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호주 워킹 홀리데이 수기는 시간의 흐름대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한편이 단 몇분에 관한 얘기 일 수도 있고, 몇 달에 관한 얘기 일 수도 있습니다. 개별 에피소드 별로 보시는 것 보다 처음 부터 차례대로 보시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습니다. 그리고 수기 몇편에 한번씩 Extra편에는 각종 호주 생활 관련, 준비관련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재밌게 읽으시고,호주 생활,워킹홀리데이 관련 질문은 언제나 리플로 달아주시면 확인 즉시 답변 드리겠습니다. 이 수기의 처음부터 읽으실 분은 클릭하세요! 호주 워킹 홀리데이 첫편보기!
28. 카나본, 그 시작점에 서서
카나본에 오자마자 다음 날부터 정보를 획득하고 아침에 농장일을 하러 가는 윌과 엑스를 따라 농장지대 쪽으로 차를 운전해서 향했다. 이제 농장지대를 파악했으니 그 다음부터는 일일이 농장을 돌아다니며 연락처를 돌리고 일자리를 찾는 방법 뿐. 차가 있었기에 어느정도 도니 왠만한 농장은 한번씩 다 돌린것 같다. 정말 듣던 대로 베트남 팜이 엄청나게 많았고, 베트남팜은 듣던 대로 시급 12불이란 말도 안되는 시급을 불렀다. 싼 덕분인지 베트남팜은 언제든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말그대로 정말 급할때는 할려면 할 수 있는 곳이 베트남 팜이었던 것이다. 몇곳의 베트남 팜들이 내일부터 당장 시작하라고 했지만 12불이란 돈을 받고 일을 하지 않겠단 생각을 한터라 생각해보겠다고 오히려 이쪽에서 말을 해주곤 농장을 떠났다.
99.99퍼센트에 달하는 농장의 입구마다 NO WORK, NO JOB 문구가 붙어있었지만 당당히 들어가 일일이 연락처를 뿌렸다. 퍼스에서 시티를 돌아다니며 수 많은 문전박대와 거절을 당했던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고 조금 지칠 무렵 쯤 해서 권과 나는 백팩으로 돌아왔다. 이 곳에 낚시가 꽤 괜찮다는 얘기에 우리는 함께 낚시를 가기로 했다. 백팩에는 이미 낚시대가 많았기에 대충 상태 괜찮은 낚시대 두개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미끼를 사야 했는데 어디서 파는지 알수가 없어 일단 상점들이 많이 몰려있는 쪽으로 향해 걷는데 "carnarvon sports"라고 적힌 스포츠용품 파는 곳에 조그맣게 미끼를 판다고 적혀있는것이다.
반갑게 들어가 미끼로 쓸 오징어를 사고 낚시하기 좋다는 제티로 향했다.
여기서 잠깐 제티란?
제티는 먼 옛날 영국식민지 시절부터 배로부터 화물을 육지까지 운송하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 바다 한가운데까지 다리를 놓고 철로를 깔아서 육지까지 쭉 연결 해놓은 걸 말하는데, 지금은 물론 사용되지 않고, 다만 바다 한가운데까지 다리가 설치되어있기 때문에 제티에서 낚시를 하면 바다 한가운데 배를 띄어놓고 낚시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쨌든 낚시대에 미끼를 걸고 굳이 찌를 던질 필요도 없이 그냥 낚시줄을 풀어 제티 밑으로 떨구기만 했는데 물고기들이 미친듯이 달려올라왔다. 워낙 잘 잡히다보니 낚시를 첨 해보는 권은 그만 낚시에 푹 빠져버렸다. 게다가 엄청난 월척까지 낚아올린 권. 우리는 그렇게 카나본에서의 유일한 오락거리 낚시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월척을 안고 백팩으로 돌아와, 물고기를 손질하고 튀겨 먹을 준비를 끝냈다. 물고기 손질은 어제 도착하자마자 사귀 독일인 친구 '듀크'가 알려주었다. 일을 끝내고 저녁에 윌과 엑스가 돌아와 같이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물고기 손질법을 알려준 듀크에게도 저녁식사 초대를 해서 나와 권이 잡은 물고기로 생선구이를 해서 대접했다.
밥을 먹으며 오늘 농장에 갔던 얘기를 하며, 야 진짜 다 no job, no work라고 적혀있더라 사정이 안좋은가봐 라고 말하자. 엑스는 "야. 그런거 적혀있어도 들어가봐 " 라며 나에게 주제넘게 충고를 한다. 기가 막혀서...
뭐 어쨌든 간에 그렇게 아침이면 농장을 돌고, 쉬고를 반복하길 약 3일,
그 동안 제법, 카나본의 지리도 익히고, 또 많은 정보들을 들었다. 카나본에서 최고의 잡은 공장일이었는데 카나본에 3대 공장이라 할 수 있는 시푸드공장,바나나공장,토마토 공장 3개가 있었는데 그나마 시푸드는 사람을 안뽑는다고 했다, 오히려 최근에 일하던 수십명이 짤렸다고 말을 들었다. 한마디로 현재 시푸드는 들어가기 불가능한 곳. 그렇게 나와 권은 바나나공장,토마토 공장에 이름을 올렸다. 공장에도 이름을 올리고, 농장들마다 연락처를 돌렸다.
공장이 되면 가장 좋은 것이고, 두번째는 이제 곧 보름달이 뜨면 카나본 항에 배들이 들어오는데 배에서 물건을 나르는 일이 있는데 이게 시급이 무려 50불정도 돼는 일인데 비록 일주일 정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시급이 워낙좋아서 경쟁이 치열하다고 하는 것이다. 배 하나에 대략 두세시간 정도 일하는데 일은 힘들지만 정말 괜찮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렇게 카나본에서 구직활동을 제대로 하고 있을때였다.
마침 윌과 엑스 역시 원래 하고 있던 농장일이 끝이 났다. 둘다 쉬지 않고 일해서 돈 좀 벌었다며, 비록 농장일은 끝났지만 좀 쉰다고 느긋하게 있는거다. 나는 이제 막 올라와 수중에 돈도 없었던 때라 그들이 참 부러운 순간이었다. 매일 저녁 6시마다 카나본 백팩에서는 리셉션에 가면 Job을 소개시켜주기에 6시마다 리렙션앞에 백팩커들이 줄을 서는데 윌과 엑스는 나에게 약간 재듯이 자기네는 쉬지 않고 2주정도 일했기 때문에 쉴거라며 일에 관심이 없다며 가지 않는 다기에 나 홀로 리셉션으로 갔다. 하지만 그 날 역시 지난 몇일 처럼 잡이 없었다. 다행이도 경쟁력이 라면 경쟁력인게 대다수의 백팩커들이 차가 없었는데 차가 있는 백패커들이 몇 안됐기에 우선순위에는 항상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날도 자포자기하고 쉬고 있었다.
그리고 밤 쯤, 카나본 백팩의 사장, 여주인인 캐시가 방으로 찾아왔다.
농장일이 있는데 내일 부터 시작이라며 두명이 필요하다고 하는거다. 나는 너무나 급한 나머지 캐시가 들어와 말을 떼기가 무섭게 내가 하겠다며 얘기했고, 캐시는 우리들을 슥 한번 보더니 약도를 문과 가까이에 있던 윌에게 건네 주었다.
나는 윌과 엑스가 몇일간은 쉴려고 일할 마음이 없다고 했기에 별 생각안하고 나하고 둘중에 누가가지 라며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정말 순진한 생각이었다. 2주간 쉬지 않고 일을 했기에 쉰다던 윌과 엑스는 갑자기 자기네도 일을 하겠다고 하는거다. 정말 기가 막혀서 말이 안나왔다. " 야 나 정말 방값 낼 돈이 급하다. 권껏도 내야되는데 한자리는 내가 할게 내가 제일 먼저 한다고 말했잖아 "
라고 말하자, 엑스는 정말 어이 없게 윌에게 " 야 약도는 우리가 가지고 있으니까 잘 숨겨 " 이 지랄을 하는거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나마 윌이 " 형 그럼 가위바위보로 정해요 " 라고 말하는거다. 낮에 까지만 해도 시건방들을 떨며 몇일간은 일을 구하지 않을거란 녀석들이 갑자기 이렇게 나오니 참 서운하기도 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런 놈들을 믿고 이 카나본으로 왔다는게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순간 너무 아니꼽고 치사해서, " 에이 씨발, 니네 둘이 가라. 난 안갈란다 " 라고 말을 하고 침대에 누웠다.
한참이 지났을까, 둘 다 미안했는지, 둘 중 누가 가느니 마느니 얘기를 하다, 윌이 가기로 하고 그렇게 나에게 나머지 한자리가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기분은 상하고, 참 착잡한 심정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드디어 첫 농장일이 시작 되었다. 윌의 차를 타고 농장으로 향했다.
이미 농장일은 선배인 윌인지라, 윌이 필요한 물건들을 다 일러주고 해서 준비물이나 점심, 물등을 꼼꼼하게 잘 챙겨왔는데 조금 긴장되었다. 농장에 잘 찾아 온듯한데 농장주인이 안보여 전화를 하려고 하니 농장주인이 나타난다. 다행이도 베트남인이 아니라 호주인이었다. 시급이 최소 15불 이상은 되겠구나 생각을 했다. 이름을 물어보거나, 시급 얘기를 나누거나 할 줄 알았는데 보자마자 따라오라며 밭으로 우릴 데려갔다. 어쨌든 우리가 할 일은 밭에 콩을 심는 일이었다. 일명 seeding이었다. 씨를 뿌리는게 아니라 흙을 파고 씨를 뿌리고 다시 흙을 덮어줘야 되는 일이었다.
일단 아직 아침인지라 날씨가 그리 덥지 않아, 서둘러 일을 시작했는데 점점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햇볕의 강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말로만 듣던 엄청난 파리떼들, 정말 호주영어 특유의 우물거림이 입에 파리가 안들어가게 말하려고 생겨났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솔직히 그 말을 들었을 때, 웃자고 하는 얘긴줄 알았는데 정말 이런 파리떼는 처음이었다. 호주 파리들은 정말 얼굴주위를 엄청나게 집중공략하는데 그나마도 손짓같은걸 해도 꿈쩍도 안한다. 정말 파리 중에 가장 짜증 파리가 호주 파리가 아닌가 싶다.
어쨌든 그래도 윌이 퍼스에서 올라 올때 농장준비를 잘해서, 퍼스에서 이미 구입해가지고 온 파리망 모자가 있어서 그걸 덮어 썼다. 모자에 망이 달려있어서 파리를 피할수 있는 물건인데, 정말 호주 농장의 필수 품목. 어쨌든 땅바닥에 쭈그려 계속 씨를 심다보니 정말 빡쎘다. 윌이 말하길 자기가 했던 농장일들 중 빡세기가 거의 top이라고 하는 말에 어느정도 위안이 되었다. 만약에 쉬운일인데 이토록 힘들었다면 자신감 상실이었을텐데 그래도 힘든 일이 맞다는 말이 큰 힘이 되었다.
그렇게 하루종일 큰 밭에서 달랑 둘이서 씨를 뿌리고 어느새 오후가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농장은 뭔가 대규모로 수십명이 동시에 착착 일을 하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정말 카나본이 사정도 안좋고 좆같은게 맞는게 그렇게 수십명에서 오랜기간동안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거의 단기로 끝나는 일이었다. 결국 이 일을 몇일을 할지 오늘 달랑 하루를 하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다행이도 농장주인이 내일 아침에도 또 오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을 마음에 들게 했으니 또 오라는거겠지?, 일단 내일까지 일하면 나와 권 둘의 방값은 벌겠다는 생각에 기뻤다.
저녁에 윌은 너무 힘들어서 일을 못하겠다며, 일을 다른 친구에게 넘겨주었다. 역시 백팩에 있던 벤이라는 다른 한국애였는데, 역시나 일에 굶주려있는 백패커인지라 흔쾌히 오케이 하고 벤과 다음날 농장으로 내 차를 타고 갔다. 농장 주인은 벤을 보더니 왜 사람이 바뀌었냐고 묻는데, 어제 왔던 애가 아파서 다른 사람이 왔다고 말하자, 상관없다는 듯이 또 우릴 밭으로 데려간다. 오늘 할 일은 고추 밭에서 수확하기 전에 꽂아둔 장대나, 철사등을 걷는 일이었는데 일단 중간중간 꽂혀있는 장대들을 고정하는 바인더를 잘라내고, 장대를 뽑고, 고추줄기가 타고 자랄수 있게 설치해놓은 줄을 걷고, 또 땅바닥 깊숙히 박혀있는 쇠막대기를 뽑는 일이었는데 어제의 씨뿌리는 일보다는 쉬웠다. 씨뿌리는 일은 계속 땅바닥에 쭈그려 있어야 했기에 힘들었는데 힘은 써도 그래도 서서 하는 일이라 훨씬 나았다.
아침일찍 부터 시작한 일이 어느새 1시경이 됐을까, 점심을 먹을려고 하자, 농장주인이 일이 다 끝났다며 집으로 가라는거다. 이제 페이를 받으려고 있으니 농장주인이 돈을 주는데 내가 대략 계속한 돈에 한참 못미치는 돈이었다. 난 순간 얘가 왜 오늘껏만 주지? 이런 생각을 했는데 알고보니 이틀치 돈이었다. 너무 황당했다. 내가 너무 어이 없단 표정으로 손바닥에 돈을 올려놓은채 농장주인을 쳐다보니, 농장주인은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묻는다.
" 돈이 너무 적다... 시급 얼마로 계산했냐? "
" 얼마를 원하냐? " 묻길래, 난 그래도 카나본에서 오지팜(호주인이 운영하는 농장)의 거의 최저시급인 15불정도는 받아야 되지 않냐는 생각에
" 1시간에 15불 정도를 받고 싶다 "라고 얘기하자 농장주인은 갑자기 화를 내며
" 너네 어제 일한거 나는 두시간이면 다한다, 너네는 너무 시간이 오래걸렸다, 나는 그래서 시급 10불로 계산을 했다 " 라며 얘기하는데 정말 어이가 없었다.
10불이면,, 그 흔한 쉽게 언제든 일을 시작할수 있는 베트남팜 시급 12불에도 못미치는 돈이었다. 정말이지... 이 곳 카나본이 얼마나 법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인가 깨닫는 순간이었다. 정말 퍼스에서 듣던대로 무법천지였다. WA주(western australia주) 최저시급 17불은 이 곳 카나본에서 지켜지지 않는 룰이란걸 깨달았다. 아니 이미 알고 있음에도 몸소 겪은 것이었다. 오늘 일하로 오지 않은 윌에게 어제 일한 돈을 건네줘야되는데 옆에 벤이 있어서 얼마나 안심이었는지 몰랐다. 아마 벤이 없고 나혼자 오늘 일하고 이 돈을 윌에게 건네줬더라면 윌은 내가 돈을 떼어먹었다고 생각할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말도 안되는 페이였다.
그렇게 나의 첫 농장일은 시급 10불짜리, 하루 반을 일하고 끝이 났다.
백팩으로 돌아오니 권이 왜이렇게 일찍 왔냐고 얘기하는데 어이 없어서 웃음만 나왔다. 둘의 방값은 커녕 나 혼자 1주일치 방값을 겨우 채웠다.
망연자실하며 싸갔던 점심 도시락을 혼자 먹고 있노라니 참 서러웠다. 그리고 저녁 때가 되었다. 캐시가 종이를 들고 방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내일부터 시작되는 하버(Harbour)일을 할 사람을 뽑기 위해서였는데 몇일전에 내가 가장 첫번째로 이름을 올릴 덕택에 캐시가 날 찾아와 확인을 했다. 역시 가장 첫번째로 다른 사람들은 아침 10시경 가는 하버일을 7시 30분에 가기로 했다. 일 할 사람을 확인하는 한편 가는 순서를 정하는 거였는데 윌과 엑스는 순서가 9-10번째 정도 됐는데 같은 방을 써서 그런지 나와 함께 아침 7시 30분정도 순서로 배정해주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났다. 나는 개인적으로 차를 타고 항구로 향할 줄 알았는데 픽업차량이 왔다. 처음으로 가는 사람들은 나, 엑스, 윌, 독일인 한명 이렇게 4명이었는데 차를 타고 도착한 항구에는 어선들이 이미 많이 도착해 있었는데, 우리가 할 일은 냉동창고에서 새우등의 시푸드 박스를 나르는 일이었다. 윌은 감기에 걸려서 몸이 안좋다고 도저히 일을 못하겠다며 잠깐 대기 하는 사이에 혼자 걸어서 백팩으로 돌아갔고, 나와 엑스가 같은 배에서 일하게 되었다. 일단 냉동창고에서부터 끌어올릴 장비들을 설치하고 우리에게 방한복을 건네줬다. 두꺼운 방한복에, 장갑, 그리고 얼굴 전체를 덮는 니트모자까지. 완벽하게 옷을 갖춰입고 배밑에 냉동창고로 내려갔다.
영하 20도를 넘어 거의 30도 정도 되는 냉동창고는 그 두꺼운 방한복을 입고도 오한이 밀려들어왔다. 얼마나 추웠는지 이내 얼굴을 덮어서 눈만 내놓은 니트 모자를 썼음에도 눈썹이 하얗게 얼었다. 그렇게 드디어 일을 시작하는데 대략 15-20킬로 되는 박스를 옮겨야 했다. 냉동창고에 한가득 차있는 박스들.. 춥고, 방한복때문에 몸은 움직이기 힘들고, 박스는 꽝꽝얼어서 마치 돌덩어리 같고, 정말 힘든 일이었다. 어느새 그 추운곳에서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고, 같이 일하는 한 선원은 더운지 방한복을 벗고, 나시만 입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쉴새 없이 박스를 옮기는데 정말 힘들었다. 30초만 쉬었으면 좋겠다른 생각을 수없이 했지만 끝없이 옮겨지는 박스. 약 3시간을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어느새 그 많은 박스를 다 옮겼다. 지금 우리가 몇개의 박스를 옮겼냐고 묻자, 선원은 " 2000개" 라고 말을 한다. 3시간이 좀 못돼는 시간 동안 단 10초도 쉬지 못하고 박스를 옮긴것이다.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일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자 한낮의 따사로운 햇빛이 비추는데 너무나 따사로왔다. 담배한대를 물고 쉬다보니 2차로 일할 백패커들이 도착해서 대기 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다가와 " 일이 어때? " 라는 물음에 웃음만 지었다.
그 와중에 한 남자가 다가와, " 2시간에 100불을 줄테니 일 할래? " 라고 묻는 말에 " 이제 막 일을 끝내서 안할거다 " 라고 말했는데 정말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페이를 받고 백팩으로 돌아와 쉬는데 항구에서 봤던 남자가 백팩까지 쫒아와, 일 할 사람이 없어서 그러는데 돈을 더 줄테니 해라 라고 말했지만, 정말 이지 너무 하고 싶었다. 너무나 돈이 급했기에 하고 싶었지만 정말 때려죽여도 못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겁이 날 지경이었다. 다시 냉동창고에 들어가 쉬지 않고 두시간동안 할 자신이 없었다. 엑스 역시, 정말 절대 못하겠다며 거절을 하고 그렇게 단 3시간만에 하버일의 혹독함을 깨달았다.
그래도 짧은 시간동안 100불이상을 벌었기에 나름 만족하며 쉬고 있을 때였다. 캐시가 나와 엑스에게 왔다. 일자리가 있는데 하지 않겠냐는 말에, 둘다 동시에 " 오늘은 절대 못한다 " 라고 말하자, 캐시는 웃으며 " 오늘은 일 안하고 그냥 인터뷰만 하고 아마 내일 부터 일을 시작할 것다 " 라고 말하는거다. " 무슨일이냐? " 라고 되묻자, " 하버 일" 이라고 하는거다.
근데 이게 하루하고 그만두는게 아니라 한 일주일 정도 쭉 하는 일이라고 하는데 정말 머리속에 오만 잡생각이 다 들었다. 이걸 일주일을 한다고? ...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을 생각하면 이 악물고 해야했다. 다만 오늘부터 일 시작이 아님을 고맙게 여길뿐. 그렇게 엑스와 나는 캐시차를 타고 다시 하버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아까 일한 항구와 다른 곳이었는데 회사였다. 그 곳에서 슈퍼바이저를 만나고 서류를 갖추어서 한시간후에 다시 오라는 얘기를 들었다. 아까처럼 그냥 잡부처럼 일하는게 아니라 회사에 소속된 배에서 물건을 나르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렇게 나와 nor-west seafood는 만나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시푸드, 다만 공장이 아니라 하버일이었지만 이 곳에 일하게 되 기쁜맘으로 여권이며 서류들을 준비해서 다시 시푸드 하버로 향했다. 그리고 서류작성을 하고 약간의 인터뷰를 하고 나서 돌아가려던 엑스와 나, 하지만 슈퍼바이저는 장갑을 건네주며 우릴 따라오라고 했다. 젠장. 지금 당장부터 일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정말 끔찍한 순간이었다. 지금 둘다 팔이 너무아파서, 환장하려는 찰나였는데 둘다 얼어 붙었다. 하지만 다행이도 우리가 할 일은 배에서 이미 옮긴 시푸드 박스들을 정리 하는 일이었다. 아침의 냉동창고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 일은 일같지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였다.
둘다 완전 행복 그자체, 이 정도면 일주일이 아니라 한달도 하겠다며 행복해했다.
우리가 일하는 곳은 일명 "top 탑"이라고 불리우는 곳인데, 배에서 나온 시푸드박스들은 이 곳으로 컨베어 벨트를 타고 오는데 벨트를 타고 온 박스들을 바닥에 놓인 지게차용 나무판(팔레트)에 쌓는 일이었다. 근데 그곳에서 한 동양남자가 시푸드 공장 유니폼을 입고 일하고 있길래 말을 건네니 한국사람이었다. 원래 공장에서 일하는데 이곳 하버로 잠깐 차출 나왔다고 하는것이다. 두명이 왔는데 한명은 지금 저기 배안에 냉동창고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마 일주일 일하면서 냉동창고에 들어갈 것이라고 얘기한 그 남자의 말에 나와 엑스는 아연실색.
이 일만 하는게 아니라 결국 내일이든 언제든 이번주 안으로 냉동창고를 또 들어가는구나 라는 사실에 경악했다.
어쨌든 그래도 다행이도 그날은 탑에서 일하며 나름 휴식아닌 휴식을 취할수 있었다. 그리고 시푸드 공장에 한국사람들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조금씩 희망을 가지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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