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호주 워킹 홀리데이 수기는 시간의 흐름대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한편이 단 몇분에 관한 얘기 일 수도 있고, 몇 달에 관한 얘기 일 수도 있습니다. 개별 에피소드 별로 보시는 것 보다 처음 부터 차례대로 보시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습니다. 그리고 수기 몇편에 한번씩 Extra편에는 각종 호주 생활 관련, 준비관련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재밌게 읽으시고,호주 생활,워킹홀리데이 관련 질문은 언제나 리플로 달아주시면 확인 즉시 답변 드리겠습니다. 이 수기의 처음부터 읽으실 분은 클릭하세요! 호주 워킹 홀리데이 첫편보기!
골든 에그 팜에 취직이 되면 일을 시작하게 된 나와는 달리 애플은 일을 구하지 못한 채로 나의 취직결정으로 퍼스에 함께 머물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애플이 일을 못구했으니 그냥 골든에그팜이고 나발이고 함께 일을 구할수 있는 남쪽 농장쪽으로 내려갔어야 했으나 그토록 원하던 퍼스에서의 공장일이라 참으로 많은 갈등 끝에 일단 퍼스에 머물어 보기로 했다. 퍼스에서 구직이 너무나 힘들다는걸 알기 때문에 걱정 되었지만 그 보다 더 큰 걱정은 애플이 그다지 독립적인 여자가 아니라는게 더 걱정이었다. 말그대로 나와 함께 일을 구하러 다니거나 한다면 별 걱정은 없지만 만약에 혼자 내버려둔다면 아무것도 안할꺼라는게 눈에 뻔히 보이는 상황. 너무나 뻔한 상황이라 걱정은 곧 현실이 되었다.
일의 시작은 내가 골든 에그 팜 취직 결정이 돼었을때 부터 시작된다.
"이제 퍼스에서 정착하기로 했으니, 너도 빨리 일 알아봐야지 " 라고 얘기를 하면서 맨 처음 시작 된 대화.
퍼스에서의 구직이 힘들 다는 걸 잘 알기에 크게 닥달하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한국인 잡을 하길 원치 않은 상황. 당시에는 퍼스에서 공장을 다니며 정착하게 된 사실만으로 그저 좋았던 때 인듯 했다. 그러던중, 당시에 퍼스에 있던 리오가 일을 몇달째 못구하고 놀고 있던 중에 곧 카나본으로 돌아간다고 했었던 때. 술자리에서 리오에게 " 너 차도 있고 여기저기 공장이나 에이전시 위치 아니까 애플 좀 데리고 어플라이 좀 해줘라 " 라고 말하자 리오가 흔쾌히 수락했었다.
하지만 문제는 애플이었다.
사교성 없기로는 70억분의 1이라고 생각되는 애플, 남에게 싫은 소리 듣는거는 커녕 싫은 소리 하기를 죽기 보다 싫어하는 애플은 " 리오가 도와준다니까 리오 카나본 올라가기 전에 같이 다 어플라이 해놔, 난 일하니까 같이 못다니잖아 " 라고 말하자 마자. 숨도 안쉬고 " 싫어! " 라고 한마디 했다. 도대체가.. 왜 싫은가에 대한 언급조차 없이 일언지하 " 싫어 " 그 한마디가 뇌리에 박혀버렸다.
그렇다고 애플이 스스로 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말그대로 구직의사 제로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어떤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버는 돈이 있으니 생활이 충분히 가능했다. 다만 문제는 세이브였다. 여기서만 딱 살고 말것도 아니고 이 다음 이후의 계획들이 있는데 그 모든게 점점 불투명해지는 시간들이 시작 되었다. 돈 좀 아껴야 겠다고 해도 죽어도 비싼 담배를 사서 펴야 되고, 집에서 매일 가만히 뒹굴뒹굴 하니 살은 점점 쪄가고 일이 끝나고 집에 오면 언제나 침대에 퍼질러 누워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정말 그럼에도 처음에는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 한국인 잡 할려고 하지마 차라리 그냥 놀아 " 라고 말했을 정도. 게다가 노력한다고 되는것도 아니고 누구보다 퍼스에서 구직이 인맥중심이란걸 잘 알고 있었고 또 마침 계란공장에 다니고 있는 진방이가 2월까지 일하면 6개월을 채우기 때문에 더이상 일을 할수 없어서 진방이가 "언니 2월에 저 끝나면 언니가 일해요 " 라고 말해놓은 상황이라 별로 급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다만 진심으로 어차피 구직활동도 안할꺼라면 나가서 사람들도 좀 만나고 놀고 나가서 밥도 좀 사먹고 하라고 얘기해도 사교성 제로의 애플이 그럴리 만무. " 난 집에서 이러고 있는게 젤 좋아 " 라고 한마디로 응축. 참 나도 속도 좋지 공장가서 쎄빠지게 벌고 그 돈으로 놀고 있는 여자친구에게 나가서 맛난거 사먹으라고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내 자신도 좀 깜짝 놀랐다.
그리고 드디어 2월말까지 애플은 그 이전까지 합쳐서 몇달간을 놀았고, 드디어 진방이가 일을 넘겨주기로 한지 얼마 안된 시점에서였다. 아... 진방이한테 또 뒷통수를......
" 퍼스, 이제 너무 지겨워요 빨리 다른데 가고 싶어요 "
" 이거 계란공장 끝나면 농장이나 갈려구요 "
" 저 끝나면 언니 꽂아줄게요 " 라고 말했던 진방이가 가라로 딴 쎄컨을 이용해 갑자기 맘을 바꿔 계란 공장에서 일을 하겠다고 나선것이다. 결국 붕뜬 애플. 이거 하나만 바라보고 아무것도 안했던 애플로서는 갑자기 당황스러운 순간이었고 나 또한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던 순간.
웃긴건 공장에서 진방이가 공장에서 6개월을 일했는데 세컨 딸 3달여의 시간이 충분치 않다고 느껴졌는지 (당연히 가라로 땄는데..) 폼 제출을 요구했고, 가라로 땄기 때문에 폼이 없었던 진방이는 결국 모양새 안좋게 그만두게 되었다. 차라리 그냥 쿨하게 애플 꽂아주고 나갔더라면 생색이라도 내련만 그것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그만두면서 그나마도 자기 친구 꽂아준다는 얘기도 안해주고 나간것이다.
어쨌든 덕분에 갑자기 긴장타게 된 애플과 나. 더군다나 당시에 시드니를 가야했던 나로서는 비행기 값이며 이런저런 또 목돈이 드는 턱에 재정상으로 좀 짜증나는 상황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조차 애플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쩌다가 푸념으로 " 야, 내가 너 터치 심심하지 말라고 사줬지 그것만 붙잡고 있으라고 사준것도 아니잖아 " 라고 말하면 " 그럼 사주지 말지 그랬어 " 라고 화를 내는 애플. 그런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렇다고 혼자서 뭘 할 생각도 제로. 이러면서 정말 애플과 나는 하루가 멀다하고 말싸움을 하게 됐다.
진방이만 믿고 있지 말고, 조금은 알아봐라.라고 얘기하던 것이
이제 믿었던 계란공장도 안됐는데 어떻게 할꺼야, 뭔가 해봐야지 않겠어 라고 애기를 해도 여전히 한 귀로 흘려버리는 애플이었고, 미용기술이 있기 때문에 언제든 곧바로 미용실에 취직할수 있었음에도 단지 미용은 더이상 하기 싫다라는 말 한마디로 거부 하는 애플. 물론 이런 상황이 다른 상황에서라면 이해가 되었겠지만 바로 옆에서 너무나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도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솔직히 말하면 정내미가 많이 떨어졌었다.
나는 나대로 너무 힘든 나날이었다. 아닌 말로 분명 돈 좀 버는 공장에 다니고 있음에도 돈은 전혀 모이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돈이 차곡차곡 쌓이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이건 왠걸 내 방값,애플 방값, 생활비, 기름값, 술값 이런걸 다 대다 보면 정말 돈이 거의 남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일하는 나날들이 지옥 같았다. 보통 1주 혹은 2주 마다 급여를 받으면 일반적으로 하루 이틀 정도 일하면 방값, 생활비가 빠져서 나머지는 다 세이빙(저축)을 할수 있는데 이건 왠걸. 오늘 하루 일하면 "아..내 방값 벌었네 " 다음 날 일하면서 " 아 애플 방값 벌었네 " 그 다음날 "아 이번주 둘 생활비 벌었네 " 또 그 다음날 "아 기름값 벌었네 " 다시 또 다음날 " 이번주 담배값, 술값 벌었네 "
결국 하루하루 돈나가는게 뻔히 보이니 미칠 지경이었다. 일할 의욕이 완전 상실. 내가 도대체 호주에서 뭘 하는건가, 내가 왜 일하고 있지. 차라리 그만두고 농장으로 내려갈까 매일매일 고민하고, 나중에는 그냥 차라리 애플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러니 퇴근해서 돌아오면 침대에 퍼질러 있는 애플과 싸우기가 수 차례. 정말 너무 힘들고 지쳤던 나날이었다. 소귀에 경이라도 읽는것처럼 정말 난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애원하듯 얘기해도 씨알도 안먹히는 애플. 더군다나 뭐라고 한마디라도 하면 언제나 튀어나오는 한마디 " 한국 가면 되잖아 "
정말 미치도록 애플을 한국으로 보내고 싶었던 순간이었지만, 차가운 도시남자가 아닌 난 애플을 끝끝내 붙잡아야만 했다. 아 미치도록 가슴따듯한 남자여!
참 웃긴게 당시에 나랑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오죽하면 정말 퍼스에 여자친구 있는 남자들 처지가 다 똑같은가 싶을 정도였다.
제일 먼저 윌이 있었는데, 윌은 당시 카나본에서 먼저 떠나고 퍼스로 돌아와 인맥으로 꽂혀 들어간 파스타 공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내가 이토록 힘들 시기에 윌은 새로운 여자친구를 사귀어서 이스트퍼스 쪽에 방값 비싼 곳에서 살고 있었다. 여자친구가 약간 한국 된장녀 기질이 보였는데 나이도 79년생으로 윌보다 훨씬 많았는데 제법 이뻤다. 그런데 윌이 언젠가 한풀이 하는걸 들어보니 장난 아니었다. 여자가 한국에서 좀 잘사는 집 딸인가본데 자기는 무조건 연봉 5000만원 이상은 되야 결혼하고 뭐 어쩌고 저쩌고 한국에서 한번 선볼때마다 100만원씩 썼다고 뭐 별의 별 얘기를 하는데 중요한건 현실은 시궁창. 당장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처지였다.
당장에 방값은 윌이 대고 있었고, 여자는 집에서 놀고 있었다. 윌이 그냥 마냥 그 여자가 좋다고 있는데 집도 비싼집에 살고 게다가 여자가 여기저기 어찌나 여행다니고 싶어하는지 주말마다 여기저기 놀러가고 비싼 레스토랑 가고 이 모든걸 대느라 윌 허리거 휘다 못해 뿌러질 지경. 윌은 공장 페이로도 모잘라 결국 막판에는 노트북 팔아서 방값내고 말도 아니었다. 윌과 얘기하다가 윌이 여자친구가 한국 곧 들어간다고 자기도 공장 그만두고 한국 따라 들어간다는 것이 었다. 내가 윌에게 " 야 니 등쳐먹는거 아냐? 한국 들어가기전에 니 차도 있겠다 돈도 있겠다, 완전 한국 가기전에 가보고 싶은데 다 구경하고 놀거 다 놀고 니 돈으로 그러는거 아니야? " 라고 말하자.
윌도 " 저도 그런 생각 좀 들었었는데요 그래도 저한테 정말 잘해요 " 이랬는데, 결과는
윌과 그 여자 한국 들어가서 도착한 다음날 여자가 부산 자기네 집으로 내뺌. 그리고 연락두절.
윌이 한국으로 돌아간 3월경에 전화했을때 그 여자때문에 워킹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윌의 절규를 들을수 있었다.
이런 윌이었기에 당시에 나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해줬는데, 우리의 동지는 이뿐이 아니었다. 아주 독립적이고 강한 정신력의(절대 칭찬아님 비꼬는거) 한국여자친구 몇명들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던 또 몇명의 사례.
한명은 공장에서 같이 일하는 동생이었는데, 여자친구가 6개월 노는 동안 방값,생활비 내느라고 일해서 모은 10000불 가량을 다 소진 했다고 한다. 중요한건 일을 하면서 벌고 있었다는 사실. 그니까 일하면서 번 돈+그전에 모아둔 10000불도 썼으니 얼마나 썼겠는가, 나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덕분에 그 친구는 여자친구를 농장으로 내려보내려고 갖은 수를 써봐도 농장 가기 싫다는 여자친구 때문에 계속 허리 휘청. 최근에도 여자친구가 집에서 놀고 있어서 힘들어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또 한명.
우연히 만난 한국 남자애였는데 버스우드 카지노에서 일했는데 시급이 24불 정도로 꽤 괜찮은 일자리, 돈 좀 만지고 있었는데 이쪽 사정도 비슷. 여자친구가 완전 된장녀. 이건 뭐 남자친구가 힘들게 돈 벌어서 학원까지 끊어줬는데 그나마 학원이라도 다니면 다행이지 그나마도 학원은 끊어놓고 안가고 놀러만 다닌다고. 돌아버리겠다고 말하는 남자.
이건 도대체 뭔가 싶을 정도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있다. 우연히 본 뉴스가 생각난다. 경제적으로 서로 독립된 부부가 이혼율이 오히려 낮다라는 연구결과에 관한 보고 였는데, 정말 농담아니고 진심. 남자들은 허리가 휘청하는데 여자들은 아주 탱자탱자.
어쨌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꽤 많은걸 보고 위안은 커녕 점점 절망.
그리고
3월 중순, 애플이 계란 공장에 첫 출근 할 때까지 지옥 같던 순간이었다.
이 시간들동안 참 많은걸 깨달았고, 많은걸 느꼈는데 모든건 둘째치고더라도 지금 우리가 한국이 아닌 호주라는 타국에서 더군다나 이 호주에서의 워킹홀리데이가 끝나고 다음 계획이 있던 그 시간에 너무나 무책임한 애플의 행동들을 보며 애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툭하면 "한국 가면 되잖아"라고 말해버렸던 그 모습은 나에게 좀 상처가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부양한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달았다. 새삼 부모님의 마음, 가장의 마음을 느끼며 이 세상 모든 부모들과 가장들의 어려움을 몸과 마음 모두로 아로 새길 수 있었다.
게다가 여자를 보는 가치관도 조금 달라졌다.
" 남자랑 여자랑 평등? 남자랑 여자랑 어떻게 평등해 원래 불평등해 "
" 난 자기계발이라고 결혼하고나서도 일하는 여자들 이해가 안돼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집에 있는게 편하잖아 " 라고 말하는 애플을 보며 독립적인 여자들에 대해 전보다 더욱 존경스러운 마음을 표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 이런 생각을 가졌었다.
" 내가 많이 벌어서 내 여자는 돈 안벌고 집에서 놀게 해줘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없지만 적어도 위기 상황에 자기 밥벌이는 할 수 있는 독립적인 여자가 좋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즉 " 내가 버니 넌 집에서 놀아 " 라고 얘기해도 " 내 인생을 위해서도 난 내일을 계속 하고 싶어 " 라고 말하는 여자가 좋아졌다. 참 많은것들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훼집어 놓았던 시간들.
결국 애플은 현재 계란 공장에 다니고 있고, 우리의 생활은 (사실 생활은 원래 괜찮았지..-_-) 많이 나아졌다. 다시 돈을 세이브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최근엔 다시 통장 잔고가 늘어나는 기쁨을 느끼며 일 할 맛을 느끼고 있는 중. 애플이 당장 일하니 방값도 부담이 없고 생활비도 같이 내고 하니 돈이 그냥 아주 쑥쑥 모인다. 오죽 기분 좋았으면 그동안 계속 생활비를 모두 댔던 난 애플에게 " 너 오랜만에 은행에 돈들어오니까 첫월급은 그냥 은행에 푹 묵혀라, 내가 이번꺼 하고 다음 페이꺼까지 해서 마지막으로 대줄게 " 라고 얘기해서 애플이 일 시작하고나서도 계속 생활비를 낸 덕에 애플은 3월달, 한달 일해서 번 돈을 모을수 있었고, 난 정확히 말해 4월에 받은 첫 페이부터 다시 세이빙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 미친듯이 가슴 따뜻한 남자여!!!!
절망의 시간들은 이제 희망의 시간들로 바뀌어 가는 중이다.
위에 나온 한국여자분들.... 그러지마세요 ㅠ,ㅠ
남자친구들 너무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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