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늦게 까지 술 마시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이랑 얘기를 나눈다.
 그리고 잠든다.

 아침 느즈막하게 일어나 해장 삼아 근처 맛있는 국수집 가서 브런치를 먹는다.
 동네 마실 다니듯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다가 낮술 한잔 하고, 또 다른 여행자들 만나서 얘기하고.

 어디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왠만한 곳은 다 가보았기에
 뭘 봐야겠다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는다. 태국이 집 같다.

 그냥 매일 술 술 술

 근데 문제다.
 
 드디어 문제점이 발견돼었다.

 사람들에게 말 잘걸고, 이 사람 저 사람 잘 끌어모으는 샘형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다.
 원래는 나도 저 역활이었는데, 생각해보니까 내가 먼저 말 건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

 도미토리에 머무는 동안 그 곳에 있는 어떤 사람에게도 먼저 말걸어 본 적이 없다. 심각하다.
 예전 생각하면 사람들이랑 이빨까기 바쁘고, 어디서 왔어요 여행 얼마나 해요 어디어디 여행했어여 먼저 붙임성있게 물어보면서 금방 친해져 함께 어울리던 나였는데 그런 나는 더이상 존재 하지 않았다. 다만 성격이 있는지라 샘형이 예전의 나 처럼 사람들한테 먼저 말걸고 지나가던 사람들한테 " 와서 술 한잔 같이 해요 " 뭐 이런식으로 해서 오게 되면 그 때부터 조금씩 말하고, 대화하고 그런게 아니라면 내가 먼저 말 거는 법이 없었다.

 방콕 도착한지 며칠만에 깨달았다.
 
 나는 확실히 변해있었다.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는 내 모습. 사람에게 분명 지쳐있었고, 호주에서부터 걱정했던 그 모습이었다. 이제 더이상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데 내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런 정신상태로 여행가서 재밌겠나. 우려했던 바로 그 모습이다. 빌어먹을.

 지금 잠깐의 이 재미는 샘형 때문에 일어나는 재미였다. 예전 처럼 내가 먼저 나서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사람들과 얘기하고 대화하면서 생기는 재미가 아니라, 그냥 샘형이 만든 자리에 앉아서 진심으로 어울리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그 자리에서는 웃고 떠들고 재밌지만 가슴 한켠이 뭔가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이 강했다. 짜증이 났다. 내가 왜 변해야만 했을까 왜 내가 새로만난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게 됬을까. 미칠것 같았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여행이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연히 숙소로 머물던 디디엠 바깥에 앉아서 담배를 피고 있을 때 였다.
 한 40대 정도 되시는 아저씨 한분이 말을 걸어오셨다.

 " 혹시 블로그 하시는.... "
 
 호주에서는 블로그 독자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여행 하다가 내 블로그를 보시는 분을 만나는건 처음 이었다.
 반가워하면서 말씀을 거는 그 분에게, 난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내 속은 그러했다.
 하지만 내 겉은 분명 아무렇지 않게 " 낮 술 한잔할까요? " 이러면서 아무렇지 않게 굴고 있었다.
 
 낮술 하면서 또 다른분들도 합류하고 술자리가 커졌다. 술을 계속 마시고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심지어 그렇게 여행 중 한번 만나봤으면 싶은 독자분도 만났지만 마음속으로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 순간의 즐거움은 있었으나 마음 한구석이 계속 어두워져갔다.  그 40대의 그 독자분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이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인생 선배님이시니 뭔가 좋은 얘기를 듣고자, 그 분이 자신의 여행 얘기와 여행을 왜 하는가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여행을 즐기고 계셨다. 부러웠다. 언제나 그렇듯이 나보다 연배가 있으신 분들을 여행 중에 만날 때면 이런 얘길 하곤 한다.

 " 저도 여행 진짜 좋아하지만, 가끔 부럽습니다. 나도 저 나이 먹어도 저렇게 여행을 즐길 수 있을까 "

 정말 그러했다. 예전에도 그러했는데 지금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이 분과 대화를 나누고 나니 더욱 부러웠고 마음이 아팠다. 저렇게 즐기고 계시는데 난 왜 못즐기고 있을까. 우울해져왔다. 슬슬 회의감이 몰려왔다. 여행 때려칠까?

 결국 호주에서부터 그렇게 걱정되었던.
 이래가지고 여행 할 필요가 있겠는가?
 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것이 그 우려가 현실화 되었다.

 참 이 독자분께 죄송한 마음이지만 정말 마음을 열지 못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행 중에 독자와의 만남이었는데.

 심지어 연배가 있으시다고 같이 아침 먹으로 가거나 어디 술 먹으로 가면 돈을 선뜻 내주시곤 하셨는데도 마지막 다른 곳으로 또 떠나실때까지도 제대로 마음을 나누지 못했다. 마음의 병이 깊어져만 갔다. 그러다보니 내 마음 속의 병이 나를 점점 조여왔다. 그런 생각을 가슴에 품고 있으니 더 재미없어지는 것만 같았다. 방콕에 도착한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지루해졌다. 여행이 싫어졌다. 내가 지금 이 짓을 왜 하나 싶어왔다. 관성처럼 낮술 , 밤술 쉬지 않고 술 마시면서 사람들이랑 시덥지 않게 떠들고 있었다.  이 짓을 시덥지 않게 떠든다고 얘기하는 것 자체도 이미 변한것이다. 언제나 사람을 만나면 배울점이 있고, 누구와 얘길 해도 참 즐겁고 했던 나였는데 왜 이렇게 변해버린걸까

 왜 내가 좆같은 몇 놈들을 만나서 그 새끼들 때문에 이렇게 성격이 바뀌어졌어야 했을까
 우울해져오고 원망스러워지고 답답해져왔다.

 신념이 무너졌을 때 사람은 죽는다고 했나.

 여행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부정되기 시작하니 모든 것이 무너져 가고 있었다.
 오랫동안 키워온 세계여행의 꿈이 끝나버리고 있었다.


 함께 있던 샘형,에치,오현이에게 이런 얘기는 각자의 취향차이나 생각차이로 선뜻 이해되지 않고 상담이 되지도 않았다. 샘형은 샘형 나름대로 그저 즐기고 있었고, 에치는 방콕에 온 뒤로 에어콘 도미토리를 쓰느라 나와 떨어져있었고 자연스럽게 방에 틀어박혀서 매일 인터넷하고 소설읽고,게임하고 전혀 사람들이랑 어울리지 않으면서 나에게 의욕상실감을 더욱 안겨주었고, 오현이는 오현이 얼마 남지 않은 여행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에치나, 나나, 샘형을 보고 어디 갈 생각 없이 그냥 매일매일 방콕에서 죽때리면서 우리랑 같이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가까운 누군가 차라리 " 이럴바엔 어디 가자! " 이러면서 이끌어주면 혹시 새로운 변화로 바뀔까도 생각되지만 주위에 있던 3명 모두 마땅히 그런 사람도 없다보니... 원래 그 역활이 나였던지라 그런 내가 이동할 생각도 의욕도 느끼지 못하자 모두가 정지해버렸다. 점점 더 생각의 골이 깊어져 드디어 " 여행 그만 하자 " 라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그렇게 방콕에서 시간은 매일 술로 채워지며 내 마음은 깊은 상심만 더 해 갔다.

 여행은 언제나 사람과의 만남이다 라고 정의 내리던 내가 사람이 싫어지고 귀찮아지니 여행 자체가 부정되어가고 있었다. 여행 최대의 재미와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사라지니 여행이 재미가 없었다.

 그러던 중 드디어 그녀들이 나타났다.



 


  1. 춘정 2011.09.24 09:49 신고

    다음편 야한얘기 아니면 화낼거임... 그녀들이 나타났다라... 현기증 나니 빨리 올려주3...

  2. 바람둘이 2011.09.24 10:48 신고

    결정적 순간에 끊어주는 센스..
    드라마를 보는듯 하군요.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3. 짱가 2011.09.24 11:20 신고

    드디어..그녀들..

    최근의 긴장감이 느껴지는데요.

    이제 사진이 나오길 기대함다.

    잘 읽어 볼께요..

  4. 김은옥 2011.09.24 11:52 신고

    무님 ....
    열혈독자입니다.
    님의 엄마나이이지만 늘 배낭여행이 꿈이었죠.
    이루지못할 꿈을 님을 통해 이루고 있어 행복합니다..
    하루도 않빠지고 와보네요.
    치료 잘하시고요.

    • 저의 어머니 나이라.. 저의 어머니는 고등학교 때 1진 이셔가지고 고등학교 때 저를 나았습니다. ㅎㅎㅎㅎ

      나이보다는 그런 마음을 품고 계시는 것만으로도 훨씬 더 젊음을 느낄 수 있는것 같네요. 치료는 모두 마쳤고, 이제 나갈 날이 며칠 남지 않았네요. 처음으로 댓글로 뵙는것 같은데 자주 이렇게 댓글 남겨주세요. 그리고 꿈은 이루어지겠죠!

  5. ㅎㅎㅎ 2011.09.24 19:40 신고

    정말 글 잘쓰세요...
    책 한권 내셔야지요 ㅎㅎ
    이 긴글이 단숨에 읽혀지네요...
    글 잘쓰는 능력이 부러운데여..

  6. Favicon of http://sleeepy.tistory.com BlogIcon sleeepy 2011.09.26 10:04 신고

    갑자기 이건 또 무슨 '2편에 계속' 같은 끝맺음이신가?
    ㅎㅎㅎㅎㅎㅎㅎㅎ

    글도 재미있지만 내려가면서 댓글과 무아우 답글도 재미있네 ㅎㅎ
    어머니 얘기는 상당한 호기심 자극이 되는걸?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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