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호주 워킹 홀리데이 수기는 시간의 흐름대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한편이 단 몇분에 관한 얘기 일 수도 있고, 몇 달에 관한 얘기 일 수도 있습니다. 개별 에피소드 별로 보시는 것 보다 처음 부터 차례대로 보시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습니다. 그리고 수기 몇편에 한번씩 Extra편에는 각종 호주 생활 관련, 준비관련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재밌게 읽으시고,호주 생활,워킹홀리데이 관련 질문은 언제나 리플로 달아주시면 확인 즉시 답변 드리겠습니다. 이 수기의 처음부터 읽으실 분은 클릭하세요! 호주 워킹 홀리데이 첫편보기!


 26. 세상 밖으로 카나본으로


  드디어 날이 밝았다. 떠나는 날 아침.

  아침부터 부리나케 준비를 시작했다. 박스들을 옮기고, 무거운 짐들을 전날에 옮겨둔 터라, 냉장고에 얼려두었던 것들이나, 냉동식품, 냉장해야되는 김치등 냉장고에 있던 것과 아이스박스만 옮겼다. 그리고 방도 비워야 했기에 방안을 샅샅이 몇번을 훑어본후에야 방을 나설수 있었다. 집주인이 마지막 인스펙션 차 방을 들어온다. 뭔가 꼬투리 잡을 것은 없나 하는 표정으로 살펴보더니 이불과 베게를 빨지 않았다고 난리를 친다.


 빨래 일주일에 두번 이상했다고 며칠전에 난리 친터라 우리 빨래도 못해서 가져가는 마당에 왠 이불과 베게. 나에게 따지듯이 " 이건 기본 아닙니까, 다른 쉐어하우스는 이불하고 베게 안빱니까? " 묻길래, 난 경험이 없어서 " 네,  안그러던데요.." 라고 말하자, 난리 브루스를 치며 " 거짓말 하지마세요 제가 렌트 몇년 짼데 그런 쉐어하우스가 어딨습니까? " 라고 말한다. -_-;  씨발 그럴꺼면 왜 물어봐...


 어쨌든 그냥 그쯤에서 그만두고 서로 안보는 마당에 더 다툴필요가 뭐가 있나, 짐을 다챙기고 열쇠를 반납하고 인사를 나눴다. 집주인이 "올라갈때 캥거루 조심하세요" 라고 덕담 한마디를 던진다. 캥거루. 그렇다 이 곳 호주에서는 자나깨나 캥거루 조심. 한국에서 의례 멋으로 Suv에 다는 캥거루 범퍼가 이 곳 호주에서는 나름 필수 아이템. 워낙 야생동물이 많은 탓에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길가에 캥거루 시체가 즐비하고, 여기저기서 캥거루를 박고 차가 반파 되었다는 얘기를 수 없이 많이 들었다. 캥거루 자체가 일단 크기도 크거니와 일단 박으면 차가 완전 앞이 찌끄러지던가 차가 망가진다는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그래서 밤에는 거의 운전을 하지 않는것이 수칙 아닌 수칙. 낮에 빨리 보고 차를 멈출수 있는데 반해, 밤에는 더욱 야생동물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또 급히 대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아파트를 나와 드디어 자동차를 몰고 일단 신이네 집으로 갔다. 신이니 집에 갔더니 모두 출근하고 진방이만 홀로 남아 요리를 하고 있다. 여유있게 요리 하고 있는 진방이의 모습을 보니 어찌나 짜증이 몰려오던지, 졸지에 말도 안되게 큰 차를 사고, 덕분에 권과 나의 소지금은 둘이 합쳐 채 300불 정도. 이정도면 둘이 최소한 1주일안에 무조건 잡을 구해야 되는 압박감. 좀 짜증이 났지만 이미 상황 종료. 좋게 생각하기로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잠시 차를 세워두고 퍼스시티로 나갔다.


 이유는 며칠전에 유학원에 부탁해놓은 면허증 공증 문제. 지난주 금요일이면 된다던 면허증 공증은 되지도 않았다. 그나마도 자리를 비운상황, 전화도 받지 않는다. 공증을 했으면 했다라고 연락을 줘야할텐데 연락이 안온다. 퍼참에 스폰서를 하는 유학원이었는데 개 좆같다. 결국 공증도 받지 못하고 시간에 쫒겨 올라가게 생겼다. 마지막으로 퍼스시티를 권과 거닐다 그랜다로우로 돌아와 차를 몰고 드디어 출발. 이제 진짜 출발이다.





중간에 사막에서 똥싸고 불지를 목부러진 기타





 카나본까지의 길은 구글맵으로 프린트를 해서 몇번이고 숙지를 해놨는데 고비가 joondalup준달업쯤에서 고속도로로 빠져나갈때 일 거란 생각을 했다. 고속도로를 타느라 몇번을 꺾어야 했기에 자칫 잘못하면 준달업에서 헤매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옆에서 권이 긴장을 타며 인간네비 역활을 하기로 하고 트렁크며 차 뒷자석까지 가득 채운 짐. 설레였다.


 다행이도 쉽게 간선도로 같은 도로를 빠져나와 퍼스 북부의 준달업에 도착했는데 예상대로 이 곳에서 연달아 꺾는 부분에서 한번 꺾지 못해 길을 헤매게 되었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준달업을 이리저리 헤매며 준달업을 구경하게되었다. 그나저나 안그래도 운전도 서툰데, 고속도로 타야하는 길을 도저히 못찾겠어서 이대로 퍼스로 다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지도를 보며 다시 와야하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차를 한적한 주택가에 세우고 지도를 폈다. 다행이도 가지고 있던 Perth 맵에 준달업도 조금 나와있어 구글맵과 매치하며 현재 위치를 파악하고 어떻게 가야지 고속도로를 타는 길로 갈 수 있는 지 연구했다. 헤맨지 약 1시간이 경과했을까 드디어 길을 파악했다. 다시 힘을 내서 출발. 다행이도 이번에는 제대로 길을 들어섰다. 이제부터 고속도로로 접어들었기에 더이상 길을 헤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너무 좋았다. 게다가 준달업을 빠져나오자 이제껏 호주에서 머물면서 느끼지 못한 야생을 느낄 수 있었다.


 쭉쭉 뻗은 도로와 평원.










 권과 나는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너무 좋아서 소리를 질렀다. 정말 고속도로 양 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 양과 소떼들이 돌아다니고, 캥거루를 조심하라는 호주 특유의 캥거루 표지판들이 나타나며 들뜬 마음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정말 이 순간, 딱 준달업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타던 그 순간은 아마 호주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짜릿한 순간 베스트 3안에 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짜릿했다.


 고속도를 한참을 지나며 눈에 많이 익은 유명 농장지대인 Gin Gin도 지나치며, ' 아 농장지대가 이렇구나 ' 하는 생각도 해보며 가속페달을 밟아댔다. 우리는 올라가던 중에 중간에 유명한 남붕 국립공원에 들리기로했다. 남붕 국립 공원이란 이름 말고도 피나클이란 이름으로도 유명한데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최근 한국영화 '10억'을 찍었다고 얘기를 들었다. 어쨌든 늦게 출발한 덕택에 한참을 달려 어느새 오후가 되었을 때 쯤 분기점을 맞이했다. 쭉 계속 직진하면 북쪽 카나본으로 향하는 길이고 다른 편 길은 피나클 쪽으로 빠지는 길이었다. 


 근데 이정표가 되있긴 되있는데 이 길이 맞나 싶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참을 그대로 직진했으나 확실히 피나클쪽으로 빠지는길은 처음 봤던 그 분기점이 맞는것 같아 차를 돌려 그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제 피나클로 향하는 길. 서쪽으로 향하다보니 마침 서쪽에 있는 태양때문에 눈이 부셔서 운전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만큼 펼쳐져 있는 풍경도 아름 다워서 천천히 달리며 겸사겸사 중간중간 차를 세워 사진도 찍어가며 쉬엄쉬엄 갔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이제 거의 해가 질 무렵 우리는 피나클로 향하는 마지막 도로에 도착했다. 이제 이 도로를 따라 가면 피나클이다. 솔직히 퍼스에서 올라오면서 캥거루 표지판을 보고, 아 말로만 듣던 캥거루를 이렇게 야생캥거루를 도로에서 보겠구나 생각을 했는데 정작 올라오면서 캥거루를 한번도 못봤는데 이 곳 피나클로 향하는 마지막 도로의 초입에서 캥거루 표지판과 함께 있는 속도 제한 80킬로의 표지판을 보니 갑자기 기대감이 생겼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달리기 시작하는데 도로가에 캥거루가 서 있는 모습을 봤다.

 너무 기뻐서..소리를 지르며 권에게 " 야 봤어? 캥거루 봤어 저기 서있었는데 " 

 권은 울쌍을 지으며 " 난 못봤어 ㅠ,ㅠ" 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피나클 입구까지 가면서 난 3마리 정도의 캥거루를 봤다. 피나클 입구에 들어서니 원래는 바리케이트가 쳐져서 차가 한대씩 들어가게 해놓은듯 했는데 매표소 같은 곳이고 시설이고 모두 문을 닫았고, 바리케이트 문도 활짝 열려져 있어서 들어갈 수 있었다. 보니 이미 문을 닫고, 주차장에는 캠핑카 한 두대만이 서있던 그 순간. 주차장 차를 세우고 걸어서 피나클로 들어갈려는데 안쪽 사막에서 차가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알고보니 이곳 피나클은 직접 차를 몰고 안에를 드라이브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던 것. 완전 신기했다. 부리나케 주차장으로 돌아가 차를 몰고 피나클 안으로 들어왔을때는 이제 해가 완전 지기 일보직전. 









 이제 피나클의 주차장에 조차 어떤 차도 없었고, 단 한명의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것 나름의 매력이라고나 할까, 라이트를 켜고 어두운 사막을 달리는데 캥거루 한마리가 엄청난 속도로 차 앞으로 휙 지나가는거다. 이제서야 처음으로 캥거루를 본 권은 감탄사 연발. 더군다나 멋드러진 사막을 달리며 눈앞에서 차를 가로 질러 뛰어가는 캥거루의 모습이란 기가 막혔다. 피나클 안을 차로 도는 드라이브 코스는 대략 4킬로 정도였는데 한바퀴를 천천히 도는데 조금 무섭기도 했다. 인적하나 없는 곳이라, 만약에 차가 고장나면 어쩌나 하는 것부터 해서 뭔가 나올 것 만 같은 오싹함까지 하지만 다행이도 무사히 한바퀴를 돌아 나와 피나클 주차장에 돌아오니 정말 텅텅 비었다.


 원래는 밤에 운전하지 않을 생각이라, 피나클에 도착해서 밤이 되면 대략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제대로 보고 나가자는 생각이었는데 여기서 하룻밤은 완전 압박감. 그래서 천천히달려서 나가기로 했다. 그렇게 완전히 어두워진 밤, 70킬로미터의 속도로 피나클을 빠져나가는데 정말 이때부터 야생동물들이 미친듯이 출몰했다.


 달리는 차 앞을 마로 가로질러가는 야생동물들. 정말 빨리 달리면 저거 꼼짝없이 치겠구나 싶어 더욱 긴장 타고 있던 찰나 코너를 도는데 엄청난 크기의 캥거루 한마리가 서있었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는데 정말 무슨 드라마에 교통사고 장면처럼 이 자식이 차를 보면서 빤히 가만히 서있는거다. 어디선가 동물이 갑자기 밝은 빛과 그런 상황에 놓이면 몸이 안움직인다고 하더니 정말 이지 이 자식이 그대로 가만히 있는거다. 그리고 이 캥거루를 차가 쳤다. 라고 말하면 블로그가 더 흥미진진해지겠지만 다행이도 70킬로의 속도라 금방 차를 멈출수 있었다. 


 여러번 이런 상황에서 차를 정확하게 멈췄더니 어느새 밤운전에 자만심이 생겨서, 그래 앞에 나타나도 나라면 충분히 멈출수 있어. 라는 위험한 생각을 가지고 어느새 밤운전을 하게 되었다. 다행이도 길이 크게 어렵지 않아서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는 고속도로를 찾아서 달리는 길. 어두운 밤의 고속도로는 거대한 트럭인 로드트레인들만이 점령중이었다.  워낙 땅이 거대한 탓에 불빛이라고는 오로지 자동차의 라이트뿐. 그나마도 차들도 많지도 않아. 지구상에 마치 홀로 달리는 자동차 같은 느낌. 정말 기분 최고였다.


 이런 호주의 드넓은 도로를 달릴 수 있다는 행복감이 너무 좋았다. 정말 떠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달리다 중간에 좀 쉴려고 길가에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려 스트레칭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정말 쏟아질 것 같은 별빛에 깜짝 놀랬다. 인도나 중동의 사막에서 봤던 그러 아름다운 별들을 이 곳 호주에서 볼 줄이야. (개인적으로는 사막이 그래도 더 별빛이 많았던것 같다) 권에게 하늘을 올려다 보라고 말하자 난리난다. 별들이 너무 이쁘다며 난리. 정말 둘이 함께, 퍼스를 떠나오길 잘했다며 행복해 했다. 


 그리고 계속 다시 달리길 몇시간, 이제는 더 달리고 싶어도 몸이 너무 피곤했다. 하루종일 운전을 했더니 몸이 천근만근. 배도 고프고 다음 주유소가 나오면 쉬어야지 했는데 표지판에는 다음주유소 200km 이지랄 하고 있다. 정말 땅덩어리가 넓으니 참... 어쨌든 한참을 달려 이제 드디어 다음 주유소 표지가 나타났는데 계속 봤던 것처럼 달리고 있는 길가 즉 왼쪽 옆으로 주유소가 나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이걸 지나치면 다음 또 마을이나 주유소까지 너무 오래걸릴것 같아. 우회전해서 마을로 들어갔다.


 윌과 한 일주일 전부터 통화할때 윌에게 카나본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또 올라오는 길에 대해 들었었는데 당시 기억으로 " 형 만약에 올라오다가 제랄드톤 이란 동네 오면 반 왔다고 보시면 되요 " 라고 했는데 아직 제랄드톤을 못 본걸 보니 반도 못온듯.. " 저희는 출발하고 당일날 제랄드톤에 도착하니 밤이라 주유소에 차 세워놓고 자고 일어나서 왔어요 " 라고 했는데 우리는 이 이름 모를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되나 싶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주유소도 보이고 어두컴컴한 마을의 모습만이 눈에 들어왔는데 주유소마저 문을 닫고, 유일하게 불빛이 켜진 곳은 펍이었다. 




 

 일단 소변도 해결해야 되서 차를 펍 주차장에 세우고 펍안으로 들어가자, 늙은 주인아저씨만이 별 관심없이 우릴 한번 슥 쳐다보고는 이내 시선을 다시 티비쪽으로 돌린다. 펍 화장실을 이용하고 난 뒤 밥 좀 먹을려고 주차장에서 부르스타를 꺼내 라면을 끓여먹고 아침에 출발할때 챙겨온 찬밥이며 이것저것을 말아먹으며 맥주한잔을 하는데 정말 기분 최고. 너무 맛있고 행복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행의 참맛. 역시 여행자는 여행밥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시계를 보니 겨우 8-9시 정도 됐었는데 몸은 천근만근 다 먹고 차에 다시 올라 각자 시트를 뒤로 재끼고 침낭을 덮었다. 완전 쌀쌀한 날씨. 북쪽으로 올라왔음에도 더 쌀쌀해진 것 같다. 


 그렇게 우리 여행의 첫날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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