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서블 여행기 #86 [파키스탄/페샤와르] 악명 높은 로왈리 고개

 
 너무나 조용한 칼라쉬 계곡. 너무나 조용하다. 고요한 적막감이 도는 이 곳의 밤은 적적할 뿐. 할 일이 없다.  덕분에 일찍 잠든 탓에 거의 새벽1시경에 눈을 떴다. 나 같은 경우엔 잠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닌데, 보통 5시간, 많이 자도 6시간을 자면 그 시간만 채우면 딱 눈이 떠진다. 대신에 그 사이엔 전쟁이 일어나도 모를 정도로 잠의 효율이 높으면 높은 편이다.    다시 잠들고 싶으나 잠을 완전히 다 자고 일어난거라 새벽 1시부터 말똥말똥. 딱히 뭘 할수 있는 것도 아니라, 아이폰 메모장에 이런저런 것들을 끄적였더니 시간이 잘간다.  어느새 밝에 동이 터온다.  6시에 알람을 맞춰놓은터라 쏘세지를 깨우고 준비를 하고 있으니 누르세인이 일어났다.




 누르세인은 마당 한켠에 나와서 우리를 기다린다. 쏘세지가 준비를 덜 끝내서 마당에서 누르세인과 대화를 했다.   누르세인의 영어도 그리 통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예 안통하는 것은 아니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88년생이란 나이 때문일까, 한편으론 어른스럽고 어떻게 보면 어린 느낌도 든다. 누르세인에게 총이 있냐고 물으니 총을 곧바로 꺼내서 보여준다.   경찰은 경찰이구나.  참 말만 더 잘통하면 이 사람에 대해서도 알고싶다.


 이 사람은 왜 경찰이 되었고 어떤 삶을 살았을까. 70억명의 지구. 70억개의 사연들. 여행오면 늘 생각해보는 쓸데 없는 생각들.  내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를 알고 싶다. 마당에서 내가 나무 막대기로 검도 시범을 보이자,  누르세인이 흥미를 보인다. 자기는 유도와 태권도를 배웠다고 얘기를 한다. 남자들끼리만의 시간. 어느새 쏘세지가 준비를 끝마치고 나왔다.  원래 예정대로 라면 7시에 출발하려 했으나 조금 늦어졌다.   어제 같이 차를 타고 왔던 파키아저씨들도 우리가 묵는 숙소에 묵었는데 그 아저씨들도 또 같이 떠난다고해서 그 아저씨들을 기다리느라 조금 지체되었다.  마침 산사태로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한 택시기사도 여기 숙소에 머무는 터라 그 택시기사를 깨워 출발을 하는데, 이른 아침 더욱 고요하고 상쾌한 마을 풍경이 스쳐지나간다. 






 여행이란 참 신기하다.  내가 살면서 파키스탄에 이런 산골짜기까지 들어 오리라 생각이나 해봤을까.  그런데 이렇게 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옷깃만 스치면 인연이라고 같은 한국에,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아도 평생 못보는 이들이 있는데 이렇게 먼 이국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연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어느새 우리는 다시 길이 막힌곳까지 도달했다. 이제 차에서 내려서 산사태 난 곳까지 가야 하는데,  앞에 파키스탄 아저씨들이 걷고, 나, 쏘세지, 마지막으로 누르세인이 따라오는데 앞에 가던 파키스탄 아저씨들이 갑자기 멈칫 한다. 보니까 산사태 조짐이 보인다. 갑자기 길 옆에 가파른 산비탈로부터 돌들이 마구 흘러내리며 굴러온다. 진짜 긴장됀다. 산사태가 전혀 이상 할 것이 없는 지역이라 더욱 긴장되었다.






 심지어 이런일에 익숙할 법도 한 파키아저씨들도 얼굴에 긴장한 빛이 역력하다.   타이밍을 보고있다.  건너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멈칫 멈칫. 간을 본다. 그 와중에 돌들은 계속 산비탈을 따라 길에 굴러 떨어지고 있다. 아직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언제 산사태가 나도 이상하지 않기에 정말 딱 그 지나가는 찰나에 무너질 수도 있는것이다. 파키스탄 아저씨들의 판단이 섰는가 보다. 빨리 뛰어서 지나가자고 하는 거다.   파키스탄 아저씨들이고 누르세인이고 동시에 막 뛰어가기 시작하는데 그 와중에도 돌들은 계속 굴러 내려오고 있다. 진짜 간만에 스릴만점이다. 짱짱맨


 우리는 다시 평온한 길을 천천히 걸어 산사태 난 지점까지 도달했다. 여전히 이른아침부터 작업중이다.  그 흙더미를 넘어 반대편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한무더기다. 이쪽 편에는 아직 차들이 없는지 사람들만 한가득.  큰 나무 그늘 아래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늘 아래, 한 파키스탄 꼬마애가 좌판을 깔아놓고 이것 저것 팔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 학교에 갈 그런 아인데, 이런 흙먼지 풀풀 날리는 곳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짠했다. 길깃에서 아지즈와 미르와 함께 나눴던 대화중에 교육에 대한 이야기 중, 한국에서 애들 학교 안보내면 부모가 감옥 간다고 이야기 하니 문화적충격을 느낀 듯 놀라더니 잠시 말이 없어졌던 것을 떠올리니 이들에겐 어쩔 수 없는 현실. 






 좀 기다리다보니 큰 트럭 한대와 차량 몇대가 왔는데, 대부분 기다리던 사람들은 트럭 뒤 짐칸에 마구 올라탔다.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누르세인이 나서서 한참 대화 끝에 외국인이라고 나와 쏘세지는 트럭 앞에 좌석에 태웠다.  차 안에는 운전기사와 조수석에 몸이 안좋아보이는 노인이 타고, 뒷좌석엔 칼라쉬 전통복장을 입은 소녀와 엄마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타고 있었는데 그 뒷좌석에 껴서 탔다. 켈라쉬 소녀는 정말 이쁘게 생겼다. 감탄 또 감탄.



 차를 타고 치트랄로 향하면서 쏘세지와 오늘 어떻게 할지에 대해 논의 했다. 치트랄에 하루 더 머무는 것은 아무래도 조금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페샤와르로 가는게 어떤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우리는 치트랄에 도착하는대로 곧바로 짐을 챙겨 페샤와르로 가기로 했다.  그게 맞는 것 같다. 숙소 하루 더 잡고 치트랄에 머문다고 딱히 뭘 더 보러 갈 곳도 없을 것 같고. 서둘러 페샤와르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차는 아윤을 지나 치트랄로 향하고 있는데 비포장 길을 구불구불 돌며 언덕길을 내리는데 내 앞에 조수석에 앉은 할배가 많이 아파보였다. 계속 콜록 거리면서 기침을 하고, 창밖으로 가래 섞인 침을 뱉는데. 침이 자꾸 뒷창문으로 해서 나에게 튀었다. 진짜 엄청 신경이 쓰이고 짜증이 났으나, 꾹 참고. 그렇다고 창문을 닫기엔 너무 답답하고 더워서 그냥 참고 가고 있었다. 이런게 여행이지 뭐.



 사람들이 타고 내리느라고 기사가 잠시 차를 세운 동안, 기사가 어느 작은 슈퍼마켓 안에다 대고 뭔가를 주문했다. 음료수였는데 뒤를 돌아보며 나와 쏘세지에게 너네도 줄까? 이러면서 묻는다. 인심 한번 좋다. 괜찮다고 사양하는데, 기사는 자기것 말고도 할배꺼 까지 하나 사서, 조심스럽게 음료수 뚜껑을 벗기고, 빨대까지 꽂아서 할배에게 건네준다. 속이 깊고 따뜻한 것 같다. 정말 사람의 인심이란 이렇게 없는 가운데도  작은 것이라도 베풀 수 있다는 걸 또 배운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괜히 침 튀긴다고 짜증나 하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2시간여를 또 비포장 도로를 달려 드디어 우리는 치트랄에 도착했다. 다행이도 곧장 터미널이 아니라 우리 숙소 근처 도로에 세워줬다. 차비를 지불하고 숙소로 들어갔다. 우리는 누르세인에게 곧바로 페샤와르로 떠날 것을 이야기 해줬다. 그리고 숙소에서 배낭을 찾아 둘러 메고 곧장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터미널로 향하기 전에 숙소 근처에 노점에서 찹쇼로를 파는 청년들이 있길래 찹쇼로를 구입했다. 정말 진짜 대박 맛있는것 같다.   낯설었던 치트랄이 익숙해지니 다시 또 먼 길을 나선다. 시장 골목을 천천히 걸어 터미널로 향했다. 익숙해질법 하면 낯설어지는 것이 여행자의 숙명인 것 같다.






 터미널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 페샤와르 페샤와르" 를 외치고 있다. 그나마 천만 다행이다. 페샤와르로 향하는 차들이 많아서. 마침 출발하려는 차가 있었는데 이미 사람을 가득 채우고 출발해서 또 다른차를 하나 골랐고, 이제 그 차가 가득 차길 기다려야 했다.   누르세인은 이제 그만 돌아가도 되련만, 우리의 안전을 염려해서 그런지 버스 운전기사들과 한참을 대화를 나눈다. 가끔 우리를 한번씩 번갈아가며 쳐다보는 것으로 봐선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틀림없다.  우리 짐을 차 지붕에 올리고, 우리는 누르세인에게 그만 작별인사를 했다.



 " 우리 이제 페샤와르 가니까.. 그만 가봐. 피곤할텐데 "
 " 너네 가는거 보고 갈게 "
 " 진짜 괜찮어.. "




 마지막으로 누르세인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포옹을 했다. 좀 더 말이 통했더라면 깊은 이야기를 나눴을텐데, 어쨌든 정말 고마운 누르세인.  우리가 차에 타야 누르세인이 떠날 것 같아, 뜨거운 태양에 지글지글한 승합차에 올랐다. 안에 들어가니 완전 더운 공기에 숨이 턱 막힌다. 우리가 차에 올라타는 것을 보고서야 자리를 떠나는 누르세인.  우린 차에 사람이 다 차길 기다리며 아까 구입한 찹쇼로를 먹는데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진짜 대박인것 같다.



 다행이도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아 점점 차가 가득하고 역시나 꽉꽉 채우고 나서 차장이 요금 900루피를 걷기 시작한다. 페샤와르까지는 꽤 먼 길이다. 그렇다보니 요금도 꽤 비싸다. 요금을 내고 있으니 다시 누르세인이 보인다. 왜 왔나 싶어 보니 손에 메모장과 펜을 들고 자동차 넘버를 적는 것 같다.   경찰서가서 깨지고 왔나보다.  마지막 까지 우리를 체크 또 체크한다. 참으로 고맙다. 뭐 이런 모든 것들이 파키스탄의 상황을 고려한 것들이겠지만 이렇게 마음 써주는 것들이 고맙다.  밖에서 누르세인이 우리를 보고 있다. 차는 시동을 걸고 드디어 출발. 누르세인에게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자. 무뚝뚝한 표정에 작은 미소를 내비치며 손을 흔든다.



 파키스탄에 도착 할 때까지만 해도 그 존재도 알지 못했던 페샤와르.  그리고 페샤와르에 가면 정말 우리의 파키스탄 일정도 거의 끝이다.  남쪽으로 향한다. 뭔가 가슴이 뭉클해져온다.   파키스탄 여행을 어찌하나 걱정했는데 훈자를 지나 이렇게 벌써 몇개의 도시를 지나 페샤와르로 향한다니 감회가 새롭다.  파키스탄 정말 훈자에서 만난 한국사람들에 대한 악몽을 제외하면 너무나 천국같은 곳이었다. 친절한 사람들,아름다운 풍경,맛있는 음식들. 정말 뭐하나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멋진 나라다. 그래서 더 아쉽다. 한국사람들만 아니라면 좀 더 즐거웠을 훈자가 아쉽지만 또 한편으로는 대부분의 파키스탄을 여행한 이들이 패스하는 이 고된 루트를 여행 할 수 있게 되어 또 기쁘다. 



 차는 치트랄 시내를 벗어나자 다시 또 대자연 속을 달린다. 길은 역시 언제나 비포장. 포장도로를 못본지 한달은 되어가는 것 같다. 신호등은 언제 봤는지도 모르겠다. 치트랄에서 페샤와르는 파키스탄 북부 3대 도로 중 하나인 로왈리 패스를 지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 로왈리 패스는 악명 높은 로왈리 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현지인이 전해주길, 로왈리 고개의 또 다른 명칭은 999도로라고 한다. 왜 999냐고 묻자. 999번의 커브를 지나야 한다나 뭐라한다나, 현지인의 그 말만으로도 이 악명높은 도로의 난이도가 짐작되었다.  이 곳 역시 고지대라, 겨울엔 닫힌다. 로왈리 패스가 아니면 치트랄에서 페샤와르로 가기 위해선 아주 먼길을 돌아가야 되나, 로왈리 패스 덕분에 치트랄에서 페샤와르까지는 12시간 정도만 가면 되게 되었다. 



 비좁은 차, 12시간의 이동,그리고 악명높은 로왈리 패스.  하지만 우리도 이제 너무나도 많이 단련되어서 잘 버티리라.  우리가 탄 차는 페샤와르를 향해 계속 남쪽으로 향했다. 길들 자체가 이미 산악지대에 비포장길이라서 나는 사실 로왈리 패스가 시작되었는지 알았다. 그래서 현지인에게 길을 갈리키며 "로왈리?" 냐고 묻자 다들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헛웃음이 나온다. 그래 아직 시작도 안했다 이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론 워낙 험준한 길들을  많이 다니고 파키스탄에 열악한 도로, 교통편에 익숙해진 탓인지 힘은 별로 안들고 버틸만 했는데 그래도 아직 로왈리가 아니라니 살짝 두려움이 앞섰다. 한참 달렸을까 중간에 검문소에 잠시 들렸다. 언제나처럼 외국인인 우리는 체크포인트에서 장부에 이것저것 적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우리가 일일이 내리면 불편하니까 대개 경찰들이 창문을 열고 우리에게 장부를 건네줬다. 차 안에 앉아서 장부에 쭉 이름/여권번호/비자번호 등등등을 익숙하게 적는데 이런거 적을 때 버릇이 있는데 우리 위로 누가 있는지 보는데  이 기록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현지인은 안적다보니 어떤 외국인이 이 길을 언제 지나갔나를 볼 수 있는데 보통 한달전/두달전 서양 여행자 1명이 지나가고 이런 식이던가, 재밌게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적혀있꼬 그랬는데 이번엔 완전 반가운 것을 발견했다.


 한국인이었다.  이름으로 봐선 남자. 혼자서 우리와 반대루트로 페샤와르에서 치트랄로 불과 얼마전에 통과 한 사람이 있었다. 너무 반가웠다. 참 여행자들이란게 이렇게 서로의 흔적만 봐도 반갑다. 이렇게 한국사람이 반가운데 훈자에선 한국사람이 넘쳐나서 그런지 참... 아니꼽고 드럽다.   어쨌든 쏘세지랑 둘이서 그저 다른 여행자의 흔적을 보며 반가워했다.  그리고 다시 차는 신나게 달리고 드디어 휴게소 비슷한 곳에 들렸다.



 우리차 말고도 많은 차들이 서있었는데 나름 이 곳에서 모든 차들의 집결지인 것 같다. 승합차,승용차,트럭 온 갖 차들이 다 서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담배 한대를 무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갑작스런 소나기. 항상 고산지대의 기후는 종잡을 수가 없다. 기사는 얼른 방수포를 꺼내, 지붕에 올라가 짐들을 덮는다. 그리고 나와 쏘세지는 바로 근처의 휴게소 역활을 하는 식당안으로 들어갔다. 언제나처럼 시선 집중. 





 우리는 잠시 빈 테이블에 앉아 짜이를 마시며 몸을 릴랙스 했다. 아직 로왈리 고개도 안넘었는데 살짝 지칠려고 한다. 세계 어디든 휴게소는 똑같다. 여기도 사람들의 간식거리도 팔고 있었는데 견과류가 많이 나는 곳이다보니 견과류가 종류별로 다 있었는데 가격이 제법 비쌌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 정도면 몇만원이라는 쏘세지의 말에 구입할까 했지만 참았다. 금방 출발 할 줄 알았는데 꽤 오래 쉬게 되었는데 다름 아닌 기도시간이라 그랬던 것.



 비가 살짝 그치자. 사람들이 모두 한 곳으로 모인다.  딱 봐도. 익숙한 기도타임.   일단 사람들이 손과 발을 씻기 시작하면 기도를 하면 된다고 본다. 무슬림 율법상 기도 하기 전에 몸과 마음을 모두 경건하게 해야 되는데 그 첫번째 의식은 손과 발을 청결하게 씻는 일이다. 하루에 5번 기도하는 무슬림들이 우리가 보기엔 괜히 더러워보이고 그렇겠지만 아마 많은 한국인들보다 훨씬 더 자주 씻을 것이다. 이런 사소한것들 하나하나도 결국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 종교는 이토록 인간에게 도움이 되기 위한 것을 어떤 의식이라 정형화 시켜서 지키게 한다. 모든 종교의 율법엔 그 나라에 필요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무슬림들은 고개 비탈길을 따라 있는 수로에 손과 발을 씻고 한 곳에 모여 서서 기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비탈길이라 크고 널직한 공간이 없기 때문에 비탈길 마다 공간을 만들어 동시에 올리는 그 기도는 경건하기 그지 없다. 이슬람을 높이 평가 할 수 밖에 없다. 가장 생활과 밀접하고 경건한 종교. 무슬림 짱이다.   기도가 끝나고 이제 하나둘 씩 차에 오르기 시작한다. 출발하려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제와는 달리 완전히 경사가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모양새가 심상치 않다.   길 옆으로 협곡이 펼쳐지고 산세가 제법이다.





 차 안에 파키스탄 사람들에게 " 로왈리?? " 묻자.  고개를 끄덕 하며 " 로왈리 패스 " 라고 얘기를 한다.   드디어 시작이다. 악명 높은 로왈리 패스.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데 짧은 영어로 터널 어쩌구 저쩌구 한다.


 " 뭐 터널?????????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박.  쏘세지도 같이 들었다. 


 
 "터널이 있데 ㅋㅋㅋ 그러면 그 구불구불한 고개를 그냥 하이패스로~ 쭉 뚫고 금방 가겠네 " 갑자기 완전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버스는 높은 경사의 언덕길을 오르는데 정말 명불허전이었다. 내가 이번 여행 통 털어서 가장 힘들었던 버스를 꼽으면 몇개가 있는데 그 중에는 버스 자체 문제로 힘들었던 곳도 있지만, 정말 도로 자체가 지랄 같아서 힘든 곳도 있다. 근데 여긴 지금까지 커브는 커브도 아니었다. 농담아니고 끝없는 언덕길의 도로가 S로 계속 이어져 있다고보면 된다.


 괜히 999번 커브 돌면 끝난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진짜 몸이 이리 기우뚱,저리 기우뚱.  그나마도 버스에 사람을 꽉꽉 채워서 한번 쏠릴때마다 쏘세지는 비명을 질러댄다. 남자 3명이 동시에 휙 하면서 쏘세지를 계속 벽으로 밀치니 난리도 아니다. 진짜 이제 시작인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터널이 있다는 말에 안심을 하며 터널만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사람은 희망이 있으면 강해진다.  한참을 구불구불 고갯길을 넘어 올라갔는데 정말 터널이 나타났다. 근데...공사중.  미친놈들아 ㅋㅋㅋㅋㅋㅋ 공사중인 터널을 왜 얘기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람은 희망이 사라졌을 때 절망으로 바뀌고, 고통스러워진다. 터널이 없음을 안 우리는 멘붕이 오려고 했다. 파키스탄 사람 말로는 지금 8년째 뚫고 있다고 한다. 이새끼들 ㅋㅋㅋ 이런건 한국에 맡겨라!!!!!


 정말 구불구불한 길을 계속 오르는데 이 길에도 수 많은 체크포인트가 도사리고 있다. 우리 때문에 항상 지체된다.  그나마 경찰이 내리라고 안하고 차 안으로 장부를 넣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장부를 볼 때 마다 한국인의 흔적을 보는데 정말 반갑고 기분이 좋다. 그리고 점점 체크포인트를 하나씩 지나칠 때 마다 경찰들의 표정이 굳어진다. 무슨일인가. 경찰들은  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것 같은 표정으로 우릴 바라보며 한참을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한다.




 이제 체크포인트도 지겹다.  한참을 그렇게 달려 우리는 드디어 로왈리 고개 정상 부근에 도착했다. 정상 부근에서 거대한 양 떼와 마주했다. 양치기가 능숙하게 양을 치며 고갯길을 마구 올라간다. 그리고 저 앞으로 끝없는 내리막길 (이것도 S자로..)과 함께 저 멀리 산이 보인다. 뭔가 가슴이 뻥 뚫리는 풍경이었다.  이 고개가 끝나고 페샤와르에 곧 닿겠지.  그렇게 우리는 파키스탄 여정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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