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킹 홀리데이] 35. 카나본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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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카나본 정리
내가 바나나 쉐이드에서 짤리고 나서 실의에 빠진 것은 나 혼자 만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디온 때문에 힘들어 하던 애플은 " 카나본 진짜 정내미 떨어진다 " 라며 바나나 쉐이드를 그만두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하지만 잘 다니던 잡을 버리고 떠나기에 뭔가 찝찝하기에 더군다나 카나본은 이제 시즌이지 않은가. 남들은 시즌 때문에 찾아 오는 판에, 시즌이 시작하는데 떠난다는게 굉장히 맘에 걸렸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좀 생각해보기로 했다.
어쨌든 바나나 쉐이드에서 나름 고소득을 올리고 있던 애플이었기에, 난 새롭게 카나본에서 새로운 잡을 구하기로 했다. 다만 내가 픽업을 하고 있었던 이들이 애플 뿐 아니라 3명이 더 있어서 내가 짤렸다고 리프트를 해버리지 않으면 애플을 포함한 나머지 이들이 출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일단 내가 짤린 그 주에는 애플에게 차를 빌려줘 이번 주는 이 차로 출근하고 몇일동안 다른 리프트를 구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로 했다. 솔직히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쥐가 고양이 생각하는 거였다.
이 덕분에 당시 이제 막 시작하던 포도픽킹 잡 타이밍을 놓쳤다.
더군다나 누구도 이런 배려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음에 아니 오히려 리프트가 없는데 어떻게 하냐는 어이없는 반문을 들으며, 참으로 세상일이란게 냉혹하다는 생각을 또 한번 했다.
그리고 며칠간의 유예끝에 우리는 카나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모든게 좋았지만, 나름 바나나쉐이드 사건으로 빈정상해서 새롭게 잡을 구해야했으나 이것이 또 나름 다른 곳으로 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 혼자의 상황이라면 뒤도 안돌아보고 떠났겠지만 드디어 애플 마저도 도저히 짜증나서 바나나 쉐이드에 있지 못하겠다는 얘기를 하며 바나나 쉐이드를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모든게 결정되었다.
" 오빠 어차피 떠나기로 했으니까, 그만둔다고 얘기하고 일주일간 더 일하고 그만둘꺼니까 그냥 차 계속 일주일만 더 쓸게 " 라고 애플이 얘기했다.
그리고 백수 기간이 일주일간 더 늘었다.
애플이 그만두겠다고 바나나 쉐이드에 말하던 날, 이제 우리를 알고 있는 카나본의 거의 모든이들에게 소문이 퍼졌다. 우리가 떠나는 사실이. 애플은 집에 와서는 " 원래 일찍 그만두면 디온하고 브라이스며 지랄 지랄 하는데, 내가 그만둔다니까 아무말도 안하더라 " 라며 찝찝함을 보였다. 그렇게 우린 드디어 카나본을 떠나기로 완전 결심을 했다.
카나본을 떠나기로 한 후, 우린 그간 몇개월을 함께 친하게 지냈던 이들과 추억을 쌓기로 했다. 다 함께 카나본에서 약 한시간 거리에 있는 나름 놀러 갈 장소였던 블로우홀 blowhole을 가기로 했다. 블로우 홀은 어떤 특정지명이라기보다는 어떤 모습을 나타내는 건데 대충 쉽게 예를 들자면 폭포,절벽 뭐 이런걸로 보면 된다. 블로우홀은 바닷물이 바위로 들어오면서 구멍이 뚫린 틈으로 마치 고래가 물을 뿜듯이 물이 뿜어져 올라오는 것인데 실제 블로우홀의 사전적 의미 역시 고래등의 기공을 뜻하는 것.
암튼 우린 대규모로 블로우홀을 향해 갔다.
우리 차를 비롯해 3대의 차가 움직였는데 우리차, 크리스차, 토미차 그리고 그외 여러사람이 함께 했다. 어찌보면 카나본에 와서 처음 떠나는 근교여행. 그동안 어딜가자 어딜가자 말은 많았으나 이렇게 더군다나 많은 인원이 떠나니 여행기분이 물씬 풍겼다. 약 40-50분 정도를 달려 도착한 블로우 홀, 일단 블로우홀이란 지명답게 블로우 홀을 구경하러 갔다. 나름 색다른 모습의 바위들로 이뤄진 곳을 지나 바다에 인접한 곳에 가니 큰 구멍이 하나 뚫려있었는데 이내 파도가 치니 물이 위로 솟구친다.
신기하기도 하지만, 뭐 딱 거기 까지. 대충 그곳에서 사진 좀 박고, 우린 다시 차를 타고 해변가로 이동했다. 해변가에 도착해 준비한 아이스박스며 버너등을 해변가로 옮겨 우린 역시 한국인들 답게 일단 라면부터 끓여먹기로 했다. 아이스박스에 가져간 맥주 한잔씩들을 하며 라면을 먹고 해변가에 앉아 있는데 저쪽 웨스턴애들과의 노는 모습이 확연히 차이가 났다.
모두 웃통까고 남자며 여자며 선탠을 즐기고 있는 웨스턴들과 한쪽 그늘에 앉아 맥주한잔하며 라면을 먹고 있는 한국인들.
먹을꺼 다 먹고 마실꺼 다 마신 후 우린 각자 개별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도 있으니 각자의 취향이 도드라졌다. 근처에 굴이 있어서 굴 따러 간 사람들, 마냥 앉아서 쉬는 사람들, 수영 하는 사람들.(수영은 그나마 나랑 워니만 했다)
[ 블로우 홀, 뭐 이정도 풍경은 그냥 동네 바다 수준...]
나는 바닷물에 들어가 놀았는데 물이 얕고 바닥에 돌이 많아 수영할만한 물은 아니었다. 그냥 더위를 식히기 딱 좋을 수준. 블로우 홀에 큰 기대를 해본적은 없지만 막상 만약에 여기에 권과 둘이 왔더라면 얼마나 심심했을까 아찔할 수준. 어쨌든 그래도 카나본에서 친하게 지내는 모든 사람들과 이렇게 카나본을 떠나기 전에 놀러올수 있다는게 너무 좋았던 순간.
[여기서 잠깐, 마지막으로 카나본에서 만난 사람들 정리]
얀 : 같은 집에 사는 한살 아래 동생, 부산출신으로 대만여자친구 마리나가 호기심이 워낙 많은지라 언제나 마리나의 궁금증과 호기심등을 설명하기 위해 영어를 쓰다보니 누구보다 영어로 쉽게 잘 표현해낸다. 인심도 좋고 괜찮은 동생
크리스 : 얀과 국민학교때 부터 친구로, 해병대를 나온 사나이, 일본음악,일본,일본여자를 무지하게 좋아하는데 일빠 수준이라 할 정도. 언제나 와따시와 니혼진 이라며 일본사람을 자청. 우스개로 해병대 나와서 일본사람이라고 한다고 사람들이 말하면 부끄러워함. 어쨌든 나랑 똑같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로 mr.children을 꼽아서 더욱 좋았고, 술을 너무 좋아해서 또 잘 맞았던 동생.
크리스에 관해서는 특히 할말이 정말 많은데 정말 매력이 넘치고 진국이라 할 만큼 좋은 녀석이다. 음식솜씨도 엄청나고(정말 퍼스에서 제니누나 요리잘한다고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이상) 또 정말 똘끼 충만에다 엄청 웃기다. 말그대로 매력만점. 애플의 말을 한마디 빌자면 정말 키만 좀 컸으면 거의 최강이라 할 정도로 매력있는 친구.
그리고 위에 말한 똘끼. 정말 대박이다. 흔히 좀 남들에게 특이해보일려고 똘아이인척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크리스 정말 또라이다. 근데 이 또라이라는게 뭔가 나쁘다는게 아니라 정말 그냥 특이하다는 것. 예를 들면 크리스는 옷을 시시때때로 바꿔입는데 밖에서 입는 옷,술마실때 입는옷,잠잘때 입는옷 등등 수 많은 의상이 존재. 처음에 술 한잔 하자고 했을 때 밥을 먹고 있던 크리스가 잠시만요 옷좀 갈아입구요 라고 말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난 잘 몰랐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정말 크리스는 상황별로 의상이 존재함에 깜짝놀랐고 이것이 결코 특이하게 보일려고 하는게 아니라 정말 진지한 거라, 단 한번도 그 귀찮음에 져서 상황별 옷을 안바꿔입은 적이 없을 정도.
크리스의 또라이라 함은 그냥 특이함이고 정말 너무 착하고 인정 많고, 재밌고, 어쨌든 그 어떤 수식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멋진 친구다.
마리나 : 얀의 대만여자친구, 한국인 남자친구를 둔 덕택에 어설프게 한국어를 하는데 눈치가 빠른 탓인지 굉장히 잘 알아 듣는다, 자기는 한국사람이 아니라 대만사람이라며 나이 많은 사람들, 특히 얀의 누나인 제이드 누나에게 언제나 뻑큐를 날리며 욕을 하는데 완전 귀엽다(장난으로 하는거지만 가끔 진지할때가 있다). 카나본에 와서 느낀 대만사람들의 특성답게 굉장히 깍쟁이짓을 할 때도 있지만 착하고 귀엽다. 어설프게 한국말 할 땐 정말 완전 귀여움.
토미, 제니 : 한국에서부터 커플로 나이가 어린 친구들인데 굉장히 붙임성있고 착하다. 둘다 일복도 많아서 투잡, 쓰리잡을 뛰며 카나본의 돈을 싹슬이 하는데 특히 토미 같은 경우에는 성실하고 싹싹해서 형들인 나나 크리스,얀등이 정말 좋아하는 동생.
리사 : 필리핀계, 우리의 집주인이자, 바나나 쉐이드 매니저. 일단은 카나본의 쉐어하우스들은 거의 필리핀 아줌마들이 꽉 잡고 있는데 거의 담합수준으로 가격을 매겨 상당히 비싼데 특히 가장 비싼집이 리사네 집이다. 바나나쉐이드 매니저란 지위를 이용해서 비싼 집값에 완전 허접한 시설을 자랑한다. 그래도 본심이 완전 나쁘거나 하진 않은 다만 짠돌이 기질이 강한 아줌마.
제이드 누나 : 얀의 친누나로, 일찍이 카나본에 자리 잡아 이곳에서 호주 남자친구도 사귀어 거의 자리 잡은 누나, 호주 남자친구를 둔 관계로 거의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다. 동반비자로해서 2년정도만 더 있으면 영주권을 받는다. 퍼스의 제니누나와 동갑이고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은데 제니누나 처럼 음식같은거 해서 나눠주길 좋아하는데 제니누나에 비해서 손은 많이 작다. 그래도 맛난걸 많이 해줘서 카나본에서 참 잘 먹었던 것 같다.
워니 : 카나본 떠나기 몇주전에 카나본으로 온 토미의 친구, 역시 카나본 답게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카나본으로 와서 약 하루만에 바나나쉐이드로 출근, 한국에서 20만원만 들고 왔다는데 우리가 떠날 당시 노트북도 호주에서 구입했다. 여러모로 워니를 보면서 한국이나 호주나 별반차이 없음을 느꼈다. 말그대로 편하게 사는 놈들은 편하게 산다. 어쨌든 좀 골까긴 하는데 또라이인척 할려는 경향이 강해서 골까는 것마저도 연기가 아닌지 의심스러운 캐릭터. 개인적으로 보기에 특이해보일려고, 또라이인척 할려고 하는 캐릭터의 전형이라고 생각됨.
가짜 또라이는 " 너 별로 안특이한데.. " , " 너같은 애들 많어 " 라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진짜 또라이들은 스스로 특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는 그냥 하는건데 사람들이 왜 저러나 하는 생각을 보통 함.
조이 : 조이란 이름은 같이 시푸드에서 일한 한국여자 조이도 있지만 여기 조이는 애플과 함께 바나나에서 일했던 joey (여자 조이는 joy). 나랑은 그렇게 많이 친하지 않은데 애플과 절친. 서글서글한 인상과 다정한 말투. 여자들에게 제법 인기 있을것 같은 또 그리고 인기있는 (실제 대만여자애들이 여럿 조이를 좋아함) 동생. 포트호텔에 있을 때 엑스랑 함께 있었다고 하는데 엑스가 포트호텔에서 나나,애플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는데 뭐 내 얘기까진 상관없는데 애플 얘기나 특히 우리 커플에 대한 줏어들은 얘기를 백팩에서 했다는 얘기를 조이가 애플에게해서 애플이 엑스한테 완전 짜증났었던 에피소드가 있다.
그리고 나는 조이로부터 " 엑스 형이, 자기 친구 한명 여기 카나본에 있는데 자기 안챙겨주고 얌체같이 혼자서 쉐어하우스 구해서 들어갔다 " 고 얘기하는 걸 듣고 잠깐 벙찜. 진짜 이 얘기듣고 애플도 벙찜. 어쨌든 카나본 떠나고나서도 제대로 진상 핀 엑스.
앤 : 애플과 동갑내기로, 애플이 처음으로 호주에 와서 외박하게 만든 친구. 성격도 서글서글하고 해서 애플이 정말 좋아하고 많이 챙겨줬다.
이외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있으나 일일이 설명하기에 정말 너무 많아 거의 마지막에 함께 했던 이들만 언급을 하려고 한다.
[다시 본론으로..]
일단 카나본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애플 역시 바나나쉐이드에 말은 하고나서 드디어 이제 날짜가 나왔다. 역시나 쉐어하우스가 종료하는 화요일 아침에 떠나기로 했다. 그리고 떠나는 날까지 거의 매일 파티가 이뤄졌다. 매일매일이 술, 술을 마시는 것 까진 좋으나 모두가 한번 다시 생각하라고 만류하는 바람에 더욱 고민이 가중됬던 나날들이기도 했다. 시즌이고 비시즌이고 다 좋은데 이제 곧 크리스마스 시즌인데 이 때는 다들 홀리데이 가기 바쁘지 누구도 일손을 안뽑으니 여기서 더 있다가 1월이 되면 움직이라고 얘기했다. 사실 정말 그 말이 정답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막상 떠나기로 마음먹고 나니 지금 떠나는게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나방같은 짓이란걸 알면서도 떠나고 싶어 미칠것만 같았다.
현명한 사람은 기다릴줄 아는 이라고 했던가, 결과가, 다음일이 뻔히 예상되면서도 지금 당장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난 정말 멍청하고 아둔한듯 느껴졌다.
어쨌든 괜시리 파티가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마음만 심난해져갔던 나날들. 그리고 이 와중에 얀과 크리스는 드디어 기나긴 토마토 공장을 그만두고 휴식기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역시 카나본. 토요일에 토마토 쉐드를 그만둔 얀과 크리스는 월요일에 곧바로 바나나 공장으로 출근한다. 정말 자리만 잡으면 쉬지 않고 일할수 있는 카나본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떠나기 전날,
저녁에 막 마지막 파티를 하려는데 집주인 리사가 왔다. 저녁과 안주를 준비하려고 분주한 집안, 여러사람들이 와있는 가운데 속으로 ' 그래도 마지막인데 리사랑 밥 같이 먹자고 할까 '라고 생각도 해봤지만, 바나나쉐드에서 짤릴때 막아내주지 못한 리사에게 섭섭한 면이 있어일까 끝내 리사에게 별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마지막으로 열쇠를 건네주고는 그동안 고마웠다라는 말 한마디만을 건넸다. 리사는 나에게 디파짓 돈을 돌려줄테니 애플을 자기네 집으로 오라고 말을 건넸다. 역시 애플은 리사의 자랑이었을까, 애플이 디파짓을 받으로 리사네 갔다오더니 리사가 포옹을 몇번을 하며 " 넌 정말 좋은 아이다 " 라고 말을 했다고..
그리고 마지막 파티.
거의 일주일간 매일 파티를 한탓에 또 다음날 모두 출근해야하는 탓에 저녁을 먹고 가볍게 술한잔 하며 얘기를 나눴다. 그간 재미났던 이야기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이 곳에서의 몇개월이 아득하게만 느껴지면서 떠남이 참으로 아쉬웠다. 애플 또한 왠지 찝찝하게 떠나는 것만 같다며 얘기하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다음 목적지에 대한 불확실함과 구직활동에 대한 걱정이 더 크기 때문이리라..
마지막 술자리를 끝내고 모두와 인사를 나누고 포옹을 하고 사진을 찍고 그렇게 드디어 카나본 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제 다시 또 길 위에 선 애플과 나. 과연 우리의 다음 정착지는 어디가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