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호주 워킹 홀리데이 수기는 시간의 흐름대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한편이 단 몇분에 관한 얘기 일 수도 있고, 몇 달에 관한 얘기 일 수도 있습니다. 개별 에피소드 별로 보시는 것 보다 처음 부터 차례대로 보시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습니다. 그리고 수기 몇편에 한번씩 Extra편에는 각종 호주 생활 관련, 준비관련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재밌게 읽으시고,호주 생활,워킹홀리데이 관련 질문은 언제나 리플로 달아주시면 확인 즉시 답변 드리겠습니다. 이 수기의 처음부터 읽으실 분은 클릭하세요! 호주 워킹 홀리데이 첫편보기!
[언제부턴가 느끼신 분도 계시겠지만, 원래는 내용 중간 그에 맞는 그 때의 사진을 올림이 맞는데, 인터넷 사정도 워낙 느리고, 사진을 중간 중간 붙이는 과정에서 사진이 유실되거나 하는 일들이 발생해서, 라고 말하면 과장이고 좀 귀찮아서 사진들을 쭉 올리고 사진 설명을 붙이고 있습니다. 원래대로 글 중간중간 사진이 삽입되있다는 댓글이 한 만개 정도올라오면 그 때 다시 글 중간마다 사진을 넣어볼 생각입니다. 어쨌든 느린 인터넷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사진을 올릴려고 노력중이라는 것만 감안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33. 카나본 일상
이번 포스팅에서는 장기간에 걸친 주요 일들을 다뤄보고자 한다. 뭐 거창할것도 없이 그냥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들을 쭉 나열 한 식의 에피소드다. 이 포스팅에 있는 몇개의 에피소드들의 시간대는 앞에 몇개의 포스팅 보다 앞 선 것도 있다. 참고 하시길...
일단 시간 흐름대로 에피소드를 나열해보겠다.
리오가 떠났다. 된 것이다. 맨 처음 시푸드 팩토리 하버에서 만나, 시푸드 팩토리에서 일하게 되며 친해지게 된 리오. 서로 왕래하며 자주 술도 먹고 저녁도 먹고 해서 카나본의 베프라면 베프였던 리오. 리오 덕분에 리오의 쉐어메이트였던 대만여자애들 미쉘, 캔디랑도 많이 친해지고 같이 낚시도 가고 펍도 갔었는데 그 리오가 이제 이 곳 카나본을 떠난 것이다.
전날 마지막 저녁을 위해 리오네 쉐어하우스로 가, 맛난 음식도 먹으며 맥주한잔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미쉘이 만든 닭요리가 있는데 이게 완전 대박. 몇번 먹어봤는데 그 날도 미쉘이 그걸 만들어줬는데 완전 맛있었다. 잠깐 미쉘과 캔디에 대해 얘기하자면, 미쉘은 맨 처음 시푸드 공장 하버로 일하러 갔을 때, 리오와 함께 있던 또다른 한국남자애 데니스의 여자친구였다. 하지만 데니스가 혼자 시드니로 떠나고 자연스럽게 정리. 미쉘은 유치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데 워킹홀리데이로 와서 대단한 능력이었다. 대만에서 무슨 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여기서도 따서 유치원교사로 일할수 있다고 하는데 어쨌든 시급을 얘기들어보나 뭐하나 대박이다.
정말 맘에 드는 사진, 둘이 점프하는 사진 찍을려는 도중에 찍힌거
[ 사진 위 : 미쉘의 완전 맛있는 닭튀김, 정말 농담아니고 KFC이런거랑 비교 안됌... 환상적 ]
미쉘의 영어실력 또한 거의 최상급. 그리고 미쉘과 함께 방을 쓰는 캔디. 애플과 마찬가지로 정말 환상적인 영어이름. 캔디는 호텔 키친핸드와 시푸드공장일을 함께 하는 투잡을 뛰고 있었다. 뭐 어쨌든 리오,네오(한국인 남자애), 미쉘,캔디 이렇게 4명이서 살고 있는데 리오와 네오가 퍼스로 가면서 마침 쉐어하우스 기간도 끝나서 미쉘과 캔디는 다른 곳으로 다음날 이사를 하기로 한 날. 그렇게 그 집에서 마지막으로 리오와 네오가 떠남을 아쉬워하며 술 한잔 하는데 많이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들도 떠날 준비,이사준비를 해야했기에, 정말 누가 떠날때보다 아쉬움이 컸던 날이었다.
[ 사진 위 : 마, 리오, 쇼티 ] 쇼티키가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는 대목.
잠깐 리오 얘기가 나온 김에 리오에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언젠가 한번 리오에게 왜 그렇게 특이한 영어이름을 썼느냐고 물어보자, 리오는 " 이거 원래 제 이름 아니에요 " 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리오로부터 들은 리오에 이름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원래 리오라는 이름을 쓰고 있던 또다른 한국인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시푸드 공장에 컨택, 즉 apply를 해놓고 다른 도시를 가게 돼었는데, 시푸드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보통 어플라이시 굉장히 자세한 서류를 쓰는 곳도 있지만 대개가 연락처 정도를 적어놓고 가면 된다.) 그래서 park이란 영어이름을 쓰던 현재의 리오에게 연락이와서 park은 자신이 리오라고 말하고 시푸드 공장에 취직하게 되고, 결국 이 때부터 리오가 되어버린다.
뭐 이런 취업성공기도 있다. 어쨌든 완전 소문난 스토리중에 하나라, 카나본에 장기체류한 한국인들이라면 이 얘기를 안다. 어차피 서로 얼굴은 몰라도 혹은 이름은 몰라도,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들이기 때문에 얼굴 보면 안다던가, 얘기들어보면 안다던가 한다. 다시 본론으로..
리오가 떠나고 많이 아쉬웠지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조금 어색하게 인사만 나눴던 쉐어메이트들인 얀과 크리스, 마리나와 많이 친해졌다. 다행이도 마리나를 빼고 우리가 사는 집에 모두 한국인, 그 한국인들이 다 술을 완전 좋아하는 것. 덕분에 얀과 크리스랑 친해지고나서 술값이 엄청나게 들었다. 한 주에 보틀샵에 산 술만 1000불은 된적도 있다. (쉐어한게 아니라 내가 그냥 구입한게..)
나름 장기 체류라고 생각했던 리오는 장기체류 축에도 못들었다. 수많은 대만애들이 이 곳에서 1년에서 2년간 머물고, 또 지금 같이 쉐어메이트로 있는 얀 또한 현재 세컨째까지 이 곳에 머물고 있었다. 이 곳에 오게 된 계기는 얀의 친누나인 제이드 누나가 맨 처음 이 곳에 와서 자리를 닦아놓고 한국에서 얀을 데리고 와 곧바로 잡을 꽂아주면서 얀은 2년간 단한번도 이력서를 써보지 않고 구직걱정없이 계속 쉬지 않고 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얀이 한국에 갔다오면서 이번엔 친구인 크리스를 데리고 와서 곧바로 일을 시작. 쉬지 않고 6개월간 3만불씩 정도를 벌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장기체류자가 몇명이나 된다. 이런 걸 보고 또 얘기하다보면 문득 호주에 맨 처음 왔던 때부터, 여러가지의 것들이 생각난다. 아는 동생이 " 오빠 지금 이제 막 도착했을 때 빨리 차 사서 시골로 가세요 " 라고 말했던 것. 만약에 그 때 내가 시골로 갔더라면 돈을 덜 까먹고 훨씬 더 수월하게 호주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퍼스에서 내가 이력서를 돌리며 개고생을 할 때 어딘가에서는 이렇게 기존의 인맥으로 수월하게 Job을 구해서 돈을 미친듯이 벌어재끼는 워홀러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장 아쉬운 것은 내 동생 영무였다. 내가 만약에 먼저 와서 카나본 같은데서 어느정도 기반을 닦아서 쉽게 일을 꽂아줄수 있는 정도가 되었더라면 영무가 굳이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어도 됐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엄청나게 컸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하는 말은 정말 결과를 내지 못한자들을 위한 동정일뿐, 사람들은 오로지 결과만을 놓고 판단한다. 그렇기에 카나본에서 쉽게들 이뤄지는 인맥을 통한 job 꽂아주기는 지난 퍼스에서의 나의 고생, 시간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단지 위안은 뜻하지 않게 내가 이 곳에서 가장 좋은 job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어쨌든 그렇게 카나본에서 많은 이들과 친해지면서 평화로운 워킹홀리데이를 즐기고 있었다. 정말 아무걱정도 없었던 때 였다.
어느 날,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길 집에 도착해서 내렸던 창문을 올리는데 이게 왠일 조수석 쪽 창문이 닫히지 않는 것이다. 한참을 씨름을 해봐도 완전히 내려간 창문은 꿈쩍도 안하는 것이다. 서둘러서 자동차 정비를 받았던 RAC정비소로 향했다. 하지만 이 짐승같은 새끼들. 예약을 먼저 하라는 말과 함께 밖으로 나와 차를 볼 생각도 안한다.
뭐 어쩌겠는가 예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며칠이 흘렀다.
약간 슬럼가인 이 곳 임에도 창문이 열려진 채로 있던 그 며칠동안 자동차는 아무 문제 없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날 아침 출근을 하려고 나왔을 때, 난 드디어 올 것이 왔음을 실감했다. 자동차 안에 휴지며, 조수석과 운전석 사이에 위치한 정리함(?!)에 넣어둔 각종 물건들이 널부러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자동차 안을 살펴봤을 때, 오디오는 뜯겨나가고, 뭔가 돈될것이 있나 뒤져서 차 안은 난장판이었다.
며칠간 너무나 아무일이 없었던 것이 더 이상하게 느껴졌던 건, 이런 일을 예상했기에 그랬던 걸까, 무덤덤하게 난 차를 몰고 출근을 했다. 자동차 정비 예약일 바로 전날이었다. 너무나 화가 났다. 처음 갔던 정비소에서 하다못해 조금만 봐주었다면, 고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나에게 뭔가를 일러주었다면.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난 열받은 나머지 그날 퇴근을 하고 다른 정비소로 향했다. 그 쪽 정비소에서는 밖으로 나와 대충 살펴봤다. 난 그 대충 살펴봐주는 것 조차 고마웠다. 그리고 다시 예약을 했다. 개새끼들. 사람이 죽어 실려와도 예약하고 오라고 할 새끼들.
어쨌든 이제 자동차 안에 오디오도 털리고, 다 털린마당에 이제 자동차만 안훔쳐가면 다행이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그렇게 다시 또 며칠의 예약일이 흘렀다. 차는 그렇게 한참을 자동차 창문이 열린채로 방치 되었다. 그리고 예약일 당일. 정비소로 향했다. 그리고 잠깐의 정비를 받은 후 정비소에서 나에게 한 말은, 자동차 창문이 자동문이라 안에 부품을 갈아야 되는데 이 건 닛산 센터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만에 난 닛산 센터 위치만 듣고 또 닛산 센터로 향해야만 했다.
그리고 닛산 센터에 도착해서, 난 다시 또 예약을 한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예약일 전날 차를 미리 가져다 놓고 다음날 찾으로 갔더니, 부품이 없어서 주문해서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차 없이 몇일을 걸어서 출근하며 참으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고생하길 몇일만에 드디어 자동차 수리가 완료되었다. 정말 수동이 좀 불편해도 수리비를 생각하면 옳은 선택이었다. 빌어먹을, 이 구닥다리 자동차의 창문이 고장났다는 이유로 난 엄청난 수리비를 물어야 했다, 무려 내가 산 차값에 1/5-1/6의 가격이었다. 게다가 오디오까지 뜯어갔으니 엄청난 손해였다. 나중에 차를 팔때를 생각하고 평소에 음악을 듣고 다니는 내 습관까지 고려하면 이제 오디오까지 다시 달아두는게 맞는 일이었다. 정말 짜증이 몰려왔다.
90년식의 자동차를 조금 비싼 가격을 주고 멍청하게 산 것도 산 거지만, 정말 문제 없이 잘 굴러가주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지내던 때, 말도 안되게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곳이 고장나버리니 공포감 같은게 생겨났다. 다음에 창문이 한번이라도 더 고장나면 정말 차값의 반을 어이 없게 들이는 일이 되버리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자동차 문제로 정신적 충격과 금전적 충격으로 멍할때, 어느날 전화 한통화를 받는다.
바로 엑스의 전화였다.
공장 컨택을 하라고 하면 언제나 " 야 공장이 뭔 돈벌이가 되냐 농장을 가야지 " 라며 농장에서 일도 못하고 빌빌거리던 엑스녀석이 나에게 " 너네 집 주인한테 나 바나나 공장 좀 꽂아달라고 해주면 안되냐? " 며 전화를 해왔다.
"마코토하고 애플(권)이랑 같이 갔을 때 걔네랑 같이 이름이나 리스트에 올리지 " 라고 말했을 때도 " 바나나공장? 관심없어, 농장을 가야지 " 라고 말했던 엑스였다. 정말이지 스스로는 어떤 것도 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솔직한 심정으로 당시 엑스를 꽂아줄수도 있었다. 하지만 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 새끼 고생한번 해봐라 하는 심정으로 난 그저 엑스에게 " 알았어 물어는 볼게 " 라고 말하고는 리사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마 이때 리사에게 말했다면 99퍼센트. 바나나 공장에 취직할수 있었으리라.
어쨌든 이후 엑스는 포트호텔에서 만난 다른 한국사람과 함께 농장일을 구하기 위해, 나의 원래 목적지였던 퍼스 남부의 농장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엑스가 카나본을 떠났다.
" 카나본 존나 좋아, 야 여기 일자리 넘쳐.. "
" 일 구하려면 구해 "
" 야 no job, no work 라고 적혀있어도 들어가봐 "
" 카나본 좋은데, 왜 사람들이 안좋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되네 병신들 "
이라고 시건방을 떨었던 엑스였다. 윌에 이어 드디어 엑스마저도 이 카나본을 떠나게 된 것이다. 차마 자기가 한 말 때문에 " 카나본 좆같아 " 라고 말하지 못하고 떠나는 엑스였다.
리오, 엑스, 여러 대만친구들, 한국친구들이 떠나고 또 그 빈자리는 새로운 사람들이 채워갔다. 시푸드 공장도 6개월간 일한 대만애들이 대거 그만두고 다시 또 그자리는 많은 대만애들로 채워져갔고 어수선한 그런 분위기 속에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그리고 이 곳 카나본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의 친인척, 친구등이 한국에서 막 도착해 곧장 카나본으로 와 호주에 도착한지 채 3-4일도 되지 않아, 공장에 꽂혀 일을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정말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지금도 호주안에 수 많은 도시에서 시티잡을 꿈꾸며, 혹은 엄청난 경쟁률 속에서 잡을 구하고 있을 수 많은 워킹홀리데이메이커들은 말 그대로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참을 자동차 오디오 없이 심심하게 다녔던 난, 마침 레프코에서 싸게 할인을 해서 파는 자동차 시디플레이어를 구입했는데, 정말 앞뒤 생각안하고 구입하긴 했는데, 설치가 문제였다. 시디피는 싸게 구입했는데 빌어먹을 이건 완전 애물딴지였다. 결국 시디피를 구입하고도 설치를 못해 있길 2-3주. 드디어 60불짜리 자동차 시디플레이어를 200불을 주고 설치를 했다. 짐승같은 새끼들. 그렇게 자동차 창문이 고장나 생긴 모든 문제들의 종지부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라고 생각했지만 기분좋게 자동차 오디오를 고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 밖에 나갈려고 차를 시동거는데 시동이 안걸리는거다.
[ 사잔 위 두장 : 자동차 문 고장난 내 자동차, 정말 호주 생활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 저 비닐은 시푸드 공장에서 시푸드들 포장하는 비닐. 원래 저거없이 그냥 창문이 열려진 채로 방치되어있었는데, 정말 농담아니고 비오는거 한번 구경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라는 카나본에서 하필 비가 와서 임시방편으로 껴놓은거, 저거 해놓고 아침에 출근하는데 정말 비닐 파닥거리는 소리가 하늘을 찔렀음. 비닐 자세히 보면 코랄 뭐 이런거 적혀있음. ]
순간 진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차를 다 부셔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건 뭐 시동조차 안걸리니 레카를 불러야 되나 생각했는데 씨발 오디오 고친다고 이제 막 200불을 쓴 시점에서 레카를 부른데만 300불인데 정말 눈앞이 깜깜했다. 도대체 또 어디가 고장난것인가, 분명 내가 집에 까지 몰고 왔는데 왜 시동이 안걸리나, 정말 너무 어이 없이 막막해 하던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배터리가 방전된 것은 아닐까, 근데 이 건 가능성이 없어보였다. 왜냐하면 집까지 내가 운전을 해서 몰고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푸라기의 심정으로 생각했던 건, 오디오를 수리하는 동안 수리기사가 계속 카오디오를 틀어놨던게 생각났다. 정말 미세하게 남은 배터리가 이제 막 방전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침 윗집에 사는 호주 아줌마가 들어오길래, 배터리 점프선 좀 빌려달라고 하니 흔쾌히 차를 내 차 옆에 세우고는 배터리 점프를 해줬는데 시동이 걸렸다. 정말 이 순간, 얼마나 기쁘던지 미친놈처럼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어쨌든 천만 다행이었다. 그렇게 2300불짜리 90년식 차에 말도 안되게 엄청난 돈을 쏟아붓게 되었다. 맨 처음 살 때만 해도 정말 호주에 있는 동안 열심히 타고 나중에 그냥 싸게 1000불에 팔아야지 했던 생각은 이 차에 들어간 돈으로 인해서 본전 생각에 적어도 3000에는 팔아야 겠다 란 생각으로 바뀌었는데 문제는 누가 이 90년식 차를 3000에 사는가 말이다. 아무리 내가 수리를 다 하고 엔진에도 문제가 없고 잘 나간다고 말한다 한들 말이다...
차로 인해 나보다 더 심한 꼴을 당한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들으며 자위하는 수 밖엔...
여기서 잠깐 자동차 관련 에피소드 열전.
모두 실화며, 주위 사람이 겪은 일이다.
A군.
자동차를 퍼스에 킹스파크에 세워뒀는데 에버리진(호주 원주민)이 차 안에 있던 가방을 훔쳐가려고 창문을 부수고 자동차 반파 시킴.
B군.
자동차를 7000불을 주고 사서 카나본으로 올라오는데 음주운전 하고 올라오는 바람에 차가 전복되어서 차가 완전히 끝남. 하지만 올라오기 직전에 1000불짜리 보험에 들어서 천만 다행으로 8000불 보험처리 되어서 받음. 다시 5000불짜리 차를 사서 카나본으로 올라오는데 속도가 60이상으로 안나옴. 카나본에 겨우 도착해서 정비 받으니 트랜스미션부분을 모두 교체해야되서 수리비가 3000불 나옴.
C군과 친구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카나본 북쪽의 카라타 라는 도시로 향함. 친구들 4명이서 돈을 모아 3000불 넘는 차를 구입. 카라타에 도착해서 잠깐 어느 집 앞에 주차하고 나서 어딘가에 갔다온 사이, 동네 애버리진들이 차를 완전히 부셔버림. 차 안에 가방부터 트렁크안에 모든 물건들 다 도난. 2명은 카라타 머물고 두명은 차를 사기 위해서 퍼스로 1인당 200불에 가까운 비용을 지불하고 내려감. 그리고 다시 차를 사서 카라타로 감.
D군
자동차를 사서 카나본으로 올라오는데 제랄드톤에서 차가 퍼짐, 레카를 300불 주고 불러서 정비소에 가니 페차시켜야 된다고 말함, 결국 100불 받고 차를 제랄드톤에서 팜.
....
이 정도가 이곳 카나본에서만 내가 보고 들은 얘기였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정말 엔진 문제 없이, 카나본까지 잘 이끌어준 나의 애마 " 엄마보고싶어 " 가 기특할 따름. 이렇게 밖에 위안이 되지 않는다.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삼는다.
하지만 돌이켜봐도 나의 호주에서의 삽질기는 엄청나다. 위의 수많은 자동차 관련 에피소드에 못지 않은 나의 호주 삽질기.
퍼스에 도착해서 얼마 안됐을 때 윌의 노트북을 빌려쓰다가 LCD고장으로 수리 할때, 한국으로 보내고 받는 소포비와 수리비 약 40만원 ( 호주 달러 계산 대략 400달러 )
퍼스 떠나는 날 부셔먹은 JK의 기타 약 100불
카나본에 와서 자동차 정비 가격 빼고 수리비로 들어간 돈 약 1000불. 3번 수리 함.
아...정말 갑자기 뒷골이..
어쨌든 자동차 수리에 큰 돈이 몇번 들어간 이후로는 조금 정신차리고 술도 줄이고 긴장 좀 탔다.
[사진 설명들]
[ 좌측부터 : 켈리, 미나, 소피아 (모두 대만인들)
[ 사진 위의 몇장들 : 모두 집주인 리사 아줌마 생일날 찍은 사진. 카나본의 3대공장, 바나나 공장 매니저 답게 엄청나게 많은 워킹홀리데이메이커들이 참석, 리사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던 날... ]
[사진 위 : 미나네 집에 초대 받았을 때, 여자 한명 빼고 모두 대만인들, 맨오른쪽에 앉아있는 사람은 집주인 데이빗 아저씨, 흔히 파티라고 하면 뭐 저런거임. 그냥 음식 만들어서 먹고 술한잔 하고 그런거..]
[ 사진 위 : 가라지 세일 하는 날, Garage세일이라 함은 흔히 뭐 가끔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그냥 직역하자면 차고에서 안쓰는 물건들 파는 뭐 그런건데 한마디로 말해, 개인이 자체적으로 그냥 중고물품들을 세일 하는거다. 워낙 할일 없는 동네다 보니 가라지 세일 뜨면 그냥 아침부터 인산인해, 나름 취미생활이라면 취미생활. 가라지 세일 돌아다니다보면 은근히 사고 싶은게 많다. 그냥 가라지 세일 하는 집 앞에 있는 차들 찍음. 그리고 저 쓰레기통에 가라지 세일 한다고 적혀있음 ]
[ 사진 위 : 크리스 생일 파티, 맛난 음식들을 많이 만들었던 날이다. 솔직히 호주에서는 워낙 많은 한국인이 살고, 울월스(대형마트)에 가면 각종 아시안 푸드들도 있고, 신라면,김치라면 새우깡 이런것도 다 팔기 때문에 한국음식 만들어 먹는데 문제가 없다. ]
'해외에서 살아보기 > 호주 워킹홀리데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주 워킹 홀리데이] 36. 내 인생 최고의 바다 ~ 코랄베이 ~ (18) | 2009.12.29 |
---|---|
[호주 워킹 홀리데이] 35. 카나본 정리 (14) | 2009.12.25 |
[호주 워킹 홀리데이] 34. 시즌 오프, 그리고 예상치 못한 대반전 (14) | 2009.12.16 |
[호주 워킹 홀리데이] 32. 카나본의 3대 이벤트 (22) | 2009.12.14 |
[호주 워킹 홀리데이] 31. 탈출 카나본 백패커 (16) | 2009.12.11 |
[호주 워킹 홀리데이] 30. Nor-west Seafood Factory (14) | 2009.12.08 |
[호주 워킹 홀리데이] 29. 무의 행운, 윌의 변심, 엑스의 진상 (30) | 2009.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