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호주 워킹 홀리데이 수기는 시간의 흐름대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한편이 단 몇분에 관한 얘기 일 수도 있고, 몇 달에 관한 얘기 일 수도 있습니다. 개별 에피소드 별로 보시는 것 보다 처음 부터 차례대로 보시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습니다. 그리고 수기 몇편에 한번씩 Extra편에는 각종 호주 생활 관련, 준비관련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재밌게 읽으시고,호주 생활,워킹홀리데이 관련 질문은 언제나 리플로 달아주시면 확인 즉시 답변 드리겠습니다. 이 수기의 처음부터 읽으실 분은 클릭하세요! 호주 워킹 홀리데이 첫편보기!


 22. 연이은 역습, 꼴통과 진방


 역대 최악의 워킹홀리데이메이커(워킹홀리데이를 하는 이들을 일컷는 말,콩글리쉬로 워홀러)가 왔다.

 

 두둥


 내 동생이 한국에서 온다는 것이었다.


 온다고 온다고 하더니 막상 온다니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집안 욕 하는 기분이지만 정말 극악 꼴통인 녀석이 과연 호주에 와서 잘 버틸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흔히 이런 너스레들 많이 떤다. " 아 저 영어 못하는데 호주 가서 어떻게 하죠? " 라는 질문을 흔히 한다. 


 나도 모 블로그에서 본 적이있는데 외국인 남자친구가 있고, 울월스 캐셔(대형 할인마트 계산 직원)를 하면서 " 정말 저는 영어 못합니다. 저도 하니 여러분도 하실수 있어요 " 라고 말하는 블로거를 본적이 있는데 그건 진짜 개뻥이고 영어 못하는데 캐셔는 불가능하다. 물론 영어를 못해도 물론 호주생활이 가능하고, 점차 생활영어가 늘기에 어느정도 기본빠따는 된다. 하지만 영어를 엄청나게 잘하거나 못하거나 하지 않는다면 워킹홀리데이메이커들의 운명은 운과 인맥에 의해서 정해진다고 보면 된다. 여담이지만 당시에 모 블로그에서 저걸 보고 기가 막혔었는데 호주에 와서 다시 한번 곱씹어보면 역시나 씁쓸한 겸손이었다.


 어쨌든 이 블로그에 오신 분은 아시겠지만 정말 솔직하게 난 객관적으로 얘기하는데 정말 내 동생보다 영어 못하기도 힘들다.  Sometimes를 소메티메스라고 읽는 이 녀석은 한국에서 일명 특지고를 나왔는데 아시는 분은 아시다 시피 우리 때 공고,상고도 떨어지면 가는 곳이 특지고다. 근데 문제는 이 뿐 아니라 집안의 가호아래 평생 알바 한번 안하고 이날 이때껏 씀씀이 크게 살아왔다는 거다. 2005년 내 동남아 여행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때 함께 한 내 동생이 온다는 거다.


 한국에서 온다니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부탁해놨다. 

 친히 꼭 챙겨오라고 여기서 인터넷주문을 해서 결제해둔 물건들이며 이것저것들을 적어줬다. 막상 녀석이 온다니 그래도 참 반갑고 또 받을 물건들이 있어 더욱 기쁜 날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녀석이 도착하는 날, 이번에는 내 동생과 동갑내기 친구 윌의 차를 타고 공항으로 마중나갔다. 권을 마중나갈때 만큼이나 설레였다. 그리고 한참을 기다린 끝에 나오는 내 동생. 역시나 혈육의 정인지라 한눈에 녀석이 보였다. 반갑게 마중하는데 아직 얼떨떨 한지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녀석의 표정에 한국에서 호주로 오는 길의 피로가 느껴졌다.


 사실 낮에 집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아버지가 완전 화가 나있었다. 

 내 동생이 출발한 직후에 온 전화였는데 아버지는 격앙되계셨는데, 영무 녀석이 이렇게 까지 멍청하고 한심한지 몰랐다는 것이다. 전날까지도 짐을 안싸고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와서는 아침에 일어나서 짐을 싸는데 비행기 시간은 다가오고 짐을 대충 싸가지고 왔는데 아버지는 그래도 아들이 또 호주로 가서 몇년 있는다고 하니 친히 공항까지 데려다 줬는데, 비행기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업친데 겹친데로 수화물무게가 많이 초과 되서 물건을 좀 빼야 됬는데 아버지 말로는 이 때 영무는 완전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는거다. 보다 못해서 직접 아버지가 이건 빼고, 저건 넣고 일일이 짐 정리를 도와주는데 야구 글러브를 굳이 빼라고 해도 챙기겠다고 넣는 것이다. 그것도 내가 부탁한 짐을 빼고 말이다. 


 아버지가 공항에서 옷이라도 한벌 더 챙겨가던가 형이 부탁한걸 가져가던가 하지 야구글러브는 왜 가져가냐고 했더니 죽어도 가져가야 한다고 챙기고 그렇게 아침에 부산하게 인청공항에서 겨우 비행기를 타고 드디어 호주 퍼스에 온 것이다. 영무가 비행기를 탄 직후에 아버지는 나에게 전화를 해서 한마디 하는데 정말 영무 한테 너무 실망한 티가 역력했다. 그 전화를 받고 난 뒤에 본 영무라 그런지 퍼스 공항에서 마중한 영무는 여전히 얼이 빠져있는 티가 났다. 아닌 말로. " 어때? " 라는 나의 한마디에 자조하는 한마디 " 나는 내가 이렇게까지 멍청하고 한심한지 몰랐어 " 라고 말하는 것이다. 


 " 그건 그렇고 글러브는 왜 그렇게 꼭 챙겨온거냐? " 라는 나의 질문에

 " 외국사진이나 영화보면 공원 잔디 밭이 엄청나게 크잖아, 거기서 여유있게 캐치볼하는 모습이 멋있어서 나도 꼭 가면 해봐야지 생각했어 " 라고 말하는 영무의 말에 기가 막혀서 웃을 따름. 게다가 내가 인터넷 결제까지 해서 챙겨오라고 했던 물건들은 다 빼놓고 온 영무.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나왔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한심함에 공항에서부터 집에 가는 길까지 계속 잔소리를 해댔다. 어쨌든 그렇게 드디어 영무가 호주에 첫발을 내딛었다. 집은 일단 우리집에 머물게 하고 마침 우리 유닛에 방이 비었기에 집주인 피터에게 얘기를 하기로 했다. 그렇게 밤늦은 시간 영무는 그랜다로우에 도착했다. 그래도 내 동생이 온다고 많은 이들이 환영파티를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 친구들과 이제 쉐어메이트들이 될 외국인 친구들 까지 함께 녀석의 환영파티를 해주는데 거실에 맥주가 짝으로 있고, 외국인들이 있으니 어리둥절한 영무는 건네주는 맥주한병을 손에 들고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그래도 동생이 왔는데 솜씨 한번 발휘하잔 생각에 아침으로 스파게티도 만들어주고 앞으로의 계획도 들어보고자 또 조언을 해주고자 얘기하는데 일단 호주 정착을 위해 준비할게 많았기에 그 날은 핸드폰개통,계좌,비자라벨 등등의 일을 처리하기로 했다. 나는 일을 가야했기에 권이 그 도움역을 맡기로 했다. 권과 함께 나가 핸드폰 개통부터 계좌개설,비자라벨 받기 등을 하는데 일을 마치고 와 저녁때 영무가 나에게 한마디 했다. " 오늘 돌아다녀보니 이제 호주 온게 실감나, 거리가 정말 외국같아 " 라고 하는거다.


 그리고 또 한마디 " 누나가 되게 대단하게 느껴지드라. 누나 없었으면 나 혼자 못했을꺼 같아 " 라고 말하는거다. 어쨌든 모든 준비가 일사천리로 끝나고 이제 이력서 뽑아서 돌리는 일만 남은 상황. 그리고 이제까지는 모든 경비를 내가 대주었는데 (환전을 안했기 때문에) 이제 호주 돈으로 환전을 해야했기에 그걸 도와주려고 이 곳 호주에서 호주 달러를 사고 파는 원리나 이유등을 말해준후에 이제 거래 전에 한국에 있는 은행 인터넷 뱅킹부터 확인 하려고 시험삼아 들어갔다. 근데 또 이 놈이 자기 인터넷뱅킹 비밀번호랑, 공인인증서 비번을 까먹은거다.


 그렇게 오기전에 너무나 중요하니 꼭 챙겨오고 미리 한국에서도 해보고 오라고 얘기를 했건만 너무나 한심한 그 작태에 정말 실망을 넘어 화가 났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정말 크게 화를 냈는데 그 모습에 아무말 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는 동생녀석의 모습이 또 날 더욱 울컥하게 했다. 그래도 좀 딱부러진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한없이 한심한 그 모습이 눈시울이 붉어질정도로 답답해졌다. 덕분에 한국에 전화하고 난리를 피워 겨우 다시 인터넷 뱅킹을 할 수 있게 되고 이제 "퍼참: 퍼스 참을 수 없는 그리움 (다음 카페)"에서 호주달러를 파는 사람을 찾아 거래를 할수 있었다. 


 녀석의 작태도 작태지만, 내가 그래도 먼저 와서 돈을 바짝 벌어서 녀석이 환전하지 않아도 되게 도와주었더라면 좋았겠지만 나도 겨우 힘들게 일을 구해서 근근히 유지만 하고 있는 상황이라 녀석을 그렇게 도와줄수 없는 사실이 마음 아팠다. 


 어쨌든 그렇게 돈준비까지 이제 모든 준비가 완료되고 녀석의 호주 정착이 시작될 무렵. 

 약 1주일후


 또다른이가 또 호주를 찾아 왔다.


 그 이름은 바로 진방. 역시 나의 미얀마 여행을 함께 한 꾸러기특공대의 진방이었다. 

 어느 비바람 몰아치던 아침 한통의 전화가 왔다.

 권은 " 진방인가 보다 " 라며 전화를 받았고 역시나 진방이었다. 진방이가 호주에 도착해 권에게 전화를 한것이었다. 대충 시티로 들어오는 방법을 알려준후에 권이 퍼스트레인역으로 마중나가기로 했다. 시티로 들어오는 시간이나 권이 마중나가는 시간이나 비슷하기에 급하게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간 권. 폭풍우가 불어오던 아침이었다.


 그리고 한참있다가 권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직 진방이를 못만난듯.

 " 오빠, 전철이 보인다는데 어딨는지 모르겠어 "

 " -_-; 퍼스역 근처에서 전철이 보이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소릴 해 "

 그 와중에 진방이를 만난듯 전화를 급하게 끊은 권. 그리고 30분 정도 후에 진방이가 우리 집으로 왔다. 한짐 보따리 가득인 진방이는 오랜만에 봐서 너무 반가웠다. 호주에 오기전에 일본에 들려서 놀고 왔다는 진방.


 진방이는 영무와는 달리 제법 준비를 많이 해가지고 왔다. 한국에서 미리 호주 핸드폰을 개통시켜서 가지고 왔고 호주 준비를 제법 했다. 일단 오늘 도착했기 때문에 게다가 폭풍우까지 치고 있었기에 일단은 우리 집에 대충 짐을 놓고 여독을 풀며 권과 오랜만에 수다를 떠는 진방. 그리고 나는 일을 나갔다 들어와 또 약 일주일만에 환영파티...


 여행을 가든, 워킹을 가든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들 찾아오는지..


 어쨌거나 이렇게 영무에 이어 진방이까지 호주 생활이 시작되었다.  영무는 진방이 보다 약 1주일전에 왔지만 여전히 아무 의욕이 없는 상태였다. 다른 곳에 집을 구해서 나가 살던가 해보라고 말하니 그냥 우리집에 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피터에게 말하려고 주인인 피터가 살고 있는 유닛 A에 가도 피터 만나기가 힘들었다. 결국 본의아니게 우리집에서 공짜로 숙식을 하게 된 영무. 게다가 진방이 까지. 하지만 진방이는 다음날부터 노트북을 펴들고는 알려준 퍼참에 들어가 방 정보를 알아보고 방을 구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게다가 다시 한번 또 권이 호주정착을 위한 핸드폰개통,계좌개설,비자라벨등을 해결해주었다.


 진방이는 꼼꼼하고 야무지게 호주정착 생활을 준비해나가는 가운데 그냥 할일없이 빈둥거리며 카메라나 들고 관광 온 사람처럼 돌아다니는 영무녀석.


 이제 진방이도 오고, 영무녀석도 온지 좀 되가고 또 권과 함께 어딘가 제대로 가본적이 없는 것 같아 우리는 프리맨틀로 놀러가기로 했다. 그리고 어느 주말, 우리는 함께 들뜬 마음으로 트레인을 타고 프리맨틀로 향했다. 퍼스에서 딱히 놀러 갈 곳이라곤 만만한게 프리맨틀이었다. 


 트레인을 타고 프리맨틀로 도착하니 약간 달라진 풍경이나 거리 모습에 영무와 진방이 모두 들떴는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둘다 너무 이쁘다며 여기저기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습, 여기 너무 좋다고 둘다 난리다. 어쨌거나 와봤던 권과 나만 그 모습을 흐믓하게 바라봤다. 돌이켜보건데 이 날이 정말 행복했었고 즐거웠던 날 중 베스트에 꼽히는 날 같다. 


 이쁜 프리맨틀 거리들을 지나, 주말시장을 구경하고 천천히 걸어서 우리는 프리맨틀 이 곳 저 곳을 거닐었다. 잠깐이나마 걱정없이 즐거울수 있었던 그 순간들. 오후 느즈막히 우리는 맥주한잔 하고자 프리맨틀에 있는 Little Creature로 향했다. 일명 맥주 공장.  실제로 보틀샵에 가면 리틀크리쳐 맥주를 파는데 정말 맛이 일품이다. 때 마침 비도 추적 추적 오는 때,  비를 피해 리틀 크리쳐에 들어가니 이미 사람들이 한 가득, 원래 비가 오지 않는 날이라면 자리경쟁이 치열한 야외 테라스(바다가 보임, 보이는게 아니라 맞닿아있음)는 비가 오는 덕분에 썰렁하게 비어있고, 안에만 사람이 가득, 운좋게 창가 자리로 자리가 나.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와 안주를 시켰다. 

 

 영무 녀석이 계속 퍼스에만 있고, 꿀꿀해 있다가 이렇게 나들이도 오고 하니 기분이 좋은지 " 누나, 형 와서 정말 많이 도와줬으니까 이거 오늘 내가 살께 " 라고 한다. 돈도 없는 놈이 무슨.. 이라고 생각하다 옆에서 진방이도 도와줘서 고맙다며 같이 산다고 하는거다. 그렇게 비가 주룩주룩 오는 프리맨틀에서 너무나 맛있는 맥주와 음식을 마시며 오랜만에 행복한 마음을 한가득 누렸다.


 그런 너무나 행복한 날이 있고 난뒤에 정점을 찍으면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고, 시간은 흘러흘러, 우리집에서 기거 하며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던 진방이는 같은 동네인 그랜다로우의 jugan st 쪽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유닛쪽으로 드디어 첫 보금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한국인 청소일을 하다가 때려치고 새로운 일을 구하러 다니는 윌과 함께 영무가 동갑내기 친구로 같이 이력서를 돌리러 다니고, 나는 나대로 일을 하고, 권도 일을 시작해. 조금씩 다들 자리를 잡아가는 때였다.


 근데 여기서 잠깐.

 권이 참 대박인데, 권을 보면서 정말 기술이 최고구나 란걸 다시 한번 느꼈다.


 호주에 맨처음 와서 모두가 일자리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그 때, 권은 와서 " 딱 한달만 쉬고 일 할래 " 라고 말하고 한달째가 되던 날 갑자기 " 이제 일 좀 해야겠어 " 라고 말하고 밖으로 나가더니 그날 잡을 구해서 왔다. 호주 온지 3-4개월이 지남에도 여전히 일자리를 잡지 못한 MJ나 SR은 벙찔 따름. 이유는 다름아닌 권이 미용사이기 때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나서 곧바로 이대에 있는 미용실에 취직한 권은 한국에서 미용실에서 나름 실장급 대우를 받는 베테랑. 그런 권이기에 비록 영어가 거의 안됐지만 (2008 중국에서 동남아까지 여행 참조, 친절하게 대해주는 태국친구들에게 말 한마디 거의 하지 못함) 기술이 됐기에 아주 쉽게 취직을 했다.


 

 어쟀든 그 와중에, 여러가지 갈등들이 싹텄다.

 일단 첫째로 집 문제 였다.


 어느 날부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유닛등을 집보러 오는 사람들이 생겼고,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피터가 유닛을 판다는 얘기였다. 그런 와중이었다. 영무 방문제로 피터한테 찾아가도 피터가 이리저리 피하기만 했다. 돈을 내겠다고 얘기해도 " 나중에 얘기하자 " 며 자리를 피했고, 인도인 특유의 가식적인 느낌으로 " 아 니 동생이면 나한테도 가족이다 들어와서 살아라 " 라며 딱부러진 명쾌한 결정을 내려주지 않았다. 결국 내동생은 집주인 피터에게 허락을 받고 살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굉장히 찝찝한 (돈을 내려고 하면 회피하는 기이한 행동을 함) 상태였다.


 그 와중에 브리즈번으로 이동한 폴로 부터 어느날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 지금 검트리 들어가서 확인해봐라, 그 집 올라왔는데 가격이 90불에 올라왔다. "


 정말 충격적이었다. 

 너무나 싼 가격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재빨리 검트리에 가봤더니 정말 이 집이 90불에 올라와 있었다. 쉐어비가 90불 밖에 안되는 것이었다. 


 갑자기 피터의 기이한 행동들이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다. 


 여기서 다시 한번 잠깐

 검트리란? gumtree란 사이트로 쉽게 생각하면 벼룩시장 느낌이 드는 사이트라고 생각하면 된다. 집 정보부터 각종 중고물품까지 영국,호주,뉴질랜드의 각도시별로 나누어 볼수 있는 사이튼데 외국인 쉐어를 구하거나, 중고차를 구입할 때 굉장히 유용한 사이트다. 


 이걸 혼자 알고 있어야 하나 싶었는데 그래도 친하게 지내는 마이클이나 베타커플들에게는 얘기해야겠다 싶었다. 항상 피터를 욕하는 베타커플은 특히 더욱 얘기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그걸 안 날 저녁때 알려줬더니 마이클과 베타커플의 표정이 과관이었다. 베타는 "옆 유닛에 아일랜드애들한테 이 사실을 알려주면 아마 피터한테 찾아가 싸울꺼야 " 라며 화가 단단히 났다.


 어쨌든 이 사실 이후에 더더욱 상황이 이상해졌다. 영무 쉐어비를 내러 피터에게 찾아갈때마다 피터는 쉐어하우스를 찾는 사람들과 얘기를 하고 있었고, 나중에 얘기하자며 계속 회피를 했다. 원래 새로 쉐어하우스에 들어오면 침대커버며, 이불,베게를 받아야 되는데 그것도 받지 못한채로 돈도 못낸채로 계속 머물게 된 영무. 


 그리고 또 하나의 갈등.

 바로 영무.


 호주 생활이 한달 정도 접어 들었을 무렵, 영무는 도저히 자신이 없다며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거다. 여자친구도 보고 싶고, 이 곳 생활이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정도도 각오도 하지 않고 온거냐고, 그리고 니가 다시 돌아가봤자 아무것도 없다며 니 평생 가장 후회할 일 중 하나로 기억 될꺼라고 모두가 말렸지만 영무의 마음은 이미 굳어진 상황이었다. 집에다 얘기하니 아버지와 엄마는 난리가 났다. 


 지 돈 들여서 온 것도 아니고, 집에서 돈을 대줘서 보냈더니 한달만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온다니 화가 날만도 한것이, 엄마는 노발대발하면서 돌아오는 비행기 값은 절대 보내주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영무녀석이 올때 편도만 끊어서 왔기에. 하지만 혈육이기에 가족이기에 분명 영무녀석에게 돈을 보내줄것은 확실했다. 어쨌든 내가 오히려 더 화를 내며 난리를 치자 나중에는 아버지나 엄마는 오히려 나를 타이르며 " 그래도 동생인데, 비행기표 잘 끊어서 한국으로 보내라. 지가 못하겠다는데 어떻게 하겠냐 "며.. 결국 영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문제는 합의가 되었다.


 여러가지 문제가 겹치는 가운데, 일단 우리는 이 집에서 나가기로 하고 집을 보러 다니기로 하고, 영무 역시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고 집문제가 상당히 껄끄럽게 흘러가고 있었기에 그냥 맘편하게 신이네 집 거실쉐어로 들어가기로 했다. 다행이도 신이네 역시 주인과 함께 살지 않았기에 그냥 돈은 안내고 생활비만 내고 함께 살기로 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어느날. 피터가 나를 찾았다.

 피터는 이 집을 팔게 되었다며 이유를 옆집 아일랜드 애들의 난장으로 이유를 돌렸다. 아닌말로 그 날 피터가 날 유닛 C로 데려갔다. 유닛 C에 들어가니 거실은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바닥을 청소하고 있는 아리쉬들. 평소 화내는 법이 거의 없는 피터는 완전 화가 난 상태로 나에게 말했다. " 아이들도 있고, 아내도 있고 한데 우리는 조용히 살고 싶다. 도저히 이렇게 살 수 없어서 집을 팔기로 했다. 그러니 집을 옮길 준비를 해라. " 라고 못을 박았다. 난 마침 잘됐다 싶어서 검트리에 올라온 90불 가격을 얘기하려고 하자. 피터가 " 갑자기 이렇게 되서 미안하니 영무의 방값은 받지 않고 너네도 새로운 방을 구할때 까지 방값을 받지 않겠다 " 라고 얘기하는거다.


 어쨌든 일이 생각보다는 수월하게 해결 된 상황. 그 날부로 더욱 새로운 쉐어하우스를 구하는 일에 매진 우린 원래 살고 있던 집 근처에 있던 아파트의 한국인 쉐어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 아파트에 마침 새로 나온 쉐어하우스가 두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나랑 같이 일하는 동생이 렌트한 집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그 집이 괜찮았지만 입주시기가 조금 늦어서 결국 울며겨자먹기로 다른 집으로 들어갔다.


 어쨌든 그렇게 정들었던 폴라드 스트릿에 집을 떠나 바로 1분거리에 있는 leeder st. 아파트에 자리를 잡았다.


 영무는 한국으로 떠난다고 하고, 폴라드 집에서 나와 새로운 보금자리를 옮기고 정신 없었던 이 때. 또 함께 호주 생활을 시작한 윌(W)과 엑스(H)가 농장으로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고 떠난다고 하는 것이다. 퍼스 생활에 지치고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나고 싶은 여행자의 마음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절친이었던 빅팍3자매중 진짜 친자매인 MJ와 SR이 우리동네로 그랜다로우로 이사오면서 이상하게 관계가 소원해졌다. 모든게 뭔가 정신없이 또 어긋나 삐꺽되기 시작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퍼스 생활이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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