 맨 처음부터 차례로 읽으시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처음부터 보실분은 [Traverls/2005 동남아 3국] - 한국/태국 050726 배낭여행자로서의 그 첫 걸음, 태국으로
언제나 그렇듯이 작은 사진은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으며, 여행 관련 질문은 포스트에 댓글을 남겨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기타 블로그 관련 궁금증은 카테고리 '공지' 에서 '블로그 이용법' 등을 이용하세요. 즐겁게 보세요! 

정말 말로 다 표현 못할 하루다. 여행 중 가장 힘들었던 날이고, 세상에 태어나서 아마 가장 기억에 남는 하루가 될 날이다. (2009년 주석,  이 이후 2009년까지 수많은 여행을 했지만 여전히 가장 힘들었던 날로 기억된다. )

새벽 5시에 일어났다. 드디어 다시 태국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에 영무와 난 들떠 있었다. 기분좋게 준비를 끝마친후 아침 7시쯤 아침을 먹었다.   보통 씨하눅빌에서 캄보디아 국경인 꼬꽁으로 가서 태국국경 핫렉으로 가는데, 우리는 씨하눅빌은 제낀 상태기 때문에 과연 깜뽓에서 곧바로 국경을 갈 수 있을까 많이 걱정했었는데 다행이도 깜뽓에서 곧바로 국경으로 갈 수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아주 확신을 하고, 버스티켓까지 예매했으니 일단 걱정은 붙을어매놨다. 참 진짜 가이드북에 없는 루트를 간다는게 꽤나 골치아픈일이라는게 느껴졌다.

  하지만 오늘 있을 일 생각하면 깜뽓에서 꼬꽁으로 향하는 버스를 예매한건 정말 최악의 일이었다. 8시쯤 우릴 국경으로 데려다줄 미니버스를 게스트하우스 식당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버스가 안와서 초조한 맘에 G.H주인에게 얘기를 했더니 " no problem " 이라며 실실 웃는다.

 그리고 8시를 조금 넘은 직후 미니버스가 왔다. 그동안 미니버스를 많이 타봤지만 항상 여행자 버스였기때문에 물어볼 생각을 한번도 안했다.  왜 그때 물어보지 않았나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하지만 우린 믿었다. 미니 버스가 왔는데 안에 현지인 할머니들 3명정도가 타고 있었다. 우린 갈아타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버스에 탔다. 그리고 버스가 불편하느니 어쩌니 아직도 복에 겨운 투정을 하고 있었다. 봉고차는 한국 차다. 정말 캄보디아 이새끼들은 라오스놈들보다 더 하다.  정말 지른다 완전히.  아직까진 탈만했다 그리고 같이 탄 캄보디아 아가씨 정말 이뻤다. 그래서 버틸만 했다 . 



그리고 조금 달리더니 깜뽓 마을 중앙에 차들이 많이 모여있는곳에 세우더니 짐을 실키시작했다. 끝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타기 시작하는데. 1시간 반이 지나서야 짐을 정말 지붕가득,뒷좌석가득 채운후, 12인승 봉고차에 사람들을 채우기 시작했다. 정말 자리가 불편했다. 우린 아직도 앞으로 어떤일이 있을지도 모른채 또 행복한 투정을 하기 시작했다. 자리 좁아 죽겠다, 너무 불편하다.  우린 시간이 지나면 사람이 줄것이란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리는 사람은 없고 타는 사람만 늘어났고 기어코 좌석 한줄에 4-5명이 앉을때까지가 되었다. 12인승 봉고차에 약 30명에 육박하는 사람이 탔다. 정말 상상할수 있는 최악의 상황 이었다. 

 비좁은 자리, 다리를 가누기는 커녕 몸을 꿈틀거리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때맞춰 쎈스 있게 내려주는 비때문에 그나마도 창문을 닫아야만 했다. 몸도 힘든데 봉고 안에 더운 공기가 감돈다. 돌아버릴것 같았다.


하지만 우린 국경까진 금방이다. 조금만 참자. 모든걸 다 겪어본 우리가 아닌가 생각하고 참았다. 하지만 우리가 캄보디아를 너무 우습게 생각했다. 깜뽓부터 꼬꽁까지 그리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일단 도로포장율은 0%에 가까웠다. 게다가 몸은 꿈쩍도 못할정도로 좁은 좌석에 앉아있었다. 영무는 심지어 의자받침대가 없는 부분에 앉아있었지만 워낙 사람이 빼곡 들어차 밑에 아무것도 없었음데도 엉덩이가 공중에 떠서 가는 상황도 발생했다. 그래도 여기까지도 괜찮았다.  캄보디아에서 다시 한번 느낀다. 태국의 위대함을 그리고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갑자기 차를 멈추는거다. 앞에 강이 나타났다. 하지만 가이드북인지 어디선가 읽은 생각이 난다. 꼬꽁까지 가는데 강이 있는데 차를 배에 실코 이동하기때문에 시간이 오래걸린다고,  하지만 역시 캄보디아를 모르고 한 소리였다. 이제 거의 다 왔다가 생각했지만 너무나 캄보디아를 우습게 봤다. 그로부터 정확히 강을 4번을 건넜다. 강을 4번쯤 건넜을때 우린 정말 반쯤 미쳐있었고, 내 눈앞에는 아침에 " No problem"  이라고 웃으며 얘기한 G.H주인 얼굴이 아른아른거렸다. 정말 할 수 만 있다면 차를 되돌려 숙소로 찾아가 총으로 다 쏴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강을 건널때 엄청나게 낡은 부실한 뗏목같은 배에 차를 실어 아주 천천히 뙤양볕아래에서 타들어가며 그늘 한점없는 배위에서 건뎌내야했다. 정말 힘들었다. 10달러나 받고 이런 말도 안돼는 버스에 태우다니, 난 약이 올라 반쯤 미쳐가고 있었다.   이 놈에 국경가는 길은 외국인도 안보인다. 그 흔한 배낭여행자 한명 보이지 않다니, 정말 지치다 못해 짜증이 폭풍처럼 내 머리속을 휘저었다. 


이건 아무리 말로 표현해도 말할수 없을 정도의 스트레스였다. 아침까지만 해도 오후에 4-5시쯤 꼬싸멧에 들어가 해변에 발 담그고 있을 생각을 했는데 오후 5시 현재, 아직도 산길을 달리고 있다. 바닷가에 있는 국경마을 꼬꽁을 향해가는데 우린 바다는 커녕 오히려 계속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젠 오늘 내로 국경넘는건 포기했다. 다만 그냥 우릴 꼬꽁에다가만 내려주었으면 하는 바램만 간절했다. 거의 저녁 7시가 되어갈 무렵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에 그 때 그 바다를 볼때 영무와 한 줄기 빛을 보는듯 했다. 말도 안돼는 봉고차에 좌석 한줄에 5명이 낑겨서 약 10시간 만에 도착한것이다.  강만 4번 건넌 대장정. 우리가 탄 버스가 꼬꽁시내로 들어가자마자 엄청난 숫자의 오토바이들이 경적을 울리며 우리 버스를 쫒아왔다. 캄보디아 파리떼들이 냄새를 맡은거다. 아니나 다를까 외국인은 우리2명만 달랑있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국경까지 태워 주겠다며 미친듯이 달라 붙었다.





내가 또 들이대는 성격을 워낙싫어하는지라 가장 들이대는 놈을 그냥 쌩까고 조용히 구석에 있던 오토바이에 영무와 난 탔다. 국경 넘는걸 포기했는데 국경이 8시까지라며 우릴 국경까지 인도했다.  오토바이 뒤에 타고 가면서, 이땐 신났지 태국만 넘어가면 모든게 만사 OK 될꺼라 생각했다. 국경으로 향하는데 해가 지기 시작하는데 세상에 너무나 아름다웠다 드디어 캄보디아를 벗어나 최첨단 도시! 소도시에도 도로포장이 되있는 동남아의 최강국 태국으로 가는것이다.


국경만 넘으면 썽태우가 우릴 기다리고 있고 그 썽태우를 타고 우린 뜨랏으로 가는거다. 그 뜨랏에서 하룻밤 자고 아침에 꼬싸멧으로 배타고 들어가는거다. 기분좋은 상상만이 우릴 기다렸다. 국경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은 나와 영무 단 둘 뿐이었다. 이용률이 너무나 적은 국경인가 싶었다.


서둘러 캄보디아 출국수속을 하고 걸어서 태국으로 들어왔다. 태국에 입국수속을 하고 우린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태국이다. 벌써 분위기가 달러! 이러며 신났다. 해는 이미 진 상태다. 썽태우가 여러대 서있는데 주인이 없다. 우린 일단 기사가 있는 썽태우를 찾았다. 뜨랏을 외쳤다. 근데 900밧을 부르는거다 순간 어이가 없었다. 가이드북에 100밧이라고 나와있는데 어찌 된일인가. 이런 개놈들 하며 가려는 순간 가까운 마을까지 200밧에 데려다 준다는 거였다.

" 도대체 어쩌라고, 이렇게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

아무리 개고생한 오늘같은 날이지만 그럴순 없었다. 가볍게 쌩까고 일단 걸었다. 일단 나가면 또 다른 썽태우들이 있겠지 하며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우린 걸었다. 길을 나가니 이게 왠일 고속도로같은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도로만이 있었다. 가로등도 없었다.  영무와 난 플래쉬를 꺼내 작은 플래쉬 불빛과 달빛을 벗삼아 길을 걷고 또 걸었다.군대 훈련받을때 행군하는 느낌이었다.

가까운데 마을이 있다고 했으니 걸어가면 나오겠지,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마을이 안나온다.  정신과 육체 모두 피폐해졌다. 우리가 이제까지 아무리 일단 질러! 하는 여행을 해왔지만 이건 정말 극도로 악화된 상황이었다.도저히 안되겠다 싶은데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까 국경으로 다시 되돌아간다 해도 그쪽에도 G.H가 없었고,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다. 절망에 빠져 하염없이 걷고 있는데 갑자기 뒤쪽에서 픽업트럭 한대가 온다. 난 미친듯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트럭이 섰다.


우린 달려가서 "뜨랏" 외쳤지만 뭐라고  쏼라쏼라 거린다. 영어가 안통한다. 트럭에 타냐고 손짓을 하니까 타라고 한다. 세상에 한국에서도 안해본 히치 하이킹을 태국에 와서 해볼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우린 너무나 즐거웠다.  신나게 바람을 맞으며 픽업트럭 뒷자리에서 아 이제 가서 자야지 하는 마음 뿐이었다. 픽업트럭은 미친듯이 달리고 또 달렸다. 어디로 향하는지는 모르지만 꽤나 먼거리였다. 국경이라서 그런지 검문 초소가 있었다. 군인이 우릴 보더니 차를 세운다. 좀 높아 보이는 사람까지 나와서 여권을 보여달라는거다. 여권을 보여줬더니, 우릴  태워준 트럭앞좌석에 있는사람들과 무슨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다시 출발!! 또 한참을 달려서 멈췄다.

조수석에 있던 사람이 우리보고 따라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사람을 따라 걸어서 계속 가니 마을이 나타났다. 경찰서도 있었다. 경찰서를 지나니 큰 시장이 나왔다. 이제 드디어 안도가 되었다. 사람사는곳이다. 너무나 기뻤다. 우린 그 사람이 우릴 뜨랏까지 데려다 주겠지 했는데, 우릴 택시기사 같은 사람들에게 데려다준다.  머라고 지네끼리 얘기하더니 택시기사 1명이 우리에게 오더니 어디가냐고 물었다. 뜨랏이라고 말하니, 3000바트를 부른다. 정말 어이상실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돈이 없다. 그래서 히치하이킹을 했다. 그랬더니 이 새끼가 영어를 못알아 듣는지 액수를 점점 줄이다 이젠 1300바트까지 내려왔다. 대가리 총맞은것도 아니고  먼 국경에서 900밧부른것도 마다했는데 우린 영어도 안통한다 싶어서 자리를 떴다. 하지만 이 마을에도 역시 G.H는 존재하지 않았다.

방법이 없었다. 이 시간에 뜨랏에 갈 방법은 없었다. 잠잘데만 찾아도 다행인 상황이었다. 도저히 안돼겠다 싶어서 경찰서로 가자고 내가 말했다. 그래서 오던 길에 보이던 경찰서로 갔다. 경찰들이 엄청 모여있는데, 영어로 뜨랏에 가려는데 좀 태워줄수 없냐고 데려다 달라고 말했더니, 영어를 못하는지 계속 영어할줄 아는 사람을 찾는 눈치다.  경찰들이 엄청 많이 모였다. 그리고 결국 젊은 경찰 한명이 영어를 할 줄 안다.

"  우리 좀 뜨랏까지 데려다 주시면 안돼나요? "


우리 얘기를 하고 뜨랏까지 좀 데려다달라고 하니, 첨엔 안된다고 하더니 나중에 부탁하니 자기가 한시간정도 있다가 데려다 준다는것이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잠깐 경찰서 앞마당에 경찰들이 집결해서 무슨 브리핑처럼 얘기를 하더니 순찰을 나갔다. 그래서 한시간 기다리라고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 이렇게 기쁠수가. 정말 다시금 빛 한줄기가 나타난 느낌이었다. 우린 배낭을 경찰서에 풀고 한시간동안 기다리기로 했다. 한시간을 기다렸는데 그 경찰은 오질 않는다. 배가 고파 일단 허기를 채우려고 아까 본 시장으로 향했다. 오늘 정말 지치다 못해 최악의 상황 , 밥도 아침에 빵쪼가리 먹은이후 처음이었다. 너무나 맛있게 시장에서 저녁을 먹는데 정말 눈물이 나는 줄 알았다. 이제껏 먹어본 어떤 식사보다 맛있었다. 그렇게 식사까지 해결하고 우린 경찰서로 다시 돌아왔다.


좀 높아보이는 사람이 우리보고 경찰서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리고 힘들게 대화를 한끝에 이런 늦은밤에 뜨랏까지는 갈수 없으니 내일 뜨랏으로 가고, 오늘은 안되니 이 마을에서 하룻밤 묵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잘데가 없었다. 경찰에게 말하니, 그럼 경찰서에 있어도 좋다고 하는것이다. 그래서 우린 경찰서에서 자기로 했다. 이젠 하다하다 별 짓을 다해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오늘 정말. 글로, 말로 이 때의 심정,상황을 다 표현못한다. 어쨌든 영무와 난 그래도 태국국경을 넘었다는데 안도감을 표했다. 그렇게 경찰서에서의 밤은 깊어만 갔다.

 난 경찰서 안에서 의자 3개 붙여놓고 자고 영무는 앉아서 잤다. 철창에 갇힌 태국놈이 밤새도록 씨끄럽게 한다. 캄보디아 꼬꽁에서부터 태국 핫렉 그리고 우리가 현재 있는 이 작은 마을  끄롱야이까지 외국인을 단한번도 보지 못했다. 국경에서 조차 외국인은 우리뿐이었다. 과연 내일은 꼬싸멧에 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기원한다 내일은 꼬싸멧에 가 있기를...


  1. Favicon of http://koreatakraw.tistory.com/ BlogIcon 모피우스 2007.12.09 21:07 신고

    제 옛날 생각이 나는 여행담이에서 느낌이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태국 쿠에띠오 셀릭을 맛있게 먹는 사진이 인상적입니다.^^* 국물 맛이 끝내주지 않습니까? 30바트 주셨나요....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서 코사멧에 다달았을때의 기분... 정말로 끝내주었겠습니다...

    태국은 아직까지 때가 묻지 않은 주변 환경과 사람들을 자주 접할 수 있어서 저는 태국이 좋은 것 같습니다.

    봉고 이야기에서 특히 저는 봉고차 타고 16시간을 이동한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자주 하다보니 이제는 그저 3-5시간 정도는 가까운 거리로 생각되어지더군요.

    알다시피 태국은 저렴한 가격으로 봉고로 많이 이동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나중에 또 놀러올게요.

    좋은 밤 되세요.

    • 무려 2년만에 다는 답글이네요. 블로그 관리가 허술하다보니 리뉴얼하면서 리플을 보게 되었습니다.

      봉고차.태국 봉고차는 편하죠.. 정말 저 캄보디아 봉고는 현재까지도 최악의 교통수단이었습니다. 지옥같았죠. 어쨌든 참으로 뒤늦은 리플에 괜히 민망스러워지는군요

+ Recent posts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