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서블 여행기 #66 [파키스탄/훈자] 알티트 포트ALTIT FORT와 더러운 한국인들
아침에 일어나니 옆방 사람들이 거실 침상에 나와 누워있다. 우리가 오기 전, 그들의 자리가 우리가 온 이후로는 우리 때문에 저렇게 편하게 있지도 못했단 생각에 괜히 미안해졌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는 모 처럼 같은 숙소 쓰는 한국인 4명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 어제 어디 다녀오신거 같던데.. "
다 알고 있지만 슥하고 물었다.
" 울타르 메도우 트래킹 다녀왔어요! "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울타르메도우 트래킹 정보를 얻기 시작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어제 트래킹 가는데 가이드 고용을 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연스럽게 우리끼리 따로 가면 트래킹 가이드 비용을 1/2해야 되는 상황이 그려졌다. 정말 어제 사람들과 다 같이 다녀왔으면 훨씬 값싸게 더 즐겁게 다녀왔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더욱 커졌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파키스탄 가이드북을 여전히 못구한 상태라서 가이드북 얘기를 하는데 이상한놈이 또 한마디 한다.
" 파키스탄 가이드북 필요없어요 "
" 뻔하잖아요~ 훈자 갔다가 그냥 길깃, 이슬라마바드,라호르 "
" 다른데는 별로 땡기지도 않고, 뭐 가이드북이 필요있나요? "
정말 여행 도중 이런 놈들을 만날 때면 정말 짜증이 솟구친다. 그냥 세상에 이런놈도 저런놈도 있다고 생각을 할려다가도 도대체 지가 뭐라고 저런 잘난척을 해대며 가이드북 필요없다는 얘기를 당당히 할까, 저 녀석은 여행 준비하면서 인터넷 검색도 한번도 안하고 저런 소릴 하는 걸까 정말 의문이다. 자기 일엔 존나 준비 철저하고 남의 일엔 아무렇지 않게 씨부리는 인간들. 정말 짜증나는 인간들이다.
더 웃긴건. 가이드 북 필요없다더니 가이드북 들고 있다. 다음 클라우드에 론리플래닛을 올려놔서 가지고 있다고 나에게 다음 클라우드 공유를 통해서 론리플래닛을 공유해준다. 그래도 짜증은 짜증이고 다행이다. 진짜 여행 나오기 전에 이렇게까지 준비를 철저히 해놓고,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에게 "가이드북이 뭐가 필요해요 " 라고 씨부리는 철판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 녀석은 오늘 훈자를 떠난다고 한다. 가이드북 공유를 받게 되어 고마웠지만 잠시 대화 나누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또 솟구치는 정말 짜증나는 스타일이다. 쏘세지의 표현대로 진짜 알면 알수록 미친놈같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보니까 다른 한국인들 중 여자들, 파부아줌마든 다른 여자들이 다 얘보다 나이가 많다보니까 얘를 다루는 법을 잘 아는 것 같았다. 이상한놈(옆방,가이드북없어도되요) 없을 때 다른 한국여자들 대화하는거 들어보면 뭐 대충 이렇다.
" 이상한놈(가명) 다루기 쉽잖아 "
" 그냥 잘한다 잘한다 해주면서 와 어떻게 이런걸 들어 "
이러면서 하면 좋다고 말 잘듣는다고..
자기 잘난척 하기 좋으니 역시 나이 있는 여자들이라 사람 다루는 법을 아는듯. 어쨌든 골때린다. 어쨌든 그 녀석은 떠난다고 나가고, 옆방 총각도 이상한놈 배웅하러 같이 나간다. 조용해진 숙소.
계란도 사놓고, 채소들도 사놓은게 있어서 오늘 아침도 오믈렛을 만들어서 토스트 만들어서 먹는데 꿀맛이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즐거운 이 곳. 밥 먹고 밍기적거리면서 오후까지 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책을 매일 한권은 읽는 것 같다. 이런 여유를 또 어디서 맛볼까. 쏘세지랑 대화 끝에 오늘은 또 다른 fort인 ALTIT FORT에 가보기로 했다.
알고 있는 것이라곤 그냥 ALTIT FORT라는게 있다는 것 뿐.
이상한놈이 론리플래닛 공유를 해줬지만 극악의 느린 인터넷상태로 몇메가짜리 론리플래닛 받는게 하늘의 별따기.
우리는 알티트 포트에 갈 준비를 끝마치고 밖으로 나와 천천히 걸어 내려가다보니 이정표가 있었다. ALTIT FORT까지 2.5킬로미터라고 적혀있다. 2.5킬로미터면 정말 가까운 거리. 가벼운 마음으로 이정표를 따라 걷다보니 우리가 매일 왔다갔다 한 곳과 또 다른 방향으로 접어 들었다. 그리고 그 길에 접어 들자 눈 앞에 펼쳐진 장관. 발팃 포트에 올랐을 때 성 다른 편으로 보이던 그 곳이다. 둘 다 훈자의 풍광에 반해 사진찍고 신나는 기분으로 흙길을 기분 좋게 걸었다.
길을 따라 걷다가 아는 길도 다시 물어보자는 나의 주의에 길가에 멍때리고 있던 어떤 사람에게 알팃포트를 물어보니 영어도 거의 안통하는데 자기를 따라 오라는 제스쳐를 취하며 앞장 선다. 아무 생각없이 그 사람을 따라 가는데 흙길로 이어진 큰 길과는 반대 방향. 게다가 길도 없는 곳으로 마구 간다. 도대체 뭐지 싶었는데 중간에 멈추기도 그래서 그냥 막 따라 가는데 수풀을 헤치고, 밭 사이 사이로 따라 가는데 알고보니 지름길이었다.
우리가 따라가던 흙길을 따라 갔더라면 구불구불구불 하게 한참을 걸어가야 했던 곳인데 그냥 그 구불구불한 곳을 언덕아래로 쭉! 직선으로 내려간 것. 그 사람을 따라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니 큰 길이 나왔다. 이 사람은 거기에서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가라고 손짓한다. 고맙다고 갈려는데 기념사진 찍자고 또 말도 안통하는데 카메라 찍는 제스쳐를 취한다. 기분 좋게 사진을 찍고. 큰 길을 따라 좀 걷다보니 갑자기 차 한대가 선다.
역시 서툰 영어로 우리에게 " 어디가? " 묻는 청년들. 차안에는 청년 3명이 타고 있었다.
" 알팃 포트 "
" 그래? 타 데려다 줄게 "
낡은 다마스 같은 차였는데 차에 오르자, 신기한듯 이것저것 묻는다. 덕분에 차를 타고 편하게 알팃포트로 향하는데 큰 마을이 나온다. 그러더니 이내 차를 멈추고 손가락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알팃포트 가는 방향을 알려준다. 뜬금없이 히치하이킹을 했는데 새삼 느끼는거지만 파키스탄 사람들 정말 친절하다.
분명 여기도 수 없이 많은 여행자들로 인해 때가 탈법도 한데, 인도의 누브라밸리는 이제 개방된지 얼마 안됐고 여기랑 지역적으로는 거의 차이가 없는 곳인데도 때가 묻은 느낌이었는데 신기하다. 파키스탄 사람은 파키스탄 사람답게 친절하고 인도 지역은 인도사람들 답게 약고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국가의 영향을 받는 것인가. 종교의 영향인것인가.
차에서 내려서 청년들이 가르킨 방향으로 조금 걸어들어가니 제법 멋드러지게 꾸며놓은 건물 한채가 있다. 티켓 오피스였다. 안에 들어가니 두 명의 남자가 동네 부동산복덕방에 풍경 마냥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티켓 가격을 물어보니 500루피다. 엄청나다. 파키스탄 사람들은 얼마냐고 물어보니 티켓을 보여주는데 내국인도 150루피 정도 한다.
이쁜티켓오피스
" 아! 내가 파키스탄 사람이다! " 이러면서 장난치면서 150루피에 해달라고 하자 깔깔대며 웃기만 하고 짤없다.
티켓 판매하는 사람 말고 다른 또 다른 남자가 옆에서 참견을 하는데 이 동네 가이드인듯 하다. 우리가 티켓 가격이 비싸니 그냥 안들어가고 마을 구경만 하겠다고 하자, 여기는 마을만 보기 위해서도 150루피를 내야 된다고 눈에 뻔히 보이는 개야불을 친다. 그냥 밖으로 나와서 그 남자의 말을 무시하고 성 아래 위치한 마을 구경이나 할겸 마을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왠걸 마을에 못들어가게 막는다. 진짜 싸워야 되나 싶다가, 더이상 문제를 만들기 싫어서 쏘세지랑 대화 끝에 500루피 주고 표를 끊기로 했다. 뭐하는 놈인지.
그러면서 가이드새끼가 " 나한테 조금 돈 주면 가이드도 해주고 표 안끊어도 돼 " 라고 얌을 부리기 시작하는데 그냥 빡쳐서 얼른 500루피씩 주고 표를 끊었다. 그러자 존나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는 가이드. 표를 끊고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겨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왠걸 마을이 정말 아기자기 이뻤다.
특별하게 관리 되는 마을인 것 같았다. 마을 자체가 하나의 문화유산 처럼 보였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역시나 신기한듯 우리를 쳐다보고 우리도 모든게 새로운 눈빛으로 마을 여기저기를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돌아보고 있는데 마을 어귀에 있는 큰 연못에서 동네 꼬마애들이 수영을 하며 놀고 있다. 그리고 아름드리 큰 나무 그늘 아래에 마을 노인들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그 모습은 평화 그 자체였다.
우리 옆에는 아까 그 가이드가 쫄래 쫄래 따라오며 원치 않았는데도 우릴 안내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큰 대문을 가리키며 저기가 성입구라고 알려준다. 큰 대문안으로 들어가니 가드 한명이 지키고 있다. 티켓을 보여달라고 해서 보여주고는 안으로 들어가니 정말 아주 잘 꾸며놓은 가든이 있었다.
가든을 가로 질러 걷다보니 성 입구가 나왔다. 가이드는 계속 우리에게 조금만 돈을 내면 된다며 계속 자기를 고용할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일단 개무시. 쏘세지와 함께 성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성. 흙먼지 냄새가 나는 이 오래된 유적안에 들어서자 가이드는 이 방은 어떤 방이었고, 여기에 전쟁시 쓰는 비상통로가 있고 어쩌구 하면서 계속 설명을 하는데 솔직히 설명을 안들었다면 아무 의미 없는 방으로 느껴졌을 그 곳이 뭔가 다르게 보이고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괜찮은 가이딩이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이런 조용한데 와서 그냥 느긋하게 성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며 즐기고픈 마음도 있어서 정중하게 가이드에게 얘기했다.
" 우리는 우리끼리 그냥 편하게 돌아다니고 싶다. 미안하지만 가이딩 더이상 하지마, 돈 안줄꺼야 " 그러자 가이드는 이제 포기한듯 " 즐겁게 봐 " 라면서 나갔다.
옛날 같으면 나도 그냥 가이드가 씨부리던 말던 다 듣고 나중에 돈 달라고 할 때 난 너보고 가이드 하라고 한적없는데 이랬을텐데, 나이를 먹고 여행을 하면서 조금씩 변한 것 같다. 그에게 헛걸음을 시키지 않게 하고 싶었다. 어쨌든 가이드가 나가자 큰 공간은 나와 쏘세지 단 둘만 있어 더욱 조용해졌다. 성안은 복잡한듯 하면서도 다행이도 간단한 구조라서 미로처럼 길을 헤매지 않고 그냥 한방향으로 구경하면서 갈 수 있었다. 한 때 이 지역의 왕 혹은 영주도 살고, 전쟁도 하면서 쓰였을 요새이자 성.
옛 영화는 없고 이제 그냥 텅 빈 집 같은 느낌만 주는 이 고대 유적. 그 안을 돌아다니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성 내부 이 곳 저 곳을 구경하며 돌아다니다가 테라스 같은 곳에 나갔는데 풍경이 정말 압권이었다.
거대한 설산과 계곡.
마을의 황토빛까지 엄청났다.
성 자체의 높이도 높이지만 높은 곳, 그것도 절벽가에 위치해있다보니 멀리 도로가 한줄기 실처럼 보인다. 정말 멋진 풍경이다. 가슴까지 속 시원하게 뚫리는 것 같다. 행복하다.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성 꼭대기에 있는 거대한 망루
성은 요새로도 쓰였던 곳이라서 곳곳에 흔적이 남아있는데 망루가 중간에 높은 곳까지 솟구쳐있는데 쏘세지는 안올라간다고 해서 혼자서 올라가는데 예전엔 어떻게 이 망루를 올라갔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가파른 계단을 설치해서 편하게 올라갈 수 있었는데 올라가다보니 한켠에 중간중간 발받침대가 달려있는 나무널판지가 세워져있었다.
아마도 예전엔 저 나무널판지를 계단삼아 올라갔으리라 짐작이 됐다. 망루 꼭대기에 오르자, 제일 먼저 시원한 바람이 날 맞아준다. 그리고 눈 앞에 거대한 설산이 더욱 가까이 다가왔고, 조금 더 높아진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또 새로웠다. 절벽에 위치한 성 안쪽으로는 황토빛의 마을들이 펼쳐져있고, 이 성은 이 마을, 이 지역을 안전하게 보다듬어 줬으리라.
정말 멋진 곳이었다.
그 곳을 구경하고 내려와서 쏘세지에게 꼭 올라보라고 너무 좋다고 하자 그제서야 뒤늦게 쏘세지는 망루를 오른다. 그 동안 나는 계속 이 곳 저 곳을 구경했다. 그렇게 한참을 성 안을 구경하고 나서 길을 나서는데 아까 그 가이드가 사람들을 데리고 온다. 관광온 현지인 관광객들 같은데 돈 좀 있어보였다. 가이드는 그 사람들에게 성 가이드를 하고 있었다. 우리와 엇갈려 우리는 가든으로 내려왔다. 가든에서 잠시 쉬려고 가는데 쏘세지가 사라지고 없다. 혼자서 가든에 들어와 한켠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잠시 쉬는데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져있다.
잔디에는 양,염소,닭들이 평화롭게 사이좋게 노닐고 있고, 그 뒤로는 설산이 너그럽게 서있다. 멀리 설산의 풍경과 가든의 어울림이 장난아니다. 그래서 사진찍는데 화보다 완전 화보.
쏘세지는 어디갔는지 두리번거리다보니 저쪽 성쪽에서 뒤늦게 걸어내려온다. 어디갔다오냐고 했더니 내려오다가 사과나무를 발견해서 사과를 땄다며 또 한아름 사과를 가지고 왔다. 대단하다 덕분에 우리는 앉아서 사과를 먹을 수 있었는데 초록빛 사과가 아주 맛있었다. 느긋하게 그 곳에서 쉬다가 쏘세지 사진을 찍었는데 진짜 무슨 화보처럼 나왔다. 쏘세지도 깜짝 놀래서 더 찍어달라고 난리. 나도 찍는데 쏘세지만큼 잘 나오지는 않았다. 사진은 역시 얼굴인가! 귀욤귀욤한 쏘세지와 나는 나오는 사진자체가 전혀 달랐다.
한참 사진찍고 그 곳에서 쉬다가 우리는 마을 구경에 나섰다. 가든 밖으로 나가 아름다운 마을 이곳저곳을 누비는데 마을 곳곳에 사과나무 살구나무 지천이다. 풍요로운 땅. 아니 풍요롭게 만든 땅이다. 마을 바깥은 척박한 사막에 가까운 곳이다. 이 곳의 땅을 이렇게 풍요롭게 만든 훈자 사람들의 노력. 마을을 느긋하게 구경하는데 사람들도 너무 친절하다 우리는 마을 구경하며 놀다가 사과를 좀 더 따고 동네 구경을 즐겁게 했다. 우리에게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들과 우리의 호기심을 받아주는 넉넉한 이들이 있었다. 즐겁게 마을 구경을 하고 밖으로 나오는데 뭔가 민속촌에서 나오니 또 다른 마을이 있는 느낌!
어쨌든 큰 길가에 정체모를 나무와 정체모를 열매가 매달려있는데 쏘세지는 또 신나서 그 열매를 땄다. 그런데 어떻게 먹는지 먹는 방법을 모르니 가지고 있다가 또 다른 사과나무에 사과를 따겠다며 잠시 그 열매를 내 손에 쥐어줬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쏘세지가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따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재밌는 일이 일어났다.
한 꼬마여자애가 무심한듯 과자봉지를 손에 쥐고 과자를 먹으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아무말도 없이 과자봉지를 스윽 하고 내민다. 정말 웃겼다. 완전 무심, 무표정한 표정으로 내밀다니....
나도 화답하듯 과자봉지 안에 손을 넣어서 과자를 먹었더니 무심한듯 나를 슥 쳐다보더니 내 손에 열매를 보더니 열매를 뺏어 들더니 얕은 담벼락 위에 열매를 놓고는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를 집어들어 열매를 찍어 쪼갠다. 그러더니 속을 가리키며 이걸 먹으면 된다는듯 말도 없이 가리키곤 무심한 표정으로 다시 또 과자를 먹으며 걸어간다. 그 모습이 참 귀엽고 어찌나 골때리던지. 훈자의 차도녀, 훈자의 4차원 소녀다. 어느새 쏘세지는 사과를 따와서 빨갛게 잘 익은 사과를 들고 좋아라 한다.
그 곳에 잠시 서 있다가 지나가는 스즈키(마을의 버스 역할)를 타고 우리는 제로포인트(숙소밀집지역)로 돌아왔다. 스즈키를 탔더니 우리가 걸어오고 히치하이킹을 했던 방향이 아니라 또 다른 방향으로 갔는데 신기하게도 처음 가보는 그 길을 따라 가니 제로포인트가 나타났다. 제로포인트에 내려서 우리는 살구죽을 먹으로 전에 봐뒀던 살구죽 파는 가게에 갔는데 재수가 없는지 살구죽은 지금 안된다고 하길래 우리는 우리 단골식당인 럭키식당에 가서 치킨커리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오는길 짜파티굽는 가게에서 짜파티도 사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와 치킨커리에 짜파티를 먹는데 왈리가 분주하게 왔다갔다 한다. 보니까 치킨을 손질 중이었다.
" 왈리! 무슨 치킨이야? "
" 스카이가 주문하고 갔어 오늘 한국사람들이 먹는다던데 너도 이따 같이 먹어 "
그렇구나 하고 나와 쏘세지는 거실에 앉아서 쉬고 있으니, 곧바로 눈 앞으로 한국사람들이 우르르르르 들어와서 우리가 앉아있는 거실을 지나 식당으로 향한다. 왁작지껄한 그 모습. 뭔가 우리만 왕따 당하는 느낌이었다. 정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옆방총각도 방에서 나와서 우리랑 가볍게 인사를 하더니 식당으로 향해 간다. 정말 왕따 당하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이 분위기는 무얼까.
그리고 식당안으로부터 왁작지껄한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참을 수 없는 그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밖으로 나가 꼬치 파는 곳에 가서 닭꼬치를 샀다. 그리고 그 더러운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큰 지출을 하기로 한다. 맥주를 몰래 파는 한 슈퍼마켓에 가서 맥주를 사고 온 김에 케쳡이며 쏘세지가 먹고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콘플레이크,우유를 구입하고 숙소로 왔다.
숙소에 오니 우리가 늘 앉아 있는 거실 침상에 밥 다먹고 배불러서 누워있는지 한 한국여자가 누워있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앞 마당에 있는 평상으로 가서 그 곳에 앉아서 닭꼬치에 맥주를 마시는데 정말 맛있었다. 마침 숙소에 새로 들어온 옆방에 파키스탄 사람들이 들어온다. 우리가 마당 평상에 있는 것을 보고 평상에 다가와 앉아 말을 건넨다.
이슬라마바드에 사는 사람들인데, 휴가라서 관광왔다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은행원들이었다. 그 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참 기분이 좋아졌다. 한국사람들로 인해 드러워진 기분이 치유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드러운 기분의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저 한국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것일까
아니면 내가 그동안 여행다니면서 다른 여행자들한테 살갑게 대했는데 저들은 나에게 왜 살갑게 대하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점일까
그냥 이 파키스탄 사람들은 우리와 친해지고 싶어하는게 느껴지고 서스럼없이 다가왔는데 우리가 그저 저 한국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은것이 이런 왕따의 이유일까 온갖 생각이 들었다. 파키스탄 사람들과 대화하며 솔직한 마음 표현에 대해 느끼며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표현하는 걸 배우고 느꼈다. 때론 욕망에 솔직한 것도 좋은 것 같다. 평상에 앉아 그렇게 파키스탄 사람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 봤는데 밤하늘이 너무나 아름답다. 구름에 가려진 보름달이 나타나는데 너무나 큰 보름달이었다.
보름달이 너무 밝아 눈이 부셔 똑바로 보지 못할 지경.
꼬치도 다 먹고, 맥주도 다 마시고, 파키스탄 사람들도 쉰다고 방으로 가고, 거실 침대에 누워있던 한국여자도 다시 식당안으로 향하고, 우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 이런저런 얘기하며 한국사람들 뒷담화를 했다. 옆방 총각에 대해서, 쏘세지가 인사를 할 때마다 씹는 다는 여자(깝녀)에 대해서, 우리 빼고 노는 한국사람들에 행태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우리는 어제 함께 밥먹었던 론리플래닛책을 가지고 있다는 한국 여자가 떠올랐다. 아침에 이상한놈한테 다음클라우드 공유를 받긴 했지만 워낙 인터넷이 느린탓에 거의 받기가 불가능한 수준. 론리플래닛 가지고 있다는 그 여자도 저 식당안에 있기에 쏘세지가 론리플래닛을 빌리로 식당으로 향했다.
한참 있다 돌아온 쏘세지의 표정은 일그러져있었다.
무슨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쏘세지는 정말 기분나쁘다는 듯 말을 시작했다.
" 아니 내가 식당안에 들어가니까 막 웃고 떠들다가 일순간 정적이 되는거야 진짜 그 분위기 있잖아 그냥 내가 들어가도 신경안쓰고 노는게 아니라 모든 대화가 멈추고 정적 "
" 정적인데 S가 나한테 식사하셨어요? 같이 먹을걸 그랬나봐요 이러면서 빈말을 하더라구 "
" 예 먹었어요 괜찮아요.. 이러면서 그 론리가진 여자한테 론리플래닛 좀 빌려달라고 했지 "
" 그러니까 지금 안가지고 있고 내일 카리마바드인에 맡기겠다고 하더라구.. 그런데 그 여자 있잖아 존나 오빠가 깝쳐대서 꼴배기 싫다는 여자 "
" 그 여자가 아우~ 론리플래닛 필요없는데 파키스탄에 무슨 론리플래닛이 필요해 "
" 그러니까 또 다른년들도 파키스탄에 무슨 가이드북이 필요해~ 음 가이드북 필요없는데 "
" 이지랄을 하는거야. 존나 어이없어가지고 진짜 "
진짜 듣는 내가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았다. 정말 기도 안차서 좆같은 인간들이었다. 도대체 지네가 뭐라고 가이드북의 필요여부를 결정하는지, 정말 아무 정보도 없이 여행하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가이드북인데, 지네는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여행을 한다고 저렇게 지랄을 해대는지
그저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있는 인간들이. 정말 마음 같아선 당장 식당안으로 들어가서 대판싸우고 싶은 마음이었다. 분노하고 있으니, 어느 새 다들 놀만큼 놀았는지 왁자지껄하면서 각자의 숙소로 떠나고, 옆방 총각이 슥 들어와 우리를 비켜 자기 방안으로 휙 들어간다. 정말 분노다. 여행하면서 이제껏 단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다. 지옥같은 훈자가 펼쳐지고 있었다.
사족) 가이드북이 없어도 되는 이유
1) 여행 준비 존나 열심히 해서 다 프린트 해왔음
2) 다른 곳은 겁이 나니 얼른 훈자만 찍고 인도로 돌아가서 파키스탄 다녀왔다고 자랑할려고
3) 사람들이 많으니 그 중에 잘 준비해온 다른 사람한테 얹혀서 돌아다닐려고
4) 잘난척 할려고
5) 등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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