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호주 워킹 홀리데이 수기는 시간의 흐름대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한편이 단 몇분에 관한 얘기 일 수도 있고, 몇 달에 관한 얘기 일 수도 있습니다. 개별 에피소드 별로 보시는 것 보다 처음 부터 차례대로 보시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습니다. 그리고 수기 몇편에 한번씩 Extra편에는 각종 호주 생활 관련, 준비관련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재밌게 읽으시고,호주 생활,워킹홀리데이 관련 질문은 언제나 리플로 달아주시면 확인 즉시 답변 드리겠습니다. 이 수기의 처음부터 읽으실 분은 클릭하세요! 호주 워킹 홀리데이 첫편보기!


 34. 시즌 오프, 그리고 예상치 못한 대반전


 슬슬 시푸드 팩토리 시즌 오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맨처음 일을 시작할 때부터 대충 12월 초에 끝이 난다던 시푸드 공장. 그리고 그 시간이 다가오면서 난 공장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모두의 대답이 달랐고 매니저인 쇼티만이 11월 말쯤에 끝날꺼라고 일러준다. 그러던 금요일 오후에 점심을 먹을 때, 쇼티가 나에게 와서는 이제 공장이 끝났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화요일에 와서 마지막 페이슬립을 받고, 유니폼을 반납하라고 말해주었다.


 드디어 올것이 왔구나, 시푸드 공장이 끝났다. 


 쇼티에게 마지막 날이라고 들은 날, 정말 혼자서만 참으로 골치 아팠던 하루였던 것 같다.


 차 수리로 전날 차를 맡겨놓고, 또 한국에서 보냈다는 기다리던 소포가 우체국에 와있다는 걸 안 상태라, 이웃집에 사는 토미에게 미안하지만 퇴근할때쯤 내가 전화를 하면 좀 시푸드 공장으로 데려와달라고 부탁을 해놨다. 왜냐하면 아침에는 걸어가든가 하면 됐지만 오후에는 우체국이 문닫기 전에 소포도 찾고, 자동차도 찾으로 가야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런 와중에, 그동안 무거운 박스를 옮긴 후유증으로 허리가 너무 아파서 아침부터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다. 예전 태국여행때 허리가 너무 아파 땅바닥에 무릎을 찓으며 넘어졌던 수준 이상이었다. 


 패킹을 하는데 정말 허리가 너무 아파 중간 중간 패킹테이블을 손으로 붙잡고 간신히 서있길 몇시간 좀만 버티자 좀만 버티자 생각하는데, 너무 아픈 나머지 정말 미쳐버릴껏 같았는데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아픈데 돈 몇푼 더 벌어보겠다고 이 악물고 버티고 있는 내 모습이 참 웃겼다. 어쨌든 조금만 더 버티겠다며 있다보니 시간은 흘러 흘러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도저히 못참겠어서 일찍 조퇴하고 집으로 가서 쉬어야 겠단 생각을 하고, 점심 시간을 맞이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쇼티가 와서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게다가 또 오늘 일 끝나고 한두달에 한번씩 하는 바베큐 파티가 있다는 것이었다. 공지게시판을 보니 정말 바베큐파티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이런.....


 마지막 날인데, 조퇴를 하고 가야되나, 게다가 바베큐 파티라니, 

 

 조퇴를 하고 가자니, 그래도 마지막 날인데 사람들이랑 사진도 찍고, 얘기도 나눠야 하지 않나 싶은 마음. 안가자니 소포도 찾아야되고, 차도 찾아야 되고, 근데 또 허리는 아프고. 결국 점심을 먹고나서 계속 고민고민.. 어찌해야 하나...


 그리고 결국 좀 일찍 일을 끝내고 볼일을 보고 내 차를 가지고 다시 와야겠단 생각을 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오후3시. 토미에게 전화해서 지금 좀 데리로 와달라고 말한후에, 넷아줌마에게 자동차 찾아야 되니 좀 일찍 가겠다고 얘기하고 쇼티에게도 얘기를 한 후에 공장에서 나왔다. 마지막으로 일하는 날 조퇴라니. (그것도 다시 돌아와야 하는..) 좀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쨌든 공장 밖으로 천천히 걸어나오고 있으니 토미가 차를 몰고 온다. 


 토미의 차를 타고 우체국으로 향했다. 우체국에가서 소포를 찾으려고 하니 직원이 코를 손에 잡으며 도대체 뭐가 들은거냐며 얘기하는데 " 씨발것 오바하긴 " 그런 생각으로 박스를 받았는데 냄새가 나긴 많이 나더라...-_-;;;;


 집에서 부친 소폰데.. 기대감으로 한가득.


 그리고 곧장 자동차를 찾으로 갔다. 자동차를 찾아서는 내 차를 몰고 잠깐 집에 들렸다. 방에다가 소포를 놓고, 카메라를 대충 챙겨서 시푸드 공장으로 다시 향했다. 시푸드 공장에 도착했을 때, 일이 모두 끝나고 바베큐 파티를 시작해있었다. 마지막 파티라 그런지 치킨트리트에서 치킨을 엄청나게 많이 사다놨고, 게다가 새우며 각종 해산물까지 푸짐.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그 와중에 또 술 마시며 사람들이랑 얘기하는데 참으로 즐거웠다. 나름 시푸드 공장에서 일한 유일한 동양남자이기에 대만여자애들이 돌아가며 나랑 사진을 계속 찍었다. 나 역시도 이제 마지막이란 생각에 사람들과 돌아가며 사진을 찍는데, 시푸드 공장 사람들 뿐아니라 하버 사람들까지 왔는데, 마티,알렉스,로드니가 왔는데 하버에서 힘들게 같이 고생하고 해서 그런지 하버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과 맥주마시며 사진찍는데 내가 장난으로 맨처음에 팀한테 뽀뽀하려는 듯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더니 완전 난리. 그 때 부터 사진을 찍을 때 마다 저마다, " 무! 키스하지마 " 라며 얘기하는데 분위기 완전 화기애애. 그렇게 몇시간을 놀고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시푸드 공장 종료.


 집으로 왔더니 옆집의 토미가 들려서 얘기해줬는지 시푸드 공장 끝났냐고 모두가 물었다. 

 " 나 이제 백수다! " 라고 얘기하면서 방으로 들어서는데 기대감으로 소포를 뜯으려던 나의 계획과는 달리 권이 이미 소포를 다 뜯어놨다. 젠장. 


 김,숏다리, 오징어, 한치, 진미채 오징어, 멸치, 쥐포, 깻잎, 마늘쫑 장아치 등등이 왔는데 완전 신났다. 소포 안에는 종이 두장이 들어있었는데 뭐 대충의 내용은 내용물 확인을 위해 이 소포를 뜯었다는 내용의 한장, 그리고 문제가 없어서 어떤 물품도 빼지 않았다 라는 내용의 한장이었다. 


 시푸드가 끝나서 좀 시원섭섭하지만, 한국에서 온 소포 덕택에 기분이 완전 좋았던 날이다. 저녁때 모두에게 " 딱 일주일 만 쉬고, 일 좀 구해서 다시 해야지 " 라고 얘기를 했다. 그렇게 난 평온하게 간만의 홀리데이를 마구 즐겨주었다.


 그리고 주말이 지나고 다음 화요일에 유니폼 반납과 마지막 페이슬립을 위해 시푸드 공장에 가려고 하는데 전날 대만여자애들이 갈 때 좀 Lift(다른 이의 차를 타고 가는..카풀)를 해달라고 해서 대만여자애들이 우리집으로 와서 이제 막 출발하려는데 젠장할, 차가 시동이 안걸리는거다. 그 날 아침 카오디오 설치를 위해 정비소에서 막 오디오를 새로 달고 차를 몰고 왔는데 도대체 뭐가 문젠가 완전 당황. 혼자만 있었으면 그러려니 했는데 대만애들까지 줄줄이 있으니 완전 당황스러웠다. 그 와중에 완전 행운이 윗집에 사는 호주 아저씨가 마침 그걸 보고 차를 좀 봐주는데 내가 조심스럽게 " 시푸드 공장으로 우리 좀 태워다 달라 " 고 부탁했더니 흔쾌히 아저씨가 데려다 주겠다고 해서 일단 내 차는 그대로 두고 우리는 시푸드 공장으로 향했다.


 공장에 가서 마지막 페이슬립을 받고, 유니폼을 반납하고 다시 윗집 아저씨의 차를 타고 돌아온 후에 차를 한참 다시 아저씨랑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도저히 문제점을 찾지 못해서 아저씨는 포기하고 집으로 들어가고 난 멍하니 있는데 왠지 느낌이 배터리가 방전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정비소에서 집으로 몰고 온터라 방전이 될 터가 없을텐데 라고 생각은 했지만, 몇시간동안 수리하는내내 카오디오로 라디오를 틀어놓고 수리하던 장면이 떠오르면서 몇시간동안  배터리를 써서 거의 방전직전에 내가 차를 몰고 와서 방전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배터리가 오래된거니 충분히 가능 할 법했다. 


 그래서 배터리 점프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권이 바나나 공장에서 퇴근하고 집으로 왔는데 나를 보자마자 대뜸 " 오빠 낼  바나나 공장 나가야돼 " 이러는거다,  나는 " 야 못나가 지금 차 또 고장났어 " 라고 말하자 권이 완전히 난리가 났다. 평소같으면 그냥 그러려니 하는 권인데 왜이렇게 난리를 치나 했더니 알고보니 내가 내일부터 출근 하게 돼서 이미 자기가 차로 리프트 할 사람을 다 짜서 내일부터 내 차로 리프트를 하기로 다 됐다는거다, 그러니 지금 돈을 얼마를 들여서라도 수리를 하라는거다. 


 결국 레카를 불러야 하나 고민하면서 마지막으로 배터리 점프만 한번 해보자고 생각하는 찰나에 윗집 아줌마가 차를 몰고 들어온다. 아줌마에게 배터리 점프 좀 해달라고 하니 차를 대고는 아저씨를 불러온다. 아저씨는 점프로 되겠냐고 말하며 점프를 하는데 시동이 걸렸다. 정말 그 순간 머리속으로 몇백달러가 굳었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권도 어찌나 기뻐하던지. 그렇게 차를 다시 살려놓고 우린 배터리 충전을 위해 드라이브나 한번 다녀오기로 하고 근처 바다에 갔다 돌아왔다. 돌아오니 나의 바나나 공장 취직을 모두 축하한다. 


 일주일만 쉬고 싶었는데 시푸드 공장에서 금요일에 끝나고 주말을 보냈으니 정확히는 이틀을 쉬고 다시 또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다지 원치 않았으나 이렇듯 카나본에서는 일을 맘만 먹으면 끊임없이 할 수 있었다. 이제 정말 배가 부른 상태. 어쨌든 다음날 결국 아침일찍 바나나 공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바나나 공장은 차로 약 15분 정도 가야 되는 곳에 위치 해있었는데 대략 카나본 시내로 부터 25km정도 떨어져 있었다. 


 리프트 해주는 사람은 권의 카나본 절친이 된 앤, 그리고 토미의 친구 워니. 이렇게 다른 한국사람 두명을 더 리프트 해서 바나나 공장에 도착해. 낯선 일터에 들어섰다. 무슨일을 할 지 몰라 좀 있었지만 그래도 공장 이곳 저곳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의 낯이 익었고, 또 아는 이들이었다. 워낙 좁은 동네라 술 한잔 했었던, 얘기나눴었던 이들. 대뜸 나를 본 대만남자 애인 에반이 인사를 하면서 자기가 12월에 그만둘거기때문에 오늘 자기가 나한테 하던 일을 가르쳐줄거라는 거다. 완전 벙찌게 무슨 서류작성도, 무슨 공장안내도 없이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확실히 듣던대로 시푸드에 비해서는 뭔가 엉성했다. 확실한 회사느낌이 드는 시푸드 같은 경우에는 제일먼저 서류들을 작성하고, 공장 이곳저곳을 안내받으며 시설 이용에 대해 알려주고, 또 공장이 돌아가는 것을 알려주는데 여긴 가타부타 말도 없이 일을 시켰다. 내가 시작한 일은 바나나들이 통에 들려서 콘베어벨트를 타고 오면 그 통을 들어서 팔레트(시푸드 공장에서 쓰던.. 똑같은)에 쌓는 일이었는데 시푸드 공장에서 하던 일과 거의 똑같았다. 덕분에 수월하게 그날 첫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바나나 공장에서의 일을 시작했는데 바나나 공장은 정말 상황이 많이 열악해보였다.


 식당과, 의자 테이블등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휴식을 취한 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 시푸드 공장과는 달리 바나나공장의 시설은 열악하기 그지 없어 사람수에 비해 턱없이 좁은 공간의 식당. 그 식당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들은 뙤양볕이 내리 쬐는 바깥에 완전 허름한, 어느 폐차장에서 가져왔을까 싶은 자동차 의자들이 땅바닥에 몇개 놓여져 있는 곳에서 휴식을 취해야 됐는데 정말 웃음이 나왔다. 정말 시푸드가 카나본의 삼성이구나 싶었다. 


 어쨌든 바나나 공장 첫 출근이었지만 전혀 낯설지 않았다. 일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이미 알고 있고, 또 하는 일도 그닥 별 차이가 없는 일이라 무난 하게 지낼 수 있었다. 


 여기서 잠깐 바나나 공장에 이것저것에 대해 언급 하고 가려고 한다.

 바나나 공장의 일의 강도는 왠만한 농장일을 넘어선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일의 강도도 강도지만 바나나 공장에서 모두가 가장 힘들어하는건 바로 매니저인 디온 이었는데 정말 나는 디온을 만나기 이전에 수 없이 많은 이들로부터 디온에 대해 애기를 들었다. 정말 쉐어메이트인 얀은 현재 토마토 공장에서 일하는데 예전에 바나나 공장에서 일할때 디온 때문에 너무 무서웠다고 하는거다. 아닌 말로 거의 대부분의 바나나 공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디온을 모두 무서워했다. 말라깽이의 뉴질랜드 아줌마인 디온은 공장에서 어찌나 소리를 질러대고 화를 내는지 다들 디온이라고 하면 벌벌벌벌 할 정돈데 사실 난 권으로부터도 디온의 얘기를 들었을 때 이렇게 얘기했다.


 " 매니저니까 공장 일이 빨리 돌아가라고 그러는거잖아 그정도는 그냥 이해해야지 " 라고 말을 했었다.


 어쨌든 바나나 공장의 디온이라고 하면 정말 워킹홀리데이메이커들 사이에서는 거의 공포의 대상일 정도. 


 바나나 공장은 공장장 격인 팩토리 매니저 브라이스(잘생기고, 젊음) 그리고 그 밑으로 두명의 슈퍼바이저가 있는데 첫번째가 바로 공포의 대상 디온, 그리고 디온 밑의 다음 슈퍼바이저가 바로 우리 집주인인 리사. 난 리사네 집에 살기 때문에 이건 뭐 원치도 않았는데 일을 꽂아주는 바람에 졸지에 바나나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바나나 공장의 공정을 대략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아침에 각 농장으로 부터 바나나 들이 픽킹되어서 곧장 바나나 공장 (창고형으로 생긴 건물,  쉐이드 shed라고 부름)으로 오면, 밖에서 바나나 큰 가지 채로 짤려 온 것들을 굵은 쇠사슬에 걸어 놓는다. 이 일은 3-4명이 하는데 그 중에 한명이 내가 리프트 해주고 리사네 집에 같이 살고 있는 워니가 한다. 그리고 그렇게 바나나가 쇠사슬에 걸려서 공장안으로 이동해 오면 제일 먼저 컷터들이 바나나의 큰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바나나 들을 일정 크기로 잘라서 컨베어 벨트에 넣어준다. 컷팅은 바나나 공장 안에서 일중에 가장 힘든 일로 알려져있는데 바나나를 가지로 부터 잘라내야 하기 때무에 익숙하지 않은 초반에 손을 많이 다친다. 


 그리고 컷팅을 해서 컨베어벨트를 타고 가는 바나나는 솔팅을 거치는데 솔팅은 말그대로 분류를 하는 작업이다. 여기서 바나나의 썩은 부분, 나쁜 바나나 등을 골라 낸다. 솔팅 역시 쉽지 않은 작업이었는데 이유는 일 자체의 난이도는 그저 그랬으나 컨베어 벨트가 워낙 낮게 깔려있는터라 모두 허리를 완전 숙이고 일해야 되서 허리 고통이 장난이 아닌 작업이다. 이렇게 솔팅을 거쳐서 바나나는 와이핑을 하게 되는데 와이핑 과정에서 와이퍼들이 솔팅과정에 묻은 바나나의 물기들을 털어내고 닦아 낸다. 이 작업은 바나나 공장에서 가장 쉬운 일 중에 하나.


 그리고 와이핑을 거친 바나나들은 팩커들에게 가서 비닐 포장을 거친다. 솔팅 과정에서 딱 포장용 사이즈로 바나나를 일정 크기로 해놓으면 팩커들은 바나나들을 비닐에 일정 무게에 맞춰 포장한다. 그리고 이 팩커들을 지나면 바나나는 드디어 바나나 공장의 꽃 클리퍼들에게 도착한다. 클리핑은 비닐에 포장된 바나나 포장에 플라스틱을 꼽는건데 흔히 우리가 식빵 같은데서 볼 수 있는 비닐을 대충 묶어놓는 플라스틱 쪼가리, 바로 그걸 포장에 꼽는 일인데 바나나 비닐포장을 잡고 기계에 슥 한번 밀면 자동으로 플라스틱 쪼가리들이 꽂힌다. 이게 왜 바나나 공장의 꽃인지 말해주겠다. 권도 패커였는데 바나나공장에서 재밌는게 기본 시급은 모두 같으나, 팩커와 클리퍼들은 기본시급 + 컨트랙 이었다.


 근데 꽤 빡센 팩커와는 달리 클리핑은 정말 가장 쉬운일이며, 가장 욕을 덜 먹으며, 가장 돈을 많이 받는 일이라 모두가 원하는 파트다. 하지만 바나나 공장에 와서 보니 내가 바나나 공장에 일하기 전에 수 없이 많이 들었던 얘기들 그 이상이었다. 술을 마시거나 파티를 할 때 바나나 공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얘기할 때 들었던 얘기들. 클리퍼가 최고다. 부터 디온 얘기까지 바나나 공장의 이런저런 얘기는 내가 들었든 그 이상. 클리퍼는 내가 직접 본 바로 정말 말도 안되게 날로 먹는 파트였다. 게다가 정말로 바나나를 집어서 비닐에 넣어서 무게를 맞춰야 하는 팩킹에 비해 그냥 비닐을 잡고 기계에 밀기만 하면 되는 클리핑은 속도도 엄청나게 빨라 시급외에 받는 컨트랙으로 엄청난 고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다른 파트들은 말그대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욕은 욕대로 먹고 돈도 못버는데

 클리핑은 가장 쉬운일을 하면서 가장 편하게 일을 하며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클리퍼들은 모두 디온집에서 사는 대만애들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 역시 다른이들처럼 디온을 싫어하게 된 계기는 디온이 정말 개년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단지 팩토리 매니저로서 공장을 원활하게 돌리기 위해 소리를 지르고 난리 부르스를 치는 거라면 난 디온을 충분히 이해할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그냥 말그대로 개년이었다. 


 디온의 미친 개년같은 행동을 보여주는 에피소드.  팩커 중에 디온 집에 사는 '아이리스'라는 대만 여자애가 있었는데 얘는 완전 말그대로 개병신이었다. 팩커들과 클리퍼들은 매일 자신의 작업 속도를 알 수 있는데 속도 표가 공지판에 붙여진다. 누가 속도가 몇이 나왔고 누가 제일 빠르고 느린가를 알 수 있는데 속도에 따라 추가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틀렸는데 보통 50-60정도가 평균인데 이 정도면 시급 20-21불 정도. 


 참고로 클리퍼들은 80-90으로 시급 24-5불 정도를 받는다.(얼마나 날로 먹는지 느낄수 있는 부분).


 어쨌든 아이리스는 속도가 대략 30-40정도 나오는 공장에서 가장 일을 못하는 애중에 하나였는데 디온집에 사는 이유로 절대 짤리지 않는 아이였다. 모두가 팩킹이나 클리핑을 원하지만 할 수 없는 상황. 그런데 권이 디온 바로 밑의 슈퍼바이저인 리사의 덕택으로 공장에 취직하고 게다가 몇일만에 팩커 자리로 갈 수 있었는데 권이 일을 완전 잘하는 것이었다. 몇달동안 일하면서 속도가 30-40 나오는 아이리스에 비해 몇일만에 아이리스를 이기고 약 일주일만에 속도가 60이상을 찍은 권.


 리사는 기세가 등등할수 밖에 없었다. 리사는 아이리스가 일도 못하는데 차마 디온의 가호를 받는 디온네 쉐어하우스 생이었기에 일못한다고 뭐라고 말도 못하는데 자기네 집에 사는 자기가 꽂아준 권이 일을 엄청나게 잘하자 디온에게 " 니네집 사는 애, 쟤 왜 저러냐, 우리 애플(권의 영어이름)은 일 너무 잘한다. " 이렇게 자랑했다고 한다. 리사와 함께 살던 토미와 제니의 말을 빌자면 일을 끝나고 오면 리사는 언제나 " 오늘 애플 속도가 몇 나왔는데 정말 일 잘한다. " 라며, 말그대로 리사의 자랑이자 자부심이 바로 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권은 유독 디온의 미움을 샀는데, 정말 역시 권과 다른 이들의 얘기를 빌어보자면 정말 뭐 꼬투리 잡을 꺼 없나 권 바로 옆에 서서 계속 지켜본다는 거다. 


 그리고 내가 바나나 공장에 취직되면서 바로 또 느낀것이 정말 디온은 개년이었다. 내가 한때나마 옹호해줬던게 병신처럼 보일정도로 개년이었다. 속도가 30-40나오는 아이리스에게는 언제나 잘한다고 칭찬을 하고, (단지 지네 집에 산다는 이유로) 아이리스보다 월등히 속도가 빠른 이들에게는 느리다고 개지랄지랄을 하는 것이었다. 말그대로 결코 공장을 빨리 돌일 속셈이 없고 단지 그냥 말그대로 슈퍼바이저로서 지 권한과 힘을 누리기 위해 소리를 질러대며 애들을 갈구는 것이었다.


 시푸드 공장에 일할 때는 여기가 호주가 맞구나, 호주의 직장에서의 분위기는 이렇구나 정말 한국이랑 많이 틀리다 라고 느낀 반면에 바나나 공장에서 일하며 씨발 사람 사는데가 다 똑같지, 여긴 완전히 한국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니저의 권한으로 일을 마구 꼽아주고, 파트를 맘대로 막 바꾸고, 자기네 멋대로, 어떤 원칙도 규칙도 없었다. 


 나는 아까 말한대로 박스 옮기는 일을 했는데 이 박스에 바나들을 넣는 일 또한 클리퍼들이 했는데 클리퍼들이 각 농장 번호표가 적힌 티켓을 박스에 꽂아서 컨베어 벨트에 올려서 나에게 보내면 난 각 농장 번호표를 보고 이 농장 박스가 몇개, 이 농장 박스가 몇개 하는 식으로 갯수도 종이에 적어서 박스를 쌓아야 했다. 근데 한번은 클리퍼들이 농장 번호표를 잘못 꼽아서 보낸 것이다. 덕분에 내 자리에 박스들이 쌓였다. 왜냐하면 일일이 번호표를 다 떼어내고 다시 맞는 번호표를 꼽아야 했기 때문이다. 말그대로 클리퍼의 잘못. 하지만 난 갈굼당했다.


 누구로부터? 


 디온 남자친구 러셀로 부터. 러셀이라고 할아버지가 있는데 디온의 남자친구로 지게차 운전을 하는 이였는데 정말 나에게 와서는 박스 옮기는 걸 잘 보라고 하며 지가 박스를 막 옮기는데 솔직히 별로 그렇게 빠르지도 않았다. 근데 나한테 자기는 지금 나이가 61센데 이렇게 빠르다며 지랄을 하는데 정말 어이가 없었다. 박스가 밀린 이유가 내가 늦게 옮겨서가 아니라 클리퍼들이 잘못붙인 번호표들을 바꾸느라 밀린것인데 말이다.  정말 말그대로 년놈이 쌍으로 지랄을 해대는데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박스를 옮기는 일을 한지 3일만에 새로 들어온 이상한 오지녀석에게 밀려서 파트를 옮겼는데 그리고 이틀동안 컷팅,솔팅,세컨솔팅 등 파트들을 옮겨다니다가 난 일을 시작한지 6일만에 디온으로부터 해고통보를 받았다. 말그대로 짤린거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더군다나 당일날 점심을 먹고, 담배한대피며 사람들과 얘기하다가 " 아 씨발 진짜 바나나 공장 좆같다. 차라리 좀 짤라줬으면 좋겠네 " 이렇게 얘기한터인데 정말 짤렸다.


 모두가 다 의아해했다. 바나나 공장에서 짜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니 역사상 한명만이 짤렸고 그것도 일을 맨날 빼먹어서 짤린거라 바나나공장에서 짤일일은 거의 제로. 게다가 일이 손에 익기도 전에 6일간 거의 모든 파트들을 전전했던 나를 본 모든 이들이 정말 이건 디온이 의도적으로 짜른거라고 얘기하는거다. 특히 권은 나에게 " 디온이 날 너무 싫어하니까 오빠를 짜른거야. " 라고 얘기하는 거다. 정말 만감이 교차했다. 기운만 쭉 빠졌다. 쪽팔렸다.


 일주일만 쉬고 일하겠다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갑자기 일을 시작하고 갑자기 짤리면서 기분만 드러워지고 더군다나 차라리 내가 한 파트에서 일을 하며 최소 1주일-2주일을 하고나서 짤린거면 " 아 내가 일 좆같이 하는구나 " 라고 생각할 법하지만 3일간 박스를 옮기다, 다시 3일간 다른 파트들을 전전하며 어떤 일하나 익히지 못한 나로서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난 바나나 쉐드에서 짤리면서 카나본에 대한 정내미가 완전 떨어진것이다.

그 와중에 권 마저도 내가 짤리고나서 디온 얼굴만 보면 정말 토나올정도로 정내미가 떨어져서 그만두고 싶다고 하는거다. 정말 누가봐도 말도 안되는 해고 였다. 


 그렇게 우린 슬슬 카나본을 떠나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순간이었다.


 시푸드 공장을 다니며 쌓였던 정이 한순간에 모두 날라갔다. 

팀, 그리고 오른쪽에 프랭크


영어를 조근조근 알려줬던 미쉘

하버에서 함께 일한 알렉스

공장장 스티브

함께 일한 넷 아줌마

마와 데비 아줌마

슈퍼바이저 마이클

슈퍼바이저 쇼티

대만여자애들

소피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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