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서블 여행기 [인도파키스탄파서블] #8 8년만의 델리
기차는 여전히 달리고 있다. 아직은 어두운 기차 안, 몸을 일으켜 언제나처럼 화장실 쪽으로 가서 문을 열고, 담배 한대를 피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새벽 5시에 잠을 깼다. 어슴프레 밝아지는 하늘.
이 때의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 음악을 들으면서 누워있었다. 언제나 여행을 그리워하면 머릿속으로 떠올렸던 이 순간.
맨 아랫칸인 탓에, 윗층 사람들이 깨지 않으면 일어나 앉아 있을 수가 없고 꼬박 누워있어야 된다.
창 밖으로 여전히 새로운 풍경들이 펼쳐진다.
논과 밭. 그리고 푸른 들판과 여명
세상에 이토록 소소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또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난다.
아침에 일어난 인도 아줌마,아저씨랑 얘기를 했다. 어설픈 힌디로 얘기를 나누는데
둘이 무슬림이란걸 알았다. 사실 남자 무슬림 같은 경우엔 머리에 무슬림들이 쓰는 흰색모자를 써서 알았지만 여자들은 별로 티가 나지 않는다.
좀 얘기하고 친해졌다고 생각한 난 장난스럽게 배가 고프다는 시늉을 하자. 아줌마가 먹을걸 나눠주겠노라고 바디랭귀지로 하는데 귀여운 아줌마. 그러더니 가방에서 먹을 것을 주섬주섬 꺼내서 나눠준다. 밥이면 좋겠는데 군것질 거리다. 그래도 맛나게 먹으며 계속 되지도 않는 힌디와 바디랭기지로 얘기하면서 갔다.
[ 사진 : 인도 기차는 인도여행의 최대 매력이다. 그네들의 삶을 가까이서 엿볼 수 있는 SL 클래스는 배낭여행자들의 필수 코스, 부자 인도인들이 타는 1A,2A,3A 등에서는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이 있다 ]
아침식사 , 점심식사 각 끼니때마다 정차하는 조금 큰 역들에선 이것저것 먹을 것을 파는 사람들로분주하고, 기차 안에도 간단한 요깃거리를 들고 팔러다니는 잡상인들의 외침. 사람들은 열차가 떠날세랴, 모두들 간이매점에 달려가 물과 음료수를 사재낀다. 정말 정신없다. 저마다 바리바리 쌓온 짐안에서 먹을 것을 꺼내 끼니를 때운다. 나도 지나가던 음식파는 이를 붙잡고 끼니를 때울 음식을 샀다. 얼마 안하지만, 충분히 맛있다.
짜빠티,난,로띠와는 조금 다른 튀긴 푸리와 야채와 감자뿐이지만 향신료가득한 커리와 매운고추. 너무나 맛난다. 커리를 많이 먹고 난 뒤 오는 느끼함을 고추가 잡아준다. 인도 조상님들의 지혜!
이런게 기차의 매력이다. 사람사는 모습. 사랑스러운 풍경이다.
기차는 열심히 델리로 향하고 있고, 오후 쯤 됐을까 갑자기 하늘이 어둑어둑 해진다.
비가 올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더니 이내 갑자기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진다.
금새 빗방울들이 창문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서둘러 창문을 닫을려고 하는데 낡은 창틀에 턱 걸려버린 창문이 내려올 생각을 안하자, 맨윗층 청년이 도와준다. 자기 옷을 흠뻑 젖어가면서.
유리창만 닫았더니 물이 미친듯이 새어들어가 난리도 아니다. 물바다가 되었다.
젤 바깥 쇠창을 닫았더니 물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게 조금 달렸을까 채 5분도 되지 않았는데 열차안에 사람들은 하나둘 창문을 열기 시작한다.
그새 비가 그친건지. 비가 안오는 지역에 도착한 것인지 알길이 없다.
그렇게 한참을 지루하게 있다가 잠을 청했다.
자다가 또 벌떡 일어났다. 얼굴에 물이 미친듯이 튀는데, 본능적으로 잠에서 확 깨자마자 창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비가 엄청나게 들이닥치고 있다.
이번에는 인도아저씨가 도와준다.
인도사람들 정말 착하고 순박하고 친절하다.
어디에나 관광객을 상대하는 사람들만이 위험하다.
저녁이 되었다.
저 멀리 도시의 불빛이 보이고, 점점 농촌풍경이 삭막한 도시로 변해가는 풍경의 모습
가야에서 기차를 밤에 탔으니 거의 20시간은 족히 걸린 것 같다. 하지만 이 정도는 인도에서 보통이다.
완전히 붐비는 아난드 비하르역에 도착했다. 결국 델리에 오긴 왔다.
아난드비하르 역에서 내려 일단 바깥으로 향했다. 호객행위를 하는 릭샤왈라들이 붙는다. 담배 한대를 피고 천천히 역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일제히 굉장히 많은 숫자가 한 방향으로 가고 있고, 보니까 그 곳이 전철 역인 것 같았다.
빠하르간즈까지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어서 그렇게 가기로 했다.
세상 좋아졌다. 인도에 지하철이라니!
아난드 비하르 역에서 나와서, 바로 근처에 있는 아난드비하르 isbt역까지 향하는데 골때렸다.
이정표는 대충 되어있는데. 정확하게 안나와있다.
역에서 나와서 오른쪽으로 가는데 골깐다. 분명 지하철역은 보이는데 가는 길이 없다. 담장이 있었는데 인도새끼들이 줄지어서 담장을 넘어가고 있었다. 저마다 무거운 배낭이나 짐을 들고서도 잘도 담을 넘어간다.
담장을 넘는 다는 카오스.
줄지어 넘어가는 질서.
인도는 언제나 이렇게 혼돈과 질서가 있다.
외국인의 눈에는 혼돈 그들에게 존재하는 그들만의 질서가 분명 존재한다.
그들과 함께 담장을 넘을수 없어서 길게 돌아가려고 걸어가니 다시 또 담장이다.
어이가 없다.
또 줄지어 담장을 넘고 있다.
넘어갔다.
아난드 비하르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좆빠진다.
한국같으면 기차역과 전철역을 붙여서 만들었던가 분명 직통하는 곳을 만들었을텐데
너무나 당연하게 그 사이를 담장들로 막아 놨다.
정말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 곳! ㅋ
지하철역안에 들어가서 또 쌔빠지게 올라가고 올라가고 처음으로 티켓(토큰)을 끊고 빠하른간즈가 있는 라마크리슈나 아쉬람 역으로 가는데 열차가 와서 올라타는 순간 대박
에어콘이 빵빵! 인도야 많이 바뀌었구나! ㅋ
행복하게 그 먼길을 이동했다. 기본 요금이 8인데 무려 18루피정도 요금이 됐을정도니..얼마나 멀지.
지하철 안은 정말 인도답지 않게 아주 깔끔하고 좋았다. 새삼 세월의 흔적을 느끼며 감탄 또 감탄. 시원한 에어콘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한참을 달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열차에서 내려서 이정표를 보니 빠하르간즈가 다행이도 표시되어 있어서 헤매지 않고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역에서 내려서 나와서 빠하르 간즈 쪽으로 향했다. 정말 8년만에 오는 빠하르간즈의 모습
옛날 인도여행 할 때 첫날, 이 곳에 도착해서 소한테 치이고, 완전 어두컴컴한 길을 걸으며 도대체 여기서 몇달간 어찌 여행 할까 눈앞이 깜깜해지는 시절이 있었는데 두번째이기도 두번째이고, 이미 혼돈 그 자체 완전 카오스인 콜카타를 거쳐서 오면서 적응이 완벽하게 되어버렸다. 게다가 더위도 타는 듯한 태양의 가야에서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그런지 델리는 차라리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반가운 델리, 빠하르간즈를 걸으며 시골에서 올라온 촌놈 마냥 우와 우와 하면서 두리번 거렸다. 비포장에 가까웠던 빠하르간즈 길은 완전히 도로 포장되어있고, 요란한 네온싸인 간판들 하며 이제 몇년 후면 이 곳이 카오산 메인로드처럼 변신할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지친 이동에 무거운 짐을 가지고 한참을 걸은 터라 피곤했지만 주머니 가벼운 배낭여행자는 아무 숙소에서나 머무를 수 없다.
좀 더 싸고, 합리적인 숙소를 찾기 위한 여정.
사실 이 순간이 배낭여행에서 굳이 힘든 순간을 꼽자면 이 때이긴 하나 이 과정이 또 배낭여행의 매력이다. 새로운 도시에 와서 어리버리 하면서 숙소를 찾아가는 그 과정. 정말 배낭여행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맛보지 못할 야릇한 쾌감까지 있는 순간이다.
힘들게 배낭을 메고 숙소 몇곳을 둘러보다가, 스팟 호텔로 가서 방을 보는데 전반적으로 괜찮은 편이다. 그 곳에 숙소를 잡고 방에 들어가 짐을 던져놓고 곧장 밖으로 나와 밥을 먹으로 나왔다가 예전 인도여행 때 한번 갔던 소누레스토랑에 갔다. 추억팔이를 해보고 싶었다. 8년만에 다시 오는 이 곳 소누레스토랑,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다. 커리랑,짜파티 등을 시켜서 먹고, 나는 근처에서 큰 콜라를 60에 눈탱이쳐맞아가면서 사오고.(눈탱이는 아닌듯) 그렇게 첫날 밥을 먹고, 델리 도착을 자축했다.
빠하르간즈의 밤거리는 적응이 안됐지만, 또 한편으론 옛 기억과 묘하게 일치하며 밤의 풍부한 감성에 추억을 더해 기분을 멜랑콜리하게 만들어주었다. 8년만의 델리, 이제 뭔가 진짜 여행이 시작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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