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서블 여행기 #49 [인도/라다크] 환상적인 판공초의 풍경
지독한 비도 그치고, 고요하기만 한 방에서 잠을 깼다. 창 밖으로 여명이 비쳐온다. 푸른빛의 여명. 방안의 훈훈함에 움직이기 싫었으나, 그 공간은 이 집의 거실이며, 부엌이며, 식사하는, 이 집 공간의 중심. 얼른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옷을 챙겨 입고는 담배 한대 피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방에서 나가자 쌀쌀한 기운에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이 놈의 담배가 뭐라고 이렇게 추운데 나가서 한대 펴야 되나 싶지만, 정신을 차려 집의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완전 추운 날씨. 비가 와서 더욱 쌀쌀하다.
기지개를 펴고, 담배 한대를 물고 판공초를 쳐다봤다. 그리고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밤새 온 비로 인해, 운무에 둘러쌓인 판공초와 주변의 산들. 그리고 산꼭대기 부근은 하얗게 눈이 내려 앉아 설산으로 변해 있었다. 전율이 일었다. 미치도록 신비로운 아름다움. 어떤 수사로 이 풍경을 설명 할 수 있을까. 집 뒷쪽으로 있는 산을 쳐다보니 역시 산 꼭대기 부근에 하얗게 눈이 내려 앉아 설산이 되었다. 게다가 그 운무까지 더해져 더욱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어제 낮에 본 풍경과는 또 다른 판공초의 모습. 이렇게 까지 또 나를 감동 시킨다.
담배 한대를 피고 방으로 들어가 애들을 깨우고, 나와서 풍경 좀 보라고 했다.
" 야야. 일어나봐.. "
" ㅇ에.ㅇㄷㅁ너라ㅣㅓ먀ㅐㅕㄷㅈ,ㅇ/.ㅓ "
" 대박 진짜 대박! 밖에 나가서 봐봐 "
애들이 비몽사몽에 나와서 풍경을 보더니 운무에 휩쌓인 그 모습과 설산의 풍경을 보고 넋이 나간 듯 있었다.
판공초를 본 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모두 대충 정신을 차리고,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 집안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어젯밤의 비로 인해, 우리 방에 둔 짐들이 상당수가 조금 젖어 있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남걀을 깨워 자동차 열쇠를 달라고 해서 차 문을 열어 짐을 우리가 다 옮겨 실었다. 그리고 아침을 차려 준다기에 모두 거실로 우르르 가서 앉았다. 그 사이, 남걀은 잠시 또 어디론가 갔다온다며 휙 하고 가버리고, 우리끼리 앉아서 아침을 먹었다. 아침은 어제와 크게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제 정말 판공초의 마지막이다. 이번 여행에서 뜻하지 않게 이렇게 두번째로 왔는데 두번째를 2박 3일로 봤는데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이제 내 평생 정말 이 곳에 또 올일은 없겠지. 짐도 다 꾸리고 아침을 먹기 위해, 거실로 갔다. 할매가 짜파티를 만들고 있다. 반죽을 하고, 둥근 팬을 뒤집어서 불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 잘 펴서 굽고 있다. 할매의 짜파티 만드는 모습을 한참을 구경하는데 할머니 생각이 났다.
저 할머니는 저렇게 몇십년을 이 곳 판공초에 살면서 늘 아침이면 저렇게 익숙하게 짜파티를 만들었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괜시리 할머니가 요리하던 모습이 떠올라져 급속히 우울함에 빠져들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이도 그 때쯤 아침이 나왔다.
아침 밥을 먹고, 좀 쉬고 있으니 남걀이 돌아왔다. 우리는 할배와 할매에게 돈 지불 할 걸 다 페이하고, 그리고 인사를 나누고, 밖으로 나왔다. 할배와 할매는 무심한듯이 우리를 배웅해주는데 할머니가 정말 무표정! ㅋㅋㅋㅋ 정말 이제 내 평생 다시는 오지 못할지도 못 할 이 곳이기에 사진을 찍는다. 할아버지 할머니 만수무강 하세요!
그리고 우린 차에 타려고 하는데 왠 남자하나가 서 있었는데 남걀이 " 내 친군데, 스팡믹까지만 좀 데려다 줄게 " 라고 하면서 소개를 한다. 떠날 시간이 오자, 우중충 했던 하늘은 어느새 평소처럼 푸른하늘이 되고, 그 빛을 반사한 판공초 역시 푸르게 빛이 났다. 맑은 햇살과 그 빛을 반사해 푸르른빛을 띠는 신비한 호수의 모습. 정말 안녕!
우리는 지프를 타고 이제 되돌아 가는 길, 남걀의 친구가 뒷좌석에 낑겨서 앉았고, 뒤에서 애들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남걀을 이대로 두면 안된다고, 레에 돌아가면 꼭 강용해 사장한테 이야기를 하겠다고 벼른다. 참 신기한게 사람이 말이 안통해도 다 느껴지는지 이때 부터 남걀은 온갖 눈치를 보며 이번 여행 만족했냐고 계속 묻는데 웃겼다. 그리고 어느 덧 스팡믹에 도착해서 친구를 내려주고 돌아가는길.
진이와 수를 위해서 세얼간이를 촬영한 슈팅포인트에 가자고 하자, 남걀은 말 없이 그리로 차를 몬다. 다시 또 오게 된 슈팅포인트.
인도영화 '세얼간이'의 마지막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그 환상적인 풍경. 진이와 수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사실 이보다 훨씬 안쪽의 마을들이 이쁘긴 하지만 또 영화촬영지라는 상징적인 면 때문에 이 곳을 지나칠 수는 없을터, 우리는 즐겁게 사진찍고 웃고 떠들며 장난을 쳤다. 일주일 사이에 두번이나 온 판공초, 이제 정말 판공초 안녕!
한참 웃고 떠들고 지프에 다시 올라, 판공초를 떠나는데 높은 언덕을 굽이굽이 달려 떠난다. 올라가면 올라 갈 수록, 달려가면 달려갈 수록 판공초의 모습이 점점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멀어지기 시작한다. 늘 그래왔듯이 무심한듯 푸르게 빛나는 저 호수. 내 인생에 혹시 다시 이 곳에 언젠가 오게 되더라도 여전히 그렇게 빛이 나고 있으리라... 눈물이 흐른다.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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