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서블 여행기 #97 [인도/델리] 이별, 그리고 여자의 변신은 무죄
에어콘 방의 추위에서 깨어났다.
너무 추워서 에이콘을 껐다. 밤새 배가 차가워서 그런지 아침부터 또 설사를 해댄다. 그럼에도 에어콘은 포기 할 수 없다. 나는 오늘 밤 기차로 바라나시로 떠난다. 그리고 이제 두달 간을 함께 한 나의 동지 쏘세지와 이별을 하게 된다.
아직은 덤덤하다.
시원한 방에서 밍기적거리며 오늘 마지막으로 함께 무엇을 할지 살펴보는데 오늘 일요일이라 우리가 가고자 했던 시장인 딜리하트가 문을 닫는다고 한다. 뭔가 살짝 꼬이는 기분. 대충 오늘 할 일을 정한 뒤, 짐 정리를 시작했다. 그 동안 짐도 많이 줄기도 했지만 좀 더 짐을 체계적으로 다시 싸기 시작해서 완벽 개편 했는데 그 가운데 전기포트가 완전 찌그러진 것을 발견했다. 가장 밑바닥에 두었는데 배낭 무게가 너무 무거우니 전기포트가 완전히 찌끄러졌다. 안녕 전기포트!
짐을 다 꾸리고 씻었다. 뭔가 기분이 묘하다. 함께 체크아웃하고 짐을 맡겨야 하는데 아주 조금 실감이 났다. 숙소 밖으로 나온 우리는 오늘 델리의 나름 필수코스 중 하나인 후마윤의 무덤을 가보기로 했다.
천천히 메트로 쪽으로 향하며 걷다가 릭샤왈라가 보이면 후마윤에 가는 가격을 물아보는데 첫 가격이 150. 이 말은 무조건 100이하로 가야 된다는 얘기다. 여행 팁 ㅍㅌㅊ? 물가를 모를 땐 이런식으로 하면 되는거다.
후마윤에 가기 전에 아침을 먹기 위해 항상 지나치던 Mazdan Cafe에 가서 아침 먹는데 커리를 한동안 안먹어서 커리가 먹고 싶어서 MALAI KOFTA를 시켰는데 오랜만에 먹는 제대로 된 인도음식 대박 맛났다. 쩔었다. 무슨 빵 같은게 들어가 있는데 너무너무 맛있었다. 이 가게의 유일한 아쉬움이 있다면 짜파티가 너무 작고 얇다. 두껍고 크고 너무너무 맛있었던 빵이 있던 파키스탄이 그립다.
밥을 먹고 난 뒤 후식으로 라씨 먹으로 가서 라씨한잔하며 그 사이 릭샤 100루피 짜리를 구했다. 릭샤를 타고 우리는 후마윤의 무덤으로 향했다. 인도 두번째, 델리면 왔다갔다 하며 몇번을 왔음에도 이제서야 가기로 마음 먹은 첫번째 후마윤의 무덤
릭샤를 타고 한가한 낮의 도로를 달려 도착한 후마윤의 무덤.
역시 유명한 관광지 답게 사람들이 엄청 많았는데 한국사람들도 꽤 보였는데 나의 한글 티셔츠를 보고 또 모두 폭소를 터트리더니 사진을 마구 찍기 시작한다. 연예인이 이런기분이구만. 안으로 들어가 후마윤의 무덤으로 향하는데 왠걸 문을 닫았다.
그것도 심지어 오늘부터 며칠간.
정말 되는 일도 드럽게 없다. 뭐만 하면 비오고 뭐만 하면 문닫고, 나와 후마윤의 무덤은 인연이 없는것 같다. 훗날을 기약해본다. 그저 이거 하나 보겠다는데도 너무 허탈.
목적지를 잃은 여행자들.
우린 잠시 고민을 해본 끝에, 기왕 델리에서 할 수 있는 일만 해보자.
그래서 결정한 것이 바로 델리 최고의 쇼핑몰이라는 Select City Walk 셀렉트 시티 워크에 가기로 했다.
급하게 아이폰안에 있는 론리 인도편을 보고 가는 방법을 체크. 일단 메트로를 타야했기 때문에 릭샤를 타고 가장 가까운 메트로 역까지 가기로 했다. 30루피에 근방에 있던 메트로를 타고 시티워크가 가장 가깝게 있다는 Saket역으로 향했다. 일단 그 곳에서 내려서 릭샤를 타고 가기로 해서 대충 아무출구로나 나가자, 릭샤왈라들이 엄청나게 대기하고 있다. 우리의 방법이 맞는지 릭샤왈라들은 벌써 우리가 시티워크를 갈 것을 안다는 것 처럼 흥정을 시작한다. 지도 상으로 보면 워낙 가까워보여 30루피에 도전했는데 결국 40루피에 시티워크로 향했다.
평범한 인도의 여느 동네, 그 곳을 달리다보니 큰 쇼핑몰 컴플렉스가 나타났다. 외관은 뭐가 대단하단건지 모르겠단 느낌이었는데 왠걸, 일단 바깥쪽에 KFC, 안에 들어가자마자 Chicago Pizza가 떡 하니 있고, 안에는 정말 잘꾸며놨다. 물론 초!!! 명품은 없었지만 충분히 대중적인 메이커들이 펼쳐져있고 쇼핑몰도, 그 곳에 온 인도인들도 화려했다. 신나게 구경하는데, 쏘세지는 역시 여자답게 쇼핑매니아.
처음에 같이 돌아다니는데 쏘세지가 Zara 매장에 가더니 또 눈이 뒤집혔다. 한국 자라 가격의 1/2 ~ 1/3이라며 애가 또 반쯤 돌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따로 돌아다니기로 했다. 쏘세지는 내 눈치 안보고 마음껏 자기 원하는 만큼 쇼핑을 하고 싶다고 하고 나도 별로 관심없는 여자옷을 보고 싶지 않아서 서로 동의. 시간을 정하고 만나기로 하고 우리는 각자 씨티워크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쏘세지를 자라매장에 두고 나는 천천히 구경하기 시작하는데 여기에 내가 필요로 했던 모든게 다 있다. 크록스 매장, 지포라이터 악세서리, 문구용품 등등.
일단 나는 팬시샵 같은 곳에서 선물로 살 것들 몇개를 구입했다. 지포심지도 팔길래 구입하고, 일기장을 거의 다 써가기 때문에 노트를 구입하려고 하는데 솔직히 정말 이쁜 인도풍의 노트들이 많았는데 가격이 비싸서 한참 고민고민. 그냥 제일 싸면서 인도느낌이 나는 노트를 하나 구입했다. 그리고 대신에 여행 후원을 해준 카페 회원님들에게 줄 선물을 사는데 이쁜 디자인의 노트가 많길래 하나 구입했다.
[ 내껀 25루피 ㅋㅋㅋㅋㅋ ]
크록스가 정말 사고 싶었으나, 이걸 사면 거의 1주일 정도의 생활비가 나간다고 생각하니 또 선뜻 손이 안갔다. 게다가 어차피 파키스탄에서 산 1500원짜리 쪼리를 신고 있으니 괜히 망설여져 구입을 포기. 한참을 구경하다가 약속시간이 다 되어 쏘세지를 만났다. 약속시간 보다 조금 늦은 시간 온 쏘세지.
저 멀리서 걸어 오는 쏘세지는 정말 나를 너무나 놀라게 했다.
마치 무슨 미국 영화에 흔히 나오는 장면처럼 평소엔 찌질하다가 갑자기 대변신한 여자들 지나갈 때 처럼 모든 인도인들이 쏘세지를 쳐다보고, 쏘세지는 아주 당당하게 어마어마한 쇼핑백들을 들고 이 쪽으로 걸어오는데 완전 짧은 핫팬츠에 배꼽티에 대박이었다.
" 와.... 이야...너.....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대박이다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 "
" 아..너무 좋아 신나서 미치겠어 "
" 인도남자들 지금 눈 미친듯이 돌아간다 "
" ㅋㅋㅋ 오빠..내가 진짜 얼마나 계속 힘들었는지 알아? "
" 뭘? "
" 파키스탄에서 남자들때문에 무슬림이라 꽁꽁싸매지. 인도도 남자애들이 추행하지 진짜 내가 입고 싶은 옷 하나도 못입고 진짜 무슬림 여자처럼 나도 꽁꽁싸매고 더운데 긴바지 입고 ... " 쏘세지는 속사포처럼 그 동안의 고충을 얘기한다.
나는 남자라 편하게 옷을 입고 반바지 입고 돌아다니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쏘세지는 얼마나 더 더웠을까 여자라는 이유로 반바지도 못입고, 그랬는데 여기와서 폭주한 것이다.
" 야 그래도 나가면 다시 인도잖아! "
" 그니까 여기서만이라도 오랜만에 발산하고 싶어 "
정말 남자가 생각도 못한 여자들만의 고민과 문제점이었다. 그리고 정말 이뻤다. 헐리웃 영화에서 평소에 찌질했던 여자애가 뭔가의 계기로 확 피어나는 것과 똑같이 평소에 뿔테안경에 수수했던 쏘세지는 콘택트렌즈까지 끼고 아예 작정한듯 화려했는데 정말 이뻤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쏘세지는 정말 기분이 좋아진것 같았다. 우리는 그리고 밥을 먹기 위해 근처에 푸드코트로 향했는데 왠걸 역시 고급 쇼핑몰 답게 푸드코트 가격이 미쳤다. 어지간한 메뉴가 200-300루피.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평소에 우리가 둘이서 합쳐서 100루피에서 150루피 가량 밥을 먹은걸 생각하면 그 가격이 짐작이 가리라. 쥬스 같은거 하나도 100루피는 그냥 넘는다. 결국 우리는 가슴이 쪼그라들어 도저히 여기서 먹지 못하고 밖에 있던 KFC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KFC에 가서 원치 않게 햄버거를 먹게 되었다. 그토록 원했던 KFC였건만 이제 언제든 먹을 수 있는 KFC로 변하고 그 사이 KFC 좀 먹었다고 이제 벌써 안먹고 싶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듯 사람은 금지된 것을 욕망한다. 마지막 KFC를 먹으며 다짐했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인도일정 내내 인도음식 하나라도 더 먹겠다고.
KFC에서 대충 끼니를 때운 우리는 다시 시티워크 안으로 들어갔다. 이 곳엔 정말 이쁜 가게가 참 많았다. 만약에 내가 델리 OUT이라면 여기서 무조건 쇼핑 종료다. 인도 특유의 느낌이 가득 살아있는 아이템이 한가득. 티셔츠 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정말 퀄리티가 대박이었다. 인도풍 그림들이 정말 고급스런 재질의 티셔츠에 프린팅 되어있는 티셔츠 들이었는데 인도물가로 치면 꽤 비싼 가격이었다. 한번 입어보고 쏘세지에게 잘 어울리냐고 물으니 잘 어울린다고 이야기를 해준다. 살까 말까 고민했는데 돈도 돈이지만 워낙 티셔츠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보니 (한글 티셔츠들) 한참 고민하다가 그냥 구입을 안하기로 하고 포기. 이외에도 정말 괜찮은 가게들이 너무나 많았다.
진짜 다 사고 싶다. 아쉽지만 적당히 쇼핑을 한 뒤, 우리는 돌아다니다가 정통 이태리 피자를 조각피자로 파는 곳을 발견했다. 빌어먹을. 진작 이걸 발견했더라면 굳이 치킨 안먹고 맛있는 피자도 먹고 돈도 절약했을텐데.
아쉽지만 ㅠ,ㅠ 패스.
구석구석 구경하다가 구석에서 마트 발견.
여행자가 제일 좋아하는 구경이 시장구경이라면 21세기 여행자는 마트구경! ㅋㅋㅋㅋㅋㅋㅋㅋ
마트안에 들어가서 지금까지 구입한 모든 물건의 가격을 파악했다. 신나게 구경하다가 내가 즐겨마시는 음료수인 님부즈(레몬에이드, 레몬이 인도말로 님부)를 하나 사마시려고 들고 계산대에 가니 이렇게 큰 마트인데도 잔돈이 없다고해서 결국은 못마셨다. 벙찐다. 진짜 새삼 역시 인도라는걸 느끼게 해줬다.
너무나 신나게 셀렉트 시티워크 구경을 한 뒤 쏘세지는 이제 다시 돌아가기 전에 원래의 일상대로 여행자 복장으로 갈아입으로 간다고 화장실로 가고 난 그 사이에 기왕 이런데 온김에 인도음악 CD를 좀 구입하고자 PLANET M이라는 레코드가게로 갔다. 거기서 음악씨디를 구입했다. 늘 말하지만 나는 내가 여행한 나라의 음식,음악 그런것들이 좋다. 이들은 이런 음식을 먹는구나, 이런 음악을 듣고 즐기는구나 그런걸 알아가는게 좋다.
생각보다 쏘세지가 한참 오래걸려서 여유있게 인도음악씨디 구경을 하고 드디어 쏘세지가 여행자의 복장으로 나타났다. 신데렐라의 마법이 깨진 것처럼 다시 돌아온 쏘세지는 환하게 웃는다. 여전히 많은 쇼핑백들을 들고 있지만, 복장은 수수하다.
" 그냥 오랜만에 입고 싶은대로 입어서 너무 좋았어 " 라며 환하게 웃는 쏘세지. 귀엽다.
만원 전철 메트로
밖으로 나온 우리는 릭샤를 타고 사켓역으로 향해서 거기서 다시 메트로를 타고 빠하르간즈가 있는 라마크리슈나 아쉬람 역에 도착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나는 눈여겨 봤던 롤링타바코 파는 가게에 가서 오랜만에 담배를 말아피고 싶어서 드럼, 필터,종이 등을 구입했다. 어차피 담배란게 계속 태우는거니 그냥 넉넉하게 여기서 아예 대량구입해서 돈이 쑴풍하고 나갔다. 하지만 대신 인도에서 이제 담배 살 일은 없겠지.
인도가 사실 담배값이 쓸데 없이 비싸서. 파키스탄에서 나올 때 이미 나는 담배를 어마어마하게 구입해서 나왔다. 이런저런 덕분에 담배 살 일이 없어졌다. 여담이지만 흡연자가 여행하는데 좋은 이유는 국경을 넘나들 때, 다른 여행자들은 돈이 어설프게 남았을 때 모두가 좌불안석이지만 흡연자들은 남은돈을 과감하게 담배를 구입하면 된다. 왜냐 어차피 살 담배기 때문. 그렇게 그 나라를 떠나기 전에 돈을 깔끔하게 처리 할 수 있는 유리한 점이 있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며, 짐을 찾고 쇼핑한 물건들을 배낭에 잘 쑤셔 박고 다시 한번 짐정리를 했다. 짐 정리를 하던 가운데 잠시 쉬면서 나는 레에서 줏은 카메라를 애들한테 보여주면서 살 생각있냐고하니 한참 보더니 얼마에 팔꺼냐 묻길래 5000-6000루피라고 하자, 찐빠놓느라고 1000루피에 자기 친구가 똑같은거 판다고 내껀 오리지날소니 라고 말하자 그 것도 오리지날이라고 . 그래서 그럼 그거 사 이랬다.
인도새끼들 정말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 이 새끼들 유전자에는 무슨 심각한 결함이 있는것 같다.
그러는 가운데 갑자기 쏘세지가 불쑥 쇼핑백에서 뭔가를 하나 꺼내서 나에게 준다.
한번에 알 수 있었다.
아까 셀렉트 시티 워크에서 내가 살까 말까 했던 바로 그 인도풍 티셔츠다.
" 오빠 이거 작별 선물! 오빠한테 잘 어울리니까 이쁘게 잘 입어 "
" 아.... "
" 다른 사람 선물 비싼거 사면서 오빠꺼는 너무 아끼는거 같아 앞으로도 이쁜거 있으면 사 "
" 고마워.. "
진짜 감동이었다.
따로 아무것도 준비 못한 내가 괜히 부끄러워질 정도로 고마운 마음 씀씀이. 아까 전에 혼자 옷갈아입으로 화장실 가면서 오래 걸린게 아니라, 1층까지 내려가서 그 티셔츠가게 가서 이거 사느라고 그렇게 늦게 온 것이었다.
이제 진짜 떠날 시간이다.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와 걷는데 쏘세지가 마중 나온다.
뭔가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한다. 서로의 표정에서 서로의 아쉬움이 묻어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앞으로 느낄 쏘세지의 빈자리를 쏘세지도 또 느끼겠지. (물론 여정이 얼마 안남은 쏘세지지만..) 정말 최고의 여행 메이트였다. 진짜 발걸음이 쉽게 안떨어진다. 괜히 어색하고 슬픈 감정을 억누르듯 쓸데 없는 농담만 건넨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뭔가 기가 빠져나가는 듯한 그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감정들.
내 몸안의 일부가 떨어져나가는 듯한 공허함이 밀려들어온다. 하지만 이럴 때는 웃으며 작별을 해야지!
" 안녕! "
쏘세지에게 얼른 숙소로 돌아가라고 이르고, 나는 정말 오랜만에 쏘세지 없이 홀로 델리역으로 향했다. 항상 옆에 혹은 내 뒤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쫄래 쫄래 오던 이 작은 아이. 어찌나 허전한지 뉴델리역으로 가면서 참 많은 감정이 샘솟았다. 그리고 어느덧 뉴델리역. 역 구조 자체가 워낙 좆같아서 경찰에게 티켓을 보여주며 물어물어 플랫폼 12번으로 갔다. 그런데 거기가서 물어보니 또 13번이란다.
뭐가 맞는지, 이럴 때 짜증난다. 역시 인도는 묻고 또 물어야 된다.
많은 이들에게 물어서 다수결을 보니 13번 플랫폼이다. 13번 플랫폼으로 가서 여유있게 한켠에 짐 놓고 기다리는데 기차가 하나 들어온다. 쏘세지의 빈자리가 느껴진다. 이럴 때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 화장실 갈 일 있으면 짐도 봐주고 좋은 팀이었는데 당장 쏘세지의 빈자리가 엄청나게 느껴진다. 혼자서 플랫폼에 서있는게 왜 이리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혼자서 뻘쭘히 그냥 음악 들으면서 서있다가. 8시 40분 기차인데 아직 8시도 안되었으니 당연히 들어온 기차가 내가 타고 갈 기차는 아니겠지만 (연착이 당연한 인도에서 8시 40분 기차면 빨라야 10시에 온다 ) 그냥 물어보는게 버릇이 되서 사람들에게 표를 보여주며 물어보니 왠걸! 방금 들어온 기차가 바라나시행 기차다. 어처구니가 없다.
놀래서 또 묻고 또 다른사람한테 물어도 이 기차다.
내가 탈 칸이 코치S4라 일단 S4쪽으로 향했다. 인도는 미리 예약한 기차표 같은 경우엔 타야 할 칸 입구에 명단을 붙여놓는다. 가니까 진짜 이름이 있다. 이 열차라니..
나는 그 열차에 올랐다. 인도는 영원히 내가 안다고 자부 할 수 없을 것 같다. 여행을 해도해도 모르겠다. 알 수 없는 시스템과 카오스 속에 질서. 일찍 열차가 온탓에 아직 사람들이 많지가 않다. 텅빈 자리들. 나는 내 자리에 자리 잡고 앉아서 있는데 너무 더운데 선풍기가 고장나있어서 심심해서 선풍기나 고치고 있었다. 인도인들이 선풍기 고치는 모습을 보더니 박수를 쳐준다. 고맙지 새끼들아.
선풍기가 돌기 시작하니 시원한 바람에 땀이 식는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갑자기 서양여자애들 4명이 우르르 개떼로 들어온다. 어머~ 이쁜이들이네. 쏘세지의 빈자리를 서양여자애들 4명이 한번에 채워준다.
그리고 열차는 왠일로 정시에 딱 출발을 한다. 바라나시로 향하는 열차.
100만년만에 가는 바라나시. 바라나시는 또 얼마나 바뀌어있을지. 또 나는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너무너무 기대가 된다. 천상 여행자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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