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서블 여행기 #7 [인도/부다가야] 슬픔의 보드가야

비가 와서 빨래를 모두 복도에 넣어놨는데도 비가 몰아쳤는지 아침에 일어나 확인해보니 모두 젖어있다.
빡치네 ㅋ

밤새 모기가 얼마나 많았는지 몸이 아작나있다.
그래도 모기 물리는데 별로 민감하지 않은 편이라서 천만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모기는 조심해야지.
그닥 간지럽지는 않다. 모기도 인도 모기답게 근성이 없는 듯. 델리에 가면 모기향을 좀 사야겠다.


마실 물도 그 새 떨어졌다. 더우니까 땀을 줄줄 쏟고 물만 미친듯이 쳐 마셔댄다. 입맛도 없다. 물 좀 사고, 그래도 출출해진 배도 달랠겸 밖으로 나가 어제 밥먹은 식당에 가서 파코라를 사먹을려다가 안팔아서 물만 사가지고 돌아와 근처 식당을 배회하다가 로터스라는 레스토랑에 갔다. 파코라를 시켜먹다가, 기름기에 질려 포장시키고 뗌뚝을 시켜먹었다. [티벳음식 한국의 수제비와 비슷함, 한국여행자들이 사랑하는 음식 중 하나 ]

둘 다 양도 맛도 좋아서 하나만 시킬껄 싶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정리하고 체크아웃을 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소화도 시킬겸 걸어서 마하보디 사원쪽으로 향했다. 사원 앞 라씨 가게 앞에 앉아서 라씨 한잔을 하고 바로 근처에 붙어있는 시장으로 향했다. 과일이 먹고 싶어서 망고를 사기로 했다. 더우니까 입맛은 없고 갈증만 나니 자꾸 이런것만 찾게 된다. 

가격을 잘 몰라서 여기저기 계속 물어보니 대충 1킬로에 30루피 정도 한다. 

과일은 샀는데 따로 먹을데가 없길래 아까 라시를 사먹었던 가게 앞에 가서 망고를 어제 배운 방법대로 몰랑몰랑하게 만들어서 쪽쪽 빨아 먹었다. 먹는 중간에 인도 거지 할매가 와서 8년 전과는 달리 여유있게 망고 하나를 줬다. 인도에서 만날 받아보기만 했지 처음으로 뭔가를 줘본다. ㅋㅋㅋㅋ 망고를 먹고 난 뒤, 보드가야에 있는 다른 사원도 구경해보고 싶어서 가장 볼 만 하다는 일본 사원으로 향했다. 일찍 도착했으나 오후 2시에 문 연다고 해서 근처에서 배회하는데 갑자기 배가 살살 아파왔다. 망고 때문인지 라씨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폭풍설사의 느낌






근처에 문을 연 사원이라고는 티벳사원이 유일했는데 쪽문만 살짝 열어놨는데 무작정 안으로 뛰쳐들어가 마구 안으로 향했다. 안쪽에 들어가니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적혀있는데도 나는 지금 뵈는게 없는 상태. 개들이 나를 보고 미친듯이 짖어대자 승려 한명이 나온다. 지금 너무 급하다고 만국공통의 제스쳐를 취하니 화장실을 알려준다. 화장실에 들어가고 먼저 깜놀했다. 완전 깔끔

군대식으로 깨끗하게 정돈된 화장실이 남자들이 단체생활 하는데는 비슷하구나 생각이 들었다.
암튼 칸 하나에 들어갔는데 냄새도 안나고 너무 깨끗해서 똥 싸기가 미안할 지경, 대박이다. 

폭풍 설사를 하고 나서, 나오면 또 폭설기운이 돋아서 무려 2번 연속 폭설을 한 이후에야 배가 진정이 됐다. 하지만 난 이미 진이 빠져서 기운이 다 빠진 상태. 불안해서 한참을 그 곳에 앉아있다가 더이상 폭설은 안할 것 같아서 슬슬 밖으로 나와 일본 사원으로 향했다. 일본사원이 유명한 이유는 현재 보드가야에 있는 불상 중 가장 큰 불상이 바로 이 곳에 있다. 지금 그 것 때문에 경쟁이 붙어서 이 나라 저 나라 사원들도 너도나도 더 큰 불상을 짓겠다고 난리다. 어쨌든 개간지가 줄줄 흐르는 거대 불상을 구경 하고 난 뒤에, 근처 사원 몇개를 본 뒤에 진이 빠졌다. 다시 오토릭샤를 잡아타고 마하보디 근처로 와서 마을 어귀 큰 나무 밑에 앉아 아까 아침에 먹다 남긴 파코라(튀김)와 시원한 콜라 한잔을 하며 끼니도 때우고 휴식도 취했다.





남은 시간 뭘 할까 고민 좀 하다가, 인터넷이나 좀 할까 하고 숙소로 가서 인터넷 돈을 지불하고 오랜만에 와이파이를 켰다.
와이파이가 켜짐과 동시에 카톡이 미친듯이 오기 시작하는데 동생한테 카톡이 엄청 많이 와있다. 불안한 예감. 원래 우리 가족은 서로 연락을 잘 안하는데. 정말 무소식이 희소식인데 뭔가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리고 카톡을 켜는데 동생의 프로필 사진에 적혀 있는 喪이라는 한자.

머리가 멍해졌다. 

카톡을 보니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이미.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항상 해외에서 가장 걱정 했던 일이 벌어졌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마음이었다. 눈물이 펑펑 쏟아지고 가슴이 먹먹하고 세상에 태어나 이런 슬픔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들이 날 뛰어 다닌다.

난 도대체 뭘 한걸까.




한참을 멍하니 넋이 나가 있다가 갑자기 다시 눈물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너무 펑펑 우니 피씨방에 있는 인도녀석이 왜 우냐고 묻는데, 아 인도답다.

인터넷이고 뭐고 바깥으로 나온 나는, 마음이 진정이 안됐다. 그냥 무작정 발걸음을 옮겨서 마하보디 사원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사람이 뜸한 한적한 보리수 나무 아래 앉아서 있는데 미쳐버릴 것 같았다. 한참을 앉아있다가 어떻게라도 할머니의 명복을 빌어주는게 맞는거 같아 어제 그냥 지나쳤던 사원안에 불상 앞으로 가서 절을 했다. 하면서 합리화. 불교신자인 할머니에게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이 곳에서 명복을 비는 의미가 있을꺼라고 생각하면 절을 하고 또 했다. 

한 베트남인지 어딘지 모를 동남아의 비구니가 그만 하라고 내 등을 두들길때까지 계속.

그리고 다시 보리수 나무 아래 앉아서 한참 멍하니 있었다. 온갖 생각이 머리를 뛰어다녔다.

항상 해외생활하며 가장 걱정되었던 것.
할머니 혹은 가족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었는데 그게 드디어 벌어졌다.

그리고 앉아있으니 어제 본 한국스님이 날 만났다. 앉아서 말을 거는데 내가 상태가 안좋으니 근처에 조용히 앉아계시다가 바로 떠나며 저녁 먹으로 고려사에 오라고. 한말씀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마하보디 사원 안은 지독할 정도로 평온 했다.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세상은 이토록 평화로울 수 있을까.

 항상 해외에서 할머니가 걱정될 때, 나는 할머니가 만약에 돌아가신 다면 꿈에라도 나타나서 암시를 해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것은 영화나 드라마의 일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지도 모르고 나는 그저 이 여행이 너무 행복하다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았다.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마하보디 사원에 와서 너무나 평온한 이 사원안의 분위기 때문에 짓눌릴것 같았다. 도를 구하기 위해 평온한 표정으로  무심히 앉아 있는 수 많은 수행자들 틈바구니에서 마음의 평온을 잊기 위해 그저 아무 생각을 안하려고 애를 썼다.




정신을 차리고 인터넷하던데로 가서 카톡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집이랑 대화를 했는데
엄마가 다시 니가 돌아온다고 할머니가 살아오시는 것도 아닌데 여행 무사히 잘 마치라며 
돌아오는걸 만류했다.

난 진정이 되지 않은 마음으로 고려사로 일단 향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질것 같았다.

고려사에 도착하니 문이 닫혀있고 해서 문을 열려고 시도해보니 열린다. 안으로 쭉 들어가니 스님들이 어제보다 많이 계셨다. 처음 뵙는 분들이 많았다. 그 곳에 앉아서 멍하니 앉아있다가 저녁을 먹었다.

밥은 잘도 넘어간다.



그냥 아무생각없이 앉아서 다른 사람들 대화를 들어보니 인도 한인협회장이라는 어떤 할아버지도 뵙고, 그 분 인생 스토리도 듣고 보니까 뭔가 큰 사업을 계획하는듯 스님들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가 한 인도스님이 왔는데 젊은 인도스님의 인상이 아주 좋았다. 성격이 정말 좋아보이는 어떻게 보이면 능글맞아보이지만 악의는 없어보이는 인상이 좋았는데 이 인도스님이 한국말이 작살났다.

한국에 3년반 있었다고 하는데 정말 장난아니다. 말하는 스타일이나 성격을 짐작하건데 말을 빨리 배울 수 밖에 없는 성격이다. 말하는데 너무 웃겼다. 억양은 완전 한국사람이다 눈감고 들으면 절대 못느낄. 어느정도냐면 부산사람들이 서울말 쓴다고 할때 경상도 억양이 묻어나오는데 이 사람은 그냥 한국발음이다. 전혀 외국인의 발음이 아니다.

밥을 먹다 말고 나한테

 - 인도 어때요? 더워요?
 - 네 좀요
 - 좀요? 
 - 네
 
 - 아오~ 인도사람인 저도 죽겠는데 좀 덥다구요? 
 라고 말하는데 진짜 빵터져버렸다. 말하는게 한국 발음인데 저게 인도 스님 입에서 저 말이 나오고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미친듯이 웃었다. 우울했던 기분이 풀렸다. 고려사에 오길 잘했다.






 어쨌든 거기서 스님들과 대화 나누고 그러다가 이틀 저녁을 잘 얻어먹은 터라, 시주를 좀 하고, 다시 한번 절을 올리고는 곧바로 자리를 떴다. 스님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 곧바로 오토릭샤를 타고 숙소에 와서 짐챙겨서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자 또 오토릭샤들의 환대가 시작된다. 

 가야역까지 100루피에 쇼부를 겨우 치고나서야 어두운 밤 가야 역으로 향했다.
 어두운 밤길,
 처음 보는 낯선 길들과 그런것들이 나도 모르게 긴장되게 만들었다. 항상 이럴 때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 조심 또 조심
 그리고 한참 후에 가야역이 나타났을 때 조금 기뻤다.

 그리고 기차를 타러 안으로 갔다.
 이때부터 시작이다.

 보통 기차표를 들고 인콰이어리나 경찰들, 기차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다들 한번에 플랫폼을 알려준다.
 근데 도대체 이 기차표는 뭔지.

 경찰도, 군인도, 아무도 모른다.
 오로지 기차역 오피스에서만 보고 1번 플랫폼이라고 알려주는데 이게 뭔가 아주 미심쩍었다.

 인도에서 모두가 1번이라고 해야지만 1번이고, 그것도 기차를 내가 탈 때까지는 모른다. 그건 지난 8년전 인도여행에서 깊숙히 깨달은 나의 경험이다. 

 다들 표를 보여주면 한참 들여다 보기만 한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내 표는 과연 진짜 제대로 된 표인가. 의심이 들었다. 열차를 기다리며 다른 일반인들에게 보여줘도 정확한 대답이 없고 서로 상의 하고 토론 하는 분위기로 된다. 뭔가 이상하다. 보통은 일반인들에게 보여줘도 다 아는데 말이다.

 웨이팅룸에 들어가 다시 또 보여주니 이 표 때문에 사람들이 토론이 벌어진다.

 다시 오피스에가서 확인을 해보려고 했더니 이번엔 직원이 잘 모르겠다고 한다. 비상이다.
 직원이 모르는 표라니.

 직원은 또 다른 티켓 창구 사무실에 가보라고 한다. 가서 물어보니 티켓을 보자마자 1번플랫폼 10시30분 이라고 얘기를 해준다. 조금 안심이 된다. 원래 9시40분 티켓이었는데 완전 헛거는 아니었구나 하고 안심이 되었다. 

 나는 기차역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인도가 8년동안 아예 제자리 걸음 한건 아니듯. 플랫폼에 다음 올 기차의 기차번호가 전광판에 뜨는데 내가 타야 할 기차번호는 도무지 나타날 생각을 안한다. 멍때리고 있는데 건녀편 2번 플랫폼으로 열차가 하나 들어오는데 열차에는 콜카타 - 아난드 비하르라고 적혀있다.

 내가 도착하는 곳은 델리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아난드 비하르 역이다.

 나의 슈퍼 촉이 또 발동했다.
 난 저 기차일 것이란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얼른 짐을 챙기는 가운데 지나가던 포터(짐꾼)들에게 표를 보여주면서 저 기차냐고 물으니 포터들이 맞다고 한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달리기 시작했다. 건너편으로 가야되기 때문에 높은 육교를 건너 건너편으로 가야했다. 안그래도 무더운 상탠데 그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달렸더니 미칠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 생각이 안들었다. 어떻게 구한 티켓인데 이거 놓치면 좋됀다는 마음으로 달렸다. 달리면서도 안심이 안되 중간중간 티켓을 들고 다른 인도인들에게 물어보니 맞다고 한다. 

 씨발 모두가 1번 플랫폼이라더니 역시 인도다. 끝까지 방심하면 안된다.

 2번 플랫폼에도 도착해서 달려가는 동안 열차가 얼마나 긴지 정말 끝이 없었다.
 씨발 손오공이 계왕을 만나러 가던 그 뱀길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렇다고 아무대나 올라탈수도 없었다 인도 기차는 클래스가 바뀌는 지점이 막혀있어서 난 무조건 sl클래스 칸에는 올라타야 한다. 안그러면 짤없이 다음역까지 죽치고 앉아 가야된다. 드디어 SL 클래스가 저 멀리 보이는데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와 진짜 긴장감 쩔었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속도를 더 올려 그 무거운 배낭을 메고 뛰는데 정말 좆이 빠지는 줄 알았다. 기차의 속도가 점점 붙는 가운데 이제 조금만 더 속력이 올라가면 기차를 절대 못탈것 같았는데 정말 아슬아슬하게 기차에 뛰어 올라탔다. 그리고 SL칸임을 확인하니 완전 안심.

 겨우 SL칸에 올라서 이제 곧바로 비좁은 통로를 쭉 해서 내 자리가 있는 코치넘버 3까지 가야됐다. 지금 내가 탄 곳은 코치넘버 6. 한참이다.  기차안은 이미 사람들로 한가득, 서로 자리 잡느라 난리도 아니고, 난 달려오느라 땀범벅이 되고, 기차안은 원래 더운데 사람들의 열기로 더욱 덥고, 사람들도 붐비고, 난 큰 배낭 때문에 그 좁은 복도를 지나가기도 힘들고 난리도 아니다. 게다가 역시나 코치3에 도착해 내 자리에 오니 떡하니 인도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표를 보여주며 비키라고 하고 대충 배낭을 자리 밑에 쑤셔넣고는 자리에 앉았는데 진이 빠지다 못해 영혼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몸이 너무 뜨겁게 달아올라서 열이 식혀지지가 않아서 자리에 앉아 한참 멍을 때렸다.

시간이 지나도 몸이 식혀지지 않아 화장실에가서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면서 머리에 물을 계속 끼얹어서 열을 식혔다. 그랬더니 조금 나아졌다.

자리로 돌아와 한참을 어두운 기차안에 멍하니 앉아있다 겨우 자리에 누울 수 있었다.

그나마 기차가 달리고 있을 때는 창문에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맨 윗자리에 있는 인도새끼가 춥다고 창문 좀 닫자고 하는데 이 개새끼야 지금 난 죽겠는데.
내가 덥다고 열라고 씨발놈아 하니까

그럼 반반씩하자며 창문을 반틈만 올린다.

여름에
여름에!
인도에서 여름에!

창문을 닫고 자자니 이런 개새끼

하지만 말다툼 할 기운도 없이 난 그렇게 겨우 자리에 누워서 잠을 청해야만 했다.
그렇게 밤 기차는 말없이 델리로 향했다.
너무 더워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얼굴을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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