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서블 여행기 #80 [파키스탄/길기트] 길에서 깨닫는 인생



  결국 어제 밤에도 일기장은 오지 않았다.  일기장만 목놓아 기다리는데 답답하다.  숙소 매니저인 라즈나 일하는 아흐마드에게 계속 부탁해서 훈자 가든롯지에 왈리와 통화를 시켜도 다들 비슷하면서 다른 대답을 했다. 훈자의 가든롯지 사장이 마침 길깃에 올 일이 있어서 일기장을 가지고 온다고 하다가도,  일이 있어서 길깃에 가질 못해서 내일 간다고 했다가 도통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겠다. 정말 답답했다. 차라리 안됀다고 했으면 내가 그냥 훈자로 가는건데 모두가 일기장이 올 거라고만 이야기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출발했다" / "이미  보냈다"  등등  온갖 말은 많은데 왜 안올까, 역시 그냥 내가 훈자로 가야하나,  온다고 하니 일단은 기다려 보는데 답답하기만 하다.




 오늘까지 안오면 그냥 내가 무조건 내일 훈자로 돌아가서 직접 찾아오면 내일 모레나 길깃을 떠날 수 있다. 한숨만 나온다. 일기장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아침에 일어나 아무 계획도 없이 그냥 멍하니 있으니 쏘세지는 요플레를 산다고 홀로 나가고 나는 혼자 멍.  그리고 한참 후에야 쏘세지가 돌아왔는데, 그 잠깐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모험담을 펼치는데 ....



 " 와 오빠 없으니까 진짜 완전 180도 달라 "

 " 왜? "

 " 오빠 있을 땐 그냥 남자들이 눈빛만 보내는 정돈데 왠걸 오빠 없으니까 남자들이 와서 말걸고, 와 눈빛은 진짜 완전히 휴... "



 이러면서 그 잠깐 사이 성추행 당한 이야기며 온갖 얘기를 한다. 나랑 둘이 돌아다녀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는데 여자 혼자 그렇게 돌아다녔으니 당연한 일이다. 어쨌든 쏘세지가 어제 그 슈퍼에서 또 다른 햄버거를 사왔는데 역시 대박 맛났다.




 그리고 우린 마당에 앉아서 녹차 한잔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쏘세지는 방콕으로 부모님 오는 문제 때문에 골치가 아픈듯 보였다.  하지만 나의 모든 신경은 일기장에 가 있어서 나는 쏘세지에게  일기장 때문에 벌어진 짜증 때문에 그냥 일기장만 찾으면 파키스탄을 나가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 그 정도로 뭔가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한가로이 마당에서 쏘세지와 앞으로 여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쏘세지가 배가 고프다고 해서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어디를 갈지 얘기하다가 내가 길기트에 처음 온 날 숙소 찾으로 올 때 봐둔 식당 하나가 있다고 얘기해서 그 곳으로 갔다.




 차이니즈 레스토랑이었는데 물론 파키스탄 사람들만 한가득.  안에 들어가니 시선 집중. 중동 여행 할 때와 마찬가지로 동양인이 낯선 이 곳은 어딜가나 연예인 느낌이다. 조심스레 우리는  한켠에 앉았다. 테이블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비좁고 그냥 모르는 사람들과 뒤엉켜 밥을 먹는 곳이었다. 사람들 먹는 음식들을 보니 메뉴가 다 똑같았다. 보니까 이 곳에 메뉴는 단 두가지. 맛집 포스다.  메뉴는 잔치국수처럼 보이는 국수와 볶음밥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수를 먹고 있었다. 일단 우리는 볶음밥 하나만을 시켜서 둘이서 나눠 먹는데 맛이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각 테이블 마다 놓여져 있는 양념이 있었는데 그 중에 고추를 다져 만든 양념이 대박이었다.  처음 먹어보는 맛은 아니고 꽤 오랜만에 먹어보는 양념인데, 정말 맛있었다. 










 우리 앞에 앉은 한 파키남자가 우리에게 말을 걸면서 이것저것 도와주려고 한다. 다들 국수를 먹고 있는데 그가 국수가 맛있다며 먹어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볶음밥도 이정돈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는 국수는 더욱 맛있겠단 생각에 국수를 하나 더 주문해서 먹는데, 진짜 대박 맛있었다. 역시 맛집포스!   다 먹고, 이 곳에 영어가 거의 안통해서 앞에 앉은 남자에게 우리가 먹은게 얼마 정도 하냐고 하니 가격을 알려준다. 그리고 돈을 내려고 카운터에 가서 큰 돈을 냈는데 거스름돈을 100루피를 적게 준다. 장난까지 말라고 하니까 곧바로 100루피를 더 돌려준다. ㅋㅋㅋㅋㅋ







 파키스탄은 정말 이렇다.  사기도 거의 안치지만 사기를 치려다가도 이렇게 끝이 난다. 아마 인도였음 끝까지 잡아뗐을텐데 말이다.  밥을 배불리 먹은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고 쏘세지는 한숨 잔다며 방으로 가고 난 마당에 앉아서 차 한잔을 하며 담배를 폈다. 내 앞에 앉은 한 노인이 있다. 노인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한쪽 눈이 부자연스러운 의안이었다. 인상은 좋아보였으나 그 의안 때문인지 독특한 인상을 받게 되었는데 한참 대화 끝에 그가 이 곳 마디나 게스트하우스의 사장 '야굽'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야굽은 나에게 여행이 어떤지 묻는다. 


 " 파키스탄에 대해 잘 몰랐는데 와서 보니 사람들이 너무 착하고 순박하고 정말 친절하다. " 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는 무슬림들은 모두 착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슬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 무슬림이 무슨 뜻이지 알아? 무슬림은 착한 사람들이란 뜻이야 "

 " 지금 보다 예전엔 사람들이 더 착했지 "

 " 순니니 시아니 하며 같은 무슬림끼리 편을 가르고 싸우지만 정말 그건 멍청한 짓이야 "

 " 그저 우리는 알라의 가르침대로 살면서 착하게 살면 되는건데 쓸데 없는 것들에 집착하는거지 "


 

 " 지금 너가 파키스탄이 너가 아는 것보다 더 평화로워보이고 좋다고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전쟁 전(소련침공) 에는 더욱 샨티샨티(평화) 였지 "

 " 전쟁 이후에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어. 전쟁이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고 생각을 바꿨어 "

 "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그랬고, 카쉬미르 전쟁이 그랬어, 사람들은 가족들을 잃고, 친구를 잃고 분노와 슬픔이 자리 잡은거야 "



 그는 아주 나긋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의 말에는 엄청난 흡입력이 있었고, 나는 그에게 집중하게 되었다.  



 " 9.11 테러 때는 더 심했어, 오사마 빈 라덴을 잡겠다고 나라가 온통 난리가 났었지. 우리가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겼다고.. "  

 9.11테러 이후 파키스탄은 지옥이 되었다며 이야기를 할 때는 그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그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야기를 하며 목이 마른지 그는 직원에게 시켜 차를 내오게 하고 나에게 차를 따라줬다. 차를 마시며 그는 종교는 중요치 않고, 착하게 인간답게 사는게 중요하고 전쟁이 얼마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이야기의 화제는 나의 일기장으로 돌아왔다.   그는 직원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었다며 일기장을 찾는 것을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이야기를 한다.




[직원을 불러 핸드폰 충전을 지시하는 야굽]


 " 가든롯지는 일을 잘못하고 있는거야 , 걔네들은 책임감이 없어 "

 " 만약 너가 올드 훈자인이나 하이데르 인, 혹은 다른 숙소에 묵었다면 걔네는 너가 그걸 잃어버린걸 알기도 전에 너가 길깃에 간다고 했으니 길깃에 모든 숙소에 연락해서 너에게 일기장을 찾아줬을꺼야 " 


 

 나도 지금 상황이 짜증나서 그에게 " 안그래도 나도 너무 짜증이 난다. 누구는 일기장이 지금 오고 있다고 하고, 누구는 내일 온다고 하고 모두 말이 다르다. 나는 그냥 훈자로 가서 내가 직접 찾는게 빠를 것 같다 " 라고 이야기 하자. 



 " 그럴필요없어. 내가 찾아줄게 "



 그는 말이 나온김에 본격적으로 일기장을 찾아줄 모양인듯 전화를 걸려고 하는데 마침 핸드폰 차지(선불폰)가 떨어져서 일하는 애를 불러서 핸드폰 차지 쿠폰을 사오게 한다. 곧 차지를 사와서 핸드폰 요금 충전을 한 뒤 그는 곧장 전화를 하는데 왈리와 통화가 된 모양이었다. 한참 통화하고 나서 끊더니 그는 약간 화난 듯 보였다.



 " 지금 이 사람은 횡설수설 하고 있어. 가든롯지 사장이 길깃에 간게 아니라 알리아바드에 갔다고 그러고, 일기장이 다시 훈자라고 하고 자기도 지금 무슨소리 하는지 모르지 " 이러면서 야굽은 가든롯지가 너무 책임감이 없다며 얘기한다.



 " 내 조카가 지금 일본여자를 데리고 훈자쪽으로 투어 갔는데 그 조카가 오늘 돌아오니까 내가 연락해서 가든롯지 들려서 일기장 가지고 오게 할게 " 라고 이야기 한다. 그에 대해 나는 그에게 말했다. 



 " 더이상 희망고문을 하지마라,  차라리 확신 못하면 못한다고 이야기하는게 나는 지금 좋다. 자꾸 모두가 할수 있다 온다 라고 이야기하고 일기장이 돌아오지 않으니 나는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그냥 안되는건 안된다고 이야기 해주면 더 좋을 것 같다 " 라고 이야기하자 야굽은 강경한 표정으로 변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부드럽고 나긋한 목소리와는 달리 제법 쎈 어조로 이야기 했다.



 " 내가 말하면 그렇게 된다! "

 " 니 일기장이 안오면 내가 내일 직접 가서라도 가져온다. 걱정하지마라 믿어라 "



 라고 이야기하는데 워낙 강경한 어조에 믿음이 갔다. 그렇게 그와 늦은 오후까지 몇시간을 대화를 나눴다. 대화가 끝나고 난 방으로 갔다. 내가 방으로 가자 쏘세지는 낮잠에서 깨서 밖으로 나가고 나는 방에서 책을 보며 쉬었다.  그러던중 조금 늦은 저녁 즈음해서 밖에서부터 쏘세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오빠! 오빠!!! " 뭔가 다급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쏘세지가 방문을 열었다.



 "오빠! 나가봐 얼른 오빠 일기장 왔어 " 그래서 급하게 후다닥 방에서 나가니 사람은 아무도 없고, 마당에 테이블에 내 일기장만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내 일기장이 맞다. 난 엄한 다른 노트가 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천만 다행으로 내 일기장이었다. 심지어 일기장 사이에 볼펜,엽서 끼워놓은것까지 그대로 고스란히 왔다.



 " 너 일기장 가지고 온 사람 봤어? "

 " 응. 그 사람 와서 일기장 들고 있길래 내가 얼른 방으로 온거였는데 어디갔지... "

 " 훈자 가든롯지 사장인가? "

 " 그건 모르겠고,, 암튼 처음 보는 사람인데.. "




 정말 너무 기뻤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꿈인지 생신지 믿겨지지 않아 일기장을 뒤젹여보기도 하고 정말 이 중요한 것을 놓고 오다니 나의 행동에 반성했다. 정말 영혼이 돌아온 기분이었다.  완전 기분이 좋아져서 나는 쏘세지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이야기 했다. 일기장이 돌아오고 나니 이제 모든게 제자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야굽의 말이 사실이었다. 물론 야굽의 조카가 가져다 줬는지 아니면 훈자 가든롯지에서 사람이 와서 찾아다줬는지는 여전히 미궁이다.  



 어쨌든 기분 좋게 밖으로 나온 우리는 목적지 없이 그냥 마실 나온 듯 동네를 돌아다녔다. 시장통이라서 구경 할 거리는 많았다. 그러던 중 우리는 제법 큰 마트를 발견했다. 이런 마트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여행 중 마트 구경은 시장 구경만큼 즐겁다. 이들의 정말 현지 물가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이며, 수 많은 다양한 이들이 먹는 음식들,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마트안에서 우리는 그간 사려고 마음 먹었던 수 많은 물품을 구입했다.  고산지대라 모기 걱정이 없다고 했는데 길깃으로 내려오면서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 모기를 피하기 위해 바르는 모기약(이거 대박..진짜 짱)과 모기향, 향(아로마) 컵라면,과자 등등을 구입했다. 이것저것 신나게 쇼핑 한 후 숙소로 돌아오니 숙소는 정전이 되어있었다.  정전이 일상이라 너무나 익숙하다.   마당에 앉아서 나는 그간 밀린 일기를 미친듯이 쓰기 시작했다. 촛불 아래서 오랜만에 쓰는 일기라 정말 너무너무 행복했다. 









 일기를 한참 쓰다가 팔이 아파서 쉬면서 잠시 일하는 아흐마드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함께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아흐마드와 정전이 된 어두운 밤거리를 돌아다니는데 길거리에서 멜론을 팔고 있었는데 과일을 좋아하는 쏘세지는 결국 그 멜론을 샀다. 정말 싼 가격이었는데 잠깐 맛봤는데 맛이 끝내준다.  아흐마드와 함께 마실을 다녀오고 난 뒤 숙소로 돌아와 마트에서 산 중국산 컵라면을 먹는데, 정말 오랜만에 음식 먹다 썅욕이 튀어나왔다. 





 중국여행 때 먹은 치약맛 나는 컵라면 이후 정말 컵라면이 어떻게 하면 사람을 분노하게 만드는지 새삼 깨달았다. 정말 지옥같은 맛에 나도 쏘세지도 컵라면을 버렸다. 가격도 결코 싸지 않았는데 파키스탄 물가를 생각하면 차라리 이 돈으로 식당가서 밥을 한끼 먹을 돈인데 날려버렸다. 역시 중국새끼들은 진짜... 아오



 입 맛을 버려서 쏘세지가 산 멜론으로 입맛을 회복시키고, 우리는 마당에서 아흐마드와 노닥거렸다. 아흐마드는 이 숙소에서 일하는 녀석인데 나이도 어린데 머리가 벗겨지고 제법 날카로운 인상을 지녔는데 나름 빠릿한 녀석이었다. 아흐마드는 노트북을 가져와서 자기 사진이랑 동영상 같은것을 보여주면서 이야기하는데 이 녀석 태권도 사범 출신이다.   자기 고향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활동했던 거 보여주고, 태권도 대회 같은것 나간 동영상이며 사진 보여주는데 제법이었다. 어쩐지 엄청 몸이 다부지다 생각했는데 대단했다. 그리고 수 많은 사진을 보다가 친구들과 함께 여행 간 사진과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대박이었다. 승합차(봉고)를 타고 친구들과 여행을 하는데 차를 도로 한켠에 세우고 경치 좋은데서 친구들과 도로 한복판에서 춤을 추는 영상이었는데 정말 너무나 즐거워보였다.




 " 너네 진짜 재밌게 노네 "

 아흐마드는 " 인생은 짧잖아, 항상 즐겁게 살아야지 "  라고 이야기하며 인생을 즐겨야 된다며 이야기를 한다.




 그런 모습에서 참 많은 것들을 떠올리며 생각하고 배우게 된 것 같다.  오늘 일기장이 돌아오고 야굽과 낮의 대화, 아흐마드와 밤의 대화.  낮에 야굽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 모든 종교는 낭가파르바트야. 모든 종교가 지향하는 점은 결국 착하게 살자는 거지.  낭가파르바트로 향하는 길은 수 없이 많지만 그 끝에 오르기 위해선 결국 모두 노력해서 꾸준히 걸어야 하고 때론 힘겨워 포기하고 싶기도 하고  하지만 노력하다보면 결국 우리는 낭가파르바트에 도착하게 되는거지, 길은 수 없이 다양해 그저 우리 모두는 행복이란 목표를 위해 가는거야 "



 정말 행복한 하루다. 

 인생이 무엇인지 새삼 생각해보게 된 하루였다.



 모든게 짜증나서 일기장만 찾으면 곧장 이슬라마바드로 내려가고 그 뒤 라호르를 거쳐 파키스탄을 서둘러 빠져나가야 겠다는 생각을 한켠에 두고 있었는데 나의 생각이 완전 바뀌었다. 지금 안가면 후회 할 기회조차 없을 그 길을 가보려고 한다.  나는 내일 치트랄로 향하기로 했다. 사람이 좋다. 인생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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