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서블 여행기 #48 [인도/라다크] 판공초와 파스타



 늦게까지 이야기 꽃을 피운 탓에 아침에 9시 넘어 일어났다. 모두 비몽사몽.  방 안은 아늑하고 따뜻하다.  정신 못차리고 헤롱대고 있는데 주인집 손자녀석이 오더니 아침을 먹으란다 그 말에 거실 겸 주방겸 하는 방으로 건너가니,  왠 2명의 서양새끼들이 밥을 쳐먹고 있다.   뭐하는 놈들인가? 비몽사몽 인사를 건네고 녀석들의 등 뒤로 창 밖을 보니 오토바이 두대가 서있다. 

 
 ' 아 바이크 여행자구나..  '



 한켠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니, 할매가 밥을 가져다 준다.  밥은 짜파티 2장과 커리를 넣어 만든 오믈렛. 정말 계란 계약 안했으면 여기도 짜파티랑 대충 달이나 이런걸 먹었겠구나 싶었다.  오믈렛에 커리를 넣어서 굉장히 재밌는 맛이 났다. 커리가루를 많이 넣은 것도 아니라 적당히 커리향이 베어나오는 오믈렛은 꽤 맛있었다. 할머니의 솜씨가 좋다.  잠을 좀 깨려고 차 좀 달라고 하자, 차도 가져다 준다.  밥을 먹으면서 우리는 이따 좀 쉬다가 스파게티 만들어 먹자고 얘기를 끝냈다. 아침을 비몽사몽 먹으며 그 이후 먹을 것을 논의하는 이 정신.




 밥을 다 먹고 바깥으론 나가니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가 얼굴을 스쳐지나간다.   오늘도 어김없이 햇빛이 찬란하게 빛이나고, 저 멀리 보이는 판공초의 물빛은 햇빛에 반사되어 푸르게 빛난다. 세상에 어떤 이쁜 것들을 가져오더라도 지금 이 앞에선 이 보다 더 아름답기 힘들 것 같다.  담배 한대를 피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파스타 해먹기에 돌입했다.
 

 일단 영어도 한마디도 안통하는 와중에, 할배와 할매에게 바디랭기지며 남걀이 가르쳐준 기본 단어들을 온통 동원해서 설명하는데, 불을 하나 밖에 쓰지 못한다. 그것도 할매가 짜파티 만들 때 쓰는 작은 가스버너. 일단 불 확보 


 그리고 파스타 만들 때 필요한 냄비, 후라이팬 등을 얻는데, 설거지가 안돼있는 것도 있고 해서 밖으로 가지고 나가 설거지를 시작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지하수가 정말 실처럼 졸졸졸 흐르는데 차갑기도 차갑지만 이런 물로 냄비와 후라이팬 등을 설거지 하니 시간도 오래걸리고 손이 얼어 붙을 것 같다. 원래 파스타 만들 때 한쪽에선 면 삶고, 한쪽에서는 소스 만들고, 면 다 삶으면 한번 후라이팬에 볶아서 물기를 날려야 되는데 불도 하나 뿐이라 어떻게 해야할지. 설거지 하면서 계속 머리속으로 플랜을 그렸다.




 오늘의 메뉴는 알리오 올리오와 토마토 스파게티. 두개!   설거지가 끝나고 방으로 들어가 냄비 큰거에다가 물을 붓고 면을 삶기 시작했다. 그 동안 모두 힘을 합쳐서 마늘도 까고, 재료를 다듬기 시작.   문제는 불이 너무 약하다. 이런식으로 면 익힐려면 1시간은 넘게 걸릴 기세, 과연 파스타를 해먹을 수 있을까 의문인 상황인데 갑자기 불이 꺼진다. 가스까지 떨어진 것이다. 절망. 면은 이제 막 익다 만 상태. 할배가 어디선가 석유곤로를 가져왔다. 정말 1910년대 쯤에 만들었을 것 같이 생긴 그런 생전 첨 보는 석유곤로. 거기에 기름도 붓고, 마구 뽐뿌질을 해서 불을 붙였다. 아까보다 제법 불 세기가 오르긴 했는데, 큰일이었다. 겨우 끓기 시작한 냄비를 다시 끓이기 시작했다.  






 일단 면을 볶아 놓을 요량으로, 면을 다 삶고 나서 후라이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면만 한번 볶는데, 이런식으로 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차피 마늘도 볶아야 되니 어쩔 수 없이 면을 볶으면서 마늘을 같이 넣어 익히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시간 절약을 위해서, 불이 너무 약하니 마늘도 익을 생각을 안한다. 이러다간 아무것도 못만드니 어쩔수 없이 알리오올리오로 모두 만들고, 반은 토마토소스 스파게티를 만들기로 작정했다. 고추도 썰어놓고 그냥 본격적으로 알리오 올리오 





겨우 알리오 올리오 완성을 한 다음에  큰 접시 한켠에 담고  다시 냄비에 토마토 소스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불이 하나니 너무 힘들다.  애들이 그 와중에 알리오 올리오 맛보더니 맛있다고 좋아한다. 다행이다. 


잠시 알리오올리오 맛보며, 난 계속 소스 작업. 소스 끓이고, 토마토 넣고, 간 맞추면서 소스 완성.   그리고 후라이팬에 알리오올리오랑 소스랑 부어서 또 한참을 비볐댔다. 그리고 드디어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 완성









제법 그럴싸하게 만들어서 우린 잠시 거기에 앉아 맛보며 감동! 완전 신나서 먹는데, 방구석에서 먹을 수 있겠는가!!! 우린 모두 그릇을 들고 밖으로 들고 나갔다.  해가 정오를 비추는 가운데, 아침보다 더 환하게 빛나는 태양, 더 푸른 빛의 판공초.  푸른 빛의 판공초를 보며 먹는 스파게티 맛은 정말 누가 알어? 판공초에서 스파게티 안 먹어봤으면 말을 말아야지.


역시 판공초는 스파게티!


양이 많은데 4명이서 그걸 먹으려다보니 배가 터질 것 같았다. 우린 뒷정리를 좀 하고, 남긴 스파게티들은 그릇에 모아 담아놨다. 누가 배고프면 먹겠지.  그리고 방에서 휴식.  이쯤이면 운전기사인 남걀이 올 때가 됐는데 안온다. 우린 물에 들어가서 놀려고 했는데 워낙 배가 부르니까 다들 누워있다가 낮잠 모드! 배부르고 아늑하고 너무 좋다. 


어느새 한숨 자고 일어나니 오후 3시 반. 우리는 난리가 났다. 창 밖을 보니 햇빛이 어느새 오후의 따스한 빛깔로 바뀌어있다. 지금 들어가면 엄청 추울 것 같은데, 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아침, 낮 동안 따끈하게 데워졌을 거란 믿음을 가지고 우린 뒤늦게 부리나케 물에 들어갈 준비 하는데  쏘세지가 몸이 안좋다고 한다. 그래서 쏘세지는 쉬고 진과 수와 함께 물가로 향했다.  언제봐도 멋진 물빛이다.  하늘을 보니 저 멀리 한켠에 구름이 자리 잡고 있는데, 고도가 높다보니 구름이 비치는 곳은 그늘이 져있어서 안그래도 쌀쌀한데 더 추워보였다. 진이가 앞장서서 자리를 잡으려고 계속 걸어가는데 한참 걸어간다. 





수가 " 야! 어디까지 가. 여기 자리 잡자 "
" 아냐, 여기 그늘 지잖아 저기 구름 때문에.. "


그 말이 웃겨서, " 진아 지금 계속 걷는게 구름 피하려고 그런거야? 야 한 10킬로는 걸어야겠다 ㅋㅋㅋㅋ "
그러자 모두 빵터져서, 우린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애들이 자리를 깔았다. 쌀쌀하다.  물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 쌀쌀함.  과연 들어갈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우린 드디어 입수를 했다. 



 아.........대박
 초모리리에서 들어갔을 때 만큼 추웠다.

 하지만 비교가 안됐다.   판공초에 완전히 몸을 담갔다는 사실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끝이 없을 것 같은 푸른 호수  나를 둘러싼 거대한 산맥들.  정말 감동이었다.








 우린 신나서 사진 찍고, 오들오들 떨면서도 한참을 물에서 놀았다.  너무 신나 손녀딸을 안고 팔짝팔짝 뛰고 싶을 정도였다.



 밖으로 나오니 덜덜덜덜 온 몸이 얼어 붙는 느낌.  적응이 될 법도 한데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찬물이다.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몸에서 열도 나지 않는다.  밖에 자리 깔아놓은데서 앉아서 쉬면서 우리는 완전 달달한 꿀 멜론도 잘라서 먹고, 네스카페 캔커피 한잔도 하면서 판공초를 맘껏 즐겼다. 그리고 오후의 햇빛이 지나고 어느새 하늘의 구름이 깔리기 시작한다.  뒷정리를 하고 우리는 벌벌 떨며 숙소로 와서 옷갈아 입고 쉬는데 할매가 따뜻한 차를 내다준다. 







방에서 쏘세지가 일기를 쓰면서 푹 쉬고 있다. 같이 못놀아 아쉽다고 하니 괜찮다고 한다. 자긴 갔어도 물에 안들어갔을 거라며.. 쉬고 있으니  할배랑 할매랑 밥먹으라고 하는데  난 그 사이에 아까 남긴 스파게티를 줏어먹었더니 배가 그리 고프지 않고, 애들도 그렇다고 해서 좀 이따 먹는다고 얘기를 하고는 우린 쉬면서 각자 할일을 했다. 난 일기 쓰고, 짐정리도 좀 해놨다. 



그렇게 서로 짐정리하고 이것저것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까 판공초에 들어갔던게 이유인지, 도무지 몸이 따뜻해지지 않는다. 고도가 높아서 그런건지  몸이 계속 얼음장 같다.  분명 방안은 아늑하고 좋은데 몸이 너무 찼다. 그렇게 이야기도 나누고 노닥거리다보니 어느새 어두워지고 저녁시간이 되었다. 저녁은 또 이 집에서 우리 방에 차려주기 시작하는데 오늘은 밥하고 반찬이었다.  풍성한 밥상. 인심이 느껴진다. 초모리리 씨발것들에 비하면 여긴 날개를 달고 날라갈 판이다.  게다가 우리도 남은 음식재료들이 많아 햄도 굽고 해서 진수성찬을 차렸다 그리고 이 집 손주인지, 승려복장을 한 녀석이 나타나 밥을 가져다 주고 물도 챙겨다 주면서 말을 건네는데 아주 조금 영어를 하는데, 오늘 아주 큰 스님이 왔었다며 행사 끝나고 집에 온 거라고, 그러면서 우리에게 호기심을 보이며 말을 건넨다. 


그리고 아버지인듯 보이는 장년의 남자가 방해하지 말라고 하는 듯, 녀석을 데리고 나가고 우린 아늑하게 저녁 밥을 먹기 시작하는데 완전 꿀맛이다.  낮에 파스타 만들고 남긴 야채와 그 수의 덴마크 햄으로 맛있게 배터지게 밥을 먹고, 술 한잔.  



아까 구름이 심상치 않았는데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비오는 날을 좋아하는 나로선, 창 밖으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너무 좋았고, 그 비가 떨어지는 느낌이 좋았다. 방은 아늑하고, 고요하고, 창 밖의 빗소리는 나는데 훈훈하고. 너무너무 행복했다.   맥주 한잔 나누며, 스리나가르에 대해 더 이야기하는데 역시 내일 레로 돌아가자마자 스리나가르 행 지프가 있다면 곧바로 타고 이동을 하자고 입을 모으고, 우린 드디어 4명이서 스리나가르까지 함께 하기로 했다.  4명이서 완전 아삼육이 되어서 척척 손발이 맞고 코드도 맞고. 서로에 대한 얘기도 진지하게 나누며 오손도손 너무나 즐거운 밤이 계속 되었다. 그리고 소주 한잔 하며 오늘의 안줏거리로는 바로 우리의 운전기사 '남걀'



이 얍삽한 새끼가 저녁이 되도 안기어온다. 모두 분노. 


사실 남걀이 계속 여기에 머물었다고 한들 오늘 우리의 일정이나 상태를 고려했을 때 분명 어디론가 가진 않았겠지만, 그건 모를일이고, 게다가 저녁에 무슨 파티를 하자더니 도대체 뭐하자는건지. 일하는 중에 아주 동네와서 쳐놀고 있는게 모두 기분이 나뻤다. 그러던중 양반은 못됐는지 어두운 창 밖으로 빛이 비친다. 그리고 자동차 소리가 들리더니 헤드라이트가 곧 꺼지고 문이 열리고 남걀이 왔다.   남걀은 우리에게 오늘 어땠냐고 안부를 묻더니 우리에게 작은 박스를 건네준다.


 " 치킨을 구하려고 했는데 못구했어, 그래서 이걸 사왔어 " 라고 하는데 그 오뚜기 삼분 카레 같은 거였다.   인도에도 이런게 있구나.


 영어로 써진 설명을 보니 물에 데워서 익히는 정말 딱 오뚜기 삼분 카레 같은 거였는데 어마어마하게 컸다. 양이 1kg이라고 적혀있다. 그리고 또 한마디 한다.
 

 " 나는 내 친구네 집에 좀 잠깐 갔다가 올게 " 라고 말한다. 그리고 남걀은 우리에게 쉬라고 하고 방을 나갔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남걀이 나가고 우리는 다시 또 남걀 뒷담화. 정말 이렇게 불만이 쌓여만 갔다.   그렇게 소주한잔 하며 밤이 깊어가고 우린 슬슬 졸음이 밀려와 잠을 자기 위해서 자리를 잡고 각자 누웠다.  잘려고 누워서도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던 때,


 "앗! " 수가 놀랜다.

 " 형, 물 새요 "
 
 " 난 안새는데... 너네는? "
 " 저희도 안새요 "

 " 야 이쪽으로 와서 자.. "
 이러는데 다른데서도 물이 새는 듯,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처음엔 방 중앙에 있는 탁자로 조금씩 한방울 씩 떨어진다.

 
빈병을 가져다가 받쳐놓고, 누워서 있는데, 수쪽에서 계속 떨어진다.
그러더니 결국 내 자리 바로 옆에서도 물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수의 자리에는 도무지 누울수 없는 상태, 수는 다른 빈 곳으로 자리를 잡고 누웠고, 우린 잠을 청하려 했는데 드디어 나에게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정말 점차 물이 떨어지는 곳도 늘어나고 이미 떨어지는 곳은 점점 졸졸졸 떨어지는 상황. 심각했다. 이건 도무지 그냥 잘래도 잘 수가 없는 수준.  온 방에서 물이 다 새는데 진짜 난리였다.


게다가, 쏘세지가 

" 아 이거 여기 지붕, 소똥말려서 붙여놓은거잖아. 으.... 이 물 방울 전부 소똥타고 내려온거야 "
라고 하는데 정말 찝찝. 난리도 아니었다.


최대한 안떨어지는 곳에 붙어서 누워서 자려는데 상황이 심각해졌다. 안되겠다 싶어서 나는 일어나서 옆방에 가서 남걀을 깨워서 조치를 취하려고 옆방에 딱 들어갔는데 옆방문을 열자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여기는 가운데 난로가 있어서 완전 우리방 보다 더 훈훈하다 못해 완전 따뜻! 그리고 남걀은 그 방에 없었다. 방에는 주인집 아저씨와 아들만 있었다.  두 부자는  우리방의 난리와는 다르게 완전 평화롭다. 뭐지? 싶어서 천장을 올려다보니 방수포가 보란듯이 천장에 쳐져 있다.  세상에.



 우리와는 달리 완전 따뜻한 방에서 다들 세상 모르게 자고 있다.  난 다시 우리방으로 건너가 애들한테 옆방가서 자자고 저긴 방수포도 씌어져 있고, 난로 때서 완전 말도 안되게 따뜻하다고 하니 애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기가 막힌듯. 바로 우리방에 비하면 완전 안락한... 우린 그 큰 방에서 곳곳에 자리를 잡고 누워서 잠을 청하는데 완전 아늑. 그렇게 잠을 청했다. 


그렇게 한밤중의 소동이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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