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서블 여행기 #68 마음의 그늘

  아침에 9시 쯤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훈자의 아침은 늘 즐겁다. 잠에서 깨는 것이 즐거울 정도로 상쾌한 공기,  눈 앞에 펼쳐진 멋진 풍경.   잠을 깨기 위해 담배 한대를 물고 기지개를 피니 기분이 더욱 좋다.  이렇게 기분 좋은 곳인데, 마음 속에 근심만 늘어난다. 근심의 근원은 눈엣가시 같은 그들.   어차피 각자 온 여행이고, 그들이 무슨 상관이냐고 하겠지만, 알 수 없는 그 무거운 공기와 왕따 당하는 기분은 쉽게 떨져버릴 수가 없다. 안보면 편하겠는데 뭔가 자꾸만 마음 속을 걸리적거리게 한다. 


 천국 같은 훈자를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그들,   그저 나 혼자만 느끼는 마음이라고 하면 외면하려고 떨쳐보려고 애를 써보겠는데 쏘세지마저도 그 것을 느끼고 있으니 하루하루 기분만 드럽다. 배낭여행 하면서 언제나 다수의 입장이었던 나는 나름 한국사람들이 있으면 살갑게 챙기려고 하고 다같이 즐겁게 지내려고 했는데 그 어느 곳보다 나름 여행 좀 했다는 사람들이 모인 이 곳 훈자에서 전에 없었던 배타적인 기운을 느낀다. 그네들끼리 똘똘뭉쳐서 시덥지 않게 굴고 있다.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고 마음쓰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본다.


 훈자에 온 이후로 그래도 이 느긋한 훈자의 분위기 때문에 모든게 유유낙낙이다.  그냥 숙소에서 편하게 쉬면서 읽고 싶은 책 마음껏 읽고 음악들으면서 쉬는게 제일 낙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 훈자 지역에서 가볼 수 있는 장소 중, 풍경이 멋지다는 이글네스트란 곳에  한번 가보기로 했는데 늘어지기 시작한다.  무슨 병일까 싶을 정도로 움직이기도 귀찮고 모든게 귀찮다.  바쁘게 꼭 돌아다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의욕적으로 어딘가 돌아다녀보고 해야 하는데, 쏘세지도 어느 새 일어나고, 늘 그렇듯 잡담을 하며 서로 책을 보면서 쉬었다. 


그리고 이내 출출해졌다.  우리는 어제 무척이나 많이 만든 비빔밥이 많이 남아서 남은 비빔밥을 처리하기로 했다. 사실 어제 비빔밥 만들 때,  옆방총각이라도 오면 같이 먹자고 할려고 양을 많이 했는데  우리의 마음과는 달리 또 그네들끼리 우르르 몰려왔다가 옆방총각을 데리고 가고 그러다보니 밥이 많이 남아서 결국 우리의 아침이 되어버렸다. 비빔밥을 먹고 쉬는데 쏘세지에게 카톡이 한통 왔다.


 쏘세지 부모님이 방콕에 놀러올려고 하는 것 같다며 방콕으로 갈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문제는 시간상 텀이 조금 있어서 쏘세지는 부모님 방콕 일정에 맞추어 일정 전체를 늘릴까 하고 있었다. 안그래도 파키스탄 일정 문제로 쏘세지와 그것에 대해 계속 얘기하던 중이었는데 쏘세지는 일찍 인도로 넘어가서 방콕으로 가도 별로 할일이 없다며 그 조금 늘어난 일정을 파키스탄에 쏟아볼까 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나도 원하는 만큼 파키스탄을 쏘세지와 함께 여행 할 수 있게 된다. 한참 부모님과 대화 하다가, 쏘세지는 고민고민 끝에 일정을 2주 정도 늦추고 부모님과 여정을 맞추기로 했다. 그리고는 그 남은 2주를 파키스탄에 올인 하기로 했다. 결국 쏘세지는 그렇게 나와 파키스탄을 함께 여행하기로 결정했다.


 그 전부터 쏘세지는 다른 대부분의 여행자들과 마찬가지로 훈자만 찍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래도 여행자들에게 다른 파키스탄 지역은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여러가지 이유로, 치안의 문제, 정보부족의 문제, 두려움, 등등등  어쩌면 여기 훈자의 그 깝녀같은 여자들도 "가이드북이 뭐가 필요해요 " 하는 것도 훈자만 찍고 대부분 나가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나는 좀 더 여러 곳을 돌고 싶었고, 또 우연히 왈리와 얘기하면서 왈리의 고향 치트랄에 가보고 싶어졌기 때문에 쏘세지와는 의견 차이가 있었다. 함께 하다가 혼자 돌려보낸다고 생각하니 괜시리 마음도 쓰이고 쏘세지 본인도 사실 은근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쏘세지가 나머지 일정을 함께 한다니 나도 일단 마음이 놓인다. 인도에서야 혼자 둬도 괜찮겠다는 느낌이지만 왠지 여자 혼자 파키스탄에 혼자두면 좀 위험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괜한 불안감일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쏘세지의 결정으로 우리는 나머지 모든 파키스탄 일정을 (비자 기간이 다하도록) 함께 하기로 했다.  막상 그렇게 결정되니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 좋게 일정도 대충 정해지고, 밥도 먹고 나니 행복해졌다.



 계획대로 이글네스트 가려고 했으나 늘어짐이 계속 되고, 거실에 침대에서 늘어지다가 책 한권을 발견했다.  레 여행 할 때부터 너무나 읽고 싶었던 "오래된 미래"라는 라다크 관련 책.  오늘 이 책을 읽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책을 잡은 이후로 쭉 읽었는데, 미리 읽고 라다크 여행을 했더라면 더 좋았을걸 싶을 정도로 참 좋은 내용이었다. 다만 너무 라다크 빠순이가 쓴 느낌이 드는건 약간의 단점. 책을 다 읽으니 늦은 오후가 되었는데 출출하다고 쏘세지가 짜파게티를 끓여왔다. 훈자에 와서 정말 잘 먹고 잘 쉬는 것 같다. 더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그랬더라면 더욱 행복했을, 잊지 못할,아니 이번 여행 최고의 시간이 되었을뻔 했지만 사람이 빠지니 대신 또 다른 부분에서 행복함을 얻는다. 쏘세지가 끓여온 짜파게티를 맛있게 먹고 서로 또 독서시간.







짜파게티에 고추가루 팍팍 




 그리고 저녁 즘 해서, 나는 그간 지저분해진 머리를 깎을려고 밖으로 나갔는데 이발소가 문을 닫았다. 아쉽지만 내일로 미뤄야 될 듯.   나온 김에 쏘세지와 함께 꼬치 파는 곳으로 가서 꼬치를 좀 사는데 매일매일 파는 꼬치가 다르다. 치킨꼬치가 아닌 야크고기로 만든 꼬치를 팔길래 야크꼬치를 좀 먹었는데 고기가 질기다. 역시 꼬치는 치킨인가! 꼬치 맛만 보고 우리는 럭키식당에서 치킨커리를 사고 늘 사던 짜파티가게에서 갓 구운 따끈한 짜파티를 사서 돌아왔는데 왠걸 왈리가 자기 먹을려고 좀 만들었다면서 저녁 밥을 주는데 양고기로 만든 머튼 커리. 졸지에 치킨커리에 머튼커리에 완전 배터지게 먹게 되었는데. 왈리가 정말 음식 솜씨가 좋다.

- 럭키식당에 모여서 티비를 보고 있는 훈자마을 남자들 -


 참, 진짜 이렇게 파키스탄 사람도 살갑게 챙기는데, 같은 한국사람들이 도대체 왜 우리를 왕따 시키는지 알 수가 없다.  쏘세지와 매일 한번씩은 이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해보는데 짐작 가는 이유도 없고, 짐작 가봤자.  파부아줌마가 중간에 이상하게 이야기 했을 상황을 생각해본다.  지랄같은 훈자. 아주 진짜 편가르고 노는건 역시 한국이 제일이다.




우리가 사온 커리와 왈리가 준 커리까지 푸짐



밤공기가 좋으면 야외에 테이블에 앉아 유유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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