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서블 여행기 #67 가든롯지에 머무는 이유




 아침에 일어나 또 설사가 시작되었다.  어젯밤 술이 모잘라 훈자빠니 남은 것을 조금 마신 뒤인데, 역시 훈자 빠니가 범인이었다.  그래도 몸에서 파키스탄 물갈이도 끝나고 해서 그런뒤인지 다행이도 이전처럼 심각하진 않았고, 몇번의 설사 뒤에 진정이 되는 느낌이었다. 폭설 이후 찾아오는 공복감, 허기. 우리는 넉넉한 자원으로 신라면을 끓여먹기로 했다.  원래 여행하면서 이렇게 챙기지 않는데 아무래도 이번 여행 계획에는 파키스탄 훈자만큼은 꼭 가겠다는 마음이 있었고,  훈자오면 당연히 많은 여행자들이 있을 줄 알았고,  좋은 사람들 만나면 같이 먹고 즐길려고  소주랑 라면이랑 참 많이도 챙겨왔고, 아껴서 쟁여놨는데 지금 느끼는 감정들은 이제껏 여행에 있어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복잡미묘한 감정이다.




평화롭기만한 훈자의 풍경



 아침이 되면 혹은 점심이 되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옆방 총각을 불러낸다. 


 " xx야~ 밥 먹으로 가자~ "

 


 참...재밌다. 내 인생 배낭여행 중,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어쨌든 또 우리 둘이 신라면을 끓여서 아침을 먹었다. 그래도 꿀맛이다.   훈자의 풍경을 보며 먹는 라면의 맛은 정말 먹어본 사람만이 알 듯.





 밥을 먹고 나온 뒤에, 어제 그 론리여자가 론리플래닛을 칼리마바드 인에 맡겨두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칼리마바드 인으로 향하니 역시 책을 맡겨놓았다. 확실히 이 여자는 괜찮은 여자다. 얼굴이 이쁘장하게 생겨서 마음도 착하다.  요새는 정말 얼굴 이쁜 애들이 성격도 좋은게 맞다. 책을 일단 다 복사 할까 하다가 워낙 양이 많으니 필요한 부분만 복사하기 위해서 체크를 할려고 하는데 숙소에 가지고 와서 복사 할 부분을 체크하는데도 양이 너무 엄청나다.  그 이상한놈이 공유해주고 간 다음클라우드에 있는 론리플래닛만 다운받아져도 복사 안해도 될것 같은데 고민고민. 가이드북 문제로 쏘세지랑 얘기하다가 다투게 되었다. 



 사실 다른 여행도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면 다들 나에게 의지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그래도 함께 하는 여행이니까 다 같이 좀 으쌰으쌰 했으면 좋겠는데 다들 뭔 얘기하면 의견도 얘기안하고 그냥 알아서 하라고하고 관심도 없다.  쏘세지와의 싸움도 그러했다. 가이드북 기왕 빌린거 너도 좀 보고 가고 싶은데 체크 좀 해보라니 계속 게임만 한다.  정말 짜증이 밀려왔다.  




 덕분에 쏘세지랑 같이 여행하니 마니 싸우고 가이드북을 혼자서 씩씩 거리면서 보고 있으니 쏘세지가 화해하자고 얘기한다.  그래서 다시 의기투합해서 그간 이 곳 가든롯지에 있는 한국책들 중 파키스탄 여행 관련 책이나 파키스탄 책 보면서 뽑아둔 몇몇 후보지들이 있어서 그 후보지들 위주로 복사 할 부분을 체크했다.  그리고 복사하는 곳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한 인터넷카페였는데 복사 할 부분을 a4용지에다가 페이지 표시를 해줬더니 시간이 오래 걸리니 숙소로 가져다 주겠다고 얘기해서 맡겨두고는 숙소로 왔다.



 숙소로 돌아와 독서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책이 많고 시간이 많으니 매일매일 한권씩 읽는 책들. 오늘은 '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 책을 읽는데 꽤 볼만 했다.  그리고 여행 정보도 정리하면서 쉬고 있으니 왈리가 차를 가져다 준다.   손님도 없고, 할 일도 딱히 없으니 우리에게 살갑게 굴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을 즐기는 왈리. 왈리가 차를 함께 마시면서 이런 저런 얘기하는데 자기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자신의 꿈에 대해. 왈리랑 깊이 얘기해보긴 이번이 처음이었다.




 왈리.

 85년생이란 말에 한번더 깜놀했다.   정말 이쪽 인도,파키 애들의 노안이란 정말이지 ㅋㅋㅋ




 월급이 한달에 10만원이라고 하는데, 왈리는 자기는 요리사가 자기 일이라고. 그러면서 나중에 한국가서 돈 많이 벌어와서 여기에 한국인 상대로 하는 레스토랑 차려서 일하고 싶다고 자기의 인생 계획, 한국음식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데 비빔밥 이야기가 나왔다.  비빔밥은 내가 한번 만들어줄테니까 비빔밥 재료만 구해다 달라고 얘기를 했다.  왈리는 항상 메모지를 들고 다니는데 메모지에 한국음식 레시피가 쭉 적혀있다. 나는 알아 볼 수 없는 파키스탄 글자 (아라빅에 가까움)로 적혀있는데 비빔밥 재료를 말하니 메모지에 메모를 한다. 



 왈리와의 대화가 끝나고 쏘세지랑 다시 또 진지한 얘기를 나눴다.  그간 사소한 불협화음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서.  일단 파키스탄 여행을 함께 끝내고픈 마음은 똑같았다.  단지 쏘세지는 비행기표 문제도 있고 여러문제 때문에 파키스탄에서 일찍 나가고 싶어했고, 나는 파키스탄 이곳 저곳을 둘러보면서 좀 더 여유있게 다녀보고 싶고, 물론 서로 떨어져 각자의 여행을 해도 좋겠지만 그간 쌓아온 일종의 전우애. 동고동락하면서 지냈던 시간을 생각하면 파키스탄만큼은 함께 마무리 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그러다보니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합의점을 찾아 함께 끝마치길 바라는 상황. 그런데 나 같은 경우엔 솔직히 모처럼 온 파키스탄인데 그렇게까지 하면서 파키스탄 여행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기왕 온 거 하루라도 더 있으면서 구석구석 다 느껴보고 싶었다. 쏘세지의 양보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었다.




 여행 일정 정리와 함께 쏘세지랑 그런 얘기를 한참을 하다보니, 왈리가 혼자 분주하게 왔다갔다 하더니 어느새 비빔밥 재료 준비가 끝났다고 해서 부엌으로 갔다.  부엌에 가니 필요한 재료들을 다 준비해놨다.  밥도 새로 지었고, 그래서 나는 비빔밥 재료 손질을 시작하는데, 왈리도 옆에서 함께 하면서 비빔밥 만드는 것을 계속 유심히 보면서 메모를 했다. 한국처럼 많은 재료들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는 것들도 많아서 그저 채소들을 채썰어서 한번씩 볶아주고, 최대한 있는 것을 활용하면서 만들었다. 비빔밥을 다 만들어서 나,쏘세지,왈리 3명이서 함께 비빔밥을 먹었다. 한국인들에게서 받은 공허함을 왈리가 채워주었다. 










 왈리는 비빔밥을 맛있게 먹으면서 고추장때문에 매워하는데 그런 왈리에게 이야기 했다.



 " 너가 그 맛을 알아야 그 맛을 내지 ".


 " 즐기지 못하더라도 너는 그 맛을 알고 있어야 한다 "



 왈리가 그래도 끝까지 먹으면서 맛을 기억하려 애쓰는 듯 했다.   쏘세지랑 이런 왈리에 대해 참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왈리가 없었다면 아마 우린 이 곳 가든롯지에 머물지 않았으리라.   늘 그래서 왈리에게 " 노 왈리, 노 가든 롯지" 라고 이야기 해줬다. 그 말을 들으면 왈리는 항상 활짝 웃으며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까딱하면서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대며 " 그렇게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 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정말 사실이다.  시설도 존나 구린데, 화장실에서 맨날 냄새가 올라와 방에 하수구 냄새가 진동을 하고,  한국사람들이 많이 머물며 함께 어울리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우리는 여기 머무는데 다른데 머무는 한국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쓸데 없이 왕따 당하는 분위기를 느껴야 했다.  다른 숙소에 머무는 사람들이 여기와서 삐대고 옆방 총각만 챙겨 가는 모습을 봐야했다.  차라리 다른 곳에 머물었다면 이 꼬라지는 안봤을 텐데. 정말 왈리만 아니었으면 머물 하등의 가치가 없는 가든롯지였다. 



 정말 훈자의 하루하루는 묘한 상실감만 가득했지만 왈리가 그런 부분을 너무나 많이 채워줬다. 그런 왈리였기에 우리도 왈리를 많이 챙겼고, 왈리도 우릴 좋아해주는게 느껴졌다.   밥을 먹고 계속 앞으로의 일정정리와 책을 보면서 쥐꼬리만한 정보들을 모으고 모았다.   그러고 있으면 왈리가 차를 내오고, 차를 함께 마시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해줬다.  그렇게 그날도 왈리의 고향 치트랄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전혀 파키스탄 여행후보지에 들어가지 못했던 치트랄이 여행 후보지에 오르던 순간이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왈리.  왈리가 살던 그 동네 치트랄은 어떤 곳일까 호기심이 생기던 날이었다. 그리고 이 결정이 우리의 파키스탄 여행을 완전히 180도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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