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호주 워킹 홀리데이 수기는 시간의 흐름대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한편이 단 몇분에 관한 얘기 일 수도 있고, 몇 달에 관한 얘기 일 수도 있습니다. 개별 에피소드 별로 보시는 것 보다 처음 부터 차례대로 보시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습니다. 그리고 수기 몇편에 한번씩 Extra편에는 각종 호주 생활 관련, 준비관련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재밌게 읽으시고,호주 생활,워킹홀리데이 관련 질문은 언제나 리플로 달아주시면 확인 즉시 답변 드리겠습니다. 이 수기의 처음부터 읽으실 분은 클릭하세요! 호주 워킹 홀리데이 첫편보기!


 퍼스.

 내가 맨 처음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시작한 그 도시.
 정말 오랜만에 나름 금의환향하는 느낌으로 향하고 있는 도시.

 남쪽으로 달린 만큼 어느새 선선해진(덥기야 덥지만 북쪽에 비해서..) 기온이 남쪽으로 향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퍼스를 떠나며 북쪽으로 향할때까지만 해도 다시 안올줄 알았던 길을 지금 지나고 있다. 애플이 칼바리에서 부터 운전을 시작해 제랄드톤에 접어들기 전에 운전을 교대했다. 다름 아닌 신호등이 있는 나름 대도시 제랄드톤에서 운전할 자신이 없다는 것, 애플을 잘 알기에 운전대를 바꿨다. 



[ 사진 위 : 고무줄을 걸어놨는데 더위로 녹아서 끊어진.. 이것말고 정말 대박하나가 있는데 북쪽의 더위를 말해주는 사건이 하나 있는데 나중에 공개해볼까 한다. 정말 농담아니고 본 사람 모두가 경악 ]

잠깐, 북쪽에 더위에 대해서,
 기왕 말 나온 김에 북쪽의 더위를 여실히 보여주는 (여기서 북쪽이라 함은 카나본 위쪽.) 에피소드 2개.
 차에 나둔 쪼리(고무로 된..)가 녹은게 아니라 완전히 쪼그라 들어서 280 사이즈의 쪼리가 200정도로 줄어듬. 정말 이거 본 사람들 다 경악.
 차에 나둔 가이드북 책이 있었는데 가이드북 책 겉에 그 두꺼운 비닐 포장이 되어있는데 일단 비닐 포장 완전히 녹아버려서 늘러붙음. 그리고 제본 부분이 다 녹아서 책의 종이 한장한장 모두 분리됨.
 
 이것들에 대한 사진은 나중에 올려볼까 한다. 어쨌든 평균기온 48도의 위력이 나타나는 몇가지들..

(다시 본론으로..)

 그리고 교대를 한지 약 한시간 후, 제랄드톤에 접어 들었다. 농담아니고 정말 몇달만에 처음 보는 신호등에 긴장했다. 차를 사고 얼마 안있다가 퍼스를 벗어나 북쪽으로 향했고, 또 제랄드톤을 벗어난 이후 단 한개의 신호등도 보지 못했던 난 차를 사고나서 정말 몇달만에 보는 이 신호등이 엄청난 위압감으로 다가왔다. 내가 서울에서 운전하는 남잔데 젠장 이런 신호등 몇개에 쫄다니. 어쨌든 알게모르게 시골 사람이 다 되어서 제랄드톤같은 소규모의 도시마저도 대도시처럼 느껴지게 된 마당이었다.

 그래도 어느정도 호주 운전에 많이 익숙해져서 손쉽게 제랄드톤에서 운전을 할 수 있었는데 정말 카나본에 우스개 소리로 퍼스까지도 아니고 제랄드톤에만 가도 없을게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항상 얘기로만 했던 그 제랄드톤에 다시 돌아오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카나본으로 향할때 들렸던 이 도시를 이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수 있었다. 그리고 이내 다시 제랄드톤을 빠져나와 다시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이제 정말 퍼스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 
 몇달전에 이 길을 아침일찍 통과해서 한낮에 미친듯이 달려 도착했던 카나본이었지.
 
 그래,
 몇달전에 내가 피나클에서부터 밤에 운전해 제랄드톤 바로 직전에 정말 이름모를(이름을 알긴하지만) 작은 마을에 도착해 우리 하룻밤을 보냈었지.

 회상하며, 우린 대화하며 그렇게 퍼스로 향했다.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

 감회가 새로운 만큼 우리의 호주 생활은 정말 너무나 많이 익어버렸다. 모든게 낯설고 신기했던 것들은 이제는 익숙하고 흔해버린것이 되었지만 대신에 당시의 추억만큼은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뛰게 했다.


 

[ 사진 위 : 호주 고속도로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트럭들 oversize 팻말을 붙이고 있다. ]
잠깐 사진에 대한 부가 설명을 하자면 호주 트럭들은 엄청나게 거대하고 긴 길이를 자랑하는데 정말 그 압박감은 보지 않고서는 느낄수 없을 것이다. 로드트레인, 몬스터트럭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리고 특히 가끔 집채만한 아니 말그대로 집을 옮기는 차량들이 있는데 (진짜 2층 집 같은거..) 그럴땐 도로폭을 초과하기 때문에 트럭 앞으로 먼저 Oversize를 경고하는 Sign을 부착한 자동차가 먼저 지나간다. 그 자동차를 보면 정말 도로 한켠으로 물러날 준비를 해야한다.

(다시 본론으로..)



 도로 가에 황량한 풍경에서 어느덧 나무들이 조금씩 보이고, 바깥의 공기가 신선하게 느껴지고, 도로에 차들이 많아짐에 점점 남쪽으로 향하고 있음이 실감이 났다. 이제 퍼스라는 도시로 가면 정말 다시 치열한 현실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우리의 목적지는 퍼스 남쪽의 시골이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의 퍼스행이라 긴장이 되었다. 일단 우리는 이런저런 의견조율끝에 일단 퍼스로 돌아가면 오랜만에 사람들도 만나고, 필요한 물건도 구입하고 처리해야될 이런저런 것들을 처리한끝에 남쪽으로 향하자고 의견이 합일 됬고, 그 기간은 약 일주일 정도였다.

 그리고 어느덧 퍼스 북쪽의 GinGin쯤 도착했을 무렵, 도로 가에 무성한 나무들은 숲을 이루고 있었고 공기는 선선하다 못해 시원했다. 이 풍경은 우리가 퍼스를 떠나 북쪽으로 향할때 보고 너무나 신나했던 그 길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호주의 아웃백을 맘껏 느낀 우리에겐 그저 북쪽과의 차이를 느끼게 해주는 풍경일뿐. 그리고 신나게 이 길을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새한마리가 내 차앞을 휙 지나가며 쿵하고 부딪혔다. 다행이도 유리가 아니라 앞에 본네트쪽에 부딪혔는데 미친놈의 새가 본네트에 꼈다. 

 아 씨발..또 새가...
 정말 멍청한 새들때문에 벌써 깜짝놀라길 몇번짼지. 이러다 새 공포증에 걸릴판이다.
 
 100킬로이상으로 달리고 있는데 새가 본네트에 껴서 파닥거리는데 이거 씨바 완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서, 중간에 멈추기도 귀찮고 해서 달리고 있는 중에 버튼을 눌러 본네트 뚜껑을 열어버렸다. 그러자 곧바로 속도때문에 새가 앞 유리창을 팍 치고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여전히 차 앞에 끼인 새의 깃털이 파닥거려서 신경쓰였다. 그래서 결국 차를 세웠다.

 


[ 사진 위 : 차 앞쪽에 새 깃털 보이나요? ]

차를 세우고 보니 이게 왠걸, 앞에 번호판 한쪽이 떨어져나가 덜렁 거리고 있었다. 아 씨발 진짜 완전 짜증.
일단 응급조치로 가지고 있던 덕테잎으로 고정시키고 본네트에 끼인 새 깃털 정리하고 다시 출발. 

이젠 정말 새만 봐도 가슴이 덜컹. 북쪽에서의 새 사건도 그렇고 이젠 도로가에 새들이 있으면 무조건 속도를 줄이게 되었다. 저 멍청한 새들이 알아서 피하리란 생각은 이제는 더이상 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어느덧 슬슬 오후도 저물어 저녁이 되어갈 무렵. 퍼스 도착 80km전. 어디에 머물까 하다가 퍼스에서 사촌동생이 렌트하는 집을 잠시 맡아 관리해주는 제니누나에게 전화를 했다. 백팩으로 가볼까도 생각했지만 뭐 어차피 아는 사람 집에서 조금 신세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전화를 했는데 흔쾌히 오케이 하는 제니누나. ㅋㅋ

 역시 예전에 퍼스에서 맨날 내 방 내주고 차가운 거실바닥에서 잔 보람이 있구나 싶었다. 어쨌든 고맙게 느껴져서 우리는 돈을 지불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물론 마음 한 구석에 그래도 그렇게 함께 했던 제니누나가 돈을 받겠냐는 마음도 있었으나, 돈을 안받으려고 해도 섭섭치 않게 돈을 내자고 말을 모았다. 그리고 퍼스가 드디어 완전 가까워졌을 무렵, 애플이 본격적으로 인간네비를 시작했다. 제니누나가 살고 있는 빅토리아 파크까지 향하는 길을 찾기 위해서 애플이 지도를 보기 시작했고, 어느새 어두어진 퍼스에 드디어 도착을 했다.

 제일 먼저 엄청나게 많은 자동차와 복잡한 신호등들이 얽혀있는 퍼스의 모습이 우릴 몇달만에 반겼다.
 일단 길을 모르니 계속 달리는데 어째 내가 생각했던 올라갈때 길을 반대로 간다는 생각과는 달리 완전히 다른 도로로 접어들어서 달리는데 그래도 이정표에 계속 Perth만 보고 달렸다. 그리고 한참 달렸을 때 드디어 우리가 달리고 있는 도로를 파악한 애플. 옆에 앉아 로드트립을 하다보니 역시 느는건 지도 보는 거 밖에 없는지 길 안내를 정말 잘한다.



 그리고 퍼스에 도착한지 약 한시간 만에 빅팍에 이르렀다. 정말 다행이도 헤매지 않고 한번에 찾았는데 빅팍 역 바로 앞에 산다는 제니누나는 집 주소를 가르쳐줄 생각은 안하고 빅팍 옆 앞이라는 얘기만 계속 해대는 바람에 오히려 빅팍 역에 도착해서 한참을 헤맸고, 드디어 길가에 나와있다는 제니누나의 모습이 저 멀리 보였다. 몇달만에 보는 제니누나의 모습이었다. 우릴 발견하고는 손짓을 하는 제니누나가 걸음을 옮겼고 누나를 따라 차를 운전해 도착한 제니누나의 집. 물론 이 집은 제니누나의 사촌동생이 렌트한 집인데 사촌동생 부부가 잠깐 한국에 간터라 제니누나가 잠깐 맡고 있는 집이었다. (전에 살던 곳도 빅팍이었는데 새롭게 이사한 집이었다. )

 예전에 MJ와 SR이 함께 살던 그 빅팍 집에서 이사한 집이었는데, 차고 문을 열어줘 차고 안에 차를 대고 들어선 누나의 집. 대박.

 정말 내가 퍼스에서 쉐어하우스를 구하느라 방 깨나 보러 다녔다고 자부하는데 정말 제일 좋은 집이었다. 하얀 대리석이 쫙 깔린 넓직한 거실의 모습에 움찔. 정말 좋은 집이었다. 누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며 집에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했냐고 묻자, 양해를 구했다고 얘기를 한다. 일단 대충 짐을 풀어놓고 오랜만에 회포를 푼다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데 누나가 배고프지 않냐며 밥을 차려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제니누나의 음식솜씨. 맛깔난 기름진 밥과 제육볶음은, 얼마간의 로드트립동안 제대로 된 밥을 먹지 못한 우리에게 완전히 꿀맛이었다. 

 얼마간만 좀 신세를 지겠다고 얘기하며, 집안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그렇게 드디어 우린 몇달만에 퍼스로 컴백했다. 

 밥을 먹고 좀 쉬며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하자, 카나본에서 퍼스로 돌아와 있던 윌이 젤 먼저 자기 지금 일 끝났다며 이 곳으로 오겠다고 했고 좀 후에 윌이 도착해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는데 애가 많이 힘들어보였다. 뭔일이 있나 싶어서 물어봤더니 전에 한국에서 사귀었던 옛 여자친구가 퍼스로 놀러왔었는데 (안그래도 윌이 그 여자애 오면 카나본으로 놀러온다고 얘기했었다) 걔가 완전 꼴통짓을 한 것이다. 여자애가 술을 먹고 취해서 윌 자동차에 탔는데 차에서 윌 거기를 만지고 윌에게 올라타서 윌이 사람 많은 노스브릿지에서 뭔일인가 싶어서 여자애를 밀쳤다는 것이다. (대략 이해하기 쉬우면 홍대한복판에서 차 세워뒀는데 여자애가 술취해서 그런거라고 생각하면 편함) 

 그랬더니 여자애가 갑자기 소리지르며 흥분하더니 자동차 앞유리를 신고있는 하이힐로 내려치기 시작하는데 자동차 앞유리가 조금 단단한가. 근데 계속 미친듯이 발로 차서 앞유리를 깼다는 것이다. 윌이 너무 짜증나서 귀빵맹이를 한대 내려쳤더니 윌을 막 때리고 꼬집고 해서 팔뚝이 완전 멍이 들었다. (윌이 팔을 내밀며 보여주는데 정말 팔이 아작..) 게다가 갑자기 차에서 내리더니 근처 주택으로 뛰어가 문을 두들겨 나온 집주인들에게 윌을 가리키며 쟤가 나 때렸다고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다는거다. 그러면서 경찰 불러달라고 막 하는데 정말 윌이 순간 너무 난감하고 머리가 하얗게 되서 당황했는데 여자애가 그 집주인들 뒤에서 웃으면서 윌에게 한국말로 " 너 씨발 이제 좆됐어 " 라고 말하며 약을 올리는데 집주인들이 경찰을 부르려다가 일이 좀 복잡해질것 같았는지 그냥 윌에게 여권하고 이것저것 보여달라고 얘기하고 윌은 순순히 여권도 보여주고 상황설명을 해서 집주인들이 여자애 데리고 가라고 해서 데리고 갔는데 그 때부터 아주 여자애가 너무 진상 부렸고 이제 어제 막 돌아갔다는거다.

 이런 윌의 최근 근황아닌 근황을 들으며 더불어 우리의 그간 일도 얘기나누며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이런 복잡한 얘기들을 들으며 정말 퍼스에 확실히 도착했음을 실감하며 그렇게 퍼스의 밤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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