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서블 여행기 #28 레 LEH, 라다크의 중심
완전 논스톱으로 푹 자고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차가운 공기가 고산지대에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공기는 싱그럽고 상쾌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 밖을 보니 싱그러운 녹음에 온 몸이 상쾌해진다. 귓가에는 새 지저귀는 소리까지 들리니 평화로움 그 자체. 그저 잠에서 깼을 뿐인데 눈과 귀, 마음까지 즐겁다.
고산병을 걱정했는데 잠도 잘 왔고, 몸 상태도 좋다. 담배 한대를 피며 창 밖으로 정원을 바라보았다. 한켠에 소파가 있어서 소파에 앉아 담배 한대 피며 일기를 좀 끄적였다. 기분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애들도 모두 일어나 씻고 준비를 끝마치는데, 이 방이 1000루피나 하기 때문에 너무 비싸서 계속 머무를 수가 없다. 이제 레에서 한동안 오랫동안 머물어야 하기 때문에 싸고 괜찮은 숙소를 구해야만 한다. 그렇게 좀 더 괜찮고 저렴한 방을 구하고자 일어나자마자 애들은 방을 보러 나가고 나는 방에 남아 씻고 짐정리를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옷을 버리기 시작했다. 늘 그렇듯 여행을 떠날 때는 언제 버려도 상관없는 옷들로 가득 채우고, 여행을 하면서 점점 비우는 여행. 그게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목 늘어난 티셔츠며 이것저것 버리기는데 정든 자식을 떠나보내는 기분. 애들이 방을 구하는 동안 나는 또 내 역할을 해야지!! 대충 가이드북을 보며 계획을 세웠다. 숙소담당이 아이들이라면 나는 가이드역! 가이드북을 보며 계획을 세우다보니 어지간 하면 다 1박 2일 코스다.
여기서 잠깐! 레LEH는?
라다크의 주도로, 인근에 판공초,누브라밸리,초모리리 같은 굵직한 여행지와 수 많은 크고 작은 마을들이 있어서 라다크 여행은 레에서 시작해서 레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가 딱 그 중심에 있기 때문에 레에 숙소를 잡아놓고 판공초,누브라밸리,초모리리,다른마을들을 갔다 왔다 갔다 왔다 하는 방식으로 여행해야 한다.
일정을 세우다보니 머리가 지끈하다. 대충 계획대로 하게 된다면 파키스탄에 내 예상보다 늦게 들어가게 될 것 같다.
애들이 숙소 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한참을 안오는데 거의 숙소 체크아웃 시간이 가까이 되도 오질 않는다. 하루 더 여기서 머물어야 되나 생각하고 있던 찰나 12시가 다 되어서야 애들이 돌아왔다. 얼른 체크아웃 하자며, 숙소를 구했다는 얘기를 한다. 우리 3명은 정말 초스피드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정말 5분도 걸리지 않아 짐을 다 꾸린 우리는 배낭을 짊어매고 밖으로 나왔다. 체크아웃 하고 길거리로 나오자, 레의 느낌은 어제와는 사뭇달랐다.
밤에 도착했을 때 암울하게 느껴졌던 레는 온데간데 없고, 싱그럽고 시원한 공기와 맑은 햇살이 내리쬐는 작은 마을 느낌이었다. 우리는 배낭을 메고 걸어가면서 하루와 쏘세지의 숙소 구하는 과정 얘기를 들었다. 싸고 좋은 숙소를 구했다며 한참을 걸어 창스파 로드로 향했다. 창스파로드는 레에서도 숙소가 밀집된 지역이다. 창스파 로드에 들어서자 많은 여행자들이 보이고, 수 많은 숙소,레스토랑들이 보인다. 어제 밤 이 길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기분과는 또 다르다.
짐을 메고 가는 길에 꽤나 호흡이 거칠고 가파져왔다. 그냥 걷기도 힘든데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가다보니 힘들었다. 아직 고산지대에 적응이 안됐다. 한참을 걸어 창스파 끄트머리 골목에 이르자, 드디어 내 머리속에 상상했던 레의 풍경이 나타났다. 큰 길에서 작은 골목에 들어서자 얕은 토담들이 보이고, 정겨운 분위기의 전통가옥들이 나타났다. 전통가옥들은 흙으로 빗은 티벳양식의 집들이었는데, 군데 군데 소똥들과 늘어져 있는 윤기 흐르는 검은 빛의 소들이 그 풍경에 정겨움을 더했다.
골목 길에는 가정집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간판을 달아놓은 숙소들이 많았는데 일반 가정집을 개조한 느낌의 숙소들로 가득하다. 여기에 오니 내가 생각했던 레의 느낌가 조금 비슷해졌다.
- 야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돼?
헉헉 대며 말하자
- 거의 다 왔어요. 진짜 여기도 겨우 구한거에요 다 풀이에요
라고 하루가 얘기하는데.. 숙소 구한다고 고생했다 싶었다.
그리고 우리가 간 곳은 그 안에서도 구석진 곳에 위치한 숙소. 대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니 마당도 있고 느낌이 좋았다. 안쪽에 마당쪽으로 향해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서양 여자애가 기타치며 마당에서 노래부르는데 정말 분위기 작살났다. 노래를 진짜 너무 잘 불렀다.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노래도 너무 좋았고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정말 감탄 또 감탄. 싱그러운 녹색빛의 정원과 시원한 공기를 타고 흐르는 맑은 목소리는 정말 청량감 그 자체였다.
여기서 잠깐! 동영상 발사!
[ 싱그러운 녹음 속에 울려퍼지는 청량한 목소리, 이게 두번째 노래 부터 녹음한건데 첫번째 노래가 멜로디도 너무 좋고 아름다웠음.]
나도 모르게 노래가 끝나고 박수를 쳤다.
나를 보며 해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이쁜이. 내가 너스레 떨며 " Are you a singer? " 라고 묻자. 수줍게 " No.. Thanks " 라고 한다. 분위기도 좋고 한 곡 더 들려달라고 하자, 다시 또 한 곡 발사. 나도 모르게 절로 동영상을 찍게 만들었다.
안그래도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숙소도 맘에 드는 곳 잡아서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듣는 노래는 최고였다. 노래가 끝나고 정말 얼굴도 존나 이쁘게 생겨서 싱긋 웃으며 말을 건넨다. 얘기를 나눠보니 이스라엘 애였다. 이스라엘 별로 안좋아하지만 뭐 이쁜 이 아이가 무슨 죄겠냐! ㅋㅋㅋㅋㅋ
늘 하는 간단한 말 몇마디 주고 받고 얘기 나누는데, 어느 이스라엘 애들과 마찬가지로 제대하고 그 돈 가지고 세계여행을 나왔다고,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 여자도 제대해야 되는데. 어쨌든 마당에서 쉬면서 담배 한대 피고 레몬티 한잔 마시고 그 여자애들이랑 얘기며 놀았다.
방을 보는데 방도 괜찮다. 가운데 정원을 중심으로 방들이 있어서 창문으로 빛도 잘 들어오는데, 좀 싼 방은 공동욕실을 쓰는 곳이었는데 그런 저렴한 곳은 이미 이스라엘이나 서양애들이 다 잡고 있어서 우리는 조금 비싼 개인 욕실 방을 잡았다. 방에댜 짐을 던져놓고 마당에서 이스라엘 이쁜이들과 노는데 하루 머리가 대 인기! 더불어 쏘세지의 머리도 인기다. 하루는 특이해서 인기고, 쏘세지는 이쁜지 연신 그걸 만지며 보면서 지네끼리 이쁘다고 난리다. 여자들이란.
이쁜이들 덕에 오랜만에 서양여행자와 사진 한방 박고 우리는 오늘 적응 겸 다른데 가지 말고 그냥 레 동네 한바퀴 돌기로 했다.
밖으로 나온 우린 일단 쉬엄쉬엄 메인바자르로 향했다. 걸어가는 동안 보이는 레의 풍경은 정말로 어젯밤과 사뭇 달랐다. 고산지대 특유의 맑은 파란하늘. 시원한 바람, 쾌청한 날씨 만큼 기분도 절로 유쾌해졌다. 레가 여행자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동네라고 느껴지는게 여행자들이 좋아하는 이쁜 악세서리 가게들도 많고, 각양각색의 노점들도 많이 보였다.
한참을 걸어 내려오니 마을의 중심가 바로 모스크가 있는 곳이다. 고산병 예방 겸 최대한 천천히 걷는데도 진짜 숨이 헉헉 대는데, 애들도 지치는지 좀 만 더 천천히 가자고, 중간중간 쉬는데 힘겨웠다. 잠시 멈춰서서 있으면 이미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서양애들은 성큼성큼 걷는데 한 서양여자애가 담배를 피며 걸어가는데 절로 입에서 " 와 미친... "이란 말이 나왔다. 그냥 걷기도 힘든데 어떻게 담배를 피며 걷지?? 나도 언젠가 익숙해질까? 싶을 정도로 숨이 턱턱 막혀왔다.
우리는 딱히 목적지가 없었기 때문에 그저 레 한바퀴 돌면서 도시에 대한 감을 잡기 위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모스크를 중심으로 해서 그 뒤쪽으로 무작정 걸었는데 모스크 뒤쪽으로 현지인들의 시장이 있었는데 빵굽는 곳들이 많아서 그런지 현지인들이 줄을 지어 빵을 사서 가는데 빵이 두툼하니 진짜 갓구운 빵의 먹음직스러움이 담겨있었다.
그러던 중, 내 눈에 꽂혀버린 것이 있었으니, 양고기 만두 같은 거였는데 이름은 '쌈쏘' 진짜 대박.
너무 맛이 궁금해서 샀는데 니미랄, 존나 맛있다. 진짜 개쩌는 맛이었다.
갓 구운 바삭한 피 안으로 육즙이 흘러나오는 양고기의 맛과 그 안에 채소들을 다져 만든 소는 안먹어봤음 말을 말어. 이 쌈소는 앞으로 다양한 이름으로 나를 즐겁게 해준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쌈쏘 라는 이름의 음식이었다. 여담이지만, 나중에 만난 어떤 라다키(라다크 사람)는 사모사라고 발음 하는 것으로 봐서 사모사를 쉽게 설명할 때 튀김만두라고 하니까, 아무래도 쌈소는 라다크 사투리로 사모사를 일컷는 것 같다. 사모사를 빨리 발음하면 쌈소에 가까워짐. 그냥 내 주관적인 생각임 ㅋㅋ
그리고 쏘세지는 빵먹고 싶다고 다른 빵굽는 곳에서 빵을 샀는데 큰 난(난 : 인도의 납작한 빵, 우리의 밥 같은 존재 ) 같은건데 이름은 '토프텐' 원래 나는 양념안된 빵, 맨빵을 별로 안좋아하는데 근데 이건 진짜 졸라 맛났다. 뭐랄까 고소하면서 아주 미세하게 달달한 맛이 나면서 빵 자체의 촉감도 탄력있고 정말 맛있었다. 이 동네 짱이다!
신나게 먹고 우린 메인바자르 쪽으로 다시 내려가는데, 하루가 전부터 계속 현지인 남자 옷을 맞추고 싶다고 마날리부터 노래를 부른터라, 여기에서 흔히 생각하는 인도의 전통 남자옷이 아니라, 여기 티벳 쪽 사람들의 전통옷 파는 곳을 발견하게 되었다. 역시 특이한 녀석이다. 하루는 들어가서 옷을 입어보고 하다가, 곧바로 구매를 결정해서 거기서 티벳 전통옷을 샀다. 대박이었다. 하루의 특이한 머리스타일과 함께 어울어져 정말 현지 로컬화 130% 달성. 하루의 티벳 옷입은 모습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전부 다 깔깔거리며 웃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준다.
아무래도 우리와 함께 있으니 분명 외국인은 외국인인데, 자기네 전통 복장을 입고 있으니 엄청들 좋아한다.
이 옷은 여기서도 젊은 사람들은 거의 안입고, 거의 노인들만 입는데, 어찌나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지. 하루 짱이다!!!
옷 맞추고 우린 계속 시장 구경, 메인바자르로 해서 여기저기 그냥 정처 없이 마구 떠돌아다니며 구경하는데 단지 이 곳을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했다. 시장 구경은 언제나 즐겁다. 우리는 한참을 돌다가 포트로드 쪽 좁은 골목길 돌아다니다가 걷기 힘겨워서 담배한대 피며 쉬는데 한국 사람들을 우루르르 만났다. 그 그룹은 꽤 많은 인원이 있었는데 언제나처럼 가볍게 " 한국사람이세요? " 라고 당연히 알면서 한번 물어보고 판공초 가실꺼냐고 인원 찾고 있다고 하니 자기네도 가야된다며 얘기를 나눴다. 남자애들과 여자애들로 구성되어있었는데. 드디어 우리가 멤버가 생기는 순간이다!
우리는 그러면 더 자세하게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놀자며 저녁 때 술 한잔 하자고 얘기 나누고 약속을 잡았다. 그들이 가고나서 우리 세명은 드디어 우리도 일행이 생겼다며, 이제 판공초 걱정 안해도 되겠다고 신나서 또 돌아다니는데 우연히 한국여자를 만났다. 이 여자는 비행기타고 어제 막 도착했는데 판공초 때문에 사람들 구할려고 돌아다니는데 아무리 돌아다녀도 한국사람이 안보인다며, 엄청 반가워했다. 그래서 우리도 이제 막 사람들 만나서 오늘 저녁에 놀기로 했으니 이따 함께 만나자고 이야기 하고 약속 잡고을 잡고 헤어졌다. 레에 오니 정말 여행자들이 넘쳐흘렀다.
우린 돌아다니다가 봐둔 양꼬치집이 있어서 그거 사다가 그거랑 함께 저녁에 술 한잔 해야되니 술 파는데도 좀 미리 봐두자고, 술 파는 곳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현지인들한테 엄청 물어 찾아가는 그 과정에서 마날리에서 옆방에 있던 오디와 함께 지내던 한국여자를 만났다. 이 여자도 우릴 보고 엄청 반가워했는데 이미 일행들이 있었는데, 이렇듯 여기에 오니 결국 모두가 만난다. 인도에서 여기저기서 만났던 모든 사람들을 레에서 만나는 것 같다.
역시 인도의 여름은 레다!
그리고 물어물어 찾아간 술집, 술집 위치까지 파악이 끝난 우린 계속 시장 구경을 하다가 아까 약속을 잡은 그 한국인 그룹을 다시 만났는데 길에서 환전 하려고 사설 환전소를 알아보고 있길래 구체적으로 가서 얘기했다. 저녁에 양꼬치 사서 술 먹자고. 근데 양꼬치 집이 6시부터 한다고. 그러니 6시에 만나서 술 같이 사고, 양꼬치 사서 우리 숙소가서 술 먹자고 확실하게 약속을 잡고난 뒤에 우리는 어느 건물 안에서 앉아서 시간 떼우다가 6시쯤 나와서 약속장소로 나갔다. 좀 기다리니 사람들이 나타나서, 같이 만나서 술 사러 갔는데 술가게에는 한국사람 대박 많다.
아주 레LEH에 있는 한국사람이란 한국사람은 전부다 여기 모여들어있다. 한국사람의 술 사랑이란!
우리는 함께 술 사고 양꼬치를 사러 갔다.
양꼬치 얼마나 살지 얘기 하다가, 어느정도 사고나서 숙소로 가는데 한국사람들이 멀다고 약간 짜증 내는데. 미안했다. 한참을 걸어 멀고 먼 우리 숙소에 들어가 숙소마당에 자리 잡고 술한잔 하면서 통성명을 했다.
이들의 이름은 준호,재덕,현우,민 이렇게 4명이었다. 동갑내기 친구 3명이서 온 통영친구들과, 방학시즌 여행자의 50프로 이상을 차지한다는 선생님 민! 아까 만났던 그 안에 있던 또 다른 여자는 안왔다는거다. 우리는 통성명을 시작으로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술과 양꼬치랑 맛나게 먹고 늘 사람들이 모이면 하고 싶었던 심리게임 양게임하고 노는데 역시나 반응이 엄청 좋다. 이 때를 시작으로 애들이 양게임에 중독이 되서 아주 틈만 나면 양게임을 했다. 여담이지만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할 때 부터 했던 이 양게임은 진짜 일단 맛들이는 순간 밤도 그냥 꼴딱 새게 만들어버리는 마력이 있다. 나중에 바다사나이 카페 정모 때 해보길! ㅋ
암튼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니 즐겁다. 그리고 드디어 7명의 판공초 멤버가 완성되었다! 판공초 하나 해결. 즐거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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