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서블 여행기 #23 [인도/마날리] 여행에서 만난 재밌는 사람들
일어나서 보니 어제보다 한결 몸 상태가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힘겹다. 밖으로 나오자 오늘도 또 새로운 사람들이 도착했다. 한국인들이다. 꽤 여러 그룹들이 도착해서 가볍게 인사를 건네는데, 한 한국인 아저씨가 붙임성 좋게 이런저런 말을 건넨다. 마날리에 대해 물어봐서 알려달라는 정보를 좀 알려주고 난 뒤에, 애들과 만나 밥을 먹으로 갔다. 언제나 처럼 티베트음식을 파는 그 식당. 하루와 볶음밥을 반으로 나눠먹는데 계란국만 30루피를 받는다. 이 티벳식당은 오늘도 여전히 한국사람들로 바글거린다. 아무래도 여러사람들이 모이다보니 아침부터 재미난 것들이 많이 보인다.
식당 안 풍경.
식당 안에는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아 보이는 여자들, 어린 한국남자애들 한국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나 싶을 정도로 한국사람들로 가득차 있는데 그 와중에 재밌는 광경을 보는데 나이 많은 여자가 어린 한국남자애한테 살갑게 말을 걸며 친해질려고 노력 중이다. 이게 남녀가 바뀌었다면 찝쩍인다고 표현하는게 맞을런지도 모르겠다. 나이 많은 여자가 찝쩍이는데 한국남자애의 반응이 퉁명스럽다. 이 여자는 나중에 만나게 되는 '돼지엄마'라고 해두자. 앞으로 계속 나올 꺼다. 그리고 한국남자애는 이따가 재밌는 일을 하니 '보빨러'라고 해두자.
아무리 못생기고 뚱뚱해도 그렇지 친해지려고 노력 중인 돼지엄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남자애는 보통 저쯤이면 말도 좀 잘 받아주고 얘기도 나눌 법도 한데, 혼자 앉아서 묵묵히 밥먹으며 돼지엄마를 쳐다도 안보고 건성으로 대꾸를 한다. 싸가지 없는 새끼. 아무리 그래도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돼지엄마도 열심히 추근덕 거린다. 재밌는 여자다.
재미난 광경과 함께 밥을 먹고 난 뒤에 약을 먹었다. 애들은 저 마다 방에 뭔가를 놓고 와서 각자 볼일로 숙소로 향하고 난 식당 바깥에 있는 의자에 앉아 식후땡을 맛깔나게 한대 피는데 아침에 만난 그 한국 아저씨가 오셔서 이것저것 필요한 정보를 물어 본다. 늘 그렇듯이 나이도 있으신데 이렇게 열정적으로 여행하는 모습에 대단함도 느끼고 경의를 표하게 된다. 아저씨가 아주 유쾌하고 붙임성이 좋으셔서 막 이것 저것 물어보셔가지고 열심히 가르쳐주고 있으니 애들이 온다. 우리는 레 LEH에 가는 버스표도 끊고 이 것 저 것 볼일을 보기 위해 뉴마날리에 가기로 했기에 언덕을 내려가려는데 이번엔 내가 맥북을 안들고 나왔다.
어제 뉴마날리 돌아다닐 때, 쏘세지가 옷을 맞춘 가게 2층에 보니 컴퓨터수리점이 보이길래, 한번 가서 문의해봐야지 싶었는데, 별로 큰 기대는 안하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 것 저 것 마음 먹었던 것들을 시도해 보고자 나는 다시 맥북을 가지고 돌아와 우린 뉴 마날리로 향했다.
숲에 다다를 무렵, 처음으로 숲 입장료를 내지 않고 들어갔다. 레로 떠나게 되면 마지막으로 거닐 숲이다 생각하니 더욱 아름다워보였다. 마날리가 너무너무 좋은 이유는 정말 많지만 이 숲은 정말 그 이유들에 방점을 찍는 것 같다. 보는 것만으로도 상쾌하고 숲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모두 시원해진다.
기분 좋게 상쾌한 숲을 지나 뉴 마날리에 도착해서 곧장 관광청으로 향했다. 레에 가는 공영버스 티켓을 끊는 곳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버스표 끊는 곳으로 가니 오마이갓, 청천벽력 날벼락 같은 소리를 들었다.
공영 버스는 4일에 한대있다. 심지어 버스는 오늘 아침 출발해서 다음 버스는 4일 뒤였다. 어제 티켓을 끊고 오늘 타고 갔어야 했다. 멘붕이 왔다.
모두 허탈함에 멍하니 있었다. 뭐 어쩌겠는가 우리는 금새 훌훌 털고, 다음 일은 잘될거라며 위안을 삼으며 관광청 밖에 나와, 관광청 마당 벤치에 앉아 허탈한 마음으로 잠시 앉아있었다. 뭐 공영버스 없으면 다른거 타고 가면 되지. 편하게 마음 먹으면 된다. 우리는 기분 좋게 그 마당에서 커피 한잔을 하면서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데 사실 꽤 허망했다. 그간 뭐하러 고민했는가 왜 뉴 마날리를 그토록 들락날락 했는가 처음 온날 그냥 티켓을 끊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건데 이때 공영버스를 못끊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때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우린 노점 공구상으로 가서 작은 드라이버 세트를 빌려서 내 맥북을 분해서 하드를 빼었다 다시 꼽아봤는데도 답이 없다. 허무하다. 그리고 쏘세지는 맞춘 인도옷을 조금 수선하기 위해서 옷을 맞춘 그 곳에 옷 수선 하러 가서 난 그 위층에 컴터 가게에 갔는데 애시당초 이 새끼들한테 뭔가 기대했던 내가 잘못이었다. 나 보다 더 모른다. 맥북을 처음보는지 하드 분리한다고 엄한 곳을 드라이버로 풀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분해해서 하드디스크를 건네 주자, 이번에는 윈도에서는 읽히지도 않는 맥 하드를 연결한다. 당연히 안잡힐수 밖에 그 광경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냥 지켜봤다. 답답해서 나오라고 하고, 그냥 내가 한번 더 시도해보고 내려왔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다.
정말 이번 여행 맥북 고장나는 바람에 참 많은 것들이 아쉽다.
컴퓨터 가게에서 내려온 나는 옷 가게로 가니 쏘세지가 옷을 갈아입어 사진 찍어주려니 마침 카메라 전원이 없다. 되는 일도 없다. 허무함에 갈 곳 잃은 우린 뉴마날리 시장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시장 슈퍼에서 과자만 잔뜩사서 올드 마날리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과자 먹으며 기분 풀고, 논의 끝에 그냥 미니버스 타러 가자고 그리하여 밖으로 나가서 지프 가격도 알아보고 미니밴 가격도 알아보는데, 미니밴은 900-1000루피 사이, 지프는 7천루피까지 나왔다. 근데 우린 단 3명. 선택의 여지는 없다.
소세지는 어떻게든 지프를 타자고 하는데 나와 하루는 미니밴 타는게 나을 것 같다고 살짝 의견이 갈렸었근데 , 그리하여 우린 숙소에 돌아와 다시 과자먹으며 얘기하다 기왕 이리된거 미니버스 타고 가자고 드디어 의견이 모아져서, 밖으로 나가 미니버스를 예약하러 갔다. 윤 카페 아래 여행사로 향하니 출발하는 버스가 있었는데, 그 동안 알아보며 숱하게 얘기 들은바 앞좌석들이 그나마 그 힘든 길을 버틸만 하다고 하여 우린 자리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으니 여행사 사장이 좋은 자리로 바꿔줬다. 좋은 자리라 함은 최대한 앞쪽.
그래서 나는 운전사 옆에 혼자 앉는 11번 자리, 애들은 운전사 뒤쪽의 1,2번 자리였다. 여행사 사장이 좌석배치도를 보여주면서 11번 자리는 문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 내리고 탈 때 제일 먼저 내려야 되고 늦게 타야된다고 다시 한번 일러주는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나는 오케이를 했고, 드디어 우린 레로 향하는 교통편 예약을 끝냈다. 버스 티켓을 끊고나니 조금은 후련해졌다. 이젠 더이상 고민 할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될거 였음 그냥 그전에 미니버스 타고 갈껄 하는 생각을 좋은 자리 선점으로 위안 삼았더니 마음이 편해진다. 우린 좀 더 마날리를 돌아다니려다가 비가 또 와서 숙소로 돌아와서 수다를 떨었다. 수다를 떠는데 애들이 재밌는 얘기를 해준다.
지금부터 이 얘기는 하루와 쏘세지가 해준 이야기다.
아침에 뉴마날리 가기 전에 쏘세지와 하루 둘이서만 잊어버린 물건 가지로 잠깐 숙소에 왔었을 때 마침 우리층 복도 끝에 이쁘게 생긴 여자애 둘이 방을 보러 왔다. 그런데 마침 정전이 되서 물이 안나오더라는거다. 이쁜 여자애 두명은 물도 안나오고 blabla 하면서 다른 숙소를 알아보려고 가려는데, 아침에 티베트 식당에서 돼지엄마가 찝쩍이던 어린 보빨러 남자애가 우리 숙소에 머무는 애였는데 그 놈이 그 여자 둘을 보더니 아주 화색이 되더라는거다. 그리고 여자애들이 물도 안나오는데 어쩌구 하면서 다른데 방을 보러 가려고 하자 존나 적극적으로
" 제가 씻을 수 있게 나가서 생수 사다드릴게요, 머무 시는 동안 물이 안나오면 제가 그 생수를 다 제 돈으로 사다드릴게요 여기 머무세요 " 이러면서 존나게 보빨을 하더라는거다. 그 보빨러의 정성에 탄복을 한 이쁜 여자애 두명은 결국 우리 숙소에 머물기로 결정을 해다는 거다.
정말 이 얘기 듣고 너무 웃겼다. 직접 눈으로 목격한 하루와 쏘세지는 진짜 골때리는 놈이라고 얘기하는데 얘기만 들어도 웃긴다. 더군다나 아침에 돼지엄마가 찝쩍일때 존나 쳐다도 안본 새끼가 이쁜여자들한테 하는 태도하고는, 진짜 참 병신같은 놈들도 많다.
어쨌든 그 얘기를 듣다
" 그렇게 예뻐? "
묻자. 하루도 쏘세지도 둘 다 입을모아 여자들 이쁘다고 하는데, 궁금해졌다. 암튼 여행 나와서도 발정나서 미친놈 처럼 구는 놈들이 진짜 많다.
우리는 한참 수다를 떨고나서 카드게임 하면서 시간 때우며 놀다가, 애들은 배고프다고 피자먹으로 가고 나는 혼자 숙소에서 소설 28 나머지를 읽는데, 테라스에 앉아서 혼자서 책 보며 쉬고 있으니 너무너무 좋다. 이 여유!
그런데 아까 대화도중 얘기했던 이쁘다는 여자애들이 테라스에 나와서 있길래 얼굴을 봤는데 존나 이쁘다. 진짜 개 이뻤다. 인도에 오실 분들이 아니신데, 어디 발리나 푸켓에 가서 리조트에서 편한 여행을 하실 분들인데, 놀라웠다. 아침 그 김치남 보빨러가 왜 그렇게 보빨했는지 알 것 같다.
한참 혼자 그렇게 있다보니 애들이 돌아왔고, 애들 왔을 때도 여전히 정전중 오늘은 전기가 하루종일 안들어와서 바깥에서 대화를 했다. 마날리의 진짜 마지막 밤이 흘러간다. 심심하다. 술친구가 그립다. 애들이랑 대화하는데 하루가 아침에 도착한 한국 아저씨 좀 이상하다며, 아저씨 얘기를 해주는데 존나 웃겼다.
하루가 해준 이야기는 대충.
아저씨가 잘난척을 엄청 해대는데, 조카사위가 서울대 의사고, 뭐,,어쩌고 저쩌고, 하루를 붙잡고 얘기를 했다는데 난 예전 중동에서 만났던 크리스아저씨가 떠올랐다. 아침에 대화할 땐 그냥 붙임성 좋고, 유쾌한 아저씨 같았는데 또 그런 면이 있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그 얘기를 하고 있는데 아래층에 머무는 그 한국아저씨가 우리에게로 왔다. 와서 말을 건네면서 정말 하루 말대로 자기자랑을 시작한다. 자기가 네팔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는데 전무후무한 빠른 속도로 등정을 했는데 사람들이 그런 자기를 말리며 그런 빠른 속도로 가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하는데 자긴 죽음에 미련이 없다고. 자기는 모두가 말리는데도 엄청난 속도로 산을 탔다고, 뭐 그런 얘기부터, 내일 레로 향한다고 하니까 자기가 고산병 약이 있는데 이게 자기 조카가 서울대병원 의산데 조카가 그 분야 1인자라고 그 조카가 지어준 약인데 자기가 조금 나눠주겠다고 하는거다. 우리는 모두 괜찮다고 사양 하는데도 한사코 주려는거다 . 성격이 무난하고 착한 하루가 난색을 표할 때 짐작가더니 정말 밑도 끝도 없었다.
손에 약을 가지고 오신 아저씨는 우리에게 약을 먹으라며 챙겨주는데 마음은 고마웠는데 난 별로 약을 먹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거절했는데 아저씨는 "정말 고산병 우습게 보지마세요. 그리고 이 약 진짜 좋은 약이에요 " 라며 깔대기가 들어온다. 어쨌든 챙겨주는 마음은 감사했다. 그러면서 아저씨는 아예 자리를 잡고 앉으셔서 우리와 함께 대화를 하는데 재밌는 분이다. 입만 열면 자기자랑인게 조금 껄끄러웠지만 그래도 심성은 참 좋은 분인 듯 했다.
하지만 얘기나누며 거의 3분에 한번 꼴로, 약을 계속 권유하는데 좀 짜증날 뻔 했다. 좀 있으니 아예 약 봉지를 뜯어서 강제로 막 먹으라고 입으로 밀어넣으려고 하는데 난 약간 표정이 굳어졌고, 하루도 약 생각없다는데 아저씨가 계속 권유하면서 아예 약을 하루 입에다 가져가서 막 먹일려니 억지로 먹었다. 그리고 쏘세지는 고산병이 두렵다며 알아서 먹었다. 이제 하나 남은 나도 먹일려고 하는데 그래도 사람 봐가며 그러는지 나에겐 약을 막 억지로 먹이려고는 하지 않았지만 계속 먹으라고 끊임없는 권유. 하지만 난 먹을 생각이 없으니 아저씨는 결국은 포기하고 약을 하루에게 주면서 나중에 나 고산병 오면 꼭 먹이라고. 건네주는데. 참 좋은 의도로 챙겨주는건 좋고 감사했지만 조금 과했다.
어쨌든 아저씨랑 우리 세명이서 한참 대화 끝에 아저씨가 내려가고 나서 하루랑 쏘세지가 진짜 이상한 아저씨라고 그러면서 하루는 자긴 진짜 약 안먹고 싶었다고 하는데 진짜 웃겼다.
재밌는 사람들도 많다.
이제 내일이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인 LEH레를 향해 간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인도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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