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서블 여행기 #62 천국을 향한 38시간의 여정



 버스는 어두운 도로를 한참을 달린다. 
 전력사정도 안좋고 국가 기반 시설이 잘 안되어있는 파키스탄,  가로등이 없다보니 그저 버스의 헤드라이트 불빛만이 어두운 밤 도로를 비추고, 간간히 맞은편에서 오는 차들이 비추는 헤드라이드 불빛만이 환해졌다 사라진다.  외로운 도로다. 그래도 그나마 도로 상태는 인도보다 나은편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라다크 지역에서 빡센 도로만 달리다가 오랜만에 문명의 이기인 고속도로라는 곳을 달려서 오는 안락함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달려 휴게소 같은 곳에 섰다.  대우버스를 타고 가다 들린 대우버스 휴게소 같은 곳을 생각했다면 오산이었다.  다시 그냥 정말 파키스탄 스러운 그런 허름한 휴게소에 도착했는데, 사람들이 모두 내려 식당 쪽으로 향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하는데 재밌는 부분은 신발을 벗고 올라가 앉는 자리가 있다. 제법 높은 단을 쌓아 만든 자린데, 허리 조금 아래 높이 만큼 올라와 있는 자리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앉는 문화가 한국 말고 또 있었나 조금 생각해보니 중동 여행 할 때 집에 들어가면 의례 바닥에 앉아 밥을 먹던게 떠올랐다. 그런데 단지 달라진건 높은 단을 만들어서 그 곳에 올라가 앉아 먹는 것 뿐. 새삼 새롭다. 

 휴게소가 반가운 쏘세지는 화장실을 찾아 어디론가 떠났고, 혼자 그 단에 걸터 앉았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음식을 주문해서 먹기 시작했다.  별로 생각이 없던 나는 우두커니 서서 쏘세지를 기다리다가 눈 앞에 재미난 트럭을 발견했다. 






 화려하게 장식한 트럭!

 아!! 이거 다큐멘터리 같은데서 파키스탄 나오면 꼭 나오던 그거다.   인도에서도 간간히 볼 수 있긴 한데 레벨이 다르다. 이른바 트럭 튜닝의 메카 파키스탄!!!!! 정말 화려했다. 화려함을 넘어서 실용성이라곤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도 없고,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할 까 생각이 들 정도의 쓸 데 없는 고퀄리티!!



 버스를 뱅글뱅글 돌면서 찬찬히 무슨 미술품 보듯이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트럭 주인이 나타나 자랑스러운 듯 쳐다본다.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자, 쓱 어깨를 치켜들며 기분 좋아한다. 


 트럭 구경을 하고 다시 사람들이 밥 먹는 높은 단으로 가서 걸터 앉았다. 쏘세지랑 잠시 걸터 앉아 이런저런 얘기하는데 여자들이 한명도 안보인다. 분명 어딘가 따로 실내에 들어가서 여자들끼리만 밥을 먹는 것 같다. 사람들 밥 먹는 것을 좀 구경하며 쉬다가, 다시 버스에 올라타고 어두운 밤을 가르고 계속 달렸다.   어느새 피곤해 곯아떨어졌는데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또 다른 휴게소였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다.


 이 새끼들 뭐 이리 자주 쉬나 싶을 정도다.   사실 자주 쉬는것도 아닌데 인도에 익숙해져있다보니 (인도새끼들 안쉼) 자주 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까 다들 내려서 밥도 먹고 했으니 금방 출발 하겠지 생각하고 나는 담배를 한대 피로 내리는데 왠걸 또 식당에 우르르르 들어가더니 또 먹기 시작한다. 미친놈들아 그만 좀 먹어.

 진짜 장난아니다.  무슬림 특유의 여유로움이 넘쳐흘렀다. 먹을 것을 즐기고 사람들과 담소를 즐기는 그네들 특유의 느낌이 한가득


 
 거기서 또 30분넘게 휴식을 한 뒤에, 다시 또 버스는 출발했다.  그리고 검문소 같은데 들려서 우리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따로 등록을 해야했다. 인도 라다크에서도 파키스탄/중국 국경과 근접해 있고 영토분쟁 문제도 있기 때문에 검문에 익숙해졌는데 여기는 그와 별개로 외국인 자체 숫자도 워낙 적고 안보문제,안전문제로 이러는 것 같다. 말그대로 뉴스에서만 보던 탈레반이 있던 동네 아닌가. 

 군인이 올라타 일단 버스에 탄 사람들을 주의 깊게 살펴봤다.   그리고 나와 쏘세지는 따로 내려서 근처 검문소로 가서 큰 장부 같은 곳에 여권번호부터 온 갖 것들을 기입했다. 이 짓꺼리는 라다크를 여행하면서 끝없이 했던 행동들이었기 때문에 이젠 여권을 그냥 달달 외우다 못해, 비자 번호, 비자유효기간 날짜까지 줄줄이 외울정도가 되었다. 
 
 거의 형식적인 이 절차를 거치고 다시 버스에 오르자, 우리를 기다렸는지 곧장 출발.  어느새 새벽이 깊어져 있는데 우리는 조금 잠 들려 하면 계속 이 짓을 반복해야 했다. 거의 30분에 한번 정도 눈을 좀 붙였다 싶으면 차장이 깨운다. 정말 날씨는 점점 고산지대가 되어가는지 더욱 쌀쌀하고 자다 깨서 그 추위가 더욱 춥게 느껴지고, 비몽사몽으로 버스에서 내려서 어두컴컴한 곳에서 군인을 따라 검문소에 가서 또 서류작성, 장부작성. 

 약  10번 정도를 이 짓꺼리를 하고 있는 와중에 어느새 동이 터온다.   처음에는 우리 때문에 우리 버스만 늦게 출발하게 되고 그래서 승객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왠걸 너무 자주 반복되고 잠을 거의 못자다시피 하다보니 진짜 짜증이 몰려온다. 이젠 승객들한테 미안한게 아니라 그냥 검문 자체가 짜증나는 수준. 이것도 뭐 적당히 해야지 정말 너무 자주한다.




 도로 한켠에 검문소,
 옆은 절벽이다.
 동이 터오기 시작하는데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와...."
 정말 멋졌다.


 군인에게 엄지손가락을 들면서 " 여기 멋진데 " 라고 말하니 씩 웃는다.



 다시 버스에 올라서 출발, 버스는 이제 완전히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라다크 여행에서 이미 익숙한 도로의 느낌이다. 그래도 훨씬 나은게 있다면 도로가 포장되어있다는 것.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가는 길 이런 곳에도 마을들이 많은지 양을 치는 꼬마아이들이며, 도로 한켠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중동 특유의 풍경이 너무 좋고 반갑다. 

 아침 5시가 조금 넘었을 때 우리는 어느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주유소에 버스가 멈추었고 사람들이 내렸다.  화장실 가는 이들,  기도 드리는 이들,  일단 급한대로 나와 쏘세지는 볼 일을 보고, 근처를 둘러보다가 식당을 발견했다.

 안에 들어가니 버스를 함께 타고온 사람들이 많이 보였는데,  아침을 먹고 있다. 밤새도록 그렇게 먹었는데 또 먹나.   입맛이 없어서 우리는 자리에 앉아 짜이만 주문했다.  담배 한대를 피면서 짜이를 한잔 마시고 있으니 기운도 나고 정신도 들었다. 밤새도록 비몽사몽해서 꽤 피곤한 상태였는데도 낯선 이 풍경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여행자에게는 새로운 것 만큼 좋은게 없는 것 같다. 이러쿵 저러쿵 해도 이 낡고 어두컴컴한 낯선 식당안의 모습이 그저 좋다. 짜이 한잔을 마시고 밖에 나와서 버스에 안오르고 그냥 서서 마을 구경도 하고 사람들 구경도 하고 있다가 사람들이 모두 버스에 오르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뒤늦게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쌀쌀한 공기가 밀려들어온다. 밤새도록 운전한 기사가 또 다른 기사와 교대를 하고, 밤새 운전한 기사는 운전석 바로 옆에 침대(?!)에 드러눕는다. 정말 고된 일일 것이다. 기사가 교대를 한뒤 한참을 달렸다.  새벽 보다는 검문의 빈도수가 많이 줄었다. 하지만  드디어 큰 검문이 벌어졌다.  차들이 엄청나게 줄 지어 늘어선 가운데, 우리도 버스에서 내려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일이 있는건지, 차들이 빠질 생각을 안하는가운데, 무슨 일인가 싶어 쭉 앞으로 걸어가다보니 일본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다.   외국에선 일본,한국,중국은 서로를 알아보기 때문에 가볍게 인사를 건네자 반갑게 인사를 한다. 훈자로 향하는 일본인이었는데 이 사람에게 가이드북이라도 좀 빌려서 볼 요량으로 " 혹시 너 파키스탄 가이드북 있니? " 물어보니 이 사람도 없다고 한다. 


 " 근데 너 무슨일인지 알아? "  물어봐도 모른다고 하는거다. 나와 별반 차이가 없구만. 
 




 무슨일인지 몰라도 많은 차들이 그냥 서 있길래, 한참을 거기서 시간을 보냈다.   정말 한참이 지난 후에야 다시 버스는 움직일 수 있었고, 그 와중에 나와 쏘세지만 다시 내려서 검문소에서 또 등록을 했다. 버스는 다시 길을 떠난다. 아침의 맑고 청명한 햇살이 비추는 한가로운 절벽길. 










 황량한 길들을 지나 마치 누브라밸리 갈 때와 비슷한 풍경을 가진 마을에 도착했을 때 쯤 다시 또 쉬었다.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이다.  우리 버스 말고도 무척이나 많은 차들이 있었기 때문에 휴게소는 인파들로 넘쳐났는데 이제 허기가 져서 밥을 좀 먹어야 될 것 같아, 식당안으로 들어가자 큰 식당안은 또 시선집중. 재밌는 사실은 여자들이 한명도 안보인다. 다른 휴게소들에서도 느꼈지만 확실히 여자와 남자가 분리되어 식사를 한다. 그런데 거기에 쏘세지가 들어오니 더욱 시선이 집중될터이다. 한켠에 자리 잡고 앉아서 커리하나 비리야니 하나를 주문했다. 엄청나게 많은 손님들과 종업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우리의 음식이 나왔다.


 얘네들 계산은 제대로나 될까 싶을 정도로 북적하고 정신없는데, 음식은 또이또이 했다.  커리는 맛났고, 비리야니는 그저그랬다.  그래도 허기에 배터지게 먹고 밥을 먹은 뒤, 슈퍼마켓에서 과자며 음료수도 사서 먹고, 담배 한대피면서 우리에게 호기심 보이는 동네꼬마들이랑도 놀아주었다.





 점심이 지나서 역시 우리는 끊임없는 검문과 마주해야 했다.  검문 때문에 우리도 엄한데 내려서 한참을 걸어가야 하기도 했고, 우리 검문 받느라 버스는 다른 차들보다 늦게 가야 했고, 미안한 마음 짜증스러운 마음이 교차 하는 가운데 어느새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 간다. 어젯밤 8시반에 버스를 탄 이후 벌써 20시간은 되어가는 것 같다.  오후의 따스한 석양빛도 잠시 어스름하게 해가 저물기 시작한다.





 이제 저녁이 되어가고 있다.  버스를 탄지 20시간은 된 듯 한데,  버스는 다시 또 작은 주유소에서 휴식 후 비포장 도로 끝에 다시 포장길에 접어드는데 풍경이 작살나기 시작한다.  레의 풍경이 CG같다면 여긴 상상가능한 현실적인 아름다움이 있었다. 나와 쏘세지 모두 감탄을 했다. 카메라가 절로 튀어나와 풍경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인도에서 라다크 여행 이후 어지간한 풍경이 아니면 카메라가 잘 안나오는데 꽤 멋졌다. 우리의 반응에 우리 자리 주위에 파키스탄 사람들이 웃는다. 호기심 많은 한 파키스탄 사람이 풍경 멀리 산들을 가리키며 저 산은 xx, 저 산은 xx라며 알려주는데 이름은 정확히 기억안나지만 내가 살면서 한번쯤은 들어봤던 산들이다. 


 눈에 보이는 산들이 세계적인 산.
 압박이다.













   노랗고 따스한 석양의 빛과 지붕에 눈을 얹은 세계적인 설산들. 그 풍경은 잠시 긴 이동의 피로를 잊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해가 지고 저녁쯤해서 이름모를 작은 동네에 선다.  도로를 따라 쭉 늘어선 시장이 있었는데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우루루 정육점이며, 과일가게며, 슈퍼마켓이며 가서 쇼핑을 하기 시작하는데 느낌상 사람들이 장을 보고 가는 그런 느낌. 여기서 또 하나의 엄청난 음식을 만난다. 


 "찹쇼로" 
 레에서 맛봤던 쌈쏘의 또 다른 버젼이다.
 납작만두인데 정말 너무 맛나서 두개를 사 먹었다.  농담아니고 진짜 이거 만드는거 배워서 팔고 싶을 정도로 맛있다. 대박 정도가 아닐 꿀대박.  맛있는 찹쇼로를 즐기며 사람들에게 이 마을 이름을 물어보니 구루라고 한다. 






 쏘세지는 과일 사고 싶어 안달.  하지만 아직 숙소를 잡지도 못했고, 그걸 들고 뭐 어떻게 할 도리도 없어 구입을 하지 않고 한참 있다가 훈자로 다시 출발. 버스 안의 사람들이 수다스러워진다. 서로 얘기하면서 웃고 떠들고 밝은 분위기가 계속 되기 시작한다. 그 분위기에서 나는 훈자에 거의 도착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들 긴 이동을 끝낸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보였다. 



 이제 완전히 어두운 도로를 다시금 달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차는 자주자주 멈춰서야만 했다.


 흔한 시골의 마을 버스마냥, " 나 여기서 세워줘~ " 이러면 세워주는 식.  한 두사람이 내리는 것을 필두로 가면서 점점 계속 서는 횟수가 늘었다. 그러는 와중에 드디어 나름 커보이는 마을에 도착했고 터미널에 버스가 선다. 훈자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줄줄이 내린다.
 " 훈자? "
 냐며 묻자 사람들은 활짝웃으며 맞다고 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어두컴컴한 도로만이 우리를 반긴다. 가로등도 없고 그냥 휑한 도로 한복판, 내가 상상한 훈자와 달랐다.   그에 반면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을 맞이 하는 친구, 가족들이 마중나와있다. 그 모습이 참 왠지 따뜻하게 느껴지면서 부러웠다.


 차장이 지붕에서 짐을 내리는 동안 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는데 이건 뭐. 아무것도 없다.  내가 생각한 훈자는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래도 명색히.. 훈자라면 세계여행을 하는 이들에게 메카같은 곳이고 유명한 곳이다보니 적어도 오면 삐끼, 아니 숙소는 엄청 많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어두컴컴한 도로만 달랑 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정말 막막하고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이제 여기서 숙소는 어떻게 찾아가는가 하는 걱정이. 정보가 너무 없으니 무작정 훈자에 온게 좋고 훈자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개막막해져왔다.  상상속에서는 훈자에 내리면 마치 태국의 카오산 처럼 여행자들이 막 지나다니고 있고, 그러면 아무 여행자나 붙잡아서 숙소 구하고, 그리고 그 숙소에서 다른 여행자 만나서 여행정보 얻고,파키 정보도 얻고 그럴 생각이었는데 여지 없이 깨져버렸다. 어느새  같이 내린 사람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어두컴컴한 곳에 쏘세지와 나 단 둘만 남았다.


 심지어, 버스운전기사,차장도 이제 버스를 파킹 시켜놓고 어디론가 갔다.


 어두컴컴한 도로에 나와 쏘세지 둘만 덩그러니 서있다.
 정말 이 기분 ㅋㅋㅋㅋㅋㅋ 누가 알까?


 파키스탄 정보가 하나도 없어서, 정말 하늘의 도움으로 무사히 어떻게든 어떻게든 훈자까지 왔는데  훈자까지 가면 유명한 곳이니까 여행자들 많겠지 또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서 이렇게 왔는데 그냥 어두컴컴한 도로에 덩그러니.  정말 너무 막막해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24시간 넘게 차를 타고 도착한 훈자였건만 이 여정의 피로가 몰려오기도 전에 정신적 압박감이 들어왔다. 몸의 피로가 문제가 아니라 그 막막함 앞에 부딪힌 기분이었다.  머리를 굴려가며 일단 담배 한대 피면서 가만히 도로 한복판에 서있으니 왠 택시처럼 보이는 작은 차가 저멀리서 다가온다.


 손짓을 해서 차를 세웠다.  택시가 맞는듯 했다.


 우리가 파키스탄에 대해서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정보 중 유일하게 알고 있는 훈자 정보.  그저 "가든롯지 호텔"이란 숙소 이름 하나.


 기사에게 가든롯지호텔을 부르니 영어가 안통한다.  우리에게 뭐라고 뭐라고 하는데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유일하게 알아들은 말은 500루피라는 말이었다.  가든롯지까지 데려다 주는데 500루피라는 것인가. 일단 무조건 깎고 볼일이다. 비싸다가 거절할 지금 때가 아니다. 말그대로 찬밥 더운밥이 문제가 아니라 잘못하다간 그냥 이 어두컴컴한 도로에 밤새도록 서있을 판이다.

 500루피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무조건 깎고 깎아서 일단 400루피로 만들어놓고 우리는 온갖 바디랭기지를 동원해서 최소한 가든롯지를 못가더라도 아무 숙소에라도 데려갈 수 있게 해놨다.  기사에게 두손을 모아 베개를 만들어 자는 시늉을 하자 기사가 웃으며 알았다고 한다.  기사가 알아들은 것 같다. 적어도 가든롯지는 못가더라도 어딘가로 우릴 데려다 주겠지. 그리고 차에 올라타고 어두운 밤길을 따라 차가 달리는데 정말 꽤 멀리 갔다. 도대체 어디로 또 향하는 것일까,  그리고 차가 어두운 도로를 달리다가 한쪽 언덕길로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언덕길 위는 밝은 불빛이 조금씩 보였다. 그리고 나는 이내 느낌이 왔다.


 "여기구나!!!!! "
 여행자 숙소들의 간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쏘세지와 나는 둘다 기뻐서 " 와 진짜 여기가 훈자다. 숙소들 봐봐.. 제대로 왔다 "

 어두운 도로, 문닫은 상점과 레스토랑 그리고 불꺼진 숙소들.  그리고 이내 차가 멈춘다. 
 " 가든롯지.? "
 기사는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마침 근처에 유일하게 불이 켜진 가게가 하나 있었다.  거기에 물어봐야겠다 싶어서 잠시 차에서 내리니 가게가 아니라 작은 파출소 같은게 있었다. 경찰들이 있어서  물어봤다.

 다행이도 경찰들은 영어가 통했다.

 " 가든 롯지라는 숙소 아니? "
 " 알지. "
 " 가든롯지 갈려는데 기사한테 설명 좀 해줄래? " 

  경찰이 차로 다가와 친절하게 기사에게 설명을 한다. 기사는 알아들은듯 고개를 끄덕하고 다시 차는 계속 언덕으로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정말 여행자 숙소며 레스토랑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마음에 안심이 되기 시작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훈자는 크게 알리아바드 , 칼리마바드 두 지역으로 나뉘는데,  우리가 버스에서 내린 곳은 아랫마을인 알리아바드, 그리고 여행자들이 흔히 훈자라고 부르는 곳이 바로 이 곳 윗마을 칼리마바드 였던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걸 알리가 없는 (준비성없는 여행자) 나나 쏘세지는 알리아바드에 도착해서 절망을 느끼고 있었던 것. 그리고 칼리마바드에서도 이렇게 여행자들 숙소가 몰려있닌 지점이 바로 일명 ZERO POINT라는 곳이다. 기사는 우리가 숙소 데려다 달라고 하니 여행자들 숙소 밀집지역인 제로포인트에 데려다 준 것이었다. (칼리마바드에서도 이 곳에 숙소가 밀집되어있다)

 
 차는 가파른 언덕길을 계속 달렸다. 꽤 달려서 어두컴컴하고 작은 길에 우리를 세워줬다.  그리고 우린 드디어 가든롯지 바로 앞에 멈춰섰다. 감격적이다.



 어제 아침 인도 암리차르에서 파키스탄 정보가 하나도 없고, 가이드북도 없고 엄청난 막막함 속에서 무작정 암리차르를 출발해서 국경을 넘고, 클린턴 아저씨의 도움으로 라호르에 가고, 대우버스를 타고 라왈핀디 도착해서 도착하자마자 또 아지즈의 도움으로 훈자행 표를 끊고, 훈자행 버스에 올라 무려 26시간 이상을 달려 파키스탄 훈자에 도착했다. 겨우 하루만의 일이다. 말 그대로 어제 아침엔 인도 암리차르, 오늘 밤엔 파키스탄 훈자였다. 

 놀랍다. 엄청난 이동거리. 게다가 아무 정보도 없이 무사히 이렇게 가든롯지 앞에까지 서있다보니 쏘세지랑 나랑 정말 너무 기분이 좋았고 가슴이 뭉클해져왔다. 기사에게 기분 좋게 돈을 지불하고 난 뒤에, 밖에다가 짐을 내려놓았다. 차를 타고 올라오다보니 숙소가 많아서 여러군데 보고 결정하기로 하고, 나는 짐을 지키고 쏘세지는 방을 보러 안으로 들어갔다. 가든롯지 방을 보고 나온 쏘세지는 썩 표정이 좋지는 않았다. 가격도 비싸고 방도 별로 인것 같다며 일단 다른 숙소들을 보고 비교결정 한다고 다른데로 갔다.


 그리고 나는 잠시 짐을 지키며 담배 한대 피며 감상에 빠졌다. 아 여기가 훈자구나!
 기분 좋게 담배 한모금을 내 뿜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 한가득 별이.

 아..아름다운동네다.  그 이름만 듣던, 말로만 듣던 훈자에 내가 왔구나. 혼자서 감격에 젖어있는데 가든롯지 안에서 한 남자가 걸어나온다.


 이 곳에 일하는 파키스탄 사람인듯 나에게 말을 건네는데 영어를 그닥 잘하진 않았지만 조심스럽게 이런저런걸 나에게 얘기하며 말을 건네온다. 방 가격을 얘기하다가 내가 좀 더 싸게 싸게를 외치자 보스에게 물어본다며 전화까지 걸어서 통화를 끝내더니 가격을 500루피에서 300루피로 깎았다. 애시당초 많이 불렀을 것을 생각하면 뭐 200루피가 적정일껏 같은데 어쨌든 잠시 서서 쏘세지를 기다리니 쏘세지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한국남자 2명이 나타났다. 여기 가든롯지에 머무는 한국사람들. 정말 너무 반가웠다. 


 그래!!! 
 이거 때문에 훈자까지 한번에 치고 올라온거지.


 마침 쏘세지도 다른 곳 방 상태나 가격이나 보니 내가 그 사이 흥정해놓은 여기 가격이 그리 나쁘지 않다며 우리는 그렇게 가든롯지로 숙소를 결정했다.  물론 들어가기전에 다시 한번 확답. 300루피  하지만 우리는 장기체류를 할 것이라고 말을 해서 다시 또 100루피 깎아서 결국 200루피에 머물기로 했다.  흥정 실력 ㅍㅌㅊ?


 남자를 따라 숙소에 들어갔다. 낡은 건물, 하지만 반가웠다. 
 창문 대신 큰 모기장이 창문을 대신하고 있는 건물. 낡은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니 곧바로 거실이라 할 수 있는 곳이 있는데 침상,침대 겸 소파 역활을 해줄 나무 침상이 놓여져있고, 작은 나무테이블이 있다. 그리고 곳곳에 한국 만화책,소설책들이 한국인들의 흔적을 보여준다.

 방은 3개가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왼쪽은 도미토리방인데 입구에서 만난 한국 남자 2명이 쓰고 있었다. 우리는 남은 2개의 방중에 그나마 낫다는 오른쪽방을 배정받았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침대 2개가 덩그러니 있고, 화장실까지 딸려있다. 방 상태는 내 생각보다 좋았다.



[ 양동이의 받아져있는 물 색을 보고 기겁. 이 물의 정체는 나중에 .... ]

 흔한 저렴한 게스트하우스 느낌.
 그리고 화장실이 있길래 안에 살짝 보는데 솔직히 맨 처음 본순간 기겁했다.
 
 다름 아닌 한쪽 구석에 양동이에 받아져있는 물색깔 때문이었다. 정말 완전 구정물. 이게 뭐지?! 정말 당황스러웠다. 일단 짐을 풀어놓고,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거실역활을 하는 곳에 나와 의자(혹은 침상 혹은 평상 혹은..)에 앉아 담배를 한대 피고 있었다. 담배 한대 피고 있으니 반대편 방문에서 한국 남자 2명이 나와서 같이 침상에 앉았다. 앉아서 담배 한대 피며 얘기를 했다.


 정말 너무나도  한국사람들이 너무 반가워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데 한 남자는 덩치가 크고 인상이 서글서글 하니 좋았고, 다른 한 남자는 나이는 어려보이는 대학생느낌?! 방에서 나온 쏘세지까지 4명이서 둘러 앉아 이야기를 하는데 어제/오늘의 여정을 이야기 했다. 정보가 없어서 어제 아침에 암리차르 출발해서 우여곡절 끝에 이렇게 방금 훈자에 도착했다고. 훈자에 오면 한국사람들 있어서 만나면 어떻게든 파키스탄 정보도 얻고 가이드북도 빌릴 수 있겠지 라고 생각했다며 반가워하는데. 

 대학생 남자애가 뭔 얘기 한 문장 끝날 때 마다
 " 예, 저도 그래요 "
 " 예, 저도 그랬어요 "
 계속 이런다.

 예를 들면..
 

 " 딱 인도에서 파키스탄 국경 넘어서 도착했는데 너무 막막한거에요 뭘 아는게 있어야죠 그래서.. "
 " 예 저도 그랬어요 "

 " ~~~~~(여차저차) 이슬라마바드에 왔는데 생각해보니까 뭘 알아야죠. 어디서 묵어야 될지 아무것도 모르는데..어떻게 할까 싶어서 훈자로 가자 싶었죠 "
 " 예 저도 그랬어요 "

 " 아..저희 가이드북이 없어서..진짜 어떻게 해야되나 막막해서.. " 라고 이야기 하면 곧장
 " 예, 저도 그래요 "

 " 암튼..아.. 훈자의 가든롯지라는 이름은 들었으니까. 그냥 무작정 이렇게 왔어요 " 라고 이야기 하면 곧장
 " 예, 저도 그랬어요 "

 정말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내가 너무나 싫어하는 여행 부심 부리는 스타일인듯.  말끝마다 이런식이었다.

 " 아 그런거는 터키 버스랑 비슷한거 같아요~"
 " 아 그거는 xx랑 비슷해요~ "



 ㅋㅋㅋㅋ 진짜

 쏘세지의 표현을 빌자면  쏘세지가 이 남자를 보고 방에 들어가서 나중에 했던 얘기는 이러했다.
 "미친놈 같았어" 

 여담이지만, 쏘세지 말로는 나 혼자 가든롯지에서 기다릴 때 소세지가 방 구한다고 돌아다니다가 만나서 이야기 하고. 그럴 때 약간 이 대학생남자애가 호감이 있는듯 하다가 " 오빠랑 방 쓴다고 하니까 얼굴 표정이 확 바뀌더라고... "   이야기를 하는데 뭐.. 여행자로서 같은 남자로서 그 마음은 공감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봤을 때 그리 여행 많이 해보지도 못한거 같은데 무슨 혼자 세계여행 하는 듯한 느낌으로 얘기하는데 처음보는 사람한테 잘난척,훈계질을 시작하는데 그래도 반가웠고, 좀 귀여웠다. 이 마저도 반갑고 좋을만큼 즐거웠던 밤. 그저 좋았다.  어쨌든 그렇게 우린 드디어 훈자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밤 10시가 조금 넘었다. 어제 아침 8시에 인도암리차르에서 눈을 뜬 38시간 만이다. 그 유명한 파키스탄 훈자에 왔으니 이제 행복한 일정만 남은 것 같다.  앞으로 훈자에서 장기체류하게 되며 벌어질 수 많은 좆같은 일들은 모른채..... 여행자의 블랙홀이라는 훈자의 온 감동과 그 여정의 고됨에서 오는 감격에 젖은 기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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