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서블 여행기 #6 [가야에서 보드가야] 여행의 행복을 느끼는 보드가야로 가는 길
새벽 3시 30분쯤 잠에서 깼다.
어두운 기차 안, 어느 이름 모를 역에 정차해 있다. 자리에서 누워서 일어나 잠시 열차 바깥으로 나갔다. 담배 한대를 피고는 자리로 돌아오자 이내 열차는 다시 출발한다. 다시 잠들고 깨니 새벽 5시. 여전히 열차는 끊임없이 달리고 있고, 창 밖으로 하늘이 푸르게 여명이 밝아온다. 인도 기차에서 보통의 여행자들 그리고 내가 애용하는 SL클래스 (슬리퍼스 클래스)는 평소에는 좌석이다가 밤에 등받이를 올리면서 1층,2층,3층으로 되는데 난 1층에서 자서 윗층 사람이 깨기 전까지는 누워있을 수 밖에 없는 운명, 하지만 다행이도 2층에 있던 사람도 금방일어나서 2층침대를 내려서 의자 등받이로 만들어 앉았다.
편하게 앉아서 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봤다. 귀에서 흘러나오는 좋아하는 음악.
8년만이다.
너무나도 그립고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바로 그 풍경이다.
언제나 여행이 그리울때 가장 먼저 떠올렸었던 장면이다. 인도 기차에 올라 타 아무 생각없이 흩뿌려지던 풍경들을 바라보던 그 장면. 녹색 들판 , 이름모를 동네, 시골의 풍경, 스쳐지나가는 수 많은 사람들, 무심한 듯 흘러내려가는 강물, 그 강에서 멱을 감으며 풍경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던 사람들까지.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무나 기뻤다.
이렇게 다시 와서 이 모든게 내 앞에 펼쳐지고 있고 난 너무나도 감사하게 이 모든걸 누리고 즐길 수 있다는 그 사실에 기뻤다.
한참 감상에 빠져 있을때 새벽 5시에 도착하던 기차는 역시나 날 실망시키지 않고 아침 7시 경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보드가야로 들어가는 관문인 가야에 도착했다.
늘 그렇듯이 여기가 가얀지 아닌지 나는 알길이 없고, 그냥 사람들한테 가야냐고 연거푸 물어 본 뒤에 여러명이 가야라고 얘기한 뒤에서야 배낭을 메고 내렸다. 내려보니 가야가 맞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가야라는 글자를 보기 이전에 달려드는 삐끼 때문에 내가 정확하게 왔다는 걸 느꼈다. 삐끼의 존재는 소중한 것이다. 삐끼들은 보드가야 가냐고 물으며 오토릭샤 기사들이 달려붙는데, 난 삐끼를 좋아하기 때문에 여유롭게 상대하며 역 밖으로 향했다.
- 가야까지 얼마?
- 200루피
난 그러면 씩 웃고 만다.
누군가는 200, 누군가는 150을 부르는 가운데 난 계속 끊임없이 길을 걸었다. 삐끼들이 눈덩이처럼 붙은 가운데 누군가가 100루피를 부른다. 그르자 갑자기 다른 릭샤왈라 표정들이 험상굿게 변한다. 내가 느끼기엔 바로 그 가격이었다.
내 상상속에 자동번역기에서는 그들이 이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 야 씨발 그건 아니잖어
- 100이면 충분혀 난 갈텨
- 니만 잘 먹고 잘 살면 되냐 그럼 우린 뭐가 돼?
- 그럼 니들도 100받던가
나에게 100을 부르던 릭샤왈라의 등 뒤로 다른 릭샤왈라들의 비난이 쏟아졌고, 릭샤왈라는 계속 돌아보며 뭐라고 얘기 했다. 이게 연기라면 이 새끼들은 정말 아카데미 주연상감이다. 카이저 소제다. 암튼 이 릭샤왈라 덕분에 별 흥정없이 가야에서 보드가야로 향할 수 있게 되었다.
보드가야는 불교 성지 중에서도 손꼽히는 성지다.
보드 가야라고도 하지만 때론 부다가야라고도 한다.
보드가야는 부다가 깨달음을 얻은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지들 중에서도 굉장히 의미가 있고, 부다처럼 깨달음을 얻을까 하는 마음으로 전세계에서 승려들이나 수행자들이 찾는 곳이다. 말그대로 인도에서 몇 안되는 팩키지 관광객도 많은 지역인 것이다.
가야에서 보드가야 가는 길은 생각보다는 꽤 멀었는데 릭샤가 보드가야에 어디에 내려줄까 했는데 다행이도 랜드마크이자 보드가야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마하보디 사원 앞에 내려주었다. 안그래도 그 근처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들을 가보려 했는데 다행이었다. 내려서 곧장 근처에 보이는 해피게스트 하우스로 향했다. 무거운 배낭을 일단 내려놓고 방을 보는데 나쁘진 않다. 부르는 가격에서 100루피를 더 깎고나서야 방을 체크인 하기로 했는데 와이파이 하루 종일 쓰는데는 100루피를 더 내라고 하는데 공짜로 쓰자고 해도 짤 없다. 일단 방을 잡고 샤워하고 난 뒤에 밖으로 나왔다.
언제나 그렇듯이 숙소주변을 중심으로 슬슬 걸어다니며 지리를 파악했는데, 생각보다 더 작은 마을이다.
나는 델리에 가기 전에 핸드폰이나 개통할까 싶어서 알아보다 놀라운것을 알았다.
인도 모바일 회사로 유명한 에어텔, 보다폰 등이 있는데 콜카타에서는 거의 대부분 보다폰이었다. 근데 에어텔이란 이름은 워낙 많이 들어봐서 에어텔은 없냐고 물었을 때 에어텔은 쓰리지가 안된다고 그지랄을 했는데 에어텔 당연히 쓰리지 됨. 게다가 에어텔은 당장 개통가능, 보다폰은 1-2일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근데 문제는 내가 할려고 했는데 이놈의 가격이 너무 비싼 것 같다. 심카드만 150루피를 부르는데 분명 콜카타에서 물어봤을 땐 약 100루피 정도 였다. 결국 안하기로 하고 다시 마실 모드. 마을을 이래저래 돌아다니다가 기차티켓끊어주는 사무실도 발견했다. 편의를 위해 있는 분점 같은 개념. 분점이래봤자 달랑 직원 한명이 앉아서 표를 끊어주는 것이다.
나는 보드가야에서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하루만 머물고 다음날 델리로 갈려고 마음 먹은터라 예약하려 했는데 이미 일본여행자들이나 서양여행자들이 모여있어서 줄 서고 있길래 밥먹고 끊을 생각으로 일단 패스!
좀 걸어다니는데 정말 이 곳도 콜카타 못지 않게 덥다. 정말 너무 더워 땀이 비오듯이 쏟아진다.
뙤양볕에 걷기 까지 했으니 오죽하랴. 나는 숙소 쪽으로 돌아오다가 배가 고파서 숙소를 다시 지나쳐 다른 길로 가보기로 했는데 식당 몇개가 보이길래 몇군데 들어갔다가 가격이 비싸서 밖으로 나와 허름해 보이는 식당안으로 들어가자 내가 맘에 드는 가격에 음식을 판다. 이름도 모르겠는 허름한 식당. 인도식 백반이라고 할 수 있는 탈리하나를 시켰는데 30루피다. 그리고 더워서 라씨도 한잔 사먹었는데 오랜만에 먹는 인도 라씨 대박이다. 존나 맛있다. 아 행복하다
햇볕은 점점 뜨거워져서 도무지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식당에서 앉아서 휴식.
인도여자 경찰 2명이 와서 탈리를 시켜먹는다. 현지인이 오다니 제대로 찾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가운데 한손으로 능숙하게 짜파티를 찢어먹으며 먹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능숙하다. 인도에서 왼손은 거의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똥 닦는 손이니까!
한참을 밍기적거리다 기차표를 끊기 위해서 다시 기차표 사무소로 갔다.
그리고 델리행 티켓을 끊으려하는데 아 씨발. 좆됐다.
델리행 기차표 없음요!
심지어 그 비싼 2A클래스 마저도 겨우 2자리 정도 남았다고 하는거다.
갑자기 눈 앞이 깜깜
델리가야되는데...
하지만 운이 좋았다.
기차역 사무실 직원이 존나 친절한 에이스!
나에게 이것저것 선택지를 던져준다. 자기가 도와주고 알려준다고. 근데 문제는 아 정말 영어 발음 절대 못알아듣겠다. 하지만 대충 파악한 뜻은 그는 내가 SL클래스나 저렴한 표를 원한다는 것과 델리에 최대한 빨리 가고 싶어한다는걸 알았고. 자기가 생각했을때 뉴델리역이 아니라 조금 떨어진 역으로 가는 기차는 있기 때문에 그 기차표를 끊어주겠다는 것.
근데 여기 분점에서는 자기가 그 표를 끊을 수 없기 때문에, 다시 가야역에 가면 그 표를 끊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급해진 난, 곧장 지나가던 오토릭샤를 탔는데 이건 택시처럼 운행되는게 아니라 조금 넓게 만들어져서 버스처럼 이용되는 릭샤다. 돈 아낀다고 그 와중에도 싼 릭샤를 잡아타고 그 좁은 뒷좌석에 낑겨서 안좋은 도로를 한참을 달려 거의 한시간이 넘게 버스처럼 돌아돌아 가야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가야역안으로 들어가 표를 끊는데 오랜만에 인도기차표를 기차역에서 끊으려니 개 썩는 기분이다. 더워서 땀은 존나게 나지. 점심시간 겹쳐서 사람들은 바글바글 줄서있지. 아무것도 못하고 이리헤매고 저리헤매고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인도 기차 시스템이 생각나면서 옛날 생각까지 오버랩되었다.
기차역 직원들의 그 고압적인 태도.
사람들이 100명 1000명이 줄서있어도 자기네들끼리 잡담하고, 커피마시며 웃고 떠들고
게다가 줄을 서있어도 끝없이 새치기 하는 인도새끼들.
마음이 조급한가운데, 결국 내 차례가 되었고, 내일 델리로 향하는 티켓 중 유일하게 남았다는 티켓을 무려 1100루피를 주고 끊었는데 그나마도 웨이팅 리스트에 걸렸다. 아 씨발!!!!!!!! 허무하지만 어쩔수 없다. 가야에 하루 더 쓸데 없이 머무는 것 보다는 이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멘붕이었다. 그리고 난 뒤에 밖으로 터벅터벅 걸어나와서 보드가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왠걸 아까 보드가야 지점에 있던 그 친절한 직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딱 나타나더니 먼저 말을 건넨다. 구세주가 나타난 기분이었다. 오토바이에서 내리자마자 티켓끊었냐며 보여달라고 하길래 보여주니까 왜 이걸 끊었냐고 하면서 따라오라고 한다.
늠름하게 걷는 그 뒷태. 아 개쩔었다.
처음으로 인도인에게서 간지를 느꼈다.
가야역 역무실 안으로 들어간 그는 따라 들어오라고, 그리고 거기서 뻘쭘하게 서서 잠시 기다리는 동안 그 사람은 서류등을 가져오더니 작성하라고 그 서류는 지금 방금 끊은 그 티켓을 취소하는 서류. 그래서 서류를 작성하고 주니 그는 티켓을 환불한 뒤에, 아까 끊어준다던 그 티켓을 끊어주었다. 그리고 조금 기다린 끝에 새로운 티켓과 잔돈을 거슬러 받았다.
델리행 기차표 + 750루피 였다. 와 대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상에 인도에서 이런 친절을 맛 보게 될 줄이야 정말 그는 나의 영웅이었다. 너무 고마워서 진심으로 고마움이 나왔다. 하지만 어떤 영웅이든 그러하듯 할 일을 했다는 듯이 겸손을 떠는 미스터 비카쉬! 짱이다.
천만다행 구사일생의 기분을 느끼며 기분 좋게 역 밖으로 나와 릭샤를 타고 가려다가 릭샤왈라의 개소리들이 짜증나서 좀 더 밖으로 나가고자 걷는데 어떤 릭샤왈라가 존나 비꼬듯이 " 그렇게 싼게 좋으면 나가서 버스나 10루피 주고 타고 가라 " 라고 얘기하는데
뭐라고? 헐!
버스가 있었어?
게다가 10루피야?
존나 땡큐!
이런 고급정보를 마구 던져주다니. 정말 이새끼들은 알다가도 모를 착한새끼들이다.
난 덕분에 릭샤왈라가 손짓하던 방향으로 그냥 걸었다. 그러자 정말 버스가 있다. ㅋㅋㅋㅋㅋ
행복하다 행복해
보드가야행 버스에 올라타고 그리고 다시 보드가야로 향해서 오는데 티켓도 끊고 느긋해진 나는 기분좋게 마하보디 사원 앞에 내려서 마하보디 사원을 구경하기 위해 그리로 향했다. 세계적인 불교성지인 덕분에 잘 정비되어있고, 관광객들도 정말 많았다. 입구에서 신발을 맡겨야만 했다. 성지라고 맨발로 돌아다녀야 된다. 암튼 개고생하고 난 뒤에 일이 잘풀린 상태라 아주 기분좋게 사원을 구경할수 있었다.
사원은 정말 너무너무 멋졌다. 한바퀴 슥 대충 둘러보는데 왠 동자승이 붙는다. 여행자의 직감이다. 이렇게 쓸 데 없이 이런 장소에서 붙는 놈들은 대다수 다 목적이 있어서다. 꼬마새끼가 존나 온화한 표정과 온화한 말투, 게다가 유창한 영어까지 도대체 이 새끼 정체가 뭘까 궁금해 질 정도. 인도의 대부분의 어린아이들 답지 않게 정갈하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옷과 녀석의 생김새와 말투까지 모두가 어우러져서 꼬마새끼한테 아우라가 나오고 있었다. 사기꾼 아우라.
암튼 본의아니게 이 새끼가 존나게 쫒아다니면서 여기 설명, 저기 설명해주는데 난 대꾸도 거의 안한채로 사진 찍고 혼자 갑자기 앉아서 쉬고 할꺼 하고 하니까 옆에 앉아서 핸드폰을 꺼내서 페이스북을 한다. 니미 씨발 ㅋㅋㅋㅋㅋㅋ
녀석도 포기한듯. 그러고 있다 저 멀리서 다른 사람들이 오자 그 쪽으로 다시 자리를 옮긴다.
사원을 느긋하게 좀 구경하다가 슬슬 나갈까 싶어서 나오는 길에 수 많은 가게들이 쭉 늘어서 있다. 관광지의 풍경은 세상 어디든 비슷하다. 암튼 난 별 생각없이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가운데 왠 한국스님이 말을 건넨다. 와우
이건 또 뭔가 싶었다.
내가 아무리 불교신자지만 개인적으로 스님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더군다나 해외에서 이런데서 뜬금없이 만나면 기분이 좀 쎄하다, 또 뭔 사기꾼인가 싶었다.
그러나 좀 얘기하니 사기꾼은 아니고 진짜 스님인듯.
그러나 좀 얘기하니 사기꾼은 아니고 진짜 스님인듯.
이렇게 만난 한국스님과의 인연
불교성지 순례중이라는 스님. 지금 한국절인 고려사에 머물고 계시다고 한다.
그렇다. 보드가야는 세계적인 불교성지이기 때문에 전세계 수 많은 나라에서 절을 세웠다. 말그대로 보드가야는 불교계의 핫플레이스 파리이자 런던이자 뉴욕이었다. 쁘레따뽀르테처럼 전세계 불교사찰들의 건물들이 앞다투어 좀 더 멋진 건물, 좀 더 큰 불상을 목표로 전진 또 전진 중이었고 한국의 절은 고려사라고 해서 타운에서 좀 떨어진 곳에 그냥 고즈넉하게 있었다. 어떤 이들은 한국도 투자를 해서 좀 더 근사한 절을 지어야 한다고 하지만 난 그게 차라리 괜찮아 보였다.
암튼 다시 본론으로 와서 그 스님께서 고려사에 머물고 계시다며 같이 고려사 가서 저녁도 먹고 그러자고 해서 나는 스님을 따라 뜬금포로 고려사에 가기로 했다. 마하보디 사원에서 나와서 인근의 다른나라 절을 잠시 들렸다가 스님을 따라서 오토릭샤타고 보드가야 가는데 정말 멀리도 떨어져있다.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마하보디 사원에서 걸어서 위치했다면 정말 멀리 떨어져있었다. 게다가 밖에서 보기에 이게 절인지 아닌지도 알길이 없었다. 하지만 넓직한 마당과 한적함이 너무 좋았다. 넓은 마당에서는 스님들이 인도에서 인기있는 스포츠인 크리켓을 하고 있다. 그 풍경이 어찌나 평화로워 보이던지 스님과 함께 잠시 경 내를 구경하고 스님이 뭔가 대접하겠다며 망고나무에서 갓 따온 망고들을 가져왔는데 갓 따온 망고라 완전 싱싱했다.
맛이야 말 할 것도 없이 달고 맛있었는데, 스님이 이 즙 많은 망고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주시겠다며 시범을 보여주시는데 진짜 이런말 하긴 뭐하지만 개 귀여웠다.
망고를 손에 잡고 몰랑몰랑(스님표현)해질 때까지 계속 만져준다. 인내심을 가지고 많이 만져준만큼 맛난것을 먹을수 있다는 생각으로 몰랑몰랑 만져주고 꼭지를 조금 뜯어내고 거기에 입을 물고 쭉 빨아먹는데 진짜 나조차도 완전 처음 해보는 방법. 망고 과육이 어느새 거의 다 분해되어 천연 망고 쥬스가 되었다. 진짜 이렇게 하니 손도 안더러워지고 망고의 엑기스를 완전히 빨아들였다. 신나게 망고도 먹고 하다보니 어느새 저녁 공양 준비가 다 되었다고, 스님이 저녁을 먹고 가라고 해서 저녁을 먹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인도 사람이 된장찌개랑 이것저것 밑반찬 준비하는데 저녁이 다 차려졌다.
그리고 먹는데 와 대박.
한국 떠나온지 몇일 되지도 않았는데 너무나 맛나고 더위에 지쳐있던 나에게 기운을 복돋아줬다.
배부르게 먹고 한참 앉아서 스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스님께서 마하보디 사원은 저녁때 보면 더 멋있고 아름답다며 같이 가보자고 하셔서 다시 오토릭샤를 타고 마하보디 사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스님의 말씀처럼 밤에 보는 마하보디는 더욱 개쩔었다.
스님이 마하보디 안에 이 곳 저 곳을 데리고 다니면서 불교 설화, 이야기등과 접목해서 설명해주시는데 최고였다.
나도 불교신자지만 아. 그런 의미구나 하는걸 느끼면서 보니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
인생이야기, 인도이야기, 불교 이야기 수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정말 좋은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내일 곧장 델리로 간다니 스님이 뭘 그리 급하게 다니냐며, 인도를 보지 말고 느끼라고, 어딘가에 가려고 하지말고 느끼라고 델리도 가야도 모두 인도 아니겠냐고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데, 뭐 원론적으론 그렇게 맞는 말인지는 알겠지만 또 쉽게 안되는게 사람아니겟는가.
좋은 얘기들을 그냥 듣고,
보리수 나무 밑에 앉아서 시원한 밤바람을 느끼며 밤의 마하보디 사원을 느꼈다. 낮에는 그토록 찌더니 밤엔 이렇게 시원하고 좋다.
행복하다.
행복하다.
그 옛날 이 자리에서 명상과 수련을 하며 깨달음을 얻은 석가가 떠오른다. 정말 뜻 깊은 곳인것 같다.
늦은 시간 몇 시간동안 스님을 따라 마하보디의 재발견을 한 뒤에 문닫을 시간이 다 되어서 사원에서 나온 뒤 헤어지고 나는 방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쉬는데 먹을 물이 다 떨어졌다. 밖으로 나가니 완전 어둠. 상점도 문 닫고, 물을 구할 곳이 없다. 그러는데 숙소에서 일하는 12살 짜리 꼬맹이녀석이 자기가 물을 구해다주겠다고 돈 조금만 달라는데 뭐 그리 말안해도 돈 몇푼 당연히 수고비로 줄 생각이었는데 그래도 난 인도를 믿지 않아! ㅋㅋㅋㅋ 내가 구하려다가 정말 문 연데가 없어서 숙소로 다시 돌아오니 꼬마가 내 손에 쥔 돈 100루피를 뺏더니 자기가 사오겠다며 마구 어둠속으로 달려갔다. 꼬마녀석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하면서 문 연 상점을 찾아 헤매는 동안 담배한대 피고 있으니 저 멀리 어둠속으로부터 생수 한통을 들고 마구 달려온다. 그리고 물을 주면서 50루피를 건넨다.
아놔 이 꼬마 새끼가.
정직하게 딱 잔돈을 건네주면 내가 어련히 수고비를 챙겨주려고 했는데 괘씸해서. 돈 내놓으라니까
처음엔 10루피.
장난 똥빨지 말고 더 내놔 손을 내밀며 흔들자
다시 또 10루피.
에유. 나머진 니 수고비다 싶어서 그냥 냅두고 물을 들고 방으로 왔다.
샤워하면서 빨래까지 해서 널어놓은 터 였는데 갑자기 비가 오기시작해서 빨래 다 걷어서, 급하게 줄을 숙소 복도에 이리저리 마구 연결해서 급하게 빨랫줄을 만들어 다시 널고. 다시 또 땀범벅. 암튼 할일을 다 끝마치고 기분 좋게 휴식하면서 일기를 썼다. 오늘 하루는 정말 여행의 진수를 느낀 하루였다.
아직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고 또 놀란다. 즐겁고 행복하다.
지금 힘든 것들이 나중에 즐거운 추억이 될 거라는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욱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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