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서블 여행기 #24 [인도/여행기] 씁쓸한 마지막 마날리

 아침 느즈막히 일어났다.
 마날리의 마지막 날이다.   레LEH로 향하는 차가 자정이라서,  애들과 방을 어떻게 할지 논의를 했다.
 짐이야 그저 맡기면 그만인데,  그거야 저녁이나 오후때 떠날 때야 그렇지. 자정까지 이 마날리의 어디에 갈 곳이 있으랴, 대도시 같으면 그럴 수 있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게다가 레까지 가는 악명높은 길에 조금이라도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싶었다. 결국 논의 끝에 하루 더 방을 끊기도 그렇고 아예 방 빼기도 그래서 싼 가격에 자정까지만 방을 빌릴 수 있는지 알아 보기로 했다. 리셉션에 물어보니 다행이도 흔쾌히 그렇게 해주기로 해서, 방 흥정을 했다. 그래서 방 하나를  200루피 주고 자정까지 쓰기로 했다!

 아침은 입맛이 없어 거르고 짐싸고 정리하다보니 12시다. 체크아웃하고 200루피에 잡은 방으로 짐을 다 옮겨놓고는 밥을 먹으로 나갔다. 짐싸면서  난 그동안 완전 친해진 슈퍼 아저씨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서 모자를 하나 챙겨서 가지고 가서 슈퍼 아저씨에게 " 나 오늘 떠나요 아저씨 그동안 고마웠어요 " 라고 얘기하며 모자를 주자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기념 사진 한방 박았다.


 마날리에서 이 아저씨와 추억이 많다.
 맨 처음 술 살 때, 무슨 밀거래 하는것 마냥 (밀거래가 맞긴 하지)  속삭이며 " 위스키~ " 했던 그 때가 떠오른다.

 그리고 중간에 담배를 옆가게에서 산다고 나한테 삐져가지고 술도 안팔고 그랬던 일들이며, 다시 관계회복하고 서비스에 덤까지 얹어주면서 잘해줬던 것들. 이 아저씨의 슈퍼 단골로 음료수나 이것저것 많이 공짜로 주고 가격도 깎아줬는데 보답을 해야지!  아저씨랑 오늘 떠난다고 작별인사를 나눴다. 여담이지만, 훗날 다른 곳에서 만난 애들이 마날리 간다길래 내 사진 찍어가라고 내 얼굴 보여주면 잘 해줄꺼라고 했는데, 애들이 막 웃으면서 내 사진을 찍어갔는데 나중에 애들이 연락해서 알려줬는데, 마날리 가서 이 아저씨 찾아가서 내 사진 보여주면서 친구라고 하자, 아저씨가 음료수도 공짜로 주고, 너무너무 잘해줬다면서 진짜 재밌는 아저씨라고...

 어쨌든 덕분에 참 즐거운 마날리가 되었다. 고마운 아저씨!


 아저씨와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는 우리는 쇼핑도 하고 밥도 먹기 위해 언덕을 내려가다가 그냥 적당해보이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아무 생각없이 간 곳인데, 들어가니 분위기도 괜찮고, 뷰도 좋고, 서양새끼들이 바글거리는게 느낌이 온다. 게다가 메뉴판을 슬쩍 살펴보니 음식들의 가격도 아주 합리적이다. 외국인들이라고 바가지 씌워먹을려는 곳이 아니라는 곳이다.






 우리는  피자(마가리타), 파스타(볼로니즈), 프라이드치킨 시켰는데 꽤나 오래 걸렸다.   한참이 걸려 음식이 나오는데, 비쥬얼이 좋다. 기대감에 가득!


 모두 신나서 먹기 시작하는데, 맛도 끝내준다. 맛도 좋고, 가게 분위기도 좋고, 가격까지 합리적이니 이 집은 대박이다.   폭풍흡입하고 정신차려보니 빈 접시들만 우리 앞에 놓여있었다. 정말 멋진 한판이었다.   왜 여길 이제야 발견했는지 슬펐다. 난 입가심도 할겸, 마지막으로 마날리의 특산물 사과쥬스도 먹을겸해서 나가서 사과쥬스를 사와서 먹었다.   우리는 딱히 돌아다니고픈 마음도 없었던 고로, 이 곳에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이 가게는 유유자적하게 시간 보내기가 좋게 보드게임들 같은 것도 구비되어 있어서 보드게임도 할 수 있는데다가 와이파이까지 되니 시간 뻐기기엔 이만한 곳이 없었다.  와이파이로 카페에 들어가보니 난리도 아니다.  네이버 아이디가 해킹되서 난리다.   내가 카페에 광고글을 올렸다. 이런 황당함이.   내 아이디로 온갖 카페가 가입되어있고, 이미 가입된 카페에는 광고글을 올려서 전부 활동정지 상태가 되었다.  황당하다. 어떻게 비번이 유출됐을까. 겨우 해킹을 복구하고 비밀번호를 바꿨다.    그 곳에서 오후 3시가 넘도록 앉아서 얘기도 나누고, 인터넷도 하고 하다가 우린 쏘세지가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딜런스커피하우스에 가기로 했다.  커피를 좋아하는 쏘세지는 제대로 된 커피를 먹고 싶다고 난리도 아니다.




  딜런스 커피하우스는 언덕을 더 내려가야 있었는데 제법 분위기가 좋다. 창이 없이 바깥으로 향한 가게는 작지만 깔끔하고 좋았다.  가게 주인이 겨울엔 고아에서 여름엔 마날리에서 장사를 한다는데, 인도의 양대 히피 성지에서 시즌때만 이렇게 장사를 한다는 것이다.  나도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인도에서 맛보는 최초의 아메리카노 비슷한 맛이었다. 델리의 어지간한 비싼 커피숍보다 훨씬 나았다. 그리고 쏘세지와 하루는 쿠키도 시켰는데, 애들이 쿠키를 먹더니 완전 눈이 돌아갔다. 

 쿠키 존나 맛난다고 그 비싼걸 막 주문하다가 가게에서 먹은 것도 모자른지 결국엔 무려 4개나 테이크어웨이! 
 나는 단 것을 별로 안좋아해서 그런지 잘 모르겠는데 하루와 쏘세지는 정말 맛있는 쿠키라면서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우리는 제대로 된장질을 한 이후에 천천히 걸어 올라오다.  쏘세지는 쇼핑하고 나와 하루는 머리 좀 자르려고 오다가다 눈여겨봤던 이발소로 향했다.
 






 여기서 잠깐,
 하루는 고등학교 때부터 헤어디자인에 관심이 있어 이미 고등학교 때 자격증 따고,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교도 심지어 메이크업이나 헤어디자인 뭐 이쪽으로 갔다고.  그러니 대학생이지만 이미 경력이 오래된 헤어디자이너인 셈.   나는 하루를 믿고 머리를 잘라보기로 했다.  인도에서 투블럭 도전!

 만약 하루가 지켜보다가 정 아니다 싶으면 그 때 나서기로! 믿음직스러웠다!

 우리가 갔을 때 아저씨는 손님 머리를 자르고 있는데, 하루가 눈여겨보더니 이 아저씨 잘한다고.  내가 보기에도  장인 정신이 투철 해보인다. 뭐랄까 인도에서 보기 드물게 좀 제대로 하려는 사람 같아 보인다고나 할까.   어느덧 원래 와있던 손님의 차례가 끝나고, 드디어 내가 자리에 앉았다.  아저씨에게 대충 설명을 해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이해를 한건지 이해한척을 한건지는 나중에 알겠지!  인도에서 투블럭 도전!





 자르기 시작하는데 하루가 또 감탄한다.  이 아저씨 진짜 잘 자른다며 칭찬 또 칭찬.


 이러다간 하루 가위솜씨도 못보고 끝날터, 하지만 아무래도 인도에서 익숙한 스타일이 아니고 언어적 문제도 있어서 그런지 디테일한 부분을 살릴 수 없어서, 한참 동안 하루가 아저씨에게 설명하다가 결국 드디어 하루가 나섰다. 사실 다른 미용실에가서 이렇게 한다는건 참으로 예의 없는 행동이지만 아저씨도 흥미로워 하는 듯 했다. 



   하루가 본격적으로 가위를 잡고 자르기 시작하는데, 가위질이 쩐다.  보통이 아니다. 그 한국인 미용사들 특유의 현란한 가위질. 인도 아저씨도 신기한듯 본다.  항상 웃고 있는 얼굴의 하루가 정말 그토록 진지한 표정과 눈빛을 보여주다니.  역시 프로의 모습은 아름답다. 

 여기서 머리 자르길 잘했다. 하루의 가위솜씨도 구경하고 머리스타일도 너무 맘에 들게 나왔다.
 내 작업이 끝나고 이번엔 하루가 앉아서 하기로 했는데, 이 집에서 머리를 따서 이쁘게 이어붙여주는데, 




 마치 카오산에 처음 가면 모두가 레게 드레드에 도전하는 것 처럼, 여기에 온 거의 대부분 한국여자들은 마날리에서 머리에 실로 장식을 한다. 뭐 하나 유행하면 우르르 하는 한국여자들의 특성답게 정말 모든 여자들, 특히 한국여자들은 모두 머리에 실로 장식을 했다.   사실 소세지도 이미 머리에 실 장식을 하고 있었는데 쏘세지는 진작부터 태국에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 오니까 전부다 여자들이 그걸 하고 있으니 자기가 짱이라고 ㅋㅋㅋ   짱은 무슨 짱.. 카오산에서 하나 마날리에서 하나. ㅋㅋㅋㅋ

 어쨌뜬 하루는 적당히 이어붙일 머리장식을 고르고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 녀석 대단했다.
 와 어떻게 저렇게 하고 다닐 생각을 하나 싶었는데 얘기 하는걸 보면 맞는 말이다.

 " 형, 이런 머리를 어디서 해보겠어요~ 여행 왔으니까 하는거지 " 

 하루는 머리 가닥 몇개만 머리에 이어붙이는데 맨 처음에 한두개만 재미로 붙일려던게 뭔가 본격적인 느낌이 되버려서  하나만 더, 하나만 더 이렇게 되버렸는데, 거길로 끝난게 아니라 옆머리도 밀어서 투블럭으로 깎게 되었다.   아저씨가 한번 방금 나를 깎으며 투블럭을 터득했는지 하루가 아주 대만족을 했다. 진짜 쩌는 아저씨다!   한참 작업하는데 하루가 목 아프다고 너무 힘들다고 하는데, 아저씨도 지쳐보였다.  뭐랄까 집중력이 떨어졌는지 작업속도며, 퀄리티가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도 느끼고 하루도 느꼈다.   그리고 한참 끝에 드디어 하루는 머리를 다 이어 붙였는데 왠지 몽골리안 스타일, 완전 특이하다.





 어느덧 쏘세지도 쇼핑을 끝내고 와서 우린 다 함께 숙소로 돌아왔다. 쏘세지가 하루 머리를 보더니 빵터진다. 정말 앞으로 이 머리를 보고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꺼란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 가니 인도 현지인들이 많이 간다는 그 여행지 간다고 떠났었던 오디며 갑작스레 우리를 떠났던 현아가 돌아와있다.   쟤네가 오니 다시 또 씨끌벅적하다.  몇일만에 보는 현아가 반가워 오랜만에 회포 풀며 잠시 얘기나누고 쉬었다. 

 우리는 한참 밍기적 거리다가  저녁 밥을 먹으로 바깥으로 나왔다.   쏘세지는 티벳식당의 그 만두국에 꽂혀서 또 만두국을 먹으로 간다고 했는데 나와 하루는 안땡겨서 윤카페가서 김치찌개 하나 나눠먹기로 하고 윤카페에 가서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쏘세지는 벌써 먹고 왔다.



 그제서야 우리가 주문한 메뉴가 나오는데 왠일로 사장님이 직접 김치찌개를 서빙을 하길래 찰나에 뭐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장님이 김치찌개를 테이블에 놓으며 

 " 오늘만 특별히 해주는거에요, 메뉴하나 나눠먹으면 안돼요."
 라고 썩은 표정으로 밑반찬들을 내려놨다.

 " 다른 식당 가봐요 욕해요.  다른 식당가보면 이렇게 누가 해줘요 나니까 해주지" 라고 하는데
 대답은 그냥 " 예. " 했는데 존나 벙쪘다.


  일단 맛나게 먹었는데 먹으면서도 진짜 어이가 없었다. 어이가 없어서 우리끼리 계속 이 얘기를 했다. 내가 여행다니면서 한두번 한국식당 가본것도 아니고, 내가 무슨 진상손님도 아니고  아니 메뉴 하나 시켜 나눠먹는다고 이렇게 말하는 한국인 사장은 내가 처음 봤다.  그렇다고 밥 무한리필이라서 찌개 하나 시켜놓고 여럿이서 밥리필해서 나눠먹은 것도 아니고, 밥도 비싼돈 주고 추가해서 둘이 먹는데 우리가 밑반찬을 리필시킨것도 아니고. 진짜 벙쪘다. 그동안 쓴돈이 얼만데.

 공기밥만 왠만한 인도음식값인 50루피인데 이런 소릴 들으니 씁쓸했다. 일단 맛있게는 먹었는데 나나 하루, 옆에서 있던 쏘세지 모두 어이상실.   정말 윤카페 사장님의 그 말 한마디가 우리 기분을 개잡치게 만들었다. 숙소 돌아오면서 그 얘기, 돌아와서 그 얘기.


 우스개로 내가 윤카페 사장님 맨 처음 보고 농담으로 존나 탐욕스럽게 생겼다고 했는데 탐욕의 아이콘이 되었다.  하루의 표현을 빌리자면  욕망의 항아리!



 안그래도 그간 가서 윤카페에서 밥 먹을때마다 주문을 푸시했었는데 음식을 주문한 사람에게 계속 비싼 음식을 권유하면서 이거 맛있는데 왜 안시켜먹냐고 계속 푸쉬. 정말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인데, 씁쓸했다.  그동안 가서 팔아준게 아까웠다.   우리 딴에는 그래도 이제 마날리 떠나고 하니 윤카페 한번 더 가자 싶어서 간건데 정말 정내미가 뚝 떨어졌다.  숙소에 와서 테이블에서 노닥거리며 이런저런 얘기하는데 어제 그 한국인 아저씨가 왔다.  

 아저씨는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정말 사람을 말로 짜증나게 하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사실 나야 그렇다치지만 쏘세지나 하루도 애들이 그렇게 까탈스러운 애들이 아니고 진짜 착한 애들인데, 하루는 그 아저씨가 꼴도 보기 싫은지 일어나서 자리를 피했다. 아저씨는 자리에 앉아서 테이블 위에 있는 우리들이 사온 것들을 보는데   우리는 이따 레에 가는 버스에 오르면 배고플 때 먹을려고, 이것저것 슈퍼에서 사온터이고, 고산병 올 때 단거 먹으면 좋다고 해서 초콜릿이며 스니커즈를 사왔는데 아저씨가 하루 자리에 있는 스니커즈를 들더니, 나한테 묻는다.

 " 이거 먹어도 되요? "
 " 아니요. 그거 제꺼 아닌데요 하루꺼에요 "
 " 아 그럼 먹어도 되겠네 내가 어제 고산병 약도 줬는데 "
 " 아니 그거 고산병 올 때 초콜릿 먹으면 좋다고해서 사온거에요 "
  라고 이야기 할 때 이미 이 아저씨는 스니커즈 봉지를 쭉 찢어서 벌써 한입 베어물고 있었다.

 예의없는 인간이었다.


 짜증나서 쳐다보고 있으니 우물우물 스니커즈를 쳐씹으며 하는 말이
 " 어제 그 약이~ " 이러면서 또 지 조카가 서울대라고 자랑을 쳐해싸면서 

 " 그 약 먹으면 되요, 이런거 소용없어요 " 이러면서 이미 스니커즈 한봉을 다쳐먹고, 
 " 오랜만에 먹으니 맛있네. " 이러면서 또 다른 스니커즈를 뜯고 있었다. 정말 ㅋㅋㅋㅋㅋ 
 



 어이없어서 이젠 나도 무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으니, 하루가 사온 과자며 초콜릿을 다 쳐먹고 일어나서 또 다른 여행자들에게로 갔다. 
 그 아저씨가 가고나니 하루가 방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지 

 " 갔죠? 아저씨? " 이러면서 테이블로 왔다.
 " 야 , 이거 봐라 저 아저씨가 다 먹었다 "
 그러니 하루의 표정이 정말 개썩었다. 

 
 정말 윤카페 사장에 이어 연타였다.
 능글맞고 붙임성 있는 인간들을 싫어하는 이유다.  진짜 밉상이다.

 이래서 나이 먹으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하는것 같다.  씁쓸한 마음을 안고 자리에 앉아서  훌라하고 놀다가 우리는 방에 들어가서 마지막으로 짐정리 하고, 쉬고, 이것저것 각자 할일 하면서 드디어 마날리를 정리했다. 이제 곧 레로 출발할 시간이 다가 오고 있었다.  마날리를 떠난다.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고 좋았던 마날리였지만 뭔가 끝마무리가 씁쓸하다. 
 즐겁게 밥을 먹었던 윤카페의 마무리도, 그 한국인 아저씨의 행동도. 모든 것들이 기분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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