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만난 사람들에 관한 얘기를 쓰기로 생각 한 이후로 만난 가장 극적인 사람 중에 하나 였던 G형, 사실 지금까지 여행에서 만난 모든 이들을 거의 실명으로 언급했지만 이 분에 대해서 쓰면서 과연 실명으로 적는게 맞는걸까 아니면 이니셜로 하는게 맞는걸까 생각했지만 일단은 이니셜로 해두는게 맞지 않은가 싶다. 하지만 내 여행기를 꾸준히 읽으신 분이라면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으리라, 부디 G형에게 폐를 끼치는 글이 아니길 바라면서 '길에서 만난 사람들' 시작하겠다.

여행 예찬론자인 나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여행을 권유한다. 여행은 언제나 만남이라고 얘기한다. 맨 처음 그 사실을 깨달은 이후, 나는 여행을 사람과의 만남이라 정의해봤지만 지금은 사람과의 만남 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것들, 그건 현지인일수도 있고, 또다른 여행자일수도 있고, 모르고 지내던 자신과의,내면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수 많은 만남 속에서 여행은 사람을 변화 시킨다. 그 변화는 아주 작은 변화에서부터 인생을 송두리채 바꿔놓는 변화까지 그 폭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난 여행 중, 한번의 여행으로 인생이 바뀐 남자를 만났었다. 이제부터 그의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게스트하우스 주방에서 요리 중인 G형


중동 여행 중, 난 시리아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나보다 한살 위의 G형. 워낙 한국사람이 귀한 중동여행이다보니 그 사람과의 만남은 후에 온통 일본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서로 의지가 되었다. 여행 중 만났다는 일본여자친구와 함께 세계여행중이라는 G형은 긴 여행을 하는 여행자답게 참으로 요리실력이 대단했다.

 특히 유럽과 중동 쪽은 부엌을 쓸 수 있는 숙소가 많기에 게다가 물가가 제법 비싸기에 요리를 잘 한다는 건, 여행 중 식비로 돈을 절약 할 수도 있거니와 타지음식과 입에 맞지 않아 벌어질수 있는 일들도 방지 할 수 있는 꽤 괜찮은 스킬이다.

 덕분에 G형과 함께 있는 동안 생각지도 못한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수 있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시리아에서 레바논까지 함께 했었고, 그러면서 우린 많은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난 그와의 대화에서 그의 인생, 그가 지금 떠나온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20살 이후, 이름없는 전문대를 별생각없이 졸업한 그는 20살부터 아주 오랜 시간을 허비했다. 리니지란 게임을 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내며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하고 어느새 30을 눈 앞에 두고 인생을 돌이켜 봤을 때 절망을 했다. 주위에는 친구도 없었다. 돈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꿈,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10여년간 게임속에서 빠져있는 동안 세상과 단절 된 그에게는 절망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자살을 결심을 해본다.

재밌는건 문득 자살을 할려고 마음을 먹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 남들 다 한다는 그 유럽 배낭여행 한번 못해보고 죽는건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거다. 왜 하필 유럽여행이냐고 물었던 나의 질문에 그냥 여행하면 유럽배낭여행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아서였다고, 어쨌든 자살하기전에 유럽여행이나 한번 신나게 하고 오자는 생각으로 그날부로 게임을 그만두고 늦은 나이지만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면서 돈을 모으고 예정대로 유럽여행을 떠났던 그. 그는 3개월 정도를 생각하고 출발했다고 한다.

여행을 하면서 여행의 재미를 서서히 느껴가면서 이렇게 넓은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사람이 멋진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큰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우연히 한 일본여자를 만나게 되고 못하는 짧은 영어로 바디랭기지를 써가며 그녀와 동행하게 되고 같은 숙소를 쓰면서 그녀와 사귀기로 했다. 그의 여자친구가 된 일본여자 K는 세계여행을 하고 있던 여자였다. 뜻하지 않게 세계여행을 하는 여자친구를 사귀게 된 G형은 큰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찢고 그녀와 함께 길을 떠나게 되었다. 한국에서 열심히 알바를 하면서 모은 돈이 떨어지는 그 순간까지라도 그녀와 함께 하리라는 마음으로 유럽에서 중동으로 내려온 그.

그 때 쯤 난 그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일본인 여자친구와 여행을 다니면서 일본인들이 많이 모이는 숙소들을 이용하며 그는 일본인 장기 여행자들을 통해 요리를 하나씩 배워가기 시작한다. 간단한 파스타류부터 스테이크,햄버거, 그라탕 등 게다가 건강을 이유로 케찹을 직접 만들어 먹는 방법까지 배운 그는 긴 여행에서 요리하는 즐거움과 함께 또 한가지를 깨닫게 된다. 요리에 꽤 재능이 있다는 걸. G형이 만든 음식들을 직접 먹어 본 나로서는 정말 그의 요리 솜씨가 보통이 아니란 생각을 했었다. 서울에서 비싼 레스토랑에가서 어쩌다 한번씩 먹어보는 스테이크나, 파스타의 맛을 뛰어넘는 그 맛. 더군다나 여행지에서 변변찮은 부엌에서 만들어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훌륭한 요리들.

G형은 나에게 얘기했다. " 저는 진짜 여행 잘 나온 것 같아요. 꿈도 미래도 없었는데 이제는 꿈이 하나 생겼어요. 한국에 돌아가면 조리사 자격증도 따고 식당에서 일하면서 언젠가는 제 식당을 가지는게 꿈이에요 "
그를 보면서 새삼 여행의 위대함을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그를 만나게 된 이후에는 더욱더 주위에 후배들이나 어린친구들에게 여행의 가치에 대해 얘기하다보면 언제나 꼭 나오는 대답 중 하나가 " 저는 영어 하나도 못해요" 인데, 그 때면 난 이 G형의 대한 얘기를 또 하나 꺼낸다.

 

 

정말 내가 이제껏 만난 어떤 젊은 사람보다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G형. 분명 사람들은 에이 그래도 세계여행도 하고 일본인 여자친구도 있는데 라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봤을땐 정말 요새 초등학생보다도 짧은 영어일 것이다. 여자친구인 K와 대화하는걸 보면 한국어,영어,일본어가 동시에 나간다.

그래서 일본어를 하는 나도 옆에서 둘이 대화하는걸 듣고 있으면 도무지 무슨 얘길 하는지 모르겠다. 예를 들자면 나는 사과를 먹고 싶다면, 오레와 애플 먹고싶다. 이런식의 문장으로 쉴새없이 대화했다.

 덕분에 둘이 어쩌다 싸우게 되면 서로 전자사전을 펼쳐놓고 단어를 하나 찍고 보여주면 다시 해석 해서 알아듣고 다시 또 단어를 찍어서 보여주는 식으로 해서 짧은 대화임에도 꽤 오랜 시간을 걸려서 이야기 하곤 했는데 덕분에 싸우는과정이 그러하다보니 그 와중에 어느새 화도 풀리고 해서 화해를 하곤 했다.

마지막으로 그를 봤을 때, 혼자서 그 짧은 영어로 이란 비자를 받기 위해서 시리아 다마스커스에서 이란대사관을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었다. 정말 다시 한번 떠올려도 깝깝스러운 맘이 들었다. 저 짧은 영어로 타국에서 타국 비자를 받을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이런 그를 봤던 나였기에 누군가가 영어를 핑계로 여행을 갈 수 없다고 얘기한다면 꼭 그의 일화를 들려주곤 한다.

 그는 나에게 여행,꿈,희망,도전에 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를 주었다.
 길에서 만나 사람가운데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한다. 나는 여행 중 만난 수 많은 이들에게 많은 것들을 배운다.  G형을 만나게 되면서 나는 또 한번 배웠다. 여행은 만남이다. 그 소중한 만남 가운데 길에서 만난 수 많은 스승들중에 한 사람이었던 G형. 그 역시도 내가 만난 또 하나의 보물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