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서블 여행기 #65 [파키스탄/훈자] 훈자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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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행자의 3대 블랙홀 중 하나 파키스탄 훈자
전세계 곳곳 멋진 곳을 본 여행자들 조차도 이 곳에 한번 들어오면 헤어나오기 힘들다는 데서 유래가 시작되었다.
그런 훈자에서 맞이하는 아침.
잠에서 깨 일어나니 몸이 한결 나아진 기분이다. 숙소에서 와이파이가 되나 상상도 못할 정도로 느린 속도라서 우리 동호회 카페(즐거운사람들의 모임)에 파키스탄 특파원(?!ㅋ) 으로서 근황을 실시간으로 남기는데 힘겹다. 글을 몇차례나 쓰고 올리고 했으나 결국 실패. 카페에 힘겹게 글 하나를 남겼다.
그리고 배가 고파 밖으로 나가 계란과 빵을 사왔다. 부엌으로 가서 일하는 파키스탄인 왈리에게 부엌 쓴다고 이야기 하고 오믈렛을 만들고 빵을 살짝 후라이팬에 구웠다. 그리고 큰 쟁반에 맛깔나게 차려서 거실로 갔다. 그리고 쏘세지에게 아침 밥 먹으라고 하니까 쏘세지가 기뻐한다. 그래도 힘겹게 여행하는데 같이 여행하는 동지로써 해줄 것은 없고, 이런 거라도. 쏘세지가 아주 맛나게 먹는데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맛을 보니 내가 만들었지만 잘 만들었다. 아침을 이렇게 푸짐하게 잘 먹었다. 빵 계란 합쳐서 80루피. 1인당 400원 꼴.
아침에 부엌에서 있으면서 일하는 파키스탄 사람과 좀 더 친해진 기분이다. 이름은 왈리. 친절한 사람이다.
밥도 먹었고 숙소에서 책도 보고 이것 저것 하면서 밍기적 거리다가 쏘세지가 밖으로 나가자고 해서, 우리는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마을을 한바퀴 둘러보면서 우리는 근처에 있다는 큰 성을 보러 가기로 했다. 그 성의 이름은 Baltit fort 발팃 성이다.
숙소 근처의 갈림길에서 경사가 가파른 언덕을 올라서 가야 했는데, 중간 중간 사람들에게 발팃 성이 어디냐고 물으니 손가락으로 휘휘 알려준다. 얼마나 많은 여행자들이 오래도록 길을 물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 조금씩 올라가면서 쉴 때 마다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달라진다.
하늘이 쨍하다, 훈자의 따뜻한 햇살
가파른 언덕길, 그 곳에 자리 잡아 사는 사람들
마을 곳곳에 살구며, 청포도며 이 곳이 천국이 아닐까?!
조금 올라 갔는데 그거 좀 올라 갔다고 훈자 풍경이 압도적이다. 오랜만에 사진도 찍고 놀면서 이쁜 마을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녔다. 정말 영화 세트장 처럼 이쁜 마을이다. 높은데 올라오면서 보니 집집 마다 지붕에 살구를 말리느라고 살구를 널어놓았는데 참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새삼 할머니가 떠올랐다.
따스한 햇살아래 한가롭게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시원한 빙하물이 콸콸 흐르는 풍요로운 땅
친절한 사람들
어릴 때, 할머니가 고추 말린다고 할머니 도와서 집 옥상에 방수포 깔고 그 위에 고추를 널어놓던게 떠올랐다. 여행하면서 최대한 할머니 생각을 안하려고 애를 쓰는데 이렇듯 자꾸만 할머니가 떠오른다. 그럴 때 마다 괜히 눈시울도 붉어지고 마음도 힘들어진다. 가파른 언덕을 계속 오르느라고 중간 중간 쉬지만 압도적인 훈자의 풍경에 할말을 잃고 잠시 서서 숨을 돌리며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몸도 마음도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쏘세지와 둘이서 말 없이 풍경만 바라보다가, 사진 찍는다고 장난도 치면서 다시 혼자만의 사색에서 빠져나온다.
정말 아름다운 마을 풍경
아름답게 가꾼 집, 정성이 느껴진다
한참 후 우리는 드디어 발팃성 입구까지 도착했다. 그리 크진 않지만 작고 아담한 성이다. 입장료가 있어서 표 끊는 데를 찾아서 물어보니 입장료가 무려 500루피.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인 우린 500루피가 부담스러웠다.
과연 500루피나 들여서 들어가 볼 가치가 있을까. 분명 들어가면 막상 별거 없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 우리는 들어가지는 않기로 하고 그냥 성 주변 풍경에 반해서 성 주변 풍경만으로 행복해졌다. 마침 관광 온 다른 파키스탄 가족들과 만나서 잠시 대화 나누는데 영어가 아주 유창했다. 제법 배운 사람들이고 엘리트인듯. 그러니 여기까지 관광도 올 여유가 있고 했겠지. 아무래도 외국인이라고해도 남자인 나보다는 쏘세지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쉬웠다. 꼬마 여자애들과 엄마가 쏘세지에게 말을 거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파키스탄 제일의 경제도시 '카라치'에서 온 가족들이다. 카라치는 파키스탄의 경제도시다. 국내에 많은 기업들도 카라치에 진출해 있다. 생각해보니 파키스탄 첫 도착한 날, 클린턴 아저씨에게 도움 받을 때, 통화시켜줬던 그 한국교민분도 카라치에 산다고 했다.
성 주변을 돌면서 풍경을 보는데 앞 뒤로 설산이 압박해온다. 위대한 풍경이다.
[ 발팃 성 뒤로 보이는 산 울타르 피크 7388미터 / 성에는 1974년까지 훈자왕국의 왕이 살았다고 한다. ]
한참을 사진 찍고 우리는 천천히 걸어 내려오며 마을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훈자에 맨 처음 와서 놀랬던 것중에 하나가 바로 물 색인데, 첫날 화장실 안에 들어가서 물을 틀었을 때 흙탕물이 콸콸콸 쏟아지던 충격감이 여전히 남아있는데 이후에 알았다. 훈자의 수질 자체가 원래 저렇다는 것을 흙이 많이 섞여서 나와서인데, 훈자는 대표적인 장수마을, 훈자 사람들은 그 흙탕물이 장수비결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어떤 연구진이 연구를 했는데 물에는 오히려 이로운 영양소보다는 좋지 않은 성분이 많다고, 훈자의 장수 비결은 풍부한 과일들이며 살구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과 욕심없는 사람들. 그게 훈자를 장수 마을로, 또 아름다운 마을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
내려 오다보니 거센 물줄기가 내려오는 마을의 수로에서 한 남자가 물을 뜨고 있다. 우리같으면 절대 안먹을 물인데 저 물을 잘도 마신다. 오늘은 날씨가 쾌청해서 선선하면서도 햇빛 때문에 약간의 더위까지 느꼈으나 마을이 아기자기 이뻐서 중간중간 풍경 구경하느라 쉬면서 땀을 식혔다.
그리고 내려오던 길 살구나무가 보인다.
누브라밸리에서 살구 따서 먹었던게 엇그제 같은데, 그 살구맛이 떠올라서 안그래도 과일을 좋아하는 쏘세지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는지 살구를 따려고 살구나무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낮은 곳은 다 살구를 따먹고 없어서 쏘세지가 살구를 딸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쏘세지를 목마까지 태워서 살구를 땄다. 하지만 이제 시즌도 끝나고 상태 좋은건 다 따먹어서 인지, 별로 상태가 안좋다. 하지만 지천에 널린 살구와 포도나무들. 그냥 평화롭다.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이 용쓰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깔깔대며 웃는다. 천국이 있다면 여기다.
내려오던 길 한 상점에서 그토록 찾아헤매던 전기포트 발견, 500루피 주고 샀다. 기쁘다. 하지만 여행도 벌써 한달이 훌쩍 지났는데 하지만 앞으로의 여정도 있기 때문에 과감하게 거금을 투자해서 전기포트를 구입했다. 기분좋게 숙소로 돌아와 포트를 소독한번 하고 커피믹스를 타먹었다. 오늘은 날씨도 좋아서 아침에 나가기 전에 빨래를 진작에 널어놓았는데 빨래가 뽀송뽀송. 간만에 햇볕에 완전 조지는 중. 기분이 좋다. 옆방 남자애들은 안돌아왔는지 여전히 숙소는 조용하다.
그리고 우리는 숙소에서 다시 한참 밍기적 밍기적 대며 여유를 즐겼다. 훈자에 와서 여유를 즐기면서 밀린 일기도 다 쓰고, 책도 많이 보고, 즐겁다.
오후가 되서 쏘세지가 선교사부부로 부터 얻은 정보. 살구죽을 판다는 정보!
그리하여 쏘세지는 살구죽을 먹겠다고 해서 우리는 함께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살구죽을 파는 레스토랑을 찾아 헤매며 걷다가 결국 언덕 맨아래까지 내려갔다.
결국 못찾고 우리는 칼리마바드인까지 도착했고,담배도 살겸 근처 슈퍼마켓 들어갔는데 깜놀했다.
완전 친환경 인테리어
나무 있는 자리에 건물을 짓는데 나무를 밴게 아니라 그냥 살려서 슈퍼 안에 아름드리 큰 나무가 그대로 있는데 골 때렸다. 이 곳에서 담배 사는데 담배값이 싸다. 파키스탄 좋다! 반가운 담배를 발견, 한국명 솔! 한때 인도여행 할 때 즐겨폈던 가장 싼 담배 중 하나인 PINE을 발견해서 40루피에 샀다. 45루피 수준. 인도에 비하면 정말 싼 가격이다. 파키스탄 떠나기전에 담배를 한아름 사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카리마바드 인에 온 김에 음식을 먹기로 하고 오늘은 김치볶음밥, 수제비를 시켜서 먹었는데 김치볶음밥 개쩐다. 정말 감동의 맛이다. 이런 맛을 내다니, 게다가 수제비도 멸치국물내서 제법 맛나게 만들었다. 완전 맛나게 밥을 먹고 나와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 드디어 우리는 살구죽 파는데 식당을 발견했다. 밥을 먹은 직후라, 나중에 먹기로 하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와서 우리는 다음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훈자를 중심으로 북쪽 방향으로는 파수라는 곳이 또 볼만 하다는데, 마침 숙소에 가이드북은 없었지만 파키스탄 관련 책이나, 훈자 관련 책들이 있어서 열심히 보고 있는 중, 파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어떤 곳인지도 알 수 있었다. 여기저기 가볼만한데도 많고 볼 데도 많았으나 그냥 훈자에서 노닥거리며 여유를 즐기는 것만으로 좋은 우리는 딱히 일정은 정하지 않고 그냥 물흐르는 듯 즐기기로 했다.
거실 침상에 누워서 각자 책도 보고 일기도 쓰고 음악도 들으며 여유를 부리는데 옆방 사람들은 오늘도 안들어오나 했는데, 밤이 늦게 되어서야 돌아온다. 가볍게 인사나누고 둘의 대화를 들어보니 트래킹 다녀오고 와서 카리마바드 인에서 트래킹 한 사람들끼리 다 함께 밥도 먹고 술도 먹은 것 같다. 그 얘기 들으니 괜히 기분이 씁쓸하다. 우리도 트래킹 가야 했는데 어쨌든 사람들과 트래킹 갈 기회는 사라졌구나 싶었다. 먼저 우리가 우리도 가도 되냐고 묻는게 맞긴 하지만, 당시 분위기상 우리가 끼어드는 것 보다는 다수의 그들이 우리에게 트래킹 같이 가지 않을껏이냐고 묻는게 자연스러운 일. 사람들에게 내가 타인에게 하듯이 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었나 보다.
어쨌든 쏘세지와 나 둘이 서로 말은 없었지만 아마 그 씁쓸한 기분은 똑같이 느꼈으리라, 아니 실제로 똑같은 기분을 느꼈다. 괜시리 씁쓸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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