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암 지구에 존재는 레바논에 들어갈때 까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 레바논에 도착해 머무는 숙소에서 게스트북을 뒤적이다가 다른 여행자가 남기고 간 정보글에서 그 존재를 알 수 있었다. 키암 지구는 정확하게 레바논 남부에 이스라엘과 꽤 가까운 곳에 위치한 조용한 시골 마을을 가리킨다. 알 키암이라고 하는데, 이 곳 키암에는 이스라엘 군과 레바논 헤즈볼라와의 치열한 교전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게스트 북에서 얻은 정보로는 4군데 정도를 몰아서 다녀 올 수 있는데 위치가 비교적 남부에 다 몰려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크게 다음 4군데를 다녀올수 있는데 첫째로 알 키암, 이곳은 키암 디텐션 캠프로 불리우기도 하는 곳인데 2006년 7월 이스라엘 군의 공습으로 완전 폐허가 된 곳이다. 수용소로 쓰여졌던 곳이다. 두번째로 파티마 게이트, 이스라엘 국경과 접한 곳으로 un군이 관할하고 있다. 세번째로 아이 타이룬, 이스라엘군의 무자비함을 극명하게 나타내는 곳으로서 마치 전쟁영화의 한 장면 처럼 가루가 된 건물 잔해속에 단란한 가족사진 액자를 발견할수 있고, 주인 잃은 신발, 이런 전쟁의 흔적을 느낄수 있는 곳으로 민간인이 살던 그저 평화로운 작은 시골 마을이다. 하지만 더이상 그런 느낌은 전해지지 않는 곳이다. 그리고 마지막 네번째는 카나(quna)지역으로 시인 '박노해'가 신문에 이곳에 방문하고 글을 연재한 곳인데, 엄청난 시신들, 학살, 공습의 현장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런 헤즈볼라이지만 레바논 남부 지역을 아직도 꽉 잡고 있어서 이스라엘의 집중공격 대상이 되는 것이 바로 헤즈볼라의 본거지가 있다는 레바논 남부지역이다. 또한 레바논 남부지역은 지리적으로도 이스라엘과 맞닿아 있는 곳이다. 중동을 여행하면서 워낙 이스라엘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생겼다. 이스라엘은 이미 인접한 이집트,요르단,시리아,레바논 4개국과 모두 영토분쟁을 겪고 있다.
이런 키암지구를 가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서 대절한 미니버스(봉고차)를 타고 레바논 남부 지역으로 향했다. SIDON(SAIDA)이라는 레바논 남부 도시로 먼저 향한 우리는 일단 먼저 시돈 경찰서로 향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남부지역으로 가는 permit을 받았다. 단지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퍼밋을 받아야하는 그곳은 가기도 전에 우리에게 은근한 압박감을 안겨주었다. 생각보다 간단하게 퍼밋을 받고 난 후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타 알키암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파괴된 수 많은 다리, 도로, 건물들이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었다. 길거리에 서 있는 이정표 조차 총알 구멍이 나있는 모습에 영화속에서만 보던 그런 전쟁의 참혹함이 온 몸으로 느껴져 왔다.
굽이 굽이 도로를 따라 꽤 멋지게 펼쳐진 풍경을 달렸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그런 전쟁을 겪었다는게 믿기지 않을 만큼 풍경은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간간히 검문소에 들려서 군인들에게 퍼밋을 제출하고 여권검사를 하고 그런 수 많은 검문이 지나 산으로 굽이 굽이 난 도로를 따라서 계속 올라갔다. 마침 날씨가 우중충해서 안개가 자욱한 산악지형은 정말 멋있었다. 그리고 도착한 키암. 조용한 마을이지만 마을은 이미 말할것도 없이 비참했다. 지붕이 날라가 집, 총탄,포탄자국이 거의 모든 집에 다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마을을 지나 키암 디텐션 캠프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서 캠프 안으로 들어갔을 때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마치 건물을 철거하고 있는 것과 같은 형상을 보여주었다.
무너진 건물들 사이로 삐죽삐죽 나온 철근과 잔해들, 탱크,장갑차,짚차,큰 포탄 등이 없었다면 단순히 그저 건설현장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우리는 모두 그 참혹함에 말을 잃었다. 마침 동네 청년들 몇몇이 그곳에 와있었는데 영어를 잘해서 그들에게 당시의 상황이나 자세한 얘기들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작된 이곳은 일반인에게 이처럼 개방된지 얼마 안됐다고 했다. 헤즈볼라와 이스라엘과의 치열한 교전의 현장이었다. 2006년 7월의 전쟁이후 쭉 방치되어서 어느새 이곳은 아름답게 꽃이 피어있었다. 잔혹한 전쟁의 흔적속에서도 그렇게 꽃은 피어나고 있었다.
키암을 보고 나온 우리는 다시 자리를 옮겨 파티마 게이트로 향했다. 파티마 게이트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이곳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쭉 뻗은 길 한가운데 UN군 마크가 찍힌 탱크한대와 스페인에서 파병된 UN군인 4명이 지키고 있는 곳이었다. 그저 도로일뿐인데 이곳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모르겠어서 물어봤더니, 이곳은 이스라엘과 맞닿은 국경지대로 이 길을 따라 가면 이스라엘인데 이곳 파티마 게이트로 이스라엘과 레바논 양국의 전쟁포로, 시신들이 교환되는 장소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저 한적한 시골마을의 쭉 뻗은 도로였지만 실상을 듣고나자 묘한 여운이 전해져왔다.
그리고 다시 자리를 옮긴 우리는 아이 타이룬으로 향했다. 이 곳에서는 차마 사진한장 찍을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저 그 모습을 상상하면 되는 곳이다. 영화속의 한장면처럼 완전히 공습으로 폐허가 된 시골 마을에, 부숴진 건물 잔해틈으로 단란한 가족사진이 액자유리가 깨진채로 뿌려져 있고, 주인 잃은 신발, 찢어진 옷가지며 정말 이스라엘개새끼들이 얼마나 잔혹한 놈들인지를 보여주는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QANA 카나로 향했다. 박노해가 신문에 이곳 카나지역을 방문하고 나서 글을 연재했다고 하니 한번 관심있으신 분들은 찾아보시라, 이곳 역시 전쟁의 흔적이 역력했는데 무엇보다도 이곳에서 만난 한 아저씨가 당시에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는데, 말이 안나온다. 이 아저씨는 그 사진들을 CD로 구워서 파는 아저씨였는데, CD는 사지 않았지만 그 아저씨가 당시 상황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사진으로 보여주어서 이스라엘 공격당시의 그 참혹함이 제대로 전해져왔다.
이렇게 4곳을 들리고 나서 같이 이곳에 온 우리 일행들은 모두 말을 잃었다. 한국인,일본인 각 6명씩 12명의 우리 일행은 묘한 기분이 들었으리라. 모두 전후세대로서 전쟁의 참혹함 따위는 어찌보면 먼 나라 얘기처럼 느껴졌던 우리들은 이 현장을 방문하면서 이스라엘의 잔혹성을 넘어서 전쟁 그 자체의 잔혹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왜 싸워야만 하는가 하는 그런 우매한 질문은 더이상 의미가 없었다. 감정의 골은 깊어질데로 깊어져서 아랍국가와 이스라엘의 감정의 골은 이미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 조차 적대적감정에 가득차게 만들었다.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가고 피어나는 희망의 싹도 짓밟는 다는 것을...
한 팔레스타인 소년이 엄마에게 어느날 말했다 " 살이 좀 더 쪘으면 좋겠어요 "
" 왜 그러니? "
" 살이 찌면 폭탄을 둘러도 들키지 않을꺼 아니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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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2007 중동 4국] - 레바논 070224 전쟁의 참혹함, 키암지구
중동여행기 시작하기! (오스트리아부터)
[여행기/2007 중동 4국] - 오스트리아 070116 출국, 유럽은 유럽이다. 오스트리아 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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