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는데, 역시나 사람과의 관계이기 때문에 좋은 사람과 더욱 오랫동안 같이 있고 싶어지며 멋진사람(외모가 아닌)과 더욱 오랫동안 같이 있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여행을 사람과의 만남이라고 괜히 멋드러지게 규정짓고 싶은 나는 여행중 만나게 되는 수 많은 멋진 사람들이 가슴속에 깊이 각인 되어 나의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것 같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그 첫번째로 소개하고픈 이는 동생과 떠난 동남아 3개국 배낭여행의 시작점에서 만난 찬이다.
푹푹 찌는 살인적인 무더위의 느즈막한 7월 방콕, 나는 방콕 카오산에 도착한 첫날 대충 잡은 숙소로 부터 방을 옮겨 한국인 여행자들이 모여있는 인근에 '홍익인간'게스트하우스로 숙소를 옮기기로 했다. 문은 열려있었지만 사장이 나오지 않은 듯 아직 불을 켜지 않아 어두컴컴한 실내에 대충 배낭을 놓고 앉아서 기다렸다. 나와 같이 사장이 나오길 기다리는 듯 왜소한 체구의 남자 한명이 피로한듯 앉아 있었다. 그렇게 찬과 처음 만났다. 의례 그렇듯이 앉아서 별스럽지 않은 대화를 했다. 여행 얘기, 앞으로의 여행루트에 관한 얘기, 오늘은 무엇을 보러 갈꺼라는둥.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그와 그날 하루 같이 다니기로 했다.
왼쪽의 친구가 찬이다.
찬과 대화를 나누며 그에겐 다른 여행자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찬은 모 외대 인도네시어과 학생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그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어째서 여행을 나왔는가, 어떤 루트를 가고자 하는가, 어떻게 여행에 오게 되었는가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열심히 알바를 해서 돈을 모아서 나온 나와는 달리 그는 스폰서를 받고 여행 중이라고 했다. 여러 인터넷 잡지를 비롯 몇개의 회사로 부터 소액의 돈을 소폰받아서 그 돈으로 동남아 11개국을 여행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이미 필리핀을 여행하고 온 상태였다. 찬은 늦은 나이에 대학에 입학해 굉장히 늦은 나이임에도 군대에 가지 않고 있었다. 많은 남자들이 그렇듯 군복무라는 족쇄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 족쇄의 무게는 엄청나게 무겁다. 찬 역시 그런 무거움을 안고 보이지 않는 미래의 불투명함 속에서 어느날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냥 아무생각없이 가는 것 보다는 좀 더 알차고 의미있는 여행을 하고자 그는 여행을 가고자 마음 먹은 이후 여행 계획을 세워서 스폰 계획을 세웠다. 스폰 계획을 세운 이후 그의 말을 빌려 수백개의 회사에 스폰요청을 하고 그리고 몇몇 회사에는 직접 찾아가 프리젠테이션까지 해서 결국 그는 인터넷잡지 몇곳과 몇 단체의 후원을 받아 여행을 떠날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의 얘기를 들었을 때, 스폰을 받아 편하게 여유있게 여행을 한다는 것이 정말 부러웠지만 실상은 그의 말대로 정말 소액의 금액들이었다. 몇몇 회사로부터 스폰을 받는다 해도 정말 소액의 스폰이었기에 그는 부족하면 부족했지 결코 여유롭지 않은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가 원래부터 말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앙상한 그의 체구와 그의 여행얘기를 들으며 그는 정말 힘든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너무나 흔해빠지고 속된 표현일지는 모르지만 그는 마음만은 풍요로운 여행을 하고 있었다. 적은 돈을 가지고 배낭여행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보통 하루에 얼마정도 써야한다는것이 머리속에 각인 되어서 돈을 쓸 때마다 어느정도 가늠을 해보곤 한다.
결국 한끼 식사에 이정도까지는 쓸 수 있다. 라던가 지금 이걸 써버리면 나중에 좀 아껴야 된다 라는 계산이 잡히게 마련, 그는 필리핀에서 그의 한끼 식사에 해당되는 돈을 가지고 꼬마아이를 데리고 구걸하는 여자에게 아니 그 여자와 아이를 데리고 식당에 들어가 밥을 사주었다. 그런가 하면 길 잃은 고양이를 위해 동물 보호소를 찾아 데려다 주는 등. 왠지 다른 여행자들과 다른 에피소드들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학과가 인도네시어과이고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아시아이기에 아시아 11개국을 여행중이라는 그. 정말 웃음이 매력적이고 심성이 착한 사람이었다. 짧은 몇일 그와 함께 방콕을 돌아다니며 저녁 마다 푹푹 찌는 열대야 속에서 시원한 남국의 맥주를 마시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내 모든 배낭여행의 시작점이 될 그 시점에서 그와 만난건 나에게 행운이었다. 나이가 나보다 어린 친구였지만 그는 여행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볼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마음이 풍요로워질수 있는 여행의 비법을 알려주었다. 카오산을 떠나 다른 곳으로 떠날 때에 그가 숙소로 부터 멀리 떨어진 카오산 끝까지 배웅을 나왔을 때, 참으로 헤어지기 아쉬웠다. 그렇게 그 여행의 시작점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여행은 사람과의 만남이란 생각이 싹틔었는지 모르겠다.
- 찬 역시 이글루스에서 블로그를 하고 있었는데 이 곳에 가면 그의 따뜻한 여행기를 읽어 볼 수 있다.
http://chanstory.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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